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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서론 1. 아담과 하와(Adam and Hawwa) 2. 에녹(Enoch; Idris) 3. 노아(Noah; Nuh) 4. 후드(Hud) 5. 살레(Saleh) 6. 아브라함(Abraham; Ibrahim) 7. 롯(Lot; Lut) 8. 이스마엘(Ismail; Ishmael) 9. 이삭(Isaac; Ishaq) 10. 야곱(Jacob; Yaqub) 11. 요셉(Joseph; Yusuf) 12. 욥(Job ;Aiyub) 13. 이샤야(Isaiah; Zulkifl) 14. 이드로(Jethro; Shu'aib) 15. 요나(Jonah; Yunus) 16. 모세(Moses; Musa) 17. 아론(Aaron; Harun) 18. 엘리야(Elias; Ilyas) 19. 엘리사(Elisha; Alyasa'a) 20. 다윗(David; Dawood) 21. 솔로몬(Solomon; Sulaiman) 22. 사가랴(Zacharias; Zakariya) 23. 세례 요한(John; Yahya) 24. 예수(Jesus; Isa) 25. 무함마드(Mahmet; Muhammad)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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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이 서력 610년부터 15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아랍세계와 이슬람세계 각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들의 일상생활에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가 그들의 정치와 법, 종교와 정신세계, 현실세계와 내세관을 지배하여오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꾸란에 등장한 25명의 예언자들이 아랍인들과 이슬람인들의 정신문화를 비롯한 인문학과 종교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담을 인간의 시조로 보는 인류학, 아담과 하와의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법적 해석과 유죄(有罪)와 무죄(無罪)의 판결기준, 아브라함의 모범을 가장 훌륭한 효사상의 근본으로 보는 도덕과 윤리관, 이복형제 이스마엘과 이삭의 장자권에 대한 법적 해석,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의 부활과 재림이 이슬람 교리의 일부이면서도 그의 신성(神聖)이 인정되지 않는 이유, 모세와 예수가 유대교 · 기독교 · 이슬람교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완전한 인간이자 마지막 예언자로 등장한 무함마드가 아랍세계와 이슬람세계에 미치는 영향 등 예언자들이 인류역사와 문화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 서문 (p.10) 아담은 변명하지 않고 즉시 그의 잘못을 인정하였다. 회개하면서 용서를 빌자 알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약속 위반이 고의성이 전혀 없는 망각에 의한 실수였다는 것을 알고 그를 불러 그의 실수를 용서하면서 그를 예언자로 택하였다. 아담은 회개함으로써 알라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였다. “주여! 저희가 잘못하였습니다. 저희를 용서하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그렇지 아니하면 저희는 잃은 자 가운데 있게 됩니다.” (꾸란 7:23) “그가 오래 전에 나에게 약속을 하였으나 그가 그 약속을 잊었을 뿐 그에게 아무런 고의성이 없었노라.”(20:115) “이때 아담은 주님으로부터 그를 용서하겠다는 말씀을 들었노라…”(2:37) - “아담과 하와” (p.25) 꾸란과 성경은 아브라함이 알라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그의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 중 누구를 희생시켰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희생을 당한 것은 이삭이나 이슬람에서는 이스마엘로 보기 때문이다. - “아브라함” (p.85) 아브라함의 본부인이 사라이고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이 아브라함의 후처이며 하갈의 몸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13살쯤 되었을 때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탄생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간의 견해차이가 없다. 먼저 태어난 자식이 형이라는 인간의 순수한 본능적 개념에서 본다면, 비록 배다른 형제이지만, 이스마엘이 이삭의 형이자 아브라함의 장남이라는 것이 본성(Fitrah)에 근본을 두고 종교가 완성된 이슬람의 일관된 주장이다. “… 창조된 인간의 본성에 근본을 둔 종교로 알라 하나님의 종성은 대체될 수 없으며 그것이 진리의 종교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더라.”(30:30) 그러나 기독교는 아브라함의 장자(長子)에 대해여 이슬람과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이스마엘은 하갈의 몸종에서 태어난 서자(庶子)이므로 아브라함의 대를 이를 합법적 권리가 없으므로 상속권은 당연히 이삭으로 보고 있다. 배속에 아브라함의 아이를 가진 하갈이 사라를 무시하자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였고 그 후 사라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자 이스마엘이 방금 젖을 뗀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았다. 족장 아브라함의 혈통을 잇기 위해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었으나 이삭이 탄생하자 그를 통해서만 혈통을 이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 성경의 견해다. - “아브라함” (p.114)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였으므로 자신이 알라 하나님의 사도라는 예수의 주장이 거짓임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꾸란은 오히려 그들의 음모와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하면서 예수를 알라 하나님의 보호와 영광을 받은 오점이 없는 존재로 보고 있다. 또 예수는 심판의 날이 임박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의 주장이 거짓이었고 그가 신성(神性)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단지 알라 하나님께서 보낸 사도이자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밝힌 후 자연사하여 알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성서의 백성들은 예수가 사망하기 전에 그를 반드시 믿어야 할 것이라. 그는 부활의 날 그들에게 반대하는 한 증인이 될 것이라.”(4:159) 이슬람 국제출판국에서 발행한 꾸란 번역본은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에서 구제된 후 인도의 카시미르 지역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자연사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 “예수”(p.277) 예언자 무함마드의 죽음은 예수가 인간의 원죄(原罪)를 대속하여 죽었다고 하는 성경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꾸란은 무함마드를 완전한 인간으로 소개하면서 그도 이전의 모든 예언자들처럼 사망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일러 가로되, 실로 그대는 그들과 같은 한 인간에 불과할 뿐이라. …”(18:110) “무함마드는 한 사도일 뿐이라. 그 이전의 사도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노라. …”(3:144) 자기 자신도 인간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였고 꾸란을 믿는 후세의 모든 무슬림들도 그를 인간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죽은 것 외에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가 일반 사람과 다른 것은 단 한가지로 신의 계시를 전달받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마지막 심부름꾼으로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뿐이다. 그는 한 인간에 불과했다. 석가처럼 불교인들이 불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절을 받는 대상도 못되었고, 기독교인으로부터 신의 자격을 부여 받은 예수처럼 구세주나 경배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무함마드는 그가 경배나 구원의 매개체로 섬김 받을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그의 모습을 초상화로 남기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지구촌 어느 이슬람 사원이나 이슬람인의 어느 가정을 방문하여 보아도 무함마드의 초상화는 그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 모든 무슬림들의 머리와 마음 속에는 한 인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 “무함마드”(p.332)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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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기독교는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다른가?
"성서" 속의 예언자들은 "꾸란" 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아담과 아브라함, 모세와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까지 같은 인물, 같은 사건이 "성서"와 "꾸란"에는 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인가 기독교와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 "꾸란과 성서의 예언자들" *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은 다시 용서를 받았을까 *아브라함이 제단에서 산 제물로 바치려 했던 자식은 누구인가 *신이 보낸 마지막 사도, 마지막 예언자는 누구인가 같은 하나님, 세 개의 경전, 세 명의 예언자 ―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태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하나의 신을 섬기는 세 개의 종교이다. 그러나 같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섬기지만 이 세 종교는 다른 경전과 예언자들을 따르고 있다. 유태교는 "구약성서"의 모세를, 기독교는 "신약성서"의 예수를, 그리고 이슬람교는 "꾸란"의 무함마드(마호멧)를 따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부터 세 종교의 뿌리와 가지들을 이해할 수 있다. 유태교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슬람에서는 그를 신의 사도들 중 하나라고만 여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강림으로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지만, 이슬람은 신이 보낸 마지막 사도는 무함마드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세 개의 경전과 이 경전 속의 사도와 예언자들을 보는 관점이 하나이면서 셋인 이 종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최초로 집대성된 이슬람의 예언자 전승 ―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저자 최영길 교수는 아랍어문학이나 지역학 연구로 학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이슬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선구자였다. 이슬람학 제1호 박사답게 지금껏 이슬람의 본 모습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저자는 방대한 "성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을 비롯해 많은 역서와 저서가 있으며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8년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 국왕 국제 번역상”을 받기도 했다. 기독교도로 자라나 무슬림이 된 저자의 개인적인 고백에서도 드러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역시 같은 야훼 하나님을 믿는 종교라는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는 “알라”가 “야훼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조차 흔하다. 이 책은 저자가 "꾸란"과 "무함마드 어록" 및 기타 이슬람 전승 연구에서 "성서"와 "꾸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예언자들에 관한 기록을 뽑아 성실하게 정리한 저서이다. 저자는 이슬람을 알리고 기독교와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예언자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서"에 익숙한 독자라면 같은 인물이 "성서"와 "꾸란"에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통해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의 "성서" 이해 ― "꾸란" 속의 "성서", "성서" 속의 "꾸란" 같은 사건이 "성서"와 "꾸란"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두 종교의 제도와 문화적 차이, 신학적 쟁점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예를 들어, 아담이 흙으로 빚어져 선악과를 따 먹은 뒤 낙원에서 추방되는 이야기는 두 경전 모두가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 원죄가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형상으로 내려와 죄를 대속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성서 이해인 반면, 이슬람에서는 아담이 낙원에서 쫓겨났지만 죄를 용서받았다고 본다. 즉 원죄와 대속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하나님이 이 땅에 인간의 형상으로 내려올 필요가 없으며 이 점이 예수의 지위를 달리 보게 되는 이유가 된다. 왜 그렇게 보았냐 하면 이슬람에서는 망각에 의한 것을 죄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망각하고 실수를 범한 것이며 그것은 죽을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견해이다. 이런 문화적 차이는 “아브라함이 산 제물로 바치려 한 아들은 누구인가”를 둘러싸고 유태-기독교와 이슬람의 해석의 차이에서도 드러난다. 유태-기독교 전승에서는 이삭이 아브라함의 장자라고 생각하지만, 적자와 서자 사이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이슬람에서는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책은 "꾸란"뿐만 아니라 "성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들을 던져 준다. 이슬람교도가 아니더라도 두 종교 사이의 갈등의 뿌리와 대화 가능성에 관심이 있는 기독교인이나 일반 교양인에게도 흥미로운 내용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