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01. 억지 부리는 남자
02. 억지와 현명 사이 03. 현명한 남자 04. 현자와 군주 |
성동기의 다른 상품
|
나이가 든 나스레딘이 시장에서 까마귀를 샀다.
"손자 주려고 까마귀를 샀나?" 이웃이 물었다. "아니야. 내가 갖고 싶어서 샀어. 까마귀는 천 년을 산다고 했잖아. 그래서 정말 그런지 보려고 말이야." --- p.14 나스레딘은 어려운 질문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재능이 있었다. 그런 그가 한번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만났다. 나스레딘은 반복해서 질문을 듣고는 다음날 대답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섰다. "지금 당장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당신의 자리를 내놓는 것이 어떠세요?" "이 자리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만들어준 자리임이 분명해.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무지에 해당하는 자리를 찾으려면 아마 저 높은 첨탑보다 더 위로 올라 가야 할 걸." --- p.142 "내가 이 지역을 맡고부터는 아직까지 페스트가 없었네. 이것에 대해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의 은총이지요. 신은 한 곳에 두 가지의 불행을 동시에 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 p.196 |
|
중앙아시아의 현자 호자 나스레딘
"우리가 서로 아는 사람인가요?" "아니요." "아니라고요? 저를 전에 어디선가 보지 않았습니까?"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나를 어떻게 아시죠?" "별 웃긴 질문을 다 하는 군요.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당신은 동양의 위대한 웃음입니다. 당신만이 인생의 고통 앞에서 그렇게 통쾌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웃음은 삶의 활력소이고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명약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영원히 사는 사람입니다." 호자 나스레딘은 근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해학과 현명함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터키에서는 그를 호자(호자는 선생님, 지도자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나스레딘 또는 부 아담 이라고 부르고,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에서는 나스레딘 아판지 또는 나스레딘 호자라고 하며 이란에서는 물라 나스레딘,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몰라 나스레딘이라고 한다. 이 인물은 또한 카잔의 타타르 민족과 크림반도의 타타르 민족에게도 유명한 인물이다. 카프카즈의 민족들과 동유럽민족(루마니아, 세르비아)들과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첫 번째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1923년에 파리에서 발간이 되었다.) 현대에 나스레딘은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과 동시대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티무르와 보이저 1세(14세기), 셀주크 터키의 술탄 알라예진(13세기 초엽) 등이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유머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풍자시와 연관이 되어 있으며, 타지키스탄에서는 시인 무쉬피키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호자 나스레딘의 이야기는 아주 일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민족의 전통은 자신의 영웅을 사회적 악에 대항하여 웃음을 무기로 하는 평등의 수호자로 묘사되었다. 호자는 자주 재판관, 어른 또는 지역 관리 또는 정신적 지도자가 된다. 그는 영주와 군주에 대항해서 싸우는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 선다. 그는 지배계층에 반대를 하고 그러한 반대 이념이 그의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 곡선의 웃음 열심히 사는데 그 보답이 없는 말도 안 되는 현실 속에서 세상을 향해 억지를 부리는 호자 나스레딘은 현대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해주거나, 하고 싶은 행동을 대신해준다. 삐딱하게 사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억지를 부려보기도 한다. 그리고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하고 외친다. 우리는 그의 외침에 대해서 웃으며 작은 카타르시스를 느껴본다. 경쾌한 풍자 천하의 티무르 대제 앞에서도 아니 그 보다 더 높은 알라신 앞에서도 나스레딘은 자신의 혀의 꿋꿋함을 보여준다. 나스레딘에게 티무르는 '불행을 가져오는 한 명'에 불과하다. 장미 빛 희망을 던져주는 위정자를 좋아할 수 없다. 진정한 위정자라고 한다면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 오늘이 없는 내일은 아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따뜻한 비애 출구 없는 상황에서 비상구를 찾아보지만 비상구는 없다. 슬픈 현실은 탄식을 하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을 찾아서 멀리 떠나게 만든다. 하지만 나스레딘은 '행복은 어딘가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무엇이든지 만들어내는 부인'을 사랑하고 슬프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면서 억지를 부리는 현대인들을 사랑한다. 비상구 없는 현실에서 슬픔은 사랑을 만듦으로써 또 다른 행복을 찾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