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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제1장 정조 아버지의 꿈을 향해 1_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왜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갑자기 발병했을까? 왜 사적인 영역에서만 발병했을까? 극도의 위기상황에서 왜 발병하지 않았을까? 2_ 영조의 심리적 병 세 가지 심리적 병 │ 심리적 병과 영조의 성격특성 심리적 병이 만들어낸 결과 심리적 게임, 양위소동 3_ 영조는 왜 아들을 죽였는가 아버지, 자신의 심리적 병을 인정하세요 영조의 귀를 장악한 여인들 │ 사도세자의 죽음 4_ 억압을 깨고 일어선 정조 억압을 극복한 정조 │ 무의식적 소망을 ‘승화’시킨 정조 정조는 왜 미치지 않았을까? │ 흔들리는 정조 5_ 아버지의 꿈을 향해 아버지에 대한 한없는 사랑 │ 정조의 심리적 건강성 강철 같은 의지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 전략가(INTJ)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길 6_ 정조의 딜레마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 │ 반성하지 않는 어머니 죽어서나마 아버지 곁으로 에필로그 제2장 이이 결단코 포기할 수 없다 1_ 기울어진 저울추 비범한 어머니, 신사임당 │ 착하지만 무능력한 아버지 삐거덕거리는 부부관계 │ 화목한 가족을 꿈꾸다 사회불안과 싸우다 : 금강산과 구도장원공 2_ 또 다른 아버지들 심리적으로 건강한 전략가(INTJ), 이이 정신적 아버지, 퇴계 이황 │ 아버지의 그림자, 선조 이이가 진퇴를 거듭한 이유 │ 아버지와의 화해 3_ 결단코 포기할 수 없다 사회생활에 대한 부적응 │ 세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 에필로그 제3장 허균 내 마음 머물 곳이 없어라 1_ 일그러진 유년기 아버지에 대한 반항 │ 실질적인 아버지, 허봉의 몰락 어머니는 어디에? │ 어이없이 박탈당한 심리적 치유의 기회 방치된 지도자(ENFJ), 허균 2_ 은둔과 공명 사이에서 거칠고 가벼운 성품 │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구나 나의 천재성을 인정해달라 │ 불우한 이들과의 동일시 나를 보살피기에도 바빠서 3_ 변절자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중년기의 위기 │ 허균은 정말로 혁명을 도모했는가? 에필로그 제4장 연산군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겠다 1_ 조상의 업보 간신들의 나라 │ 한명회의 사위, 성종 과부 트리오 │ 대비들 VS 폐비 윤씨 병적인 심리의 희생양 │ 왜 꼭 죽여야 했는가? 2_ 신뢰할 수 없는 세상 연산군의 삶을 지배한 불신감mistrust 생존을 위한 의존 │ 연산군의 심리적 병 부모를 극복하지 못한 연산군의 비극 내 마음대로 하겠다 ; 어린아이(ENFP) 3_ 자기 무덤을 파는 연산군 우리도 너를 신뢰할 수 없다 │ 훈구파에게 이용당한 연산군 할머니의 죽음과 연산군의 발병 │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폭탄 개혁 청사진의 부재 에필로그 부록 성격이론 개요 │ 인물 성격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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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훌륭한 부모 밑에서 생애 초기와 유년기를 보냈기에 심리적 건강성을 가질 수 있었다. 안정된 정서, 뛰어난 감정통제 능력, 세상에 대한 신뢰감, 최소화된 분노감정, 자기반성 능력 등이 그것이다. 비록 열한 살에 아버지를 잃었으나 이러한 심리적 건강성은 ‘전략가’(INTJ : 내향, 직관, 사고, 실천)라는 그의 성격특성과 결합되어 극단적으로 불리한 환경에서도 백성을 위하는 개혁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고 개혁정치를 줄기차게 밀어붙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로서도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머니였다.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는 어린 시절의 정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양육자였지만 청소년기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그에게 커다란 심리적 상처를 안겨주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라나 백성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자, 가족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중년기에 이른 정조의 인생은 개혁을 반대하는 수구보수세력과 반성을 거부한 채 아들에게 등을 돌려버린 어머니의 협공을 받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과 맞서 싸우며 사회적으로는 조선의 새로운 개국을 향해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를 뜨겁게 포옹할 그날을 위해 정조는 하루도 쉬지 않고 나아갔다. --- pp.17~18 이듬해 봄 서울로 돌아온 이이는 한성시에서 장원급제를 한다. 그 후 그는 아홉 번이나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불렸다. 어떤 이들은 이이가 과거시험을 지나치게 많이 본 것을 출세욕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초점이 빗나간 추측이다. 물론 그가 과거를 어느 정도까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이의 빈번한 과거응시를 단지 그것만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만일 출세가 목표라면 과거를 아홉 번씩이나 볼 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관직에 나가 승진을 노리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에게 과거시험은 사회불안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사회불안에 시달리던 이이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축적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자주 본 것이다. 이는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여 3년 상을 치른 뒤에, 그가 무려 네 번이나 과거에 응시해 장원급제를 한 데서도 뚜렷이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보다 그의 사회불안을 더 크게 자극했을 테니, 이이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과거시험을 네 번이나 보았고 그때마다 장원급제를 해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을 다진 것이다. (……) 이이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또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신기록을 작성했다. 이를 통해 그는 온 세상으로부터 과거시험에서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를 한 전무후무한 천재라는 ‘공식인증서’를 받게 되었고, 이는 사회생활에 대한 그의 막연한 불안감을 억누르고 자신감을 드높여주는 큰 무기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사회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구도장원공’이라는 눈부신 휘장을 가슴에 달고 사회에 나가야만 한 것이다. 아버지 세계에 대한 탐색전이자 사회진출의 첫 관문인 과거시험 무대를 천재성으로 제압한 이이는 드디어 국가를 화목한 대가족으로 만드는 대장정에 들어섰다. --- pp.162~163 허균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이들의 우울한 눈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불우한 이들의 투쟁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불우한 이들에 대한 허균의 사랑과 관심은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위안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므로 그의 비판의식은 제한성을 면치 못했다. 그는 서얼들에 비하면 여성, 평민 나아가 노비 같은 천민들의 권리나 해방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는 개인적 소망의 제약을 받아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거침없이 발전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스스로 유자儒者로 지칭하고 『홍길동전』에서도 홍길동이 양반의 후예임을 굳이 밝혔듯이, 서얼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자고 주장하면서도 양반계급을 인정했다. 이것은 그가 양반계급 자체 곧 봉건적 신분제도를 폐지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양반계급의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서얼들과 어울린 측면이 강함을 시사해준다.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이 신분제도가 철폐된 사회가 아니라 그저 착한 왕이 다스리는 신분제 국가인 것, 그리고 홍길동이 스스로 율도국을 조선의 속국으로 만든 것도 양반계급을 격렬하게 욕하면서도 그곳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허균의 이중적인 심리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허균의 무의식은 주류 양반계급에게 인정받고 대접받고 싶은 욕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결과 허균은 죽을 때까지 주류 양반사회를 떠나지 못했고 그 속에서 비참하풰 최후를 마친다. 어쩌면 그는 홍길동처럼 조선 천지에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뽐내면서 기성사회에 저항해 아버지와 왕에게서 인정받은 뒤 이상사회인 ‘율도국’으로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계속 은둔을 꿈꾸면서도 아버지 세계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이야말로 바로 허균의 인생을 비극적으로 만든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 pp.245~247 연산군을 실패한 왕으로 만든 데는 그의 성격도 한몫을 했다. 그는 내면세계보다는 외부세계에 관심이 많은 외향형(E)이었다. 연산군의 외향적 특성은 사냥을 무척이나 즐긴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경연에는 참석하지 않으면서도 사냥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게다가 연산군은 사냥을 위해 비번인 군사들을 차출하기도 해 신하들에게서 끊임없이 지적을 받았다. 또한 연산군은 사냥에 쓰는 매와 개, 말을 아주 좋아해서 그 동물들을 궁중에서 직접 키웠다. 그래서 신하들이 조회를 할 때면 그 주변을 사냥개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일제가 왕궁을 동물원으로 만들기 전에 이미 연산군이 그 시범을 보인 셈이다. 상당히 심한 외향형이어서 그랬는지 연산군은 내향형(I)들이 선호하는 독서에는 영 취미가 없었다. 그래서 사헌부에서 “전하가 동궁으로 계실 때는 서연을 조금도 폐한 일이 없어 삼경三經과 사서四書를 모두 읽었으나 즉위한 후 6년간에 아직도 강목綱目 한 권을 다 읽지 못했다”는 잔소리를 들었다. 연산군은 감정이나 언어표현이 풍부하고 감정기복이 심한 외향감정형(EF)이었다. 그는 잔치판이 벌어지면 스스로 북을 치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이는 외향감정형의 반대인 내향사고형(IT)이라면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흥이 나더라도 전략가(INTJ)인 정조나 율곡 이이는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연산군은 또한 예술적인 직관감정형(NF)이어서 130여 편에 달하는 시를 지었고 명필의 반열에 들 정도로 글씨를 잘 썼으며, ‘처용무’에도 뛰어났다. 또한 그는 그림, 공예, 음악 등에도 관심이 많았고 조예도 깊었다. 연산군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인식형(P)이었다. 세자 시절에는 스파르타식 교육을 잘 견뎌내는 등 나름대로 성실한 생활을 해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왕이 됨으로써 생존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자 인식형의 특성이 크게 발호한다. 연산군은 자신이 싫어하는 행사에는 걸핏하면 불참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행사에는 지나치게 몰두하는 충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노사신이 죽어가면서까지 “경연에 참석하기에 힘쓰라”고 충고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 pp.327~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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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성격특성을 결정짓는 부모관계
역사학자가 사료를 체계화하고 해석해 역사의 흐름을 밝혀낸다면, 심리학자는 인류 역사 속에 명멸한 여러 인물에 대한 기록들과 일화들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해 그들의 인생을 추적한다.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학이론서와 심리학교양서를 집필해온 심리학자 김태형은 ‘사람은 사회적 존재다’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하여 조선의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사람의 인생 곡선은 생의 초기인 유년기에 거의 결정되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질과 능력, 심리는 대부분 어린 시절의 부모관계에서부터 형성·발전된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손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고 그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극복하지 못해 평생 그 한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으며, 이이는 비범한 어머니 신사임당에게서 건강한 심리를 물려받았으나 착하지만 무능력하고 비겁한 아버지 이원수에게서 상처 받아 오랫동안 사회불안에 시달렸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다른 가족이 가엾게 여길 정도로 막내인 허균을 엄격하게 대하여 그는 둘째 형 허봉을 아버지처럼 대하며 자랐고 어머니 또한 그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은 대비들과 훈구파 대신들에 둘러싸여 ‘허수아비 왕’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결국 폐비 윤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연산군은 생애 초기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여 원초적 신뢰감을 획득하지 못했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부모관계는 한 사람의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책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은 정조는 성군이 되었는데 어머니 폐비 윤씨를 잃은 연산군은 폐주가 된 이유, 어린 시절 건강한 부자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심리적 병을 갖게 되었으나 이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과 끊임없이 싸운 반면 허균은 이리저리 방황하다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 이유를 부모관계에서부터 풀어나간다. ▶ 심리학자가 만난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 정조, 이이, 허균, 연산군은 모두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며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정조와 이이가 고통을 용감하게 직면함으로써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 결과 건강한 인생길을 걸어간 반면, 심리적 병을 치료하지 못한 허균과 연산군은 그 병이 악화되어 허무한 생을 살았다. 이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이들에게 삶의 동기가 되거나 스스로 생의 에너지를 갉아먹게 만들었는지, 이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실천했는지, 그로 인해 역사의 물줄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추적해가다 보면 ‘그들은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들은 왜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각 인물을 바라보고, 그들의 삶과 성격형성에 영향을 끼친 주변 인물과 사건을 꼼꼼하게 짚어본 이 책을 통해 정조, 이이, 허균, 연산군의 인간적인 내면과 그들이 활동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 성격유형으로 살펴본 조선의 인물들 이 책은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는 내향(I)-외향(E), 감각(S)-직관(N), 감정(F)-사고(T), 실천(J)-인식(P)이라는 유형 쌍들을 조합하여 만들어낸 16가지 성격유형에 근거하여 ‘전략가’(INTJ)인 정조와 이이, ‘지도자’(ENFJ)인 허균, ‘어린아이’(ENFP)인 연산군의 성격특성과 행동양식을 분석했다. 1. 정조 : 내향(I)-직관(N)-사고(T)-실천(J)형 ‘전략가’(INTJ) 정조는 밖에 나가서 움직이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독서를 즐겼으며, 지적이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말을 할 때는 거침이 없고 다변가이지만, 얼굴표정이나 언어로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았다. 정조의 이런 성격특성은 2009년 초에 발견된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 편지들에서 정조는 당대의 유명인사들에게 욕설이나 비속어를 섞어가면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혹평을 했다. 예를 들면 최측근인 노론계 서영보를 ‘호로자식[胡種子]’, 노론 영수 심환지를 ‘생각 없는 늙은이’, 젊은 학자인 김매순을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 일부 유생들을 ‘오장에 숨이 반도 차지 않았고 (……) 도처에 동전 구린내를 풍겨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는다’고 비판했다. 이런 정조의 신랄한 인물비평을 두고 어떤 이들은 그가 다혈질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보통 ‘다혈질’이라는 말은 감정기복이 심하거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조는 감정기복이 크지 않았고 분노감정도 매우 잘 통제했으므로 다혈질이라 할 수 없다. 단지 그는 마음속에 한이 많은 사고형(T)이므로 언어나 글을 통해 표현되는 타인에 대한 평이 일반인들에 비해 상당히 냉정하고 신랄했을 뿐이다. 곧 그는 타인의 기분에 민감한 감정형(F)처럼 남들에 대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완곡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정조와 똑같은 성격(전략가INTJ)인 율곡 이이도 인물평이나 비판에서는 매우 가혹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정조가 사적인 편지에서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성격특성과 관련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정조는 통찰력이 있고 개방적이며 미래지향적이어서 유교국가 조선의 왕이면서 유교 외에 불교나 도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으며, 심지어 사교로 배척하던 천주교에 대해서도 관대했다. 객관적 법칙이나 기준에 따라 사고하는 유형으로 공정함, 정의 등에 민감했고, 원대하면서도 치밀한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반드시 실천했다. 사회과학, 자연과학, 이공계 학문을 선호하여 자연과학 특히 공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는 배다리나 수원화성 축조 등에서 십분 활용되었다. 원리원칙을 고수하고 양보나 타협을 모르는 유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요구도 많고 그 기준도 매우 높으며 완벽주의를 지향했다. ‘전략가’(INTJ)의 장점을 두루 갖춘 정조는 낡은 조선을 대대적으로 개혁할 백년대계와 과감한 개혁정책을 수립하고, 숱한 반대와 극단적인 고난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강철 같은 의지로 개혁을 밀고 나갔다. 2. 이이 : 내향(I)-직관(N)-사고(T)-실천(J)형 ‘전략가’(INTJ) 율곡 이이는 타고난 천재성과 ‘전략가’라는 성격에 더해 어머니에게서 안정된 정서와 강한 자신감, 도덕성과 생활력 등을 고스란히 넘겨받았으며, 평생 동안 왕과 신하, 신하들 사이, 조정과 백성들 사이, 가족들 사이를 화목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직관형다운 개방성으로 당시의 경직된 학풍에서 불교와 도교를 용납했고 양명학과 서경덕의 기학도 포용했다. 잘못된 것을 그냥 지나가지 않고 타인을 비판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4세 때 훈장님의 실수를 지적하고 7세 때 「진복창전」을 지어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을 비판했다.(후일 실제로 진복창은 권세를 휘두르다 몰락함.) 이이는 실천형(J)답게 「자경문」을 지어 항상 계획을 세우고 신속하고 빈틈없이 일을 해나갔으며 주어진 업무를 빠르게, 체계적으로 처리했고 잠시라도 틈이 나면 독서를 하고 집필활동을 했다. 또한 그는 사고형(T)이라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사리에 맞는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경향이 강해서 남들한테 냉정하다는 인상을 주는 편이었다. ‘전략가’(INTJ) 이이는 거시적인 안목과 날카로운 정세판단 능력에 기초해 쇠락해가던 조선을 재건할 수 있는 개혁에 대한 탁월한 청사진과 난국을 수습할 수 있는 묘책을 제시했으며, 주변의 비판과 반대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묵묵히 실천해나갔다. 3. 허균 : 외향(E)-직관(N)-감정(F)-실천(J)형 ‘지도자’(ENFJ) 허균은 언어능력이 출중하고 감정표현이 풍부해 외교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했고, 예술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나 감정통제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면서도 꼼꼼하고 성실하여 일처리 속도가 빠르고 집중력이 뛰어났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과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이며, 열정적이고 창조적이며 온화하고 동정심이 많아 ‘포스’와 창의력,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능력이 있어 지도자로 맹활약했다. 반면 분노감정이 많고 자제력이 부족하여 상대방의 불순한 동기나 의도를 읽어내면 바로 공격을 퍼부었으며 갈등을 잘 견뎌내지 못하고 상당히 주관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강했다. ‘지도자’(ENFJ) 허균은 놀라운 천재성을 갖고 태어났으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고 충분한 격려와 지지를 받지 못해 생의 에너지가 부족했고, 감정이나 분노를 절제하지 못해 주위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끌어가지 못했다. 게다가 상황판단을 냉철하게 하지 못해 이이첨을 철썩 같이 믿다가 그에게 배신당함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4. 연산군 : 외향(E)-직관(N)-감정(F)-인식(P)형 ‘어린아이’(ENFP) 연산군은 언어표현이 풍부하고 감정기복이 심한 외향감정형이어서 잔치판이 벌어지면 스스로 북을 치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며, 외부세계에 관심 많아 사냥을 즐겼다. 예술적인 직관감정형으로 130편에 달하는 시를 지었고 글씨를 잘 썼으며 처용무, 그림, 공예, 음악 등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었다. 그는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인식형으로 관례, 규칙, 규율을 무시하면서 충동적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주관성이 강하고 반성능력이 부재하여 신하들의 비판에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화를 잘 내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채 모든 것을 자기 편할 대로 생각하면서 처벌을 남발했다. 천방지축이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어서 관례나 전통 등 자신을 속박하는 건 아예 무시하고, 엄격한 규칙도 가벼운 마음으로 위반했으며, 신하들과의 소통도 부재했다. ‘어린아이’(ENFP) 연산군은 생애 초기에 안정된 양육을 받지 못했고, 왕이 되기까지 생존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불신감, 정서불안, 애정결핍, 자신감 결여, 방어적 태도, 의존심, 심한 분노감정 등을 갖게 되었다. 이는 연산군이 어머니의 비통한 죽음을 알게 된 후 극단적인 광기와 잔인성으로 폭발하게 되었고 결국 연산군은 폭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역사무대에서 쓸쓸하게 퇴장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