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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했던 영웅의 시대, 신라사에서 인간사를 보다
제1부 신라 초기 귀족에게 버림받은 왕의 아들, 우로 내물왕, 고구려와 손을 잡다 운명을 만들어 낸 눌지왕 그리고 신라의 성장 순교자의 붉은 피 그리고 불교의 공인 노련한 정치가 법흥왕비가 진흥왕을 살리다 깊은 불심의 진흥왕, 신라의 영토를 세 배로 넓히다 신라의 북진을 성공시킨 이사부와 거칠부 제2부 신라 중기 하늘이 내린 가장 고귀한 핏줄, 마지막 성골 왕 설계두, 골품제가 없는 세상을 꿈꾸다 태종무열왕, 당과 손을 잡다 대당 전담 외교관 김인문 연개소문의 죽음 그리고 고구려의 멸망 나당전쟁과 실크로드 문무왕, 일본을 회유하다 전쟁 재발의 두려움과 군비 증강 제3부 통일 신라 신문왕의 화려한 혼례 가짜 신라 왕자의 일본 천황 사기 사건 이상한 해를 사라지게 한 월명사의 도솔가 당으로 떠난 국비 장학생 김암 날씨로 뒤바뀐 운명, 김경신과 김주원 형제를 죽인 남편, 남편을 죽인 형제들 왕실과의 혼인에 집착한 장보고의 비극 기울어 가는 나라, 비운의 지식인 경문왕 외로운 여왕의 남자, 실력자 김위홍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신라의 붕괴 무정부 상태에 떠 있는 질서의 섬 해인사 부록 신라 왕실 가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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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패배자가 되었지만 젊은 시기의 의자왕은 누구보다 영민하고 의욕적으로 영토팽창을 감행한 군주였다. 642년 7월 의자왕은 신라의 합천 대야성 등 40여 성을 함락시키고 경상도 낙동강 서쪽의 대부분의 땅을 확보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의자왕이 신라의 군사 천재 김유신을 중책에 등용하도록 선덕여왕과 진골귀족들에게 강요한 셈이 되었다. 김유신의 등장이 자신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의자왕은 몰랐다. 적어도 당시에는 말이다. 아직 그에게 게임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을 뿐이었다.
--- p.9 「머리말」 이제 법흥왕비가 딸 지소부인과 외손자 삼맥종을 데리고 서석곡에 행차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당시 신라 왕실은 침울한 분위기였다. 3년 전 법흥왕비의 시동생이자 사위인 입종갈문왕이 죽고, 상노인이 된 법흥왕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삼국사기』[권4, 법흥왕 27년「540」 조]를 보면 “가을 7월에 「법흥」왕이 죽었다.”라고 나와 있다. 법흥왕비가 그의 가족과 함께 서석곡에 행차한 지 대략 일 년이 지난 때다. 다시 말해 얼마 살지도 못할 늙은 국왕을 남겨 두고 법흥왕비는 딸 지소부인과 외손 삼맥종을 데리고 왕경을 떠났던 것이다. 서석곡에 놀러 온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 남모르는 이유가 있었다. 법흥왕비는 남편의 재위시 막후에서 막강한 실력을 발휘했던 매우 대가 센 여자였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왕위를 이를 아들을 낳지 못했던 것이다. --- pp.51~52 「제1부 신라초기-노련한 정치가 법흥왕비가 진흥왕을 살리다」 632년 선덕여왕이 즉위했다. 602년부터 본격화된 고구려와 백제의 지속적인 공격을 잘 막아 낸 진평왕의 카리스마는 그의 딸 선덕여왕에게로 이어졌다. 적들의 공격을 받는 위기의 시기에 무능한 군주는 신성함을 보존하기 어려우며 그 신성함이 자식에게 이전되지도 않는다. 『삼국사기』「권5, 선덕왕 즉위년 조」를 보면 “「진평」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국인「진골 귀족」들이 덕만을 왕을 세우고 성조황고라는 칭호를 올렸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전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선덕여왕이 성골이라는 특수한 왕족 의식에 힘입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진평왕의 국토 수호 전쟁이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수많은 사람이 죽고 대야성이 백제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신라 전체가 불안에 휩싸였고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신라 사람들은 더 큰 재앙이 닥쳐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백제와는 낙동강을 경계로 마주보게 되었다. 백제가 강만 넘으면 신라의 왕경이 지척인 대구 벌판이었다. 신라는 수도에서 가까운 경산에 병력을 집중시켜야 했다. 가야계 김유신에게 백제에게서 수도를 방위하라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 정예사단도 배치했다. 위기 상황에서는 김유신과 같은 실력 있는 자가 등용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이 신라 정치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pp.107~108 「제2부 신라중기-태종무열왕, 당과 손을 잡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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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으로 빛나는 고대 국가 신라의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신라를 드라마틱하게 재현해 낸 가장 스펙터클한 역사서! 신라는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여왕이 존재했던 국가이자 거서간, 이사금, 마립간, 차차웅의 왕호를 사용하는 등 독특한 문화를 지니며 천 년 동안이나 유지된 거대한 왕조를 이룬 나라였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왕조 중에서 특히 더 찬란하고 화려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는 그 자체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내뿜는다. 「주몽」 「태왕사신기」 「태조 왕건」 등 사극열풍을 일으켰던 고구려 사극에 이어 「선덕여왕」 같은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만들어지는 이유도 신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미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고대 전쟁사를 연구한 저자는 이러한 신라의 천 년 역사를 이룩한 왕과 왕족,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음모와 분쟁을 철저한 고증을 거친 사료와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스펙터클한 드라마 형식으로 풀어냈다. 단순히 영웅의 무용담을 뛰어넘어 음모와 시련을 이겨 내는 과정에서 영웅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묘사한 부분에서는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엿볼 수도 있다. 영웅이 아닌 한 인간의 일대기로 들여다본 신라 이야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철저히 검증한 역사적 사료와 작가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영웅들의 일대기를 드라마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삼국사기』『삼국유사』와 같은 기본적인 삼국시대 사료는 물론이고 『일본서기』『속일본기』『구당서』『책부원귀』와 같은 일본과 중국의 사료까지 동원해 우리나라만의 시각이 아닌 여러 나라의 입체적인 시각으로 신라를 분석해 냈다. 사료를 바탕으로 당시에 일어났을 법한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웅장한 대하드라마나 무협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히 흥덕왕의 뒤를 이을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적판궁의 난투극을 묘사하는 장면은 단연 백미라고 할 만한다. 흥덕왕이 죽자 스스로 왕위에 오른 김균정과 이를 막아 내려는 조카 김제륭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어느새 그 상황에 몰입하게 만든다. 김유신과 김춘추를 발군해 낸 카리스마 넘치는 선덕여왕의 이야기도 놓칠 수 없다. 632년 성고황조라는 칭호를 받고 화려하게 재위했지만 끝이 없어 보이는 전쟁과 삼국통일이라는 과업을 물려받은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을 책봉한 당태종의 세력이 약화되자 폐위를 종용받은 여왕의 비참한 최후 그리고 뒤이은 음모와 내란 등. 이처럼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숨 가쁘게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못 긴장감마저 느낄 수 있다. 가장 쉽게 역사를 알아가는 감성적인 역사교양서! 사극 열풍이 불면 늘 역사 왜곡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역사 신드롬도 발생한다. 역사 신드롬이란 확실하지 않은 사료나 추측으로 인물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 내어 사람들에게 역사의 허구를 진실로 믿게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 이 책은 신라를 이끈 고대영웅들의 일대기를 한 인간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것이지만, 역사 신드롬을 피해갈 수 있는 제대로 된 역사교양서다. 왕과 왕족이라는 지위 뒤에 가려진 한 인간의 고뇌와 열정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룬 드라마보다 감성적이면서도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라면 시원스럽게 전개되는 영웅들의 이야기에 단번에 매료될 것이고, 국사 시간에 꾸벅꾸벅 졸기만 하던 학생이라면 신라 역사의 주요 사건을 쉽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