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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울보여인숙 _ 구자명 거품과 눈물 _ 김 혁 검은 사랑 _ 박종관 모래 세수 _ 배명희 잃어버린 화살 _ 이시백 그와 함께 산다는 것 _ 정 환 ‘연향동파’ 유랑의 길로 나서다 _ 한상준 |
이시백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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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죽이려고 다른 데 가서 어슬렁거릴 일이 아니었다. 카페 '울보여인숙'의 주인으로 보이는 이 여자한테서도 얻어낼 정보의 양이 쏠쏠할 것 같았다. 자, 어디서부터 시작한담? 그래, 카페의 상호,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차와 술을 파는 집의 이름이 왜 여인숙이며, 그것도 하필 울보 여인숙인지……. ---「울보여인숙」 중에서
사내의 죽음은 즉시 경찰에 신고되었다. 그리고 사태가 복잡하게 전개되어 나갔다. 요양병원 내에서 사망한 경우라면 문제가 간단했다. 평소 지병도 있었고 건강 상태도 매우 나빴던 터라 병사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외부에서 사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엄연한 사망 사건으로 접수되면서 철저한 수사가 시작되었다. ---「거품과 눈물」 중에서 엘리베이터가 빠른 속도로 하강한다. 난쟁이 나라처럼 오밀조밀했던 도심이 커지고 넓어진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소인국과 거인국 사이를 오르내린다. 타워에 들어서면 나는 아주 작아진다. 그러나 지상에 내려오면 거인이 된다. 이 두 세계 사이의 표고 차는 너무 커서 나는 자주 스파이더맨이 되는 꿈을 꾼다. 거미는 가파른 절벽도 자유자재로 기어오른다. ---「검은 사랑」 중에서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대본으로 뭘 찍겠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대본으로 작품을 만든 게 한두 번인가. 말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차이는 시청률이 결정했다. 감독이나 내가 아니었다. “그럼 여기서 뭘 찍어야 하는데. 응. 뭘 어떻게 하라고.” 감독이 순식간에 어깨를 움켜잡았다. ---「모래 세수」 중에서 그랬다. 세월은 그렇게 먹빛처럼 희미해졌다. 아무리 검게 맹세한 말들도 세월에 얹혀 빛이 바래며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이따금 전화를 걸어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처음엔 그렇게 반갑던 전화도 시간이 지나면서, 몇 분을 이어 나가기 어려웠다. 잘 있느냐고 묻고, 이미 몇 번이나 주고받은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건성으로 되뇌게 되었다. ---「잃어버린 화살」 중에서 출근 시간이 너무 늦어 그의 방문을 조금 열고 건성으로 인사를 던지는 순간, 갑자기 구역질이 난다. 그의 방에서 똥냄새가 코를 할퀴며 달려든 것이다. 나는 조급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달래며 문을 마저 연다. 그가 걸어간 발자국마다 누런 똥이 묻어 있고, 그것은 그가 앉아 포커게임을 하는 요까지 이어져 있다. 내 시선을 느낀 그는 당황한 아이처럼 엉거주춤 서서 멍한 눈으로 나를 본다. ---「그와 함께 산다는 것」 중에서 한 달이면 두 번 모이는 게 상례였다. 둘째, 넷째 일요일 저녁 여덟 시 혹은 일곱 시에 모이곤 했다. 여름철이면 기차가 아홉 시에 떠나는 게 아쉬워서 여덟 시에 모이는 것이고, 겨울철이면 여섯 시 조금 지나 입영 열차에 술에 젖은 몸 싣고 논산으로 떠났었지, 하며 삼십여 년 전의 아련한 추억을 곱씹으면서 저녁 일곱 시에 모이는 것이었다. ---「'연향동파' 유랑의 길로 나서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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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시장의 아수라 속에서 번질거리는 욕망의 오니 그려
자본과 시장의 아수라 속에서 번질거리는 욕망의 오니(汚泥)가 빚어낸 좌절과 상실의 아픔들을 그린 7인 신작 소설선 『그와 함께 산다는 것』이 나무와숲에서 나왔다. 한국소설문학상과 한국가톨릭문학상·한국일보 신춘문예·부산일보 신춘문예·중앙신인문학상·동양문학 신인상 등을 수상한 작가 7인의 문제의식이 오롯이 담긴 최신작 일곱 편이 실려 있다. “나는 후다닥 화장실 문을 연다. 변기 깔판 위에 덩이가 하나 납작 깔아뭉개져 있고, 바닥에도 일부러 칠한 것처럼 여기저기 똥이 묻어 있다. 누군가가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간다. 아무런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다시 보니 벽에도 똥칠이 묻어 있다. 그는 손으로도 만졌다는 얘기다. 다 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강력한 전류처럼 몸을 휘감는다.” 무너져가는 가족의 뒤편에서 마주치는 노인 문제와 노후를 몸서리쳐질 정도로 냉담하게 그린 표제작, 정환의 「그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이 ‘즐거운 나의 집’을 혐오와 모멸의 공간으로 바꾸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초고령화 사회로 되면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노인 문제가 저 멀리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우리의 문제라는 점에서 작가의 치열한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린아이들조차 ‘더러운 통과의례 과정’ 겪는 우리 시대의 슬픈 초상 그런가 하면 ‘타워’로 상징되는 욕망의 바벨탑에서 권력과 부귀를 놓고 벌이는 골육상잔의 처참함과 근친상간적 패륜의 밑바닥을 그린 박종관의 「검은 사랑」, 한 펀드매니저의 몰락과 ‘행복한 눈물’이라는 팝아트 미술작품을 통해 자본과 대박의 망상이 빚어낸 파국을 그린 김혁의 「거품과 눈물」, 그리고 어린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좌절과 상실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며 스스로를 더럽혀만 하는 ‘더러운 통과의례’ 과정을 겪는 우리 시대의 슬픈 초상을 그린 이시백의 「잃어버린 화살」에서는 인간의 탐욕이 자신과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어떻게 파국으로 이어지는가를 볼 수 있다. 한편 요절한 한 유명 화가의 위작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본이 어떻게 한 화가의 불우한 삶을 조롱하고 훼손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구자명의 「울보여인숙」,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는 다큐제작팀의 비윤리적 취재 행태를 통해 꿈의 상실과 왜곡이 불러일으키는 파국을 그린 배명희의 「모래 세수」, 내로라하는 남도의 문사들이 어우러져 펴내는 가히 비장한 시사(詩社)의 분위기를 특유의 의고체로 비틀어낸 한상준의 「‘연향동파’ 유랑의 길로 나서다」에서도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자본과 권력의 막강한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지난해 소녀들이 밝힌 촛불에 이끌려 광장으로 나아갔던 이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이 작품집에서 작가들은 과연 “무엇이 인간을 그 존재로부터 소외시키며, 스스로의 존엄성을 더럽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