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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출판계의 이상한 풍토 --- 교열 교정보다는 소위 기획을 잘하는 것이 능력 있는 편집자라고 생각하는 것 --- 에도 불구하고 A는 교열 교정부터 착실하게 기초를 다지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어떤 원고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잘 아는 편집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직원이다. --- 1월 11일
11시경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아들 예빈이가 집에서 전화를 했는데, 서울대에서 오전에 어저께 왜 등록을 안 했는지 묻는 전화가 왔다고 했단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아내가 서울대 입시 관리 본부로 연락해 보니 〈어저께 등록이 마감되었으며 합격이 취소되었다〉고 말하더란다. 유진이와 함께 헐레벌떡 서울대로 달려가서 〈우리는 다른 대학에서 그랬던 것처럼 납입 고지서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어제(월)가 마감일인 줄 몰랐으며, 너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지만 등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 2월 10일 열린책들에서는 한 작가나 사상가의 저작을 출간하기로 결정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기획, 설혹 그것이 그 작가의 졸작이나 숨기고 싶은 작품일지라도 〈모두 다〉 보여 주는 기획을 한다. 그래서 어떤 한 작가를 기획 대상에 선정하면, 일단 그가 쓴 대부분의 작품들을 구입해서(원서뿐 아니라 외국어 판본까지도) 면밀하게 검토한다. 모든 저작을 계약하려면 한꺼번에 너무 큰돈이 들어가므로, 그중 중요한 작품부터 몇 권(대개는 저작의 반 정도는) 저작권 계약을 하고 출간하기 시작한다. --- 3월 3일 자신의 단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든 실수를 한다. 누구도 업신여기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또 누구에게나 콤플렉스도 있다. 그걸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유능한 편집자는 무엇What을 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How 책을 만드느냐〉를 아는 편집자다. 기획이라는 것도 주어진 책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거다. 교열 교정도 완벽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편집자에게 아주 기본적인 도구이므로……. --- 3월 8일 출판 편집자의 역할은 첫째, 좋은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 다시 말해 좋은 책을 많이 팔아서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좋은 책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좋은 책을 많이 파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가령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은 좋은 기획자를 쓰고, 좋은 저자를 쓰고, 좋은 편집자를 쓰고, 좋은 재료를 쓰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책을 널리 보급하는 일, 즉 많은 독자에게 책을 파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책이 많이 팔리려면 좋은 책을 골라야 하는데, 좋은 책이란 내용, 소재, 서사 구조 등에 독창적인 것을 담고 있는 책을 말한다. --- 3월 11일 권 주간이 중앙일보에 낸 5단 광고 헤드라인에 오자를 냈다고 보고. 광고에 〈3월 1일〉이라고 해야 할 것을 〈3월 1월〉로 잘못 표기한 것이다. 광고에서 헤드라인에 오자를 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자, 오자, 오자……. 출판사에서 가장 신경이 곤두서 있는 영역은 〈오자 없는 책〉을 만드는 것이다. 어느 출판사에서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오자와의 전쟁〉을 치른다. 요즈음에는 출판사마다 교정의 귀재들이 없다. --- 3월 16일 출판사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38평형 역촌동 에덴 빌라에 살고 있었는데, 4800만 원에 분양받아 이사 온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둘째 유진이 돌날 5평 남짓한 집 지하실에서 직원 2명과 같이 시작했고, 국민은행서 집을 담보로 1000만 원, 신용으로 대출한 1000만 원, 총 2000만 원을 종잣돈으로 출발했었다. 86년 1년 동안은 대학원에 적을 두고 고대신문사에서 부주간으로 근무하면서, 퇴근 후에 출판사 일을 보았다. --- 3월 31일 많은 사람들이, 많은 출판사 종사자들이 출판사 설립해서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고 이야기한다. 출판사의 유아 사망률도 높다고 이야기한다. 출판사 내서 돈을 번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나 출판 경기가 좋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지금도 출판사들이 모두 어렵다고 한다. 아니, 실제로 어렵기는 하다. 매년 내가 출판사를 시작한 이래로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왔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한마디로 아니다. 다만 색깔이 없는 출판사는 실제로 살아남기가 어렵다. 또 유행을 좇아다니는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 8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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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경영인으로, 건축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1남 1녀의 아버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열린책들 홍지웅 대표의 2004년 일기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홍지웅 대표가 출판, 건축, 예술에 대한 생각들과 지극히 사적인 가정사와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뿐만 아니라 점심 밥값이 얼마인지까지도 적은 세세한 일상의 기록이다. 가로세로 13×15cm, 두께 1.2cm의 노트로 10권, 원고 매수로는 5,000매가 넘는 분량이다. 1년 365일 중 빠진 3일을 제외하고 평균을 내자면 매일같이 14매, A4로 두 장 분량의 일기를 쓴 셈이다. 베르베르의 책을 만들면서 있었던 일들, 그 외에 열린책들에서 했던 새로운 시도들(가령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의 케이스 제작에만 70여 일 걸린 경우 등)에서부터 건축가와 건축에 대해 나눈 이야기, 번역가와 책과 삶에 대해 나눈 이야기 등 그가 만나고 만들고 짓고 다니고 쓰고 찍은 2004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일기는 아들과의 약속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적인 일기로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따로 있다. 일기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듯이 2004년에 그는 통의동에 위치한 열린책들의 대표이고 한국출판인회의의 회장이었으며, 출판 교육 기관인 서울북인스티튜트의 설립자이자 초대 원장이기도 했다. 열린책들에 관한 부분에서는 한 회사의 경영인으로뿐 아니라 때로는 기획자로서, 때로는 편집자로서, 때로는 마케터로서, 회사 운영은 물론 책의 기획, 디자인, 편집, 마케팅 등에 대한 큰 방향과 실무 노하우를 함께 엿볼 수 있다. 또 출판 관련 단체에 대한 부분에서는 2004년 현재 파주출판도시의 형성이 얼마큼 진행되었는지, 서울북인스티튜트의 설립 배경과 의의는 무엇이며, 서울북인스티튜트의 서교동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열린책들 직원과 함께한 일본 문화 탐방, 안도 다다오 건축 기행, 개인적인 북유럽 여행 때 쓴 일기는 마치 잘 쓴 여행기를 보는 듯하다. 하루에 십여 개에 이르는 미팅을 하며 분주하게 한 주를 보내고 난 주말이면 휴식을 취할 법도 하건만, 한 집안의 가장인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정원을 손질하며 집안을 돌보았다. 한마디로 사적인 일도, 공적인 일도, 취미생활도 모두 치열했다. 일기가 책으로 묶이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애초에 출간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었지만 우연찮게 일기를 읽게 된 몇몇 지인들이 출간을 적극 권유했다. 공통된 이유는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누군가의 치열한 삶과 인생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 업무 노하우, 기획거리, 문학, 문화, 건축, 예술 등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었다. 삶이 계속되듯 홍지웅 대표의 일기는 2006년, 2009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안에는 마찬가지로 책과 출판을 비롯해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 있을 것이며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내가 미처 쓰지 못한 나의 기록이 될 것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사람과 만나고 대화하는 일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사람과 만나고 대화하는 일이다. 건축은 다른 얼굴을 한 책이며, 여행은 텍스트 읽기의 동의어다……. 어느 한 해, 열린책들 홍지웅 대표가 읽고 만든 책들, 책과 출판을 둘러싼 생각, 그가 만난 작가, 번역가, 예술가, 건축가, 출판인, 벗들과 친지, 그리고 그들과 나눈 대화. 그가 짓고 바라본, 세심한 배려와 예술적 도전이 담긴 건축물들. 인간과 도시와 예술을 읽으며 몽상과 기획을 건져 올린 여행지들. 그가 마신 차와 술, 그리고 그가 심고 가꾼 나무들까지. 때로는 거대한 것을 무너뜨리는 사소한 것들, 다채로운 무늬를 빚어내는 잡다한 일들 속에 그의 생각과 생활이 어쩔 수 없이 노출되고 만다. 3일 치가 모자란 2004년 꽉 찬 한 해의 기록. 그의 기록은 당신의 기록이기도 하다, 당신이 미처 기록하지 못한.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 기록의 달인을 생각했다 -느린걸음 강무성 대표의 표지 글 중에서 대학(고려대학교), 대학 시절 학보사(고대신문), 또 출판계, 나는 이래저래 한 30년 동안 그의 후배로 살아 왔다. 맨 처음 그를 만난 것은 학보사에서였다. 그의 후임으로 학보의 만화를 그리면서 나는 그의 펜을 물려받았다. 그때부터 지켜보게 된 그는 늘 펜을 들고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기록과 보존의 열정은 얼마나 자주 부실한 우리 기록 문화에 대한 한탄으로, 또 주변을 향한 기록의 독려로 이어졌는지 모른다. 급기야 그는 고대신문의 부주간으로 있으면서 몇십 년 치 학보를 영인본으로 간행하는 엄청난(내가 보기엔 엄청 무모하고 불필요한) 일을 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고대신문 서고에 불이 나 보관용 원본 신문들이 소실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을 떾어내리며 이 기록의 달인을 생각했다. 두 일기는 우리 부자간 약속의 한 산물이다 -「머리말」 중에서 왜 이 책을 내려고 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나도 모른다〉. 다만 어쩌다 이 일기를 쓰기 시작하게 되었고, 써놓고 보니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 책이 늘 눈에 밟혔다. 또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지 하고 궁금해지면 시도 때도 없이 들춰 보곤 했었다. 또 어떤 때는 써놓은 게 아깝게 생각되기도 했었다. 이렇게 나는 이 일기를 써놓고는 지난 4년간 낼까 말까를 수없이 망설였다. 이 일기를 쓰게 된 동기는 아주 간단하다. 2003년 나는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때 내 아들 예빈이는 공익 근무를 막 시작했었고 딸 유진이는 대학에 갓 입학했었다. 어느 날 우리 셋은, 잠시 〈공익 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각자의 본분, 말하자면 나는 출판사의 일을, 예빈이는 학생의 본분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때 그 다짐의 하나로 우리 셋은 앤디 워홀의 『일기』를 나누어 번역하고 그 결과물을 출판하기로 했다. [……] 2004년 초 예빈이가 번역을 끝내던 날, 대신 나는 1년 동안 앤디 워홀처럼, 아니 앤디 워홀보다 더 세세하게 일기를 쓰겠다고 약속했었다. 이렇게 쓴 게 이 일기이다. 그로부터 또 4년이 지나갔다. 4년 동안 예빈이는 끊임없이 교열, 퇴고, 교열, 퇴고를 거듭했다. 앤디 워홀은 10년간 7,000매가 넘는 일기를, 나는 1년간 5,000매의 일기를 썼다. 두 일기는 우리 부자간 약속의 한 산물이다. 예빈이의 번역이 어떤 수준인지 또 내 일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다만 우리는 서로 최소한의 약속을 지킨 셈이고, 또 지난 4년간 끊임없이 원고를 만지작거렸다. 이 책을 왜 내려고 했느냐고 묻는다면 소박하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약속한 것들을 〈완성된 형태〉로, 또 〈공개적으로〉 내놓는 거라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