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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니토리 아키오 인터뷰, ‘애교와 배짱’
제1장. ‘원점’을 배운 소년 시절 제2장. 아내 덕분에 니토리 가구 도매 센터는 대성공! 제3장. 미국을 쫓아라! - ‘60년 계획’은 3,000점포와 매출 3조 엔. 제4장. 일본 최고의 가구점이 되기 위한 인재와 전략 제5장. 도산 위기를 극복하고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 제6장. “좋은 물건을 더 싸게!”라는 ‘공약’과 ‘사회 공헌’ 제7장. 니토리 조직론 제8장. 타이완 진출!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제9장. 30년 앞을 늘 생각하며 일 년, 일 년을 살핀다. 제10장. 멈추지 않는 니토리, 앞으로의 신규 사업 종장. 중학 시절의 ‘열등생’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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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원에게 곧잘 하는 말이 있다.
“인생을 걷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포기주의’와 ‘로망주의’이다.” 나는 줄곧 포기주의자였다. 학교 성적이 나쁜 이른바 ‘열등생’이었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자본도 없었다. 게다가 운도 없었다. 즉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서장. 니토리 아키오 인터뷰, ‘애교와 배짱’」중에서 품질에 집착하면 원가가 올라가서 아무래도 가격이 상승한다. 그러면 손님도 떠난다. 손님이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역시 가격을 낮출 방법을 생각해야만 한다. 가격을 낮춘 다음에 품질을 향상시켜 나가자. 니토리는 사원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첫째도 저렴한 가격, 둘째도 저렴한 가격, 셋째도 저렴한 가격, 넷째가 적절한 품질, 다섯째가 코디네이션!” ---「4장 일본 최고의 가구점이 되기 위한 인재와 전략」중에서 “다른 기업이 출점을 자제하는 불경기는 오히려 기회야.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지지받을 수 있도록 올해도 여러 번에 걸쳐서 가격 인하를 하자.” ---「9장 30년 앞을 늘 생각하며 일 년, 일 년을 살핀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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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ねだん以上。ニトリ(가격 그 이상, 니토리)’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대표되는 니토리.
1967년에 홋카이도 삿포로의 가구 매장으로 출발한 니토리가 1987년에 연매출 100억엔을 돌파하고 1991년 부동산 버블 붕괴로 시작된,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 일컬어지는 저성장 시대를 돌파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이 책에서는 그 비결을 니토리 아키오 회장의 로망과 원가절감을 향한 노력과 혁신으로 설명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다. 홈 퍼니싱 먼저 그의 ‘로망’이란 ‘생활 수준의 향상’이었다.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가구 매장을 운영하던 중 대형 경쟁 매장의 등장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가 기존의 가구 회사와 다른 비즈니스 모델에 눈을 뜬 것은 1972년에 있었던 미국 업계 시찰이었다. 미국의 여러 매장을 살펴보면서 그는 일본 경제 수준과 주거 문화 사이의 괴리를 현저하게 느꼈다. 원래 인간은 ‘식’, ‘의’, ‘주’에 돈을 쓰게 되는 법으로, 45년 패전 이후, 잿더미 위에서 급속하게 성장, 1964년에 성공적으로 하계 올림픽을 치르고 소득 배증 정책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일본 경제는 ‘식’과 ‘의’를 충분히 충족시켰으므로 ‘주’라는 부문에 투자하기 시작할 시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미국인들과 같은 수준의 생활이라는 로망. 가구만이 아니라 각종 생활 소품과 인테리어를 통한 토탈 코디네이트. 니토리 아키오는 가구를 포함한 집안의 비품 전체, 즉 ‘홈 퍼니싱’을 통해 단순한 상품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팔기 시작한 것이다.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수직계열화, 해외 거점의 구축 ‘라이프스타일’의 판매는 고객의 방문 회수를 늘렸고 이는 단위 매장의 매출 증대로 이어져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개발은 물론 생산, 조달 등의 부문에서도 다른 접근이 필요했으며, 원가 절감 또한 필요했다. 니토리는 생활 비품 및 인테리어 제품을 포함한 다품종 대량 판매 체제를 운영하고 유지하기 위해 상품의 기획에서 생산, 유통을 모두 맡아 담당하고 있다. 바로 제조소매업이라는 방식으로, 니토리에서는 자사의 업태를 ‘제조물류소매업’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전에도 니토리 아키오 회장은 도매상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홋카이도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기 위해 일본 전역의 가구 공장에서 직접 매입하는 방식을 취해왔는데, 80년대 중반부터는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1994년에는 가구제조 자회사인 마루미쓰(현 니토리 퍼니처)를 인도네시아로 옮겼다. 현재는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비롯, 6개국 15개 해외 거점을 구축한 상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