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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01 검은 대륙을 위한 레드카펫 02 신개척지를 찾아낸 중국인들 03 콩고의 숲속 04 중국과 아프리카의 관계에 대한 약사(1421∼2008년) 05 희희낙락하는 아프리카 엘리트와 일하는 중국인 06 프랑스 영향권을 넘보는 중국 07 사하라 사막 ‘우라늄 러시’ 08 싸구려 잡화의 습격 09 독재자들의 무기, 메이드 인 차이나 10 정복된 땅, 수단 11 석유 지상주의 12 중국이라는 기관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한다면…… 결론 감사의 글 주 참고문헌 |
Serge Michel
Michel Beu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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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향한 중국의 신식민주의 프로젝트! 야욕인가, 윈윈 파트너십인가
“옛날에는 한 나라가 영토를 넓히고 싶다면 땅을 점령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식민지를 늘릴 필요가 없다. 경쟁력 있는 상품을 보유하고 있으면 충분하다.” “프랑스가 아니라 중국의 식민지였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콩고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해요. 정말이지 프랑스인들은 이 나라를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변변한 도로 하나, 공장 하나 안 만들었잖아요. 중국인들이 지배했다면 이 바닷가에도 고층 빌딩이 빽빽이 들어섰겠죠.” ‘아프리카’ 하면 먼저 기아와 부패, 종족 분쟁, 불안정한 정치 체제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20세기 말부터 또 하나가 추가되었다. ‘석유와 지하자원’이 풍부한 대륙! 그리하여 세계 열강이 다시 한번 아프리카 대륙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나라는 단연 중국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부패한 정권과 인권, 민주주의 등을 들먹이며 한발 빼던 때에 중국은 잽싸게 아프리카로 파고들었다. 2006년 4월에서 2008년 1월까지 20개월 동안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해 원자바오 총리 등이 순방길에 올라 31개국을 방문할 만큼 적극적이고 순발력 있게 공략했다. 이렇듯 강력해진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입지를 확인하고자 이 책의 지은이들은 1년 넘게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 아프리카 15개국을 돌아다니며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취재했다. 중국의 ‘깡시골’에서 가죽소파가 놓인 아프리카 장관실까지, 위험에 처한 콩고의 숲에서 나이지리아의 가라오케까지, 수단의 송유관에서 앙골라의 철도까지, 아프리카 15개국을 다니며 ‘새로운 식민지’를 열정적으로 조사하고 여러 일화를 수집하여 서구가 그저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해줘야 하는 곳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아프리카를 정복하려는 중국인들의 모험담을 생생히 들려준다. 또한 아프리카를 넘보는 서구와 중국 등 강대국들의 야욕과 그 과정에서 각국 정부와 경제인 그리고 현지 주민들의 각기 다른 생각 속에서 전 세계적인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현재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사실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중국의 해외 진출―인구 압력과 경제 과열, 환경오염을 완화하기 위한 해결책 “‘니 하오, 니 하오.’ 콩고공화국의 수도 브라자빌 거리를 10분쯤 걷고 있을 때 공을 따라 몰려가던 꼬마들이 발길을 멈추고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프리카에서 백인을 보면 흔히 영어로 ‘헬로, 미스터!’나 프랑스어로 ‘살뤼, 투밥!’ 또는 ‘무슈, 무슈!’라고 인사를 한다. 하지만 길가에 늘어선 이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중국어로 ‘안녕’이라는 뜻의 ‘니 하오!’를 외쳤다. 그 아이들 눈에는 외국인이 모두 중국인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기자들은 굶주린 어린이들, 종족 분쟁과 이해하기 힘든 폭력 사태 같은 극적인 사건을 취재하러 아프리카에 자주 드나든다. 이러한 사건들은 최근 몇 년간 아프리카를 취재하며 지은이들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지은이들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전혀 새로운 아프리카가 펼쳐졌다. 중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브라자빌의 아이들, 라고스의 비스킷 공장, 그리고 2007년 여름 우리가 지나온 수단의 고속도로 등이 그랬다. 중국 정부의 관점에서는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것이 자국에서 이룬 기적을 세계에서 가장 척박한 지역에서 재현함으로써 세계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아프리카로서는 중국과 손을 잡음으로써 1960년대에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그토록 고대해왔던 성장의 기회를 잡고 싶을 수도 있다. 서구에서 바라보는 중국의 역사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수천 년 전부터 비극적인 모험을 했다고 한다. 이 집단적인 모험은 중국의 기나긴 국경 안쪽에서 진행되었다. 1978년 12월 중국이 문화대혁명의 고통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했을 때 덩샤오핑은 중국인들을 향해 ‘부자가 되어라’는 혁명적인 슬로건을 외쳤다. 그로부터 20년 후 전체 10억 중 3억 명의 중국인이 ‘부자 되기’를 신조로 삼았다. 그중에는 정말로 부자가 된 사람도 있었지만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진 사람도 있었다. 극빈 계층으로 전락한 농촌 사람들은 중국이 채 세상에 알려지기도 전부터 땅을 버리고 더 나은 세상을 찾아 떠났다. 전 세계에 퍼진 중국 화교는 1억 명 정도로 머릿수로나 축적한 재산으로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00년까지 중국 정부는 공산당 정권의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국민의 해외 이주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주를 장려하고 있으며, 특히 아프리카에 나가서 기회를 잡으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중국 지도부, 그중에서도 이따금 ‘아프리카 사람’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인구 압력과 경제 과열, 환경오염을 완화하기 위한 해결책의 하나로 이민을 꼽는다. 그리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세계화의 마지막 단추가 꿰어졌고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두 문화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중국인들은 새로운 개척지인 아프리카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넓은 공간, 이국의 정취, 거부(拒否), 인종주의를 발견하고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모험을 해나가고 있다. 중국 이주민들은 때로 약탈자, 중국 역사의 영웅, 또 때로는 정복자나 자선가의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모이려 하고 중국식으로 식사하며, 현지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어나 영어조차 배우려 하지 않는다. 하물며 현지 관습을 따르거나 아프리카 여성과 결혼하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중국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무기력에 빠진 중국을 뒤흔들어놓았다. 그 위력은 1980년대 중국이 자본주의로 전환했던 때와 비슷하다. 아프리카로 이주한 중국인들은 중국에 새로운 사상과 야망을 불어넣고 있다. 식민 열강들은 1960년까지 아프리카를 수탈했고, 독재자들을 지원하며 이익을 계속 추구했다. 1960∼2000년 아프리카에 지원한 4000억 달러는 기대하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 한술 더 떠서 요즘에는 이 지원금 때문에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오로지 서구인들의 죄책감 덕분에 근근이 살아남은 아프리카의 현 상황은 매우 실망스럽다. 개발 프로그램은 모조리 실패했고 끝없이 반복되는 독재, 대량 학살, 전쟁, 전염병과 사막화의 희생자로 남아 있는 아프리카는 세계화의 잔치에 한자리 낄 능력이 전혀 없어 보인다. 스티븐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네그롤로지》에 이렇게 썼다. “아프리카는 독립 후부터 지금까지 다시 식민지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게 목표였으니 그런 식으로밖에 처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거기에서도 실패했다. 이익을 취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윈윈’ 파트너십―중국의 대아프리카 전략 그러나 중국이 이익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 의견은 틀렸다. 급속한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중국은 원자재가 절실히 필요했고 아프리카에는 자원이 차고 넘쳤다. 중국은 아프리카가 비민주적이든 부패가 만연하든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중국은 더 멀리 내다보고 있다. 목표는 옛 식민 지배 국가들의 영향력을 뛰어넘어 장기적으로 대륙적인 이상을 펼치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끊임없이 선전하는 ‘윈윈’ 파트너십을 진심으로 믿는 이들도 있다. 사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자원만 독점하는 게 아니다. 저렴한 단순노동 제품을 팔고 도로와 철도, 공공건물을 보수한다.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콩고공화국과 수단, 에티오피아에 댐을 건설하고 이집트가 민간 핵 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전화가 없다면? 중국은 아프리카 전체에 무선통신과 광통신망을 구축한다. 현지 주민들이 망설인다면? 병원과 급식소, 고아원을 연다. 백인들은 무례하고 잘난 척했지만 중국인들은 겸손하고 과묵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중국인들에게 감명을 받았다. 현재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중국어를 배우고 말하며 중국인들의 끈기, 용기, 효율성을 예찬한다. 또한 서구와 레바논, 인도 상인이 독점하던 시장에 중국인이 뛰어든 것을 반긴다. 각종 우호협약과 협력협정, 무이자 차관, 개발 계약 등을 맺으면서 중국 정부는 프랑스, 영국, 미국을 제치고 아프리카 외교부뿐만 아니라 권력의 중심부까지 파고들고 있다. 오래 전부터 아프리카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던 타이완까지 ‘ 양자택일 ’ 원칙을 내세워 밀어냈다. 후진타오 주석은 대규모 외교단을 이끌고 아프리카 국가들을 잇달아 방문해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라는 슈퍼마켓 진열대의 물건을 싹쓸이하기 위해 매우 노련하게 비동맹주의를 표방하면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찬양하는 민영화, 탈규제, 민주주의와 투명성 제고라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쓰디쓴 처방전 대신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중국의 개발 모델을 제시한다. “중국인들이 들어오니 경쟁이 되어서 가격이 내려갔어요. 용기 있는 사람들이죠. 서구인들은 설교를 늘어놓느라 시간을 허비하는데 중국인들은 행동으로 보여주니까요. 절대 멈추는 법이 없고 언제나 해결책을 찾아내지요. 다리를 놓는 데 철재가 필요하면 철광산을 개발하는 식이에요. 여러분 서구인들에게는 안 된 얘기지만 이 나라를 위해서 이토록 빨리, 이토록 많은 일을 한 사람은 중국인들 말고는 없어요.”―앙골라 사업가 “여러분 같은 서구 분들은 간섭꾼들이에요. 여기 와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인권이니 생산권이니, 하여튼 온갖 권리 이야기만 들먹이지요. 여러분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봐요. 그런데 우리는 목표에 곧바로 돌진하지요. 우리는 비즈니스를 이야기합니다.”―라고스 중국기업인협회의 사무총장 “중국 사람들은 매일 저녁 구덩이 치수를 재요. 그리고 1미터 깊이에 길이 5미터를 파지 못하면 품삯을 주지 않아요. 포르투갈 말을 ‘카바, 카바〔cava, (구덩이를) 파라〕’ 두 마디밖에 몰라요.” 다른 사람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아니지. 네 마디야. ‘하피두, 하피두(rapido, 빨리)!’도 있잖아.” 또 다른 사람이 털어놓았다. “뭔가 불만이 있으면 곧바로 우리를 때리려고 해요. 우리를 모자란 사람 취급하는데, 그 사람들이야말로 ‘우, 우’ 하면서 원숭이처럼 군다고요.” 처음에 대답한 근로자가 말을 받았다. “우리 말은 전혀 듣지 않아요. 땅이 자갈밭인지, 파기 쉬운지는 관심도 없어요. 늘 어떻게 하면 품삯을 주지 않을까만 생각하죠.”―앙골라의 한 현장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은 지정학이 연구하는 전문적인 주제가 아닌 국제관계의 뜨거운 이슈이며 아프리카의 일상이 되었다. 학자와 기자들이 계속해서 내놓는 거시경제지표를 살펴보면 1980∼2005년 중국과 아프리카 간 양자 무역은 50배가 늘었다. 무역량은 2000년에서 2006년 사이 100억 달러에서 550억 달러로 다섯 배 증가했으며, 2010년에는 100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 기업 900개가 이미 아프리카에 진출했으며, 2007년 중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아프리카 제2의 무역국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의 대아프리카 정책은 성공할 것인가, 실패로 끝날 것인가 중국이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데만 급급해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닌가 하는 비관적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잠비아와 앙골라 같은 동맹국들의 배신,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에서 벌어진 중국인 근로자들의 대량 인질 사태, 알제리의 중국인 숙소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 전염병과 환경 재앙이 그렇다. 중국이 건설한 댐에 물을 채우자 무너지는 사건도 있었다. 콩고의 앵불루댐 건설 현장을 감리한 독일 기술자들은 댐에 사용된 시멘트의 질이 좋지 않았고 지리 조사 때 거대한 물웅덩이가 있었지만 무시하고 댐을 쌓은 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의 실패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중국이 유일하게 실패한 점이라면 형제애가 넘치고 그 어떤 기적이라도 일으킬 수 있는, 하늘이 내린 동맹국이라는 이미지로 출발했던 중국이 이제 아프리카에서 너무 평범해졌다는 점이다. 중국도 다른 강대국들과 다를 바 없어졌다. 경비원들을 잔뜩 세우고, 공사는 진척이 더뎌지고, 부패 스캔들이 속속 터지고, 현지인들을 멸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만 뺀다면 중국은 아프리카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고 통신망이나 발전소 등 꼭 필요한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 수십 건을 진행하며 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중국은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아프리카 국민들과 외국인들에게 아프리카의 진정한 가치를 되찾아준 것이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전에는 그 어떤 서구 국가도 아프리카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미국?유럽?일본?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인들이 아프리카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투자하고, 돈을 빌려주고,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이 낮잡아보았던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