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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다 - 간베 미와코 사카이가 불타던 밤의 일 - 하마노 기누코 '사과의 노래'에 감추어진 생각 - 나미키 미치코 남편과 어린 자식을 잃다 - 다카키 도시에 전쟁터를 피해 다니는 동안에 - 아사토 도시에 2. 반전사상을 가진 '不忠者' 로서 - 마쓰자키 하마코 살아 있는 한 - 스키가라 도시코 독가스 제조에 동원되어 - 오카다 레이코 3. '애국소녀'가 된 여동생 - 주오 칭시앙 일본군 공습하의 비극 - 바이수핑 난징 대학살의 기억 - 사슈친, 리슈잉 4. 유대인을 구출하는 남편을 돕다 - 스기하라 유키코 리디체 마을에 어린이 동상을 - 고다마 도시코 기지가 없는 오키나와를 - 나카무라 스가코 |
Chi Myong-kwan,池明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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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가을, 히로시마 현립 다다노우미 여학교 2학년이었던 오카다 씨는 동원학도의 한 사람으로 오쿠노시마에 끌려갔다. "우리가 거기서 보았던 것이나 거기서 했던 작업은 무서운 살인무기 제조였습니다. …지금은 당시의 전모를 알 만한 실마리조차도 없는 오쿠노시마의 역사적 사실을 결코 바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관계자나 학우들의 협력을 얻어 확인을 거듭하면서 충실하게 그렸다고 서문에 쓰여 있다.
무서운 살인무기의 제조란 무엇이었을까? 다다노우미에서 남쪽으로 약 3킬로미터에 위치하는 주위 4킬로미터 정도의 오쿠노시마는 실은 극비의 군도로서 일본 지도에서도 말소되어 있던 독가스 섬이었다. --- p.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