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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가 본 이순신 리더십 김성수
기업의 위기극복과 이순신의 리더십 김종대 타고난 장재(將材), 이순신의 리더십 민병돈 명량해전과 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 서영길 니탕개란과 이순신의 리더십 송우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신성오 해전 현장에서 바라본 이순신 리더십 이봉수 내 인생의 멘토, 충무공 이순신 정운천 이순신 리더십의 재조명 지용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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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시대에 충무공 이순신인가?
오늘날 한국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많은 난관에 직면해 있다. 내부적으로 양극화 현상, 나라 밖으로는 북핵 문제의 해결 기미가 쉽게 보이지 않으며, 이러한 제반 문제는 국론 분열의 위기감으로 연결되어 국민을 매우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것은 리더의 탁월한 리더십이다. 리더십이란 리더가 구성원으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영향을 주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 부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하는 리더의 행동 방식이라 하겠다. 오늘날의 우리의 현실은 이념적으로 국론이 갈라지고 있는 매우 어려운 시기라 볼 수 있으므로, 탁월한 리더의 리더십 발휘가 필요한 시기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 상황을 볼 때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의 재난 시기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국난을 극복했던 이순신의 리더십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우리 사회의 불안과 위기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임진?정유재란 시의 가장 어려웠던 명량해전에서 보여주었던 충무공 이순신 리더십의 특성과 병법 운영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하나의 역할 모델(role model)로써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리더십은 상황 적합적 접근법 차원에서 '상이한 상황은 상이한 리더십'을 요구하며, 리더는 당시의 상황에 맞게 자신의 리더십을 비교, 적용해 볼 수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먼저 임진왜란 중 최악의 조건에서 승리하여 국난을 극복한 명량해전을 당시 전장 상황으로 재구성하여 이순신의 병법 운용과 리더십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그 교훈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본인이 1999년 6월 7일부터 6월 15일까지 서해의 연평해전의 작전사령관으로서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 지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전투 상황을 재구성, 평가하는 기법을 활용하여 명량해전을 재구성하고,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의 리더십을 교과서적 차원에서(school solution) 분석, 시도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가신 지 400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 이순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우리 민족을 위기에서 구출한 영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작금의 이순신 신드롬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순신의 내면세계를 연구하고 인간성을 탐구하는 과학적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일찍이 노산 이은상 선생은 이순신을 '정돈된 인격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흔히들 영웅은 난세에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영웅은 타고 나는 것이므로 후천적으로 길러내기는 어렵다는 '생래적 자질론'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 또 혹자는 이순신처럼 곧고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는 전쟁과 같은 비상한 시기에는 그 진면목을 제대로 평가받지만 평화 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한직이나 변방으로 내몰릴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순신 장군의 지략과 용맹 뒤에는 인간적인 나약함이 숨어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것은 이순신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한 인격체의 인간성은 리더십이라는 형태로 외부로 표출된다. 위기나 전란의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한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낸 것인지 영웅이 한 편의 굵직한 역사를 쓴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이순신은 우리 민족이 가장 숭앙하는 역사적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이순신 신화는 세계 해전사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며 그의 생애 자체는 한 편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한 근원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서 필자는 이순신 장군이 싸워서 이긴 해전현장을 따라가면서 그 분의 리더십을 조목조목 짚어보기로 했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난중일기나 선조실록과 같은 문헌에 기초한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가 활동했던 현장을 둘러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위기 극복의 원동력은 통합과 불굴의 의지 그때부터 나는 장군에게 빠져들었다. 장군에 관한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 읽었다. 장군의 그 무엇이 명량대첩의 기적을 이루었는지 밤을 새워가며 탐독했다. 그 결과 병사는 물론 백성들까지도 사즉생의 정신으로 똘똘 뭉치게 한 장군의 리더십이야말로 명량대첩의 원동력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백의종군하는 몸으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았을 때 장군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원균이 이끈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했기 때문에 병사도 없고 전선도 없었다. 기껏해야 먼저 도망친 배설이 숨겨 놓은 12척의 배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오죽했으면 선조 임금마저도 수군을 폐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교지를 내렸을까? 그러나 장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다'는 불굴의 의지로 수군 재건에 나섰다. 흩어진 병사들을 모으고 백성들을 끌어안았다. 12척의 전선을 수리하고 군량미를 확보했다. 그 과정에서 장군이 보여준 리더십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을 사즉생의 정신으로 똘똘 뭉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장군이 보여준 리더십의 원천은 신뢰였다. 병사는 물론 관내의 백성들까지도 장군을 믿고 따랐다. 장군과 생사를 같이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장군이 그처럼 백성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평생에 걸쳐 일관되게 견지한 구국의 일념과 공평하고 투명한 일처리, 솔선수범하는 행동 때문이었다. 장군은 오직 하나의 신념으로 살았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가치 판단의 기준이 그것이었고, 모든 행동의 기준이 또한 그것이었다. 그러한 신념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모함을 받아 서울로 압송될 때도, 권율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할 때도, 병사도 전선도 없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큰 뜻을 위해 가족도 뒤로 했고, 심지어 어머니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그래도 장군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전장으로 나갔다. 그런 장군이었기에 병사들이 믿고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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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대되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연구기관에서는 IMF 때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국가가 위기상황에 직면할 때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입니다. 구국의 일념과 사즉생의 정신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장군의 늠름한 모습이 어려운 현실과 대비되어 더욱 더 그리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오늘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나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다는 긍정적 사고와 자신감,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라는 불퇴전의 정신, 병사는 물론 백성들의 마음까지 끌어안는 신뢰와 솔선수범의 지도력…. 그런 장군의 정신과 리더십을 재조명해 오늘의 현실에 발현한다면 난관을 극복하는 데 큰 힘과 용기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 도서는 9인의 명사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긍정의 글을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