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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왜 다시 정의인가? 1부. 각자의 정의를 다투는 시대 1. 2024년 계엄의 밤, 드러난 대한민국의 민낯 집단주의적 정의론 : 역대 가장 개혁적인 중장년의 출현 태극기부대의 정의론 : 공포형 혹은 생존형 보수의 슬픔 개인주의 세대의 정의론 : ‘정의’보다 ‘공정’이 중요해진 이유 2. ‘우리’ 된 적 없는 세대의 탄생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대에 왜 생존불안인가? 각자도생 서열경쟁 속 만성적 존중불안 체념 이후, 공정에 대한 과도한 집착 “나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니 너는 말할 자격이 없다!” 2030 남성은 정말 보수화되었나? 2부. 우리는 왜 가짜 정의에 열광하는가 3. 가짜 정의 1: 능력주의만이 해답이라는 착각 능력주의, 기득권의 도구가 되다 청년들이 능력주의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심리 아무리 노력해도 능력이 늘지 않는 이유 역사상 능력에 따른 분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4. 가짜 정의 2: 기계적 공정이 최선이라는 착각 능력이 안 되는 자에게는 할당을 반대한다 절차적 정의, 진정한 개혁을 포기한 대가 5. 가짜 정의 3: 페미니즘이 문제라는 착각 페미니즘이 분노를 만났을 때 남성 청년은 왜 페미니즘에 격하게 반발하나 여성들이 탄핵 시위에 더 많이 참여하는 이유 6. 가짜 정의 4: 내가 곧 정의라는 착각 정상성 신화, 배제와 혐오의 그늘 정치적 올바름, 목적과 수단의 전도 3부. 진짜 정의 권하는 사회 7.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정의가 필요하다 인간은 정의를 원한다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이 위험한 이유 부정의는 사람을 파괴한다 8. 분배 정의에 관한 개인적 생각 기존 정의론의 한계는 무엇인가 생존권은 분배 대상이 아니다 사회적 존경을 분배하는 사회 9. 우리에겐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분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 기본소득이 공동체를 복원한다 누가, 왜 기본소득을 반대하는가 에필로그 사람들이 악해서 서로를 죽이는 오징어 게임을 할까? 미주 참고문헌 및 인용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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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다. 즉 사람들이 병들어 백약이 무효인 극도의 위험 상황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치하여 공멸하느냐 아니면 정의 실현을 위한 근본적 사회 개혁에 성공하여 행복한 미래로 나아가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상황이다. 정의 없이 정신이 건강할 수 없고, 정의 없이 행복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p.16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오늘날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이자 초미의 관심사인 ‘정의’에 관해 되짚어 보기를 희망한다. 한국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대동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평등 없이 정의가 없고, 정의가 없이 화목이 없다. 우리주의자인 한국인은 모두가 가족인 ‘우리’가 되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대동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대동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다. --- p.19 한국 청년 세대는 한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수준인 고립적 생존불안과 존중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오늘날 청년들은 거대한 불안에 짓눌려 온몸을 떨며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셈이다. --- p.63 오늘날 청년 세대는 능력을 키워야 자신들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으며, 이 믿음에 인생을 바치고 있다. 그들로서는 마침내 자신의 능력을 높였는데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부정의한 현실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취직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해 능력을 키웠기 때문에, 누군가가 능력도 없이 낙하산으로 일자리를 얻으면 몹시 분개한다. 이는 자신의 능력, 노력을 배신하는 부정의이자 불의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심리에 기반해 생각해 보면, 이들이 능력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게 훨씬 이상한 일 아닐까? --- p.93~94 불평등한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국민의 불만이 자신들을 향하지 못하도록 분열과 갈등의 정치, 희생양을 만드는 정치에 매달린다. 나치 독일은 국민의 불만이 독점자본가계급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국가의 지배층은 이민자를 비롯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중이다. 오늘날 한국 기득권층 역시 국민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지 않도록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하면 다수집단, 정상집단 혹은 내집단에서 내쳐지는 데 대한 공포도 비례해 커진다. 오늘날 한국인은 정상집단에 편입되기 위해 ‘정상성 신화’에 매달리고, 자신이 편입하지 못할까 불안해한다. 집단에서 내쳐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잘 알고 있어 이를 대단히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불안은 정상집단 바깥의 사람들에 대한 거친 배제와 혐오로 표현된다. --- p.161 컵라면과 추리닝만으로는 사회적 존재로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기본소득 혹은 최저생계비는 특정 사회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득을 말한다. --- p.220~221 인류가 선택해야 하는 삶은 개인이 서열경쟁을 하며 싸우는 삶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사는 사람다운 삶이다. 서로 갈등하고 다투는 삶의 끝에는 공멸이 기다린다. 인간의 죽음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죽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신이 파괴되거나 인간 본성을 상실하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한국인은 대부분 육체적으로 살아 있지만 정신적으로 죽어가는 중이다. 한국인, 나아가 인류가 공멸을 피할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다시 서로 단결하는 것이다. 그 끝에 비로소 공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p.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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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정의를 다투던 계엄의 혼돈은 끝나지 않았다
사회심리학자가 정의론을 말하는 이유 자신이 믿는 정의를 얼마나 극단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지의 정점을 보여준 2024년 12월 3일 계엄의 밤이 1년을 훌쩍 넘겼다. 그 밤 각자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충돌하던 집단들은 이후 탄핵 정국에 들어 더더욱 대립각을 높이며 갈등으로 치달았고 지금도 곳곳에서 부딪치며, 우리 사회 정의관이 얼마나 다양해졌는지 그리고 그들 사이 간극이 얼마나 커졌는지 보여주고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선(善)이 있다는 믿음은 이제 오래전 공동체가 굳건하던 시절의 희미한 전설처럼 회자될 뿐이다.저자는 말한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추구하는 정의의 형태는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이를 거쳐 오며 발전한 심리 기제에 기인한다. 우리 사회의 정의관을 바로 세우기 위해 서로의 마음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 사회 다양한 정의관의 탄생 배경과 그 마음을 살펴본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이념 대립의 공포 속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며 살아남아야만 했던 태극기 어르신들의 정의, 공동체가 굳건하던 시절 ‘우리’가 함께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고 성장한 중장년층의 정의, 그리고 오늘날 보수화 흐름의 진원지로 지목당하며 끊임없이 분석의 대상에 오르내리는 2030 청년들의 정의까지. 특히 저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청년 세대의 정의관을 톺아보며, 오늘날 우리 눈을 가린 가짜 정의와 우리가 잊은 진짜 정의를 분별해 보자고 제안한다. IMF와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해 사회인으로서 경제 활동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생존불안과 존중불안을 겪으며 버티는 청년들.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기계적 공정, 극단적 페미니즘, PC주의… 정의처럼 보이지만 정의가 아닌 것들 신자유주의가 부상하면서 무한한 경쟁의 굴레에 빠진 청년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개인주의적 정의인 ‘공정’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능력주의를 맹신하고 소수자 우대 할당제에 반대하며, 페미니즘에 반발하거나 페미니즘을 무기로 정의를 집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남녀 갈등 속에서 남성 청년이 극우 보수 세력으로 기우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정도다. 그들은 정말 보수화된 것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과열된 경쟁사회, 자신의 풍요를 위해 필연적으로 타인을 밟고 올라야만 하는 서열사회, 그리고 맞서 싸울 수 없는 규칙이 공고히 자리 잡아 삶을 위협하는 불평등사회에 사는 청년들은 기존 사회구조에 체념할 수밖에 없다. 절차적 정의, 기계적 공정에 집착하는 이유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고립적 생존불안과 존중불안에 압도당한 청년 세대는 집단주의적 정의, 즉 사회정의가 아니라 개인주의적 정의에 매달린다.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개인화, 파편화, 서열화된 세상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정치세력화되지 못했고 … 한국 사회가 불평등함을 잘 알고 있지만 개혁하려는 의지는 약하다. 청년 세대는 이런 패배주의적 신념이 가장 강한 세대일 뿐이다. ─ 본문에서 하지만 능력주의는 입학이나 입사 시험 같은 개인 간 경쟁에는 특효일지 몰라도, 전체 사회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협소한 분배 원칙이다. 배경이 불평등한 구조에서 출발의 평등을 보장하지 못하며, 무엇보다도 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절차적 정의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센델이 지적했듯, 절차적 정의가 보장된다고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며 사회정의가 실현되어야 절차적 정의도 의미가 있다. 공정은 정의의 하위 개념이다. 정의는 주로 사회나 집단 범위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인 반면 공정은 개인 간 경쟁 규칙을 다루는 협소한 개념이다. 과거 정의론은 모두 힘을 모아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오늘날에는 어떻게 하면 개인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지 격론을 벌이는 데 그친다. 하지만 개인의 이익이나 행복을 위한 정의는 이미 정의가 아니다. 공정은 정의의 자리를 찬탈한 이기주의일 뿐이다. ─ 본문에서 기계적 공정을 앞세운 갈등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거나 여성할당제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반대하는 양상으로 격화하면서, 약자와 소수자 배려에 대한 전반적 비판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흐름을 경계할 것을 주문하며 특히 점점 첨예화하는 성별 갈등 뒤에 숨은 청년 남성들의 심리를 세밀히 분석한다. 그들이 느끼는 심각한 연애와 결혼 불안 그리고 더는 남성 우위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 등에 불공정과 부정의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고, 이러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정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극단적 페미니즘,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 과도한 PC주의 등의 부정적 이면을 분석하면서, 저자는 다시 ‘사람이 먼저다’라는 명제를 환기한다. 사회악의 원인을 개인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공동체 차원에서 공존의 정의를 모색할 때라야, 진정한 정의인 ‘인간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다. 저자가 사회적 약자였으나 정치적 위기마다 주요한 역할을 해온 여성들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통과 연대에 능하며 사람을 중심에 두고 기존 체제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를 추구하는 이들의 행동력이야말로 인류애를 기반으로 한 진정한 정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화목한 사회를 위한 사회심리학자의 제안, 기본소득 정의 없이 정신이 건강할 수 없고, 정의 없이 행복도 불가능하다! 저자는 이렇듯 요즘 ‘정의’라고 일컫는 논리의 허점을 하나하나 비판하면서,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가짜 정의’의 문제는 결국 사회구조를 바꿔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임을 짚는다. 해소되지 못한 원초적 불안으로부터 각종 ‘가짜 정의’의 논리가 기인했다면, ‘가짜 정의’를 없애기 위해서는 불안을 먼저 없애야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의를 원한다. 정의의 문제는 결국 삶, 즉 생활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현재 불안이 그릇된 정의관을 키우고, 그렇게 형성된 정의관이 다시 절박한 생존불안을 야기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저자는 제대로 된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고질적인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을 배척해야만 하는 사회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갈등과 다툼으로 점철된 삶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우리 모두 단호하게 이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되었다. “왜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고 싸우게 만드는 오징어 게임을 계속하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그것을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 본문에서 이를 위해 저자가 강조하는 해결책은 시급하고 광범위한 기본소득제 도입이다. 생존권은 분배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능력에 따른 분배라는 허울 아래, 부와 관계의 불평등을 양산하고 증폭하는 사회구조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명백한 부정의다. 따라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삶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 생계 수단을 보장해야 진정한 정의가 바로 선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불로소득이며 실질적으로 실행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관해서도, 저자는 과거 무상급식 불가 논란을 상기하며, 지금은 한국인이 무상급식을 당연하게 여기듯 기본소득 역시 미래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는 경제적 측면을 넘어 전체 사회의 자유를 담보하여 오히려 크게 이익이 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개인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자극하기 위해 차등적인 보상을 허용하는 등 다양한 보완 방법도 있다고 제시한다. 존 롤스는 시민의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는 것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이해하고 그것을 유의미하게 행사하는 필수조건이라 주장했다. 시민의 기본적 필요가 우선 충족되어야 한다는 기본 필요 원칙을 사회정의의 최우선 원칙으로 제안한 셈이다. 이는 생존이 위태로우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으므로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 혹은 최저생계비부터 우선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 본문에서 기본소득뿐 아니라 정의는 비단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화두가 아니다. 《우리는 왜 가짜 정의에 열광하는가》는 유구한 정의론의 본질을 되짚고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곡된 가짜 정의를 뜯어보면서, 그 궁극적 지향점을 잊지 말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더구나 내란을 극복하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불씨가 타오르는 지금이야말로 개인적 정의관에 매몰되어 다투던 과거를 넘어서서 공동체의 정의를 바로 세울 적기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사회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인류의 그 오랜 꿈을 되살릴 수 있다고 일깨우는 저자의 목소리에 “목마른 시대에 찬물 같은 책이 나왔다”(류근 시인 추천)고 반가워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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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돌직구는 아프다. 세상의 불의에 앞장서는 자들에겐 그대로 돌팔매가 되어 날아가 꽂히고, 불의에 맞서 저항하는 이들에겐 손에 쥐는 짱돌이 되고, 차마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에겐 아프고 아픈 울림이 된다. 시대의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고뇌하고 꿰뚫는 그의 육성엔 지식인의 위선 따위란 없다. 곧고 귀하다. 목마른 시대에 찬물 같은 책이 나왔다. 반갑다. - 류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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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정의’는 가슴으로 느끼는 문제다. 그래서 ‘정의론正義論’이 아니라 ‘정의감正義感’이다. 사회심리의 문제로 정의 개념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고 하여 정의를 최우선의 민족적 가치로 선언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정의감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가? 김태형은 공동체적 정의와 개인적 정의가 분열하는 양상과 이유를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함께 해결할 방법을 모색한다. 정의로운 공동체를 바라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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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악용된 단어다. 군부독재는 ‘정의사회구현’을 외쳤고,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반국가 세력 척결이라는 정의로 포장했다. 김태형은 “만일 사람이 악하다면 그것은 사회가 악해서이다”라고 말하며, 부정의가 세상에 범람하는 이유를 냉정하게 파헤친다. 동시에 기계적 공정론이 야기한 푸석한 공동체가 회복하는 길을 따듯하게 알려준다. 언제까지 서열쾌감에 중독된 승자독식의 오징어게임을 할 거냐는 저자의 걱정이, 단순한 분배 정의를 넘어 실질적 인간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되길 희망한다. - 오찬호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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