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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서문∥ 정신, 너무나 변덕스러운 요소 1장 양파의 텅 빈 중심으로 가는 여행 2장 4월의 어느 추운 월요일 3장 총기난사로 가는 길 4장 계획된 종말 5장 일그러진 정신의 해부학 부록 1 조승희의 선언문 부록 2 조승희가 쓴 희곡 '리처드 맥비프' 역자 후기 사건 일지 |
Juan Gomez Jur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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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버그보다 더 아래에 위치한 곳도 있다. 그곳에서 더 서쪽에 있는 아이오와나 네브래스카에 있는 조그만 마을들이 그런 곳이다. 거기에는 가장 가까운 인근 마을이 6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진 곳에 있고, 겨울이 되면 1미터 반이나 쌓이는 눈과 여름의 타는 것 같은 더위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없다고 한다. 미국인들을 그런 곳을 ‘하트랜드’, 즉 대지의 심장이 있는 곳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거기서 자라는 유일한 것은 옥수수와 절망뿐이다. 바로 총기난사에 비옥한 조건이 마련된 땅인 것이다. --- p. 21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그리고 어느 마약중독자가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릴 때마다, 그리고 헛간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대신 도끼로 가족을 학살하거나 아니면 우체국으로 가서 우편배달부의 목을 날려버리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신문 칼럼니스트 중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게 뭐지요?” “‘하트랜드’가 순결과 순진함을 잃어버리고 타락해가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런 빌어먹을 지옥에 무슨 놈의 순진함이야, 라고 나는 내 자신에게 묻곤 하지요.” 거의 예언적인 그런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그날 밤 “‘안전한 장소’ 버지니아의 블랙스버그에 온 걸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을 전속력으로 지나쳤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 p. 25 “죽은 척 해. 너희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그는 너희들을 다시 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도중, 조승희가 다시 강의실에 들어온다. 그는 타원형으로 나아가면서 강의실을 다시 살핀다. 힐러리 스트롤로의 손을 꼭 잡고 있던 클레이 바이올랜드는 눈을 감는다. 총소리가 날 때마다, 그는 자기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클레이, 이제 곧 내 차례야. 음악은 끝난 거야. 이제 곧 내 차례가 될 거야.’ 살인범은 눈에 띄는 모든 사람들에게 총을 발사한다. 그는 세 번이나 다시 장전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급히 서두른다. 자신에게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직감한 것 같다. 그는 눈을 뜨고 있는 콜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서 두 번 더 총을 쏜다. 하나는 둔부에, 다른 하나는 어깨에 맞는다. 콜린은 고통을 참지 못해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른다. 그의 상처를 막고 있던 크리스티나는 기절한다. 콜린의 비명을 듣자 클레이는 눈을 뜬다. 그리고 총소리가 잠잠해진다. 멀리서 나는 총소리를 듣자, 그는 황당한 생각을 한다. ‘또 다른 범인이 있어. 빌어먹을! 이젠 모든 게 끝났어.’ --- p. 121 이것은 처음과 끝이 설정된 계획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조승희가 그녀에게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그가 귀찮게 했던 여학생들, 그러니까 그를 고발했던 여학생들에게 집착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두 사람이 서로 사귀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나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점에 관해 하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고 싶습니다. 조승희에게 이 사건은 피의 결혼식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죽은 사망자들은 하객이었지요.” --- p. 164 Hi, How are you? 내가 조승희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순간은 일대일 강의를 하던 시간이었어요. 나는 그에게 다른 학생들과 의사를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말했고, 그는 처음으로 내게 말했어요. "난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그럼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안녕, 잘 지내?’(Hi, How are you?) 라고 말해봐." 조승희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내게 말했지요. "언젠가 그렇게 해보겠어요." 나는 총기난사를 시작하기 바로 전에 그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읽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루신다 로이 조승희의 옛 교수 --- p. 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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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이유 없는 악惡에 대한 탐구
자유로운 엄지와 뇌의 신피질을 동시에 가진 인간종의 특징이 과연 이 행성에 어울리는가 - Johann Hari 왜, 지금 조승희인가? 1999년 4월 20일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그리고 2년이 흐른 지금……. 다가오는 2009년 4월 16일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2년 전 봄 어느 날,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명문 공과대학에서 일어난 초현실적인 비극적 참사. 32명의 사상자와 20여명이 넘는 부상자를 낸 희대의 총기난사 사건. 당시 미 국민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이 사건을, 오늘 다시 기억해낼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 몇이나 될까? 어쩌면 2년 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버지니아 공대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총기사건이 외신을 통해 한국사회에 전달되었을 때, 우리들이 경악과 충격에 휩싸였던 이유는 냉정히 말하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미국으로 이민 가서 성장한 한국인 교포 1.5세대라는 사실. 그래서 우리가 보인 반응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개인의 문제조차도 민족의 문제로 환치 시켜버리는 데서 오는 집단적 히스테리였다. 그것은 분명 조승희가 한국계라는 것에 대해 당연히 가져야할 관심과 유감의 차원을 뛰어넘는 지나친 동일시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세 번에 걸친 사과, 미국 대사 이태식의 32일 간 금식기도 제안, 사과의 성금 모금 캠페인과 촛불집회 등은 그것이 설사 선의에서 나온 행위들이었다 해도 한국인의 집단 심성에 가로놓인 과도한 민족주의를 드러내 보여준 것이었다. 둘은, 비록 소수에 국한된 것이었다 해도, 조승희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미국인이니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반응이었다. 이 허무 개그 수준의 참담한 발언들은, 그러나 전자의 행위들과 동일한 집단 심성을 공유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이 사건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개인적 혹은 집단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정작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 이해는 너무 파편적이거나 왜곡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속보성의 단편적인 추측성 보도, 수사상의 혼선에서 비롯된 사실 오인 등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현실에서, 음모론의 출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는 반드시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되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거대 방송사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에게 보내져온 조승희의 선언문과 사진, DVD 동영상을 상업적 계산(정보의 독점+선정성=시청률)에 의해 일방적으로 방영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비극적 사건을 한 편의 미스터리 블록버스터로 소비하도록 조장했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이 보도한 이 사건의 이미지 역시 그들이 흘린 부스러기들의 조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한국 사회(또는 미국 내 한인사회)가 보인 집단적 반응의 강도에 비추어 보더라도 지나치게 무책임한 소극적 태도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승희에 의해 저질러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에도, 단 한 번도 이 사건을 숙고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 2월, 우리 사회는 또 다시 끔찍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8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부인과 장모를 방화해 살해한 강호순 사건이 그것이다. 유영철, 정남규, 작년의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과 고시원 방화 사건에 이어, 강호순 사건까지. 왜 잊을만하면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단지 그들이 태생적으로 악마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일까? 인간 본성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먼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은 허다한 사건들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우리들 자신의 안이한 태도와 이해 수준이다. 국가는, 예의 사회기강을 걱정하고 이제는 실체를 상실한 사회도덕과 윤리를 강조한다.(때로는 의도적으로 공포를 조장한다.) 신문과 방송의 ‘심층보도’수준이나 논조도 거기서 거기다. 비슷비슷한 정보들에 흥미를 잃는‘소비자’들인 우리는 이제 어지간히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면 반응하지도 않는다. 그중 철없는 자들은 자기만의 밀실에 앉아 흉악범의 팬 카페를 만든다.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 갔을까?’이렇게 묻고 나면, 마땅히 따져야 할 수사기관의 ‘무능력’ 문제도 갑자기 허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빈 자리를 메워주는 것이 미국산 범죄 수사물(이른바 ‘미드’)들이다. 적어도 이 ‘미드’들은 인간의 생명을 겨냥하는 사이코패스들의 유형들? 그들의 일그러진 지배욕에 대한 정보라도 알려주니까. 끔찍한 범죄 앞에 속수무책인 우리들에게 통쾌한 대리만족이라도 가져다주니까. 그래도 남은 허탈함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이다. TV 화면을 떠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들이 기억하는 사건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사건이 지닌 개별성과 사회성, 특수성과 보편성, 이런 것들을 이해하기 이전에 우리들은 사건의 전체상조차 모르기 일쑤다. 바로 2년 전의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지금 소개하려는 책은 한 외국(스페인)의 유망한 젊은 작가가 쓴 이 사건에 대한 논픽션이다. 이 책은 이미 지나버린 사건에 눈을 돌린 사람들을 자극하는 선정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의 목적을 가지고 써내려간 책이다. 현대 사회의 비극에 대해 기자적, 작가적 열정을 가진 이방의 작가가 한국계 청년이 저지른 비극적 사건에 접근을 시도한다. ‘조승희 사건’에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든 상관없다. 220쪽 분량의 글을 읽어 내려갈 인내심이면 충분하다. 사건 발생 3개월 만에 출간된 최초의 논픽션 이 책을 쓴 후안 고메스 후라도는 《신의 스파이》라는 제목의 추리소설(혹은 팩션)으로 유럽에서만 8백만 부라는 경이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이 책의 특성을 내세우는 데 있어 오히려 부차적인 요소이다. 이 책의 장점은 화려한 문장과 기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자적 열정의 돋보임에서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16일, 그는 미국 뉴욕에서 책 출판기념회를 겸한 저자 사인회에 참가하고 있다가 우연히 버지니아 공대 사건 소식을 듣게 된다. 1977년생인 젊은 그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열정을 잃지 않은 기자였다. CNN이 전하는 소식을 접하자 그는 작가로서의 다른 일정을 포기한 채 곧바로 버지니아 공대가 있는 블랙스버그로 향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3개월 만에 숨 가쁘게 사건에 관한 이 한권의 책을 완성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건의 전체상을 충실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허구’의 극적인 매력을 아는 추리작가이지만, 저자는 픽션에의 충동을 억제하고 먼저 사건 자체에 충실하려고 온 힘을 기울인다. 시간을 분 단위까지 잘게 쪼개어 놓은 후, 그는 살인이 이루어진 두 개의 공간 안에서 사건이 어떤 방식과 순서로 진행되어 갔는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가 이어가는 시간의 퍼즐들은 매우 촘촘한 그물이면서 동시에 입체적이다. 그 그물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경찰 조서, FBI 범죄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의 진단과 분석을 통해 검증된 ‘사실들’이다. 그는 시간의 퍼즐을 다루는 뛰어난 작가적 능력 더하기 사실을 추구하는 기자적 열정으로 마침내 ‘사실’에 가장 근접하고 설득력 있는 사건의 전체상을 완성해낸다. 그러나, 당연히, 이 책의 장점은 ‘사건의 재현’에만 있지 않다. 작가가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 것은 단지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왜’ 그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작가가 쓴 한국어판 서문과 1장의 글을 읽게 된 독자라면, 그가 처음부터 문명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이 사건에 접근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 책이 미국 사회의 내부고발자로서 무방비의 총기문화를 고발하는 마이클 무어 류의 고발과는 다른 깊이를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미국 중하층 청소년들의 소외와 억눌린 욕구,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된 왜곡된 지배욕의 분출에 다분히 감성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영화 〈엘리펀트〉보다 더 너른 폭을 지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심한 독자라면 이것을 느끼지 못할 리 없다. 이 책은 새롭게 출현한, 공허함을 특질로 하는, ‘이유 없는’ 악에 대한 탐구이다 이 책의 원제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학살) 사건 - 일그러진 정신의 해부학’이다. 비슷하게 보이는 유사 사건들도 따지고 들어가면 저마다 고유한 성격과 근거를 가지고 있다. 작가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최단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것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운 1982년 4월 26일의 경상남도 의령군 ‘우범곤 총기난사 사건’(일명 ’우순경 사건’)이 ‘조승희 사건’과 “다르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어떤 의미에서, ‘조승희 사건’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이민자는 정체성 정립의 과정에서 이중의 소외를 겪을 수 있다. ‘통합과 배제’의 기율이 복잡한 이민 국가는 어린 시절부터 폐쇄적인 성격의 장애를 지닌 조승희에게 적당한 성장 터가 아니었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에 ‘얹혀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조승희와 그의 가족의 행로, 그들의 삶이 놓여 진 환경과 조건을 설명한다. 거기에는 동화되려고 해도 온전히 동화될 수 없는 ‘소수자’에 대한 연민이 배어 있다. 그러나, 그는 조승희의 상처에 대해 연민하지만 결코 그의 일그러진 정신에 대해서는 타협하지는 않는다. 소외된 자는 고통 받지만, 모든 고통 받는 자들이 피해‘망상’을 겪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 피해망상을 아무런 이해관계도 갖지 않은 타자들을 향한 폭력으로 전화시키지 않는다. 이 책의 백미는 아무래도 조승희에 대한 심리 프로파일링에 있다. 작가는 조승희가 어떤 정신적 경험을 거쳐 피해망상을 키워 가는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이것을 타자에 대한 일그러진 지배욕으로 전화시키는지 추적해 간다.(이 피해망상의 조각들을 제 멋대로 끼워 맞추어 초현실적인 비극을 만들어냈다는 의미에서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을 ‘매드 무비’라고 붙였다. 표지 날개의 Mad Movie 용어 설명 참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공대에서 실행되고만 이 악(폭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며, 낯설다. 2년 전 그날, 광기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여학생은 주목받을만한 증언을 남겼다. 그녀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사람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조승희의 눈을 보았다고 했다. 단지 서두를 뿐, 구체적인 누군가를 향한 분노나 노여움도 담겨 있지 않은 공허한, 텅 비어 있는 눈……. 명확한 정황도 없이 일상 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악의 얼굴, 평소에는 그저 상상이었던 것이 분명한 임계점도 없이 곧장 살인으로 치달아버리는 광란의 실체, 왜소한 자신을 왜곡된 메시아로 수직상승 시켜버리는, 피해자를 심판자로 둔갑시키는 심리의 돌연변이는 과연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 설명되지 못한, 낯선 악에 대한 탐구의 시도이며 안간힘이다. 이 소개 글을 마감하면서 남겨두고 싶은 말은, 이 책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미완의 보고서’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미 자신의 글이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여행이 ‘양파의 텅 빈 중심을 향한 여행’(1장 제목)임을 알았다. 사실의 한복판을 향해 다가갈수록 모호해 지는, 실체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악과 그것이 만들어낸 비극…….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미국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책 몇 권이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다. 그리고 ‘버지니아 공대 위원회’는 불과 몇 개월 전에 이르러서야 조승희의 컴퓨터(그의 유일한 친구였던)에 남아 있던 이메일을 공개했다. 《매드 무비》를 세상에 내어놓으며 우리는 이 책의 선구적 역할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스페인의 젊은 작가 후안 고메스 후라도는 한국인인 우리에게 21세기의 인류사회에 출현한 악(비극)에 접근하는 탐구 여행에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우리는 그래서 무척 부끄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