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5부 대륙의 하늘에서 새로운 해가 뜨다
망가 망가, 경영자 강빈, 무너지는 ‘하늘’, 최명길, 변화의 바람 6부 그의 죽음은 곧 조선의 죽음이었다 심양에서 북경으로, 세자의 귀환, 불길한 그림자, 죽음의 덫 참고문헌 |
Lee,Jeong Keun,李廷根
|
남한산성에 갇혀 화전양론和戰兩論의 각을 세우며 격론을 벌이던 1월 21일, 이조참판 정온이 외쳤다.
“우리나라는 명나라와 군신의 관계인데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으며 군신의 의리를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에는 두 해가 없는데 최명길은 그 해를 둘로 하려고 하며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는데 최명길은 그 임금을 둘로 하려고 하니 차마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또 척화신으로 심양에 끌려가 처형되어 삼학사三學士로 칭송받고 있는 오달제는 임금이 수항단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기 하루 전, 강화의 조건으로 화친을 배격한 신하를 묶어 보내라는 청나라의 요구로 청군 진영에 끌려갔을 때,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의 친국을 받았다. “너희는 어찌하여 두 나라의 맹약을 어기도록 하였는가?” “우리 조선은 신하의 예로 300년간 대명大明을 섬겨 대명이 있음을 알 뿐이고 청나라가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참으로 기개가 가상하다. 이러한 배청사상은 전란의 혼란과 패배의 와중에 표출된 적개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명나라가 망해 없어진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조선 사대부들의 골수까지 사무친 대명일월大明日月 사상은 새로운 학문과 문물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북학파의 숨통을 조였다. 명이 망하고 300년이 지나 조선이 일제에 강점될 때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왔으니, 조선의 비극이고 소현의 불행이다. --- 「제1권」 본문 중에서 왕명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이경석은 넋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바라볼 뿐 붓을 잡지 못했다. 그는 정종의 열째아들 덕천군 이후생의 6대손이다. 대대로 명나라를 섬겨온 가문의 후손이다. 그러한 자신이 명나라를 부정하고 청나라를 칭송하는 비문을 남겨야 한다니 도무지 붓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밤이 깊도록 고심이 이어졌지만 달리 무슨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새벽녘에야 이경석은 목욕재계하고 사당에 들어가 조상께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붓을 잡은 그는 통석을 삼키며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붓을 놓은 그는 통곡했다. “글을 배운 것이 천추의 한이로다!” 그리고 한 수 시를 남겼다. “수치스런 마음 등에 업고 백길 어계강語溪江에 몸을 던지고 싶구나.” 이렇게 비문은 완성되었으나 비석은 세우지 않았다. 한강 상류에서 장대석을 운반해놓고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칙사가 조선에 나가 삼전도비를 점검하겠다니 세자관에 비상이 걸렸다. 종전 후 청나라에서 처음 보내는 사신인데 중전 책봉, 세자 책봉, 삼전도비 점검에 따라 사신이 세 편이나 되며, 게다가 용골대를 칙사로 하여 100명이 넘는 대규모라고 한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등허리가 더 휘고 국고가 바닥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본국에 긴급 파발마를 띄운 세자는 사신 편수 줄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 「제2권」 본문 중에서 홍타이지의 질환을 통보받은 소현은 착잡했다. 홍타이지는 불구대천의 원수 아닌가. 조국강토를 짓밟고 부왕을 무릎 꿇린 철천지원수다. 하지만 그가 지금 죽는다고 해서 청나라가 약해지고 조선의 국권이 회복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홍타이지가 죽으면 청나라는 오히려 중원 정벌을 서두를 것이다. 그 통에 더 죽어나는 것은 조선일 것이다. 이미 홍타이지가 죽고 사는 것 하나가 대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다. 설령 영향이 있다 해도 스스로 강해지고 나서야 대세의 변화를 활용하여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지, 스스로 강해지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조선은 전쟁에 참패하여 나라를 들어 항복하고서도 조정의 면모를 일신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패전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면피용으로 잠시 물러나 있다가 다시 요직을 꿰차고 앉아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일신의 보신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임진년 당시 영의정이었던 김류가 그렇고 도원수였던 김자점이 그렇다. 김자점은 병조판서로 고속 승진하는 등 득세하여 임금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었다. 소현은 부왕의 인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래가지고서는 전쟁으로 피폐한 민심을 달랠 수도 없을 뿐더러 어떤 희망도 키울 수 없을 것이다. --- 「제3권」 본문 중에서 |
|
망국의 세자로서 볼모생활의 슬픔을 딛고 새로운 조선을 구상했던
소현세자와 그 시대를 오롯이 그려낸,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문제작 작가 이정근은 독특하다. 그의 작품 세계도 참 독특하다. 역사를 소설로 풀어내는 그의 문체는 담백하다. 그 담백한 문체에 담긴 역사의식은 가히 촌철살인이라 이를 만하고 그가 그려낸 등장인물은 독자가 직접 대면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한 네티즌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이정근의 작품에 환호하면서 “수백 년 전 인물을 디지털 감각으로 복원하는 내공에 전율한다. 역사소설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특히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인《소현세자》는 발로 쓴 작품이라서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발자취를 몸소 답사하였다. 남한산성에서 치욕의 현장 삼전도, 삼전나루에서 뱃길을 따라 망원정, 부왕에게 하직인사를 하기 위해 들른 창경궁에서 창릉고개 넘어 임진강까지 더듬어 올랐으나 길이 끊어져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멀리 에둘러 중국을 통해 압록강에 이르렀다. 다시 압록강에서 만주벌판을 가로질러 심양까지 눈물 어린 역사의 길을 따라 밟았다. 심양에서 소현의 자취를 답사한 후에 북경으로 남하하여 마지막 자취를 더듬었다. 또 이 작품은 주요 등장인물의 대사를 거의 모두 사료에 근거하여 구성하였다. 그래서 소설이긴 하지만 탁월한 리얼리티를 구현하고 있다. 대사마다 그 시대의 세계관과 역사의식이 절묘하게 투영되어 있어 저절로 오늘을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작가는 세계사적인 안목으로 시대를 통찰하고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했던 소현세자를 통해,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끼리끼리 노닥거리는 이명박 정부와 여당에 경종을 울리고 싶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