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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철학과 종교: 1950년대 한국사상사: 1960년대 한국정치: 1970년대 시민사회: 1980년대 민주화: 1990년대 진보와 보수: 2000년대 맺는말 |
Chi Myong-kwan,池明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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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일어난 6·25 사변에 동원됐다가 돌아왔을 때, 서울 약수동 고개 판잣집 단칸방에 내가 아끼던 책이며 노트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그 가난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적어두었던 수상을 담은 노트와 복잡한 세상을 등진다고 신비주의를 찾을 생각으로 모아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Johannes Meister Eckhart) 전집이 온데간데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머리에 든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 이후의 공부란 처음에 시작했던 종교철학과는 달리 사상사에 관심을 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현실을 사상사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이처럼 한국에 집중하게 된 것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내 나라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수록한 단상들은 1950년대부터 종교나 철학에서 점차로 역사와 현실로 걸어온 내 보잘것없는 삶을 증언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초까지 계속해 기록하면서 많은 개인적인 생각을 밝혔으므로 거기에는 잘못된 것도 있고 지나친 평가가 있을는지 모른다. 더욱이 1972년부터 일본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그때그때의 한국의 정치정세와 대결해야 했기 때문에 이른바 반체제의 언사를 거의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용했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적인 수상집에다 『나의 정치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봤다.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내걸고 붓으로 싸워야 했던 나는 이렇게 생각해 왔다고 한 것이다. 본의 아니게 내가 비판을 가하고 고발하다시피한 분들에게 대하여는 여기에 머리 숙여 사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오랜 생각 끝에 이것을 한국 현대사의 증언으로 필요하리라고 생각했다. 비난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의 한 지식인은―오늘에는 지식인이라는 말을 쓰기를 주저한다고 하지만―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거의 고백하다시피 이 글을 발표하기로 했다. 원래 나는 일본에서 1973년에서 88년 초까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이름으로 『세카이』(世界)라는 잡지를 통해서 한국의 군사 통치를 비판해 왔다. 그 시대의 한일의 언론과 내가 쓰는 글이 어떠했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이미 발표했으므로 여기에서는 그 후 민주화된 길을 걸어온 한국정치에 대해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이은 자세로 비판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통신과는 달리 때를 따라 기록한 단상들에 불과하다. 체계적인 글을 엮어가기에는 내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철학에 가까운 수상을 때때로 써 오다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쓰기 시작하자 나는 그런 철학적인 수상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88년 이후 한국이 민주화되었다고 하자 나는 정치에 대한 관심에서 떠나 내 본래의 공부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나 1995년을 전후하여 정치적인 비판을 담은 단상을 시대의 증언처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고 방심하기에는 정치 현실이 너무나 어두운 것처럼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고 하면 나는 방심하고 정치를 떠나고 싶어 했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단상은 그 후에도 자칫하면 단절되곤 했다. 사실 이 단상들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수많은 좌절을 겪으면서 이리저리 방황한 기록이라고 해야 하겠다. 나는 거기에 그릇된 판단이 있다고 해도 거기에 오늘의 시점에서 가필하거나 첨삭을 가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제시하려고 했다. 지금 생각한다면 한국의 정치란―정치란 어디에서도 그런 것이겠지만―언제나 우리의 뜻을 배반해 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란 그 모든 인간의 과오 또는 반동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넘어서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우리는 선인들과 함께 ‘인간의 머리를 넘어 관철하는 역사적 동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비근하게 말한다면 우리 국민의 집단적인 의지와 행동에 의해서 우리의 생각을 넘어 역사가 흘러왔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이 책에서 전개한 한국의 역사에 대한 내 사색은 점성술이 내거는 결론처럼 정확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보다도 벌어지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나는 이렇게 바라보았고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이제 고백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런 역사적 현실 속에서 그 역사를 해석하기 위해서 선인들이 남긴 여러 가지 글을 읽으면서 어떤 때는 악전고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마지막 책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 증언집, 이 긴 기록에 햇빛을 보게 해 주신 소화출판사에 깊은 사의를 표하고자 한다. 덧붙여 펜으로 쓴 이 원고를 입력해주었을 뿐 아니라, 늘 나를 지켜보고 도와준 아내 강종숙에게 뒤늦게나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 논평적인 단상들에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공인들이 계시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 마지 않는다. 거듭 죄송하게 생각하면서 사과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2009년 2월 20일 지명관 --- '머리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