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글] 대붕(大鵬)을 그리려다가 연작(燕雀)을 그리다 5
[여는 말] 유언 13 제1장 북만주의 여름밤 소부대 현지지도 23 / 소릉하 계곡 34 / 북만주의 여름밤 40 / 고향 집 49 / 일본의 야욕 60 제2장 압록강을 건너다 왕산 허위 71 / 허위의 순국 78 / 박상진 85 / 경술국치 91 / 순국의 여진 97 / 압록강을 건너다 108 제3장 망명생활 육로 117 / 수토병 124 / 삼원포 130 / 신흥무관학교 135 / 환위이민정책 144 / 독립전쟁 150 / 경신참변 158 제4장 항일전사가 되다 이가태자 165 / 대흉작 172 / 핏빛 이주사 178 / 붉은 바람 187 / 5·1절 반일시위사건 196 / 심양 감옥의 결의 202 제5장 동북 제일의 파르티잔 중국공산당 빈현특별위원회 209 / 마침내 군장이 되다 218 / 추적자 226 / 장엄한 희생 231 / 비적 두목 격살 240 / 뒷이야기 245 제6장 영웅을 찾아가다 하얼빈 253 / 동북열사기념관 259 / 영웅을 찾아가다 269 / 풍운의 대륙 277 / 들꽃을 바치다 283 / 마음의 고향 287 [닫는 말] 고유 293 [부치는 글] 아름다운 인연, 그리고‘ 약속’을 지킨 멋진 작가 - 장세윤 295 참고문헌 301 |
朴鍍
박도의 다른 상품
|
대부분 작가들은 필생을 바쳐 꼭 쓰고 싶은 작품이 있다고 한다. 작가 박도의 실록소설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허형식 장군』은 그러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박도는 경북 구미 출신으로,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구미 금오산 기슭에서 태어난 충절의 인물에 관한 얘기를 듣고 자랐다.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현대사에서도 나라를 구할 조선의 무명베와 같은 튼실한 사람이 있을 거라는 유언을 듣고는 자기가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가운데 박도는 고교 재학시절 자기 고장 출신 박정희 장군이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자 환호하면서 할아버지가 말씀한 인물일 거라는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살아있는 사람은 함부로 글을 쓰지 않는다는 충고와 함께 박정희 장군은 만주군 장교였다는 전력을 들려주었다. 박도는 그 사실을 듣고 큰 충격에 빠진 채 지냈다. 그의 나이 55세이던 1999년 여름 중국대륙 항일유적지 답사 길에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고향 출신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을 만났다. 그러자 그는 작가로서 어떤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역사에 함몰된 허형식 장군의 행적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자 자료수집과 역사공부에 진력했다. 그는 마침내 2016년 여름, 집필을 하기로 작심한지 16년 만에 탈고하여 이 늦가을에 책을 펴내게 된 것이다. 허형식 장군은 1909년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에서 태어난 바, 그 전해 경성감옥(서대문교도소) 개설 첫 교수형으로 순국한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旺山) 허위(許蔿)의 집안 조카였다. 허위의 순국으로 임은동 허씨들은 일제 등쌀에 견딜 수 없어 1915년 봄, 만주로 집단 망명하여 길림성 통화현 다황거우, 진두허, 유하현 삼원포, 요녕성 개원현 이가태자 등지를 유리표박하다가 흑룡강성 빈현 가판점으로 이주했다. 허형식은 거기서 더욱 투철한 항일전사가 되고자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당원으로 입당하여 최용건(崔庸健)의 지도를 받았다. 1930년 5월 1일 허형식은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습격을 주도, 심양감옥에 수감되어 그곳에서 조상지(趙尙志)와 평생 동지 김책(金策)을 만났다. 이들은 삼국지 도원결의(桃園結義)처럼 혈맹을 한 뒤 각자 항일전선 최일선 전사로 용맹을 크게 떨쳤다. 1939년 허형식 장군은 31세 젊은 나이로 조상지 군장의 뒤를 이어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에 오른 후 중국공산당의 지시에도 끝내 소련으로 월경치 않고 고집스럽게 소부대 활동으로 북만의 인민과 전구를 지키다가 1942년 8월 3일 이른 새벽 경안현 청봉령 소릉하 계곡에서 만주군 토벌대에게 장렬히 전사했다. 작가 박도는 이 책의 [머리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해방 후 우리 백성들은 줄곧 오만 잡스러움과 가짜들의 추악한 행태로 매우 지치고, 정의와 양심에 허기져 있다. 나는 이번 작품에서 조선의 무명옷처럼 순결한 한 항일 파르티잔의 올곧은 생애를 오롯이 그려 보았다. 이 작품이 지치고 허기진 백성들에게 한 줄기 빛으로, 한 모금 생명수로 앞날에 대한 ‘희망’을 주고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패자의 기록, 역사에 묻힌 한 인물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작가의 몫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의 이 작품이 일제강점기 때 한 항일 파르티잔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징검다리 역할이라도 한다면 지은이로서 더없는 영광이겠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장세윤 교수실장은 [부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작가는 20세기 전반기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 우리 민족에게 절실히 필요로 했던 독립과 자유, 평등, 공동선과 그 실현을 위해 희생한 한 항일명장의 장대한 서사시이자 영웅적 드라마를 멋들어지게 그렸다. 이 작품의 주인공 허형식은 당대의 여러 가지 모순을 척결하고, 억압과 폭력, 차별이 없는 사회, 불평등과 탐욕, 약자에 대한 수탈이 없는 사회,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풍요로운 사회,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의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맹렬히 투쟁하다가 끝내 33세의 나이로 만주국 토벌대의 총탄에 장렬히 산화했다. 허 장군은 자신과 가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니라,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당신 모두를 제물로 바쳤다. 이 작품의 일부 픽션 부분은 사실 전개에 무리가 없는 내용으로 최소화한 것으로 판단된다. 작가는 먼 북만주에서 만주국 토벌대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한 허형식 장군 희생지를 현지 답사한 뒤, 16년간의 각고 끝에 완성한 이 실록소설『허형식 장군』은 분명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을 떠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