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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 과거를 보듬는 나지막한 목소리
재일 1세의 증언 간토關東 주고쿠中國 긴키近畿 홋카이도北海道 / 도호쿠東北 시코쿠四國 도카이東海 규슈九州 호쿠리쿠北陸 / 고신에쓰甲信越 저자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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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세 91인의 육성이 오롯이 담긴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재일조선인들의 구술 생애사를 통해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다 저자는 2001년부터 5년간 일본 전역을 찾아다니며 ‘재일동포 1세’들의 증언을 채록하고 사진을 찍어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온갖 차별과 핍박, 가난과 전쟁의 공포를 딛고 꿋꿋이 삶을 지켜온 그들 91명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이 책에 그대로 담겨 있다.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난 죄로 전쟁의 노동력으로 강제 동원되어 일본에 건너온 사람들, 해방 후 먹고살기 위해 현해탄을 건넌 사람들, (한국) 전쟁을 피해 또는 (제주도) 학살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난 사람들. 그러나 일본에서의 삶은 더욱 녹록지 않았다. 공사판 막노동과 엿장수, 넝마주이, 돼지치기, 밀주 장사 등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 속에서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80세 이상의 고령이고, 그들이 세상에 존재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재일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다. 1세가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 했다”는 저자의 말이 무색하게도 인터뷰를 한 후 할머니, 할아버지들 네 명 중 한 명은 이미 사망했다. 그럼에도 지금껏 배타적 민족주의에 의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들의 삶은 역사의 한 조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 속에도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가,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의 역사가, 한국과 일본의 불투명한 외교사의 그림자가 그대로 겹쳐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그들의 구술 생애사를 우리 역사가 끌어안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문동인 할아버지 :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서 자기 나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어. 내게도 나라가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았을 때는 기뻤지.”(50쪽) 강문희 할아버지 :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들이 죽었지.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은 조선인, 중국인도 죽었어.”(82쪽) 정용순 할머니 : “일본 말은 좀 서툴지 몰라요. 여긴 시골이잖소. 하지만 한국말이라면 자신 있어. 안 잊어버렸으니까.”(86쪽) 김위란 할머니 : “죄다 죽었어. 나만 혼자 남고. 한국에 가고 싶어. 자식들 데리고.”(90쪽) 강보영 할아버지 : “우리들 오카야마에 있는 1세들이 돈을 모아 강제연행자들의 위령비를 세웠소. 여기는 근처에 미쓰이 조선소가 있어서 많이 끌려왔는데, 모두 죽어나갔지요.”(101쪽) 한선동 할아버지 : “가족, 형제까지도 서로 나뉘어서 싸웠지. 다 죽었어. 남은 것은 시체와 폐허뿐이었지….” 김태선 할머니 : “도둑질과 살인 빼고는 다 해봤지. 조국이 통일될 때까지는 절대 눈 못 감아.”(134쪽) 전정년 할머니 : “여기는 조선인 동네라 차별은 없지. 돈이 없어서 조선에 못 가. 조선이 좋지. 지 나라가 좋은 법이여, 지 고향이….”(137쪽) 조갑연 할머니 : “ 한국 어디 높은 산에 가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 뼛가루를 뿌려주면 족해.”(153쪽) 이현달 할아버지 : “지금은 형제자매와 고향이 그립소. 우리들은 나그네라오, 나그네….”(181쪽) 서무생 할머니 : “차별이 있기는 했지. 차별받는 생각이 들 때는 그냥 잊어버리려고 했어.”(185쪽) 김상명 할아버지 : “정치는 국민 생활을 보살피는 것이 최우선.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바랍니다. 지금도 저는 조국, 민족을 사랑합니다.”(188쪽) 박영옥 할아버지 : “세금을 내는 것은 국민의 의무. 의무를 이행하면 국민으로 인정하면서 선거권은 없는 거야. 의무를 이행하라고 하려면 권리를 줘야지.”(220쪽) 박덕윤 할아버지 :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세상도 고생스럽긴 하지만 역시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고 싶지. 공부도 더 하고 싶고.”(264쪽) 강차대 할아버지 : “일본 군대는 무차별 학살을 하고도 군인 연금을 받고, 살해당한 조선인 인부에게는 어떤 보상도 없어. 그저 개죽음이지.”(268쪽) 김기선 할아버지 : “제일 힘들 때 세상에 나왔어. 전쟁 전, 전쟁 중, 전쟁 후… 죄다 가시밭길이었어. 재일 3세 정도만 되었더라도 좋았을 텐데….”(276쪽) 박수엽 할아버지 : “고향에 있었을 때는 끼니도 거르는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한국이 좋아.”(286쪽) 정증순 할머니 : “차별당할 때는 굽실거리면서 받아넘겼지. 남편은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말려서 지게 했어.”(306쪽) 박한규 할아버지 : “죽으면 한국 땅으로 돌아가고 싶소. 1세니까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 가야지. 1세니까.”(353쪽) 재일동포 1세 91인의 신산한 삶에서 불우한 역사의 교훈을 배우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서 소외된 존재, 더욱이 남북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이 그대로 옮겨진 민단과 조총련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에 부딪치며 살아온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라 부르고 있다. 저자는 책의 제목을 ‘재일 1세’라 이름 붙였지만, 우리의 정서상 그대로 가져오기에는 문화적 차이가 컸다. 일본에 건너간 시기에 따라 해방 전이면 재일조선인, 해방 이후면 재일한국인으로 일컫기도 하지만 재일조선인과 재일한국인이라는 이름은 남북 이데올로기의 쟁투가 그대로 옮아간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 그렇다고 재일동포라는 말이 적절한 것은 아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재일동포라는 말은 조국으로부터 타자화하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자이니치’라 부르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해묵은 역사적 갈등의 문제들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또한 일본에서도 차별과 무시로 일관된 대우를 받으며, 양 국가 사이에서 표류하는 존재로 살아야 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