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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5
1부 1. 악마적 글쓰기와 사소설 형식 - 「불신시대」와 「암흑시대」 2. 악마적 글쓰기에서 벗어나기·1 - 『표류도』론 2부 1. 악마적 글쓰기에서 벗어나기·2 - 『김약국의 딸들』 2. 프티부르주아의 성격과 6·25 - 『시장과 전장』론 3부 1. 산천으로서의 『토지』 - 지리산의 내부와 외부 2 『토지』 앞단계로서의 『혼불』, 뒷단계로서의 『지리산』 - 연속성론 4부 1. 박경리의 창작방법론 - 양가성의 균형감각과 제3의 시선의 개입 2. 『토지』 번역과 작가의 특별 강연 - 파리, 1994년 11월 24일, 박경리 5부 1. 뻐꾸기와 능소화 - 박경리의 『토지』와 이병주의 『지리산』 2. 박경리와 박완서 3. 『토지』와 지네 체험 부록 토지 지도 인물 가계도 박경리 연보 |
金允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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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2년 전 『토지』를 다시 읽는 과정에서 이 대하소설에 어떤 대목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대목이었다. ‘뻐꾸기 울음’과 ‘능소화’가 그것이었다.
가령, 문의원이 백일기도 중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임신한 최참판댁 며느리 윤씨부인을 진맥하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장면을 보자. "아까 별당에서의 그 무시무시한 긴장이 되살아났다. 어느덧 글 읽는 소리는 멎었고 세상이 없어진 것 같은 정적이. 그러나 멀리서 뻐꾸기 울음이 들려왔다."(솔출판사판, 1부 1권, 278쪽) 하늘과 땅이 하도 아득하여 한갓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뻐꾸기 울음’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용이가 시집에서 도망쳐 온 무당딸 월선과 한 몸이 되는 장면을 보자. "용이는 여자 가슴 위에 머리를 얹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는 신위도 제물도 없고 월선네의 힘찬 무가(巫歌)도 없고 용이 모친과 강청댁의 얼굴도 없었다. 마을도 없고 삼거리의 주막도 없었다. 논가에서 울어쌌는 개구리 소리, 숲에서의 뻐꾸기 소리뿐이었다."(1부 1권, 175쪽) 이 숨막히는 순간에도 역시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지 않겠는가. 이뿐이 아니다. 뻐꾸기 소리는 구천이 별당아씨의 죽음을 슬퍼하며 탄식하는 대목(2부 2권, 196쪽), 또 동학 잔당 강쇠와 구천이 함께 듣는 지리산 속의 장면(2부 2권, 202쪽)에서도 어김없이 들려온다. 어느 장면이나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밤이다. 그렇다면 한밤중에 우는 이 뻐꾸기 소리란 도대체 무엇인가. 작가 박경리는 1994년에 낸 시집 『자유』에 수록된 시 「뻐꾸기」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어릴 적에 뻐꾸기는 / 동서남북 원근도 / 모를 소리였다 / 가도 가도 따라오던 뻐꾸기 울음 / 가도 가도 도망치던 뻐꾸기 울음 / 어느 나무 어느 둥지인지 / 저승에서 우는가 / 이승에서 우는가 / 알 수 없었다 (「뻐꾸기」 부분) 그러니까, 하늘과 땅이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지는 순간에 대응되는 농경사회 상상력의 최대치가 ‘뻐꾸기 소리’였던 것이다. 대여섯 차례 반복해서 등장하는 ‘능소화’ 또한 마찬가지다. 환이 눈앞에 별안간 능소화꽃이 떠오른다. 능소화가 피어 있는 최참판댁 담장이 떠오른다. 비가 걷힌 뒤의 돌담장에는 이끼가 파랗게 살아나 있다.(1부 3권, 333쪽) 능소화(凌?花), 글자 그대로 하늘을 능가하는 꽃. 6월에서 8월까지 붉게 피는, 도도하고 화려하고 천박해 보이는 능소화란 곧 최참판댁을 상징하는 것. 재물과 권위의 천박함에 그대로 대응되는 것이었다. 사정이 이럴진대, 저자 김윤식이 보기에 『토지』의 참주제는 최치수의 오기도, 최서희의 복수담도 아니며, 김길상의 탱화도 아니었다. 참주제는, 이동진이 독립운동을 위해 연해주로 떠나면서 최치수가 한 질문 “자네가 강을 넘으려 하는 것은 누굴 위해서? 백성인가? 군왕인가?”에 대한 답변 속에 깃들어 있었다.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고 군왕이라 하기도 어렵네. 굳이 말하라 한다면 이 산천을 위해서, 그렇게 말할까.”(1부 2권, 153쪽) 그러니까, ‘산천’이야말로 그 핵심이었던 것이다. 이 ‘산천’에 비하면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친일파나 독립운동 따위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것. 그렇다면 『토지』의 참주제인 ‘산천’이란 무엇인가. 삶의 영원한 터전, ‘자연’ 혹은 ‘생명사상’이 아니겠는가. 이 사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장치가 ‘뻐꾸기 소리’와 ‘능소화’였던 것. 저자는 이를 일러 ‘산천의 미학’이라고 불렀다. 『토지』의 최종심급은 ‘산천(자연)’이라는 게 저자의 『토지』론의 핵심인 셈. 그런데 여기에 ‘지리산’이 더해짐으로써 『토지』의 역사적 구체성과 문학적 깊이가 확보되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토지』 5부를 보면 8·15를 앞두고 모든 인물이 ‘지리산’을 향하고 있다. 이 지리산은 김길상을 불러들여 탱화 관음상을 그리게 했고, 그 장남 환국도, 최서희도 불러들였던 것. 지리산은 동학 잔당, 징용과 징병 기피자, 사상범들을 넉넉히 품어주었다. 역관 출신 임명빈과 친일 귀족에게 시집 간 그의 누이 명희, 그리고 최서희까지 지리산 식솔들을 위해 돈과 곡식을 올려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최서희의 차남 윤국이 학병으로 끌려갔다는 것. 바로 여기에서 『토지』는 끝나는바, 이 윤국의 자리에서 지리산을 쓴 작가가 바로 이병주라는 것. 실록 대하소설 『지리산』은 바로 『토지』의 뒷단계라는 것. 그리고 지리산을 멀리 바라보는 남원 땅 매안마을 청암부인과 이씨 가문 종손 강모의 이야기를 다룬 최명희의 『혼불』은, ‘자연’과 ‘문화’의 미분화된 세계로서 『토지』 앞단계에 놓인다고 본 것은 저자 김윤식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문학사적 혜안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경리의 『토지』가 ‘산천’이었다면, 뒤를 이은 이병주의 『지리산』은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허망한 정열의 각축장이었던 것. 이 앞에 근친상간의 세계를 다룬 『혼불』이 놓임으로써 우리 대하소설의 계보가 완성되었다는 것이 저자 김윤식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박경리의 초기 문학세계를 ‘악마적 글쓰기’(사소설적 성격)의 극복 과정으로 본 1부와 2부의 글들도 주목을 요한다. 특히 『토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작품인 『시장과 전장』과 관련, 이 작품의 소시민성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를 두고 작가 박경리와 평론가 백낙청 사이에 벌어졌던 문학적 논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저자의 시각도 흥미롭다(2부 두번째 글 「프티부르주아의 성격과 6 ? 25」 참고). 그리고 박경리의 창작방법론을 집중적으로 다룬 4부의 첫번째 글에서 자유인의 표상이자 ‘제3의 시선’으로 도입된 ‘주갑’이란 인물에 대한 해석도 신선한다. 김윤식은 주갑이라는 인물이 작가 자신 우연히 만들어낸 인물이며, 이 우발적 시선으로서 제3의 시선이 확보됨으로써 『토지』의 완결성이 가능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