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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박하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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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이야기를 시작하며 5

캠핑 전야 10
처음으로 하는 마지막 고백 22
마음이 주저앉아 30
보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고 개새끼, 라고 말하게 되는 밤 44
터미널의 돈가스 정식 60
살아 있어요 76
가끔 땅한테 미안해요 88
서로의 요정이 되어 94
실제 동화 110
사랑, 어쩌면 섹스 118
우리 집에 놀러올래요? 150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62
나의 아주 깊숙한 방 172
그 사람의 유전자 180
가장 평범한 섹스 188
언젠가 우리는 계단에서 떨어질 거예요 200
인대가 나가는 법에 대하여 216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 사랑은 멀어져요 230
나는 그런 데 안 가요 236
나도 그런 데 안 갑니다 248
나의 장례식 식단 구성 258
당신의 슬픔에 경애를 268
캠핑 시작 286

이야기를 마치며 322

저자 소개 2

대학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늘 슬픔에 대해 생각하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추궁하면서 이야기를 써왔다. 결국 마음은 몸 뒤에 있다고, 한 발 뒤로 물러서면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로 소설의 발표를 시작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와 서사창작을 공부했다. 에세이 《네 멋대로 해라》를 시작으로 〈한겨레〉 〈경향신문〉 〈조선일보〉 〈시사IN〉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실었고,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지지 마, 당신》 《뜨겁게 안녕》 등의 에세이집과 연작소설집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장편소설 《녹즙 배달원 강정민》 등을 썼다. 어떤 상처를 받아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때려눕혀 이겨내는 강인함보다 상처를 그대로 지닌 채로도,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안은 채로도, 그래서 목 놓아 울다가도 천천히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이들의 묵묵한 슬픔에 늘 마음이 간다. X(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와 서사창작을 공부했다. 에세이 《네 멋대로 해라》를 시작으로 〈한겨레〉 〈경향신문〉 〈조선일보〉 〈시사IN〉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실었고,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지지 마, 당신》 《뜨겁게 안녕》 등의 에세이집과 연작소설집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장편소설 《녹즙 배달원 강정민》 등을 썼다. 어떤 상처를 받아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때려눕혀 이겨내는 강인함보다 상처를 그대로 지닌 채로도,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안은 채로도, 그래서 목 놓아 울다가도 천천히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이들의 묵묵한 슬픔에 늘 마음이 간다.

X(트위터) @neopsyche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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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430g | 130*190*30mm
ISBN13
9791195823000

책 속으로

굽 낮은 샌들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잿빛 도는 핑크빛 아코디언 주름 스커트를 입은 수미의 종아리는 조금 둥글고 통통했지만 뽀얗고 깨끗했다. 섬세한 아일릿으로 장식된 낙낙한 하얀 블라우스, 새끼손톱보다 작은 펜던트 목걸이를 한 목덜미도 마찬가지로 청결함이 느껴졌다. 펑크족으로 보일 정도까진 아니지만 약간 거친 느낌으로 징이 박힌 민정의 샌들은 조금 터프했는데, 짧은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길쭉한 맨다리도 자세히 보면 미끈한 게 아니라 온갖 흉터로 역시, 굉장히 터프했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가장 터프한 건 그런 흉터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마이크로 숏팬츠를 입는 민정 자체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상처투성이 다리를 보고 자주 싸움을 거는 여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단지 그녀는 술을 마시면 쉽게 넘어질 뿐이었다. 많은 만취자가 그렇듯이.
--- p.15

읽고 삭제해도 좋고 읽지 않아도 상관없어. 한 번쯤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 나는 두려웠어. 더 나빠지거나 돌이킬 수 없어질까봐. 그 흔한 생일 카드도 한 번 주지 못 했던 건 무엇을 써도 다 고백 같았기 때문이야. 생일 축하한다고,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흔히 하듯 써도 그 옆에 오빠 이름을 쓰면 바로 고백이 되어버 리는 것 같았어. 오빠는 내 이십 대의 전부였어. 나는 어제까지 내내 스무 살로 살다가 하루 만에 갑자기 스물아홉 살 마지막 날에 와 있는 기분이 들어. 피곤하다.
--- p.26

그렇지만 그의 마음은. 그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정말 궁금하고 싶지 않은데 이따금씩 그런 궁금증이 치밀어오를 때가 있어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비밀로 하고, 그러면서 말 한마디로 쉽게 나를 저쪽으로 치워버리는 것. 무슨 그 남자의 발 닦는 닦개처럼… 웰컴매트.
--- p.72

다행히 집이 코앞이라 간신히 그를 뿌리칠 수 있었어요. 내게는 목숨의 위협이었지만 어차피 그에게는 귀갓길의 가벼운 장난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바로 헐떡헐떡 집으로 달려가 울면서 아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고했어요. 나가서 그 미친놈을 패줄 거라 굳게 믿었어요. 그리고 경찰에 신고해주기를 기다렸죠. 그렇게 안 해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그런데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아버지는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네가 밤늦게 다니니까 하나님이 벌을 주신 거다.
--- p.105

오늘은 다시 그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잘 살다가 갑자기 불행해지고, 문득 나에게 한 번쯤 사과하고 싶어졌으면 좋겠어요. 그가 아무것도 잊지 않고, 나를 기억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으면 해요. 길 가다 날 마주치면 몸 가릴 곳이 없어 몸 둘 바를 몰랐으면 해요. 그리고 나는, 몸 둘 데를 몰라 허둥대는 그를 피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 싶어요. 마음이 치매 같아요.
--- p.158

어느 날 분을 참지 못한 그가 무릎을 꿇으라고 해서 나는 그렇게도 해봤어요. 정말 무릎을 꿇으면 가정이 지켜지는지 궁금했거든요. 지켜지긴 뭐가 지켜져요. 무릎만 꿇고 엎드리질 않아서 그랬나. 서너 시간을 그러고 있었더니 내 무릎 인대만 상하더군요. 가정은커녕 내 인대 하나도 지키지 못했는데.
--- p.222

잘 봐, 나는 너 때문에 죽는 거야, 이 장면을 너는 평생 기억하며 살아, 병신 같은 년이라고 비웃다가도 망할 귀신이 되어 저주를 내릴까봐 머뭇거려지겠지, 계속 그렇게 머뭇거리며 사는 거야, 욕을 할까 말까. 길을 걷는데 자꾸만 나를 닮은 여자가 스쳐가고, 그 여자들이 자꾸만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며 눈앞에 툭 툭 떨어지겠지, 그런데 그건 꿈이 아니라서 깨어날 수가 없어.
그렇게 그가 평생 곤란하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어렸던 날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나는 이런 전화를 받으며 또 살아가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라고.
--- p.243

옛사랑은 불현듯, 자주 쓰지 않는 가전제품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집 안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토마토를 갈아먹고 싶어졌을 때 떠올린다. 아, 믹서가 어딘가 있을 텐데, 하고. 여기 어딘가, 분명 여기쯤 어디, 둔 것 같다고. 그리고 잘 쓰고 다시 둔다. 잘 두었지만 어딘가로 금세 사라지고 만다. 오늘치의 삶 속에는 그 물건이 없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수미에게서 완벽한 가전제품이 되었음을 알았다. 내가 어떻게 이런 마음이 되었을까. 수미는 의아했다. 그 사람 때문에 울었던 밤이 얼마인데, 오늘은 까맣게 잊힌 가전제품. 일 년에 한두 번 쓰게 되는 때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물건에게서 마음이 떠난 채 방치되어 있다는 것을 물건도 스스로 기어코 알게 되고 마는 거겠지.

--- p.319

출판사 리뷰

그 죽일놈의 사랑에 대한 연민을 걷어차 버리기로 했다.
더 이상 나는 ‘따위’나 ‘까짓것’이 아니므로.

“당신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어떤 누구라도
이제 그만 그 자리를 일어서면 된다고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시대의 힘없는 서민들의 삶에서 사회 모순을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꼬집어 글로 풀어내는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첫 소설을 발표했다. 부당함과 편견을 냉소적인 유머로 고발하는 그녀답게, 소설 역시 거침없는 사실적 표현으로 공감대 높은 스토리를 그려냈다. 이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촉발되는 한국 사회의 젠더 무의식에 경종을 울리고, 여성들이 겪어온 불평등한 성적 층위에 대해 각성시키는 소설이다. 30대 여성인 수미와 민정의 삶을 소환해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사랑하는 일에 남성의 이기심과 폭력이 얼마나 큰 상처와 자괴감을 심어주는지 신랄하게 보여준다.

곧 서른이 되는 수미는 10년 가까이 사랑해온 남자에게 어느 새벽, 카톡을 보낸다. 이쯤에서 물러나겠다고, 다시없을 사랑이라는 그녀와 행복하라고, 혼자서 너무 많이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을 남긴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그에게 닿지 못하고 민정에게 도착한다. 그가 휴대폰 번호를 바꾸면서, 그 번호는 새 휴대폰을 등록한 민정이 우연히 쓰게 된 것. 영문 모를 메시지에 망설이던 민정은 답톡을 보낸다. 나는 그 남자가 아니라고, 그런데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혼자서만 사랑할 수 있었냐고, 그동안 그 남자는 당신을 어떤 관계로 두었느냐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진다. 그렇게 두 여자가 삶 속에서 여성으로서 목격하고 겪은 억압과 위협, 자발적 차별을 인식하지 못한 기억들에 대해 카톡으로 주고받기 시작한다. 딸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받은 정신적 학대, 한밤 중 학원에서 귀가하는 여고생이라고 낯선 남자에게 당한 추행, 하룻밤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길거리 남자들의 매도, 자신의 위치를 여자에게 확인하고 싶은 남자의 폭력적 권위 등 남성이 가해자인 현실을 내밀한 고백과 뜨거운 고발로 쏟아낸다.

여성이라는 이름이 조건으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두 여자의 삶을 다룬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는 수많은 여성의 숨겨둔 마음 속 이야기를 대변하는 페미니즘 소설이다. ‘여혐’, ‘메갈리아’, ‘문단 내 성폭행’ 같이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적 쟁점에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성들의 삶에는 억지로 닫은 서랍 속에서 금방이라도 삐져나오려는 잡동사니처럼
구겨 넣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 소설은 이례적으로 공저다. 함께 쓴 김나리는 대학에서 소설을 공부한 젊은 작가로, 김현진이 그의 ‘섬세하게 결이 빛나는 글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세태 소설을 쓰고자 이 작품으로 도모했다. 그래서 이야기는 두 사람의 페르소나처럼 수미와 민정에게 투영하여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서간체 방식으로, 현대인들에게 보편적인 소통 수단인 ‘카카오톡’을 차용한 것은 소설에 신선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두 사람의 카톡을 가감 없이 실질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세밀한 심리 묘사가 이 소설의 매력으로 드러난다. 여성으로서 그때 그 자리에서 또는 그 순간에 꺼내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수미와 민정의 말들은 이 시대를 사는 30대 여성을 대변하기에 당연할 정도로 자세하고 현실적이다.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과 생각을 나누고자 완성된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남성 중심 사회의 잣대로 스스로 자신을 재단하고 잘못된 자괴감을 갖는 여성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기까지 함께하고자 하는 용기의 상징이다.

작가의 말

사실 여성들의 숨겨진 삶, 그들이 차마 말하지 않는 삶에는 그런 일들이 가득 차 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어, 요즘 누가 그렇게 살아, 설마 그런 일이 있으려고, 말하지만 실제로 설마 ‘그런 일’들이 어떤 여성들의 삶에는 억지로 닫은 서랍 속에서 금방이라도 삐져나오려고 하는 잡동사니처럼 가득 차 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그 어두운 서랍 속의 이야기다. 캄캄하고 꽉 차서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이게 내 것인지 네 것인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밀어서 간신히 닫아놓은 서랍. 마음속에 꽉 찬 서랍을 지닌 여러분.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김현진-

더 많이 말하고 언제든 호소하라고, 그 목소리 자체가 구원의 재료가 될 거라고,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어떤 누구라도 이제 그만 그 자리를 일어서면 된다고. 혹시 그것이 나의 뿌리 같은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하기로 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 이야기를 마치며, 김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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