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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셰익스피어 나리’라는 분
1장 진술서 2장 40세에 접어들어 3장 단물과 쓴물 4장 런던의 셰익스피어 제2부 실버 스트리트 5장 모퉁이 집 6장 이웃 7장 살림살이 8장 셰익스피어의 침실 제3부 마운트조이 가족 9장 초기 시절 10장 성 마르탱 르 그랑 교회 11장 성공과 위험 12장 포먼 박사의 사례집 13장 마운트조이 가정 제4부 머리 장식 제작 14장 머리 장식과 가발 15장 너울거리는 머리 장식 16장 공방에서 17장 옷깃 받침대 제5부 이방인들 속으로 18장 블랙프라이어스와 나바르 19장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외국인 20장 다크 레이디 제6부 섹스와 도시 21장 조지 윌킨스 22장 강제 결혼의 고통 23장 매춘부와 연극배우 24장 고객 만족 25장 브레인포드를 향해 26장 향락을 즐기다 제7부 다짐하다 27장 약혼 28장 ‘그들이 나를 강제로 결혼시켰소!’ 29장 딸을 잃다 에필로그 작가 노트 옮긴이의 글 미주 셰익스피어 연보 찾아보기 |
Charles Nich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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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재판이 끝날 무렵 이 진술서의 맨 밑에 서명했다. 이 서명은 현존하는 셰익스피어의 서명 여섯 개 가운데 가장 초기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별로 정성을 들이지 않고 재빨리 서명했는데 첫 글자인 W는 셰익스피어 특유의 필체대로 시작과 끝을 둥글게 구부려서 힘차게 쓴 것이 분명하지만, 성은 서명하기 싫은 듯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고 철자를 생략하여 전체적으로 ‘`Willm Shaks’로 보인다. 이 약어 서명은 1613년도 저당 증서의 ‘Wm Shakspe’와 마찬가지로 문서 내용 바로 밑에 간격 없이 붙여서 썼는데 이는 셰익스피어가 형식적인 상황에 처했거나 조바심이 난 상태에서 서명을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 pp.11-12
미들 템플의 젊은 법학도였던 존 매닝엄이 1602년 3월 13일자 일기에 기록한 내용을 보자. 셰익스피어는 세금을 내지 않아서 1597년 11월 15일자 서류에 미납자로 기재되었다. 미납 통지서를 검토해 보면 해당 교구의 ‘하급 수금원’은 미납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이 ‘사망했거나, 고장을 떠났거나, 해당 교구에서 이탈했거나, 동산이 옮겨졌거나 비밀리에 은닉되어’ 세금을 거둘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셰익스피어가 사망하기 전의 일이므로 사망은 세금 미납 원인에서 배제된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1598년 10월 1일자로 성 헬렌 교회 교구에서 5파운드의 자산을 소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교구 이탈도 미납 원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셰익스피어는 지불을 기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세금 징수 체계가 혼란스러워서 납세 기피 현상이 흔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런던에서의 셰익스피어의 존재를 입증하는 최초의 실질적인 기록이 그의 탈세 기록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 p.63 1605년 초 무렵에 킹스 멘에 투자했던 ‘지분 참가자’ 사이에는 이런 의문이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킹스 멘의 주요 극작가인 셰익스피어가 과연 도시 희극이라는 새롭고 노골적인 유행을 얼마나 노련하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대중이 뜨겁게 요구하는 성과 풍자, 도시에 대한 날카로운 글을 쓸 수 있을까? 『법에는 법으로』가 그런 시도를 목적으로 집필되었다면 실패작으로 판정 받았을지 모른다. 『법에는 법으로』는 대단히 치밀하고 지적인 힘이 깃든 작품이지만 정작 극장의 좌석을 채우는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글로브 극장에서든 다른 극장에서든 아마도 상황은 부정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셰익스피어와 1605년 초여름의 시류에 편승하며 살았던 윌킨스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정황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윌킨스의 문학적 재능을 감지했고 무명작가로서의 초조한 야심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은 단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음란한 매음굴에 살면서 그 세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의 상황을 떠올렸다. 즉 조지 윌킨스는 극작가이자 포주라는 이중 경력의 소유자였고, 셰익스피어는 그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만약 극단이 ‘섹스와 도시(Sex and the City)’를 연극 무대에 올리고 싶어 극작가를 물색한다면 윌킨스가 적격자였을 것이다. --- pp.303-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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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어느 뒷골목 모퉁이 집에서 하숙 생활을 했던 40대의 셰익스피어.
위대한 작가이자 배우, 극단 운영자이면서 평범한 생활인이던 그의 삶이 400년 전 고문서 더미에서 찾아낸 진술서 하나를 토대로 재구성된다. 위대한 문호의 인간적인 모습을 섬세하게 되살린 새로운 형식의 전기문학 1612년, 유명 작가이자 배우였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소재 소액청구재판소에 출두하여 증언하고 진술서에 서명했다. 이 진술서는 셰익스피어가 직접 말한 내용을 기록한 유일한 문서이자 셰익스피어의 필체를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자료이다. 셰익스피어가 증언한 사건은 결혼 지참금을 지불하지 않은 장인을 사위가 고소하여 생긴 소송(‘벨롯 대 마운트조이 사건’)으로 실버 스트리트의 마운트조이 가족 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이 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서기 8년 전에 마운트조이의 집에서 하숙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마운트조이 집에서 하녀로 일했던 한 여성은 법정에서 ‘그 집에 하숙하는 셰익스피어 나리라는 분’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저자는 400여 년 전 법정 진술서에 적힌 이 표현에 주목하여 기존의 평전과는 달리, 하숙 생활을 했던 40대 전후의 셰익스피어의 삶을 이 책에 펼쳐 놓는다. □내가 벨롯 대 마운트조이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셰익스피어 나리라는 분’이라는 평범한 표현을 접하고부터였다. 이 표현을 통해서 만큼은 셰익스피어를 위대한 문학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소양이 전혀 없고 자신의 이름조차 쓸 수 없어 진술서의 서명란에 손을 벌벌 떨며 조그맣게 표시를 했던 하녀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당시의 ‘나리(Mr)’라는 칭호는 ‘마스터(Master)’의 약자로서 신사의 지위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존칭이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셰익스피어가 영위했다고 확신하는, 그러나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그의 평범한 삶이나 평범한 듯 보이는 삶의 단편을 보게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하숙인이었고, 위층에 사는 신사였고,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의 나리였다. --- pp.14-15 마운트조이 사건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진술서는 1909년 런던 소재 공문서보관소(Public Record Office)에서 미국인 찰스 윌리엄 월리스가 발견했는데, 세상 빛을 본 지 거의 100년이 넘었지만 전기적 자료로서의 측면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무시되어 왔다. 전문 전기 작가인 찰스 니콜은 지금까지의 셰익스피어 연구에서 중심에 서지 못했던 이 400년 전 문서에 주목하여 마운트조이 부부에 대한 각종 문서 기록을 포함, 광범위하고 다양한 출처로부터 증거를 수집하고 배열한 후에 40대에 들어선 셰익스피어가 살았고 일했을 뿐만 아니라『오셀로』,『법에는 법으로』,『리어 왕』 등의 희곡을 썼던 실버 스트리트의 하숙집 환경을 자세하고 감동적으로 되살려 냈다. 마치 문학 탐정과도 같은 시선으로 하나의 증거에서 출발하여 풍부한 지식과 날카로운 직관을 교차시키며 이야기의 범위를 넓혀 가는 저자의 서술 방식을 따라 이 책을 읽다 보면, 문학적으로 위대한 인물이라는 관점에서 셰익스피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실버 스트리트의 평범하고 매우 인간적인 환경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셰익스피어와 대면하게 된다. □로카르의 교환 법칙(Locard’s Exchange Principle)으로도 불리는 과학 수사의 제1법칙은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범죄 수사에 적용하는 ‘과학 수사’의 결과물은 아니지만 접촉한 생명체는 흔적을 남긴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마운트조이 가족과 그들이 속했던 세계에 대해 좀 더 많은 사실을 밝혀내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물론 가치 있는 일이지만, 더 나아가 그들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매일 스스럼없이 접촉했던, 유명하지만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좀 더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중요성이 돋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출발점은 바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몇 개의 간략한 문장으로 진술한 셰익스피어의 진술서이다. 진술서로 시작해서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문서를 추적하다 보면 제임스 1세 시대 런던의 어두컴컴한 거리와 좁은 뒷골목을 지나 위층 창문으로 희미하게 불빛이 내비치는 집에 도착하게 된다. 400여 년의 세월이 지나 흔적은 희미하지만 셰익스피어가 바로 그곳에 살았다. --- p.28 저자는 셰익스피어가 실버 스트리트에서 하숙했던 1604년 무렵 영국의 시대 상황과 ‘도시 희극’이 유행하던 당시 연극계의 풍조 등 셰익스피어가 몸담고 있던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바탕으로, 하숙집이 있던 실버 스트리트의 주변 환경, 프랑스 이민자이자 머리 장식 제작자인 마운트조이 가족의 생활상과 하숙집 아래층의 공방 모습, 가족 소송 사건에 셰익스피어가 증인으로 얽히게 된 이유, 주변 동료들의 눈에 비친 셰익스피어의 모습 등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해 나간다. 이는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의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환경을 재창조하는 작업으로 저자는 이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이해하고자 했는데, 셰익스피어가 당시에 썼던 희곡이 그런 환경의 일부를 반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서의 정점에 있었던 40세 무렵에 극장가에서 멀리 떨어진 실버 스트리트의 프랑스 이민자 가정에서 하숙을 시작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특히 희극에서는 관객이 경험했던 진정한 영국식 삶이 이국이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미묘하게 왜곡되고 과장된 상태로 제시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에게 이국적인 것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열쇠였다. 매일의 현실이 주는 친숙함으로 무미건조해진 사물과 사람을 이국적인 것을 통해 좀 더 신선하고 좀 더 자유롭게 보는 방법에 눈을 뜰 수 있었고 희극이라는 꿈속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어떤 사실로 판단해 보아도 셰익스피어는 평생 영국을 벗어난 적이 없다. … 셰익스피어는 상상 속에서 여행을 했던 것이다. … 셰익스피어의 마음속에서 외국은 극장 자체와 동의어로서 생기를 부여하는 과장과 변화의 장소였고, 서더크에 있는 극장 문으로 들어가면 불현듯 일리리아 해안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런던은 인종과 문화의 거대한 도가니였으며 반 시간만 부둣가를 거닐어도 유럽 전체 언어의 반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활기찬 이국의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서라면 외국인이 가득한 집에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아니었을까? 그들의 목소리는 얇은 벽을 뚫고 떠다니면서, 거리로부터 들리는 익숙한 소리에 낯설음을 더해줬을 것이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여행이 시작되었다….’ --- pp.269-270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속한 환경과 주변 인물들을 관찰했고,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작품 속 등장인물과 은유로 승화시켰다. 마운트조이 공방에서의 경험과 당시 유행했던 머리 장식에 대한 지식, 마운트조이 가족의 결혼 중매인으로 나섰던 일, 16, 17세기 영국에 쇄도했던 이민자들에 대한 관찰, 연극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던 성적 혼란과 매춘의 정황 등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곳곳에 은밀히 숨어 있다.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셰익스피어가 겪었던 당시의 경험이『오셀로』,『법에는 법으로』,『리어 왕』,『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페리클레스』,『한여름 밤의 꿈』등의 주옥같은 작품 속에 마치 퍼즐조각처럼 끼어들어 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그다지 남의 눈에 띄지 않을 시간에 거리를 오갔고 현관의 그림자로, 계단의 발자국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셰익스피어는 주위 환경을 관찰하고 이에 대해 질문을 던졌으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나중에 은유로 만들어 내기 위해 거대한 용량과 놀라운 수용성을 지닌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대의 하찮은 풀솜 타래, 그대의 쓰린 눈을 위한 녹색 사스넷, 탕자의 지갑을 장식한 술 … ---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Troilus and Cressida)』5막 1장(29-30) *엉클어진 근심의 명주실을 짜 주는 잠 … --- 『맥베스』2막 2장(36) *그녀가 우유처럼 하얗고 길고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명주실을 짤 때 … --- 『페리클레스』4막의 코러스(21-2) … 인용한 대사는 마운트조이의 머리 장식물 공방을 연상하게 한다. 작가는 가볍고 폭신폭신하기는 하지만 물레로 돌릴 수 있는 가는 섬유로 분리되기 전까지는 사용할 수 없어서 하찮아 보이는 풀솜 타래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사스넷과 장식 술 또한 눈여겨보았다. --- pp.232-234 한 프랑스 젊은이가 어떤 방식으로 결혼을 강요당하는지를 보여 준 이 희곡은, 셰익스피어 스스로 한 프랑스 젊은이를 설득해서 결혼하게 만들었던 시기에 완성되었다. 이는 창작과 전기의 연결점을 시사한다. 희곡에서 결혼하라고 버트람을 설득하고 젊은 커플의 약혼을 주관한 사람은 왕이었다. 어느 동시대 인물이 셰익스피어가 ‘왕의 역할’을 연기했다고 언급했던 것으로 보아 셰익스피어가 실제로『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에서 왕의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왕의 대사는 1604년 늦여름에 셰익스피어가 실제로 했던 말을 시적으로 축약시켜 놓은 것이다. □여기, 그녀의 손을 잡게. 거만하고 냉소적이어서 이 좋은 선물을 받을 가치가 없는 남자여. 그대는 비열한 경멸로 내 사랑과 그녀의 장점을 속박하고 있네. … 그대가 보이는 경멸을 돌아보게. 그대에게 좋은 일을 하려는 우리의 뜻을 따르게. --- pp.362-363 전작『레오나르도 다 빈치 평전』이 17개 언어로 번역되는 등 훌륭한 평가를 받으면서 전기 작가로서의 ?성을 높인 찰스 니콜은 이 책에서 16~17세기의 문서뿐 아니라 당시 유행?던 머리 장식과 의복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때의 시대상과 더 구체적으로는 연극 무대에 선 배우들의 의상까지 세심하게 재현하였고 이를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에 연결시켜 하나의 훌륭한 전기문학으로 재탄생시켰다. ‘미주’ 부분에 드러난 참고문헌 목록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가 기울인 노력을 여실히 보여 준다. 수많은 평전이 출생을 시작으로 시간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책의 미덕은 셰익스피어가 경력의 정점에 있던 400년 전에 초점을 맞춰 이를 자세히 펼쳐 보임으로써 당시의 상황과 셰익스피어의 삶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연구 또한 면밀히 병행하여 위대한 문호로서의 모습까지도 유감없이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 편의 추리물과도 같은 흥미진진한 전개 방식으로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지루하지 않은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