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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 세트
전4권
정운현
선인 200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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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김길창 / 김덕삼 / 김두하 / 김상홍 / 김연수 / 김원근 / 김정록 / 김찬욱 / 김창영 / 김 혁 / 김화준 / 노기주 / 노영환 / 민영찬 / 박순기 / 박정서 / 박종표


박흥식 / 성우너경 / 소진문 / 손영목 / 손재하 / 송병헌 / 신용욱 / 양주삼 / 염경훈 / 오명진 / 오숭은 / 오의관 / 오현주 / 유지창 / 윤강로 / 윤장섭 / 이경우 / 이관석 / 이규상 / 이기권


이기승 / 이명구 / 이문환 / 이산연 / 이원구 / 이인희 / 이중화 / 이취성 / 장명원 / 장자관 / 장직상 / 전정윤 / 전필순 / 정인익 / 조병상


조원흥 / 최준성 / 최진세 / 최 탁 / 편덕렬 / 편무재 / 한규복 / 한능해 / 허기엽 / 현준호 / 홍순복 / 홍종철

저자 소개 1

저자 정운현은 1959년 경남 함양 태생으로 대구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마쳤다. 1984년 10월 중앙일보에 입사해 조사부와 현대사연구소에서 기자로 근무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인 1998년 8월 서울신문으로 옮겨 한국 언론 사상 처음으로 친일파 장기 연재 및 미디어면을 신설하여 성역 없는 매체 비평을 담당했다. 2002년 1월 신생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로 옮겨 초대 편집국장을 맡아 초창기 오마이뉴스의 위상 정립과 성장에 기여했다. 1980년대 말부터 개인적으로 친일파 연구와 자료수집을 해왔으며, 2005년 ‘제2의 반민특위’로 불린 친일진상규명위원회의 사무처장을 맡
저자 정운현은 1959년 경남 함양 태생으로 대구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마쳤다. 1984년 10월 중앙일보에 입사해 조사부와 현대사연구소에서 기자로 근무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인 1998년 8월 서울신문으로 옮겨 한국 언론 사상 처음으로 친일파 장기 연재 및 미디어면을 신설하여 성역 없는 매체 비평을 담당했다. 2002년 1월 신생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로 옮겨 초대 편집국장을 맡아 초창기 오마이뉴스의 위상 정립과 성장에 기여했다.

1980년대 말부터 개인적으로 친일파 연구와 자료수집을 해왔으며, 2005년 ‘제2의 반민특위’로 불린 친일진상규명위원회의 사무처장을 맡아 친일파 청산 작업에 헌신하였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8년 초, 임기 3년의 한국언론재단 이사로 취임하였으나, 이명박 정권의 사퇴 압력으로 10개월 만에 강제로 쫓겨났다. 이후 만 10년간 거지반 실직자로 지내면서 근현대사 관련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였다.

2018년 원주 상지대에서 초빙교수로 ‘친일파와 한국독립운동사’ 강의를 하던 중 이낙연 전 총리의 발탁으로 1년 4개월간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런 인연으로 2021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이낙연 후보의 캠프에서 공보단장을 맡아 대언론 업무를 담당했다. 2022년 3월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앞서 ‘썩은 사과보다는 덜 익은 사과를 택하겠다’며 민주당 이재명 후보 대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지지선언을 하여 적잖은 파란을 일으켰다.

1990년대 이후 그간 총 30권의 책을 출간했다.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친일파는 살아 있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안중근 家 사람들』 등 대부분 친일파와 독립운동사에 관한 책을 썼다. 종이신문, 인터넷신문, 방송 등 여러 매체에서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도 늘 자유로운 글쓰기를 추구했다. 또 몇 차례의 공직 생활 때는 거침없고 소신 있는 행보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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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3220g | 188*254mm
ISBN13
9788959331697

책 속으로

올해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한 획을 긋는 해이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숙적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로부터 1년 뒤 우리는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국내외에서 항일투쟁이 본격화되었다. 1919년 고종황제가 덕수궁에서 비운의 삶을 마치자 이를 계기로 그해 3월 1일 거족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올해로 3·1만세의거가 일어난 지 90주년이 된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선언으로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되었고, 뒤이어 중국에서 활동하던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하였다. 서대문 경교장에 거처를 마련한 백범 김구 주석은 새조국 건설과 통일정부 수립을 외치다 1949년 6월 26일 안두희가 쏜 총을 맞고 73세로 서거하였는데, 올해로 서거 60주기이다. 선생의 서거 20일 전인 6월 6일에는 친일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무력화시켰으며, 민족적 염원을 담아 구성됐던 반민특위는 결국 그해 8월 말로 문을 닫고 말았다. 그 역시 꼭 60년 전의 일이다.

반민특위는 해방 후 제헌국회에서 친일파 청산을 목적으로 구성한 국가 기구이다. 제헌헌법 제101조에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신생 대한민국정부가 친일파를 처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를 토대로 1948년 8월 5일 제40차 국회 본회의에서 김웅진 의원이 ‘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구성을 긴급 동의안으로 내놓았는데, 이것이 해방 후 친일파 처벌의 첫걸음이었다. 표결에서 재적 155명 중 가(可) 105, 부(否) 16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으며, 그해 9월 7일 제59차 본회의에서 반민법은 재적 140명 중 가 103, 부 6으로 마침내 통과되었다. 반민법의 공소시효는 1950년 6월 20일까지였다.

반민법이 공포되자 국회는 후속작업으로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약칭 ‘반민특위’) 구성을 서둘렀다. 우선 독립운동 경력자,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 등을 대상 국회의원 가운데서 특위 위원을 선임하였는데, 초대 반민특위 위원장에는 임시정부에서 문화부장을 지낸 김상덕 의원(경북 고령)이 선임되었다. 반민특위는 1948년 12월 23일까지 중앙에 중앙사무국, 각 도 조사부에 조사분국을 설치하여 골격을 잡은 다음 특별재판관 15인, 특별검찰관 9인, 그리고 중앙사무국에 조사관, 서기관을 임명함으로써 최종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입법 제안에서부터 법률 공포에 이르기까지 우역곡절 끝에 출범한 반민특위는 당시 돈으로 7천 4백만환의 예산을 타내 이듬해 1949년 1월 5일 중앙청 205호실에 자리를 잡고 본격활동에 들어갔다.

반민특위의 첫 성과는 1949년 1월 8일 친일기업인 박흥식 회신 사장 검거였다. 특위는 당시 박흥식이 미국으로 도피하려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종로 2가 화신 사장실을 급습하여 현장에서 박흥식을 체포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반민특위는 문화계의 거두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을 비롯해 직업적 친일분자 조병상(중추원참의, 종로경방단장), 경방 사장 김연수, 친일경찰 노덕술, 중추원 부의장 박중양, 여자 밀정 배정자, 친일관료 김대우(경북지사) 등을 속속 검거하였다. 반민피의자는 서대문형무소나 마포형무소에 수감한 후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관들이 조사를 진행한 후 특별검찰부에 넘기면 이곳에서 기소 여부를 결정하였고, 기소된 자에 대해서는 특별재판부에서 재판을 통해 처리하였다.



반민특위의 검거 선풍이 회오리치자 친일세력들과 이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이승만 정권은 불안한 나머지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선 특위 요원들의 흠집 내기에 이어 특위 요원 암살음모로 이어졌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이해 5월 하순에 터진 ‘국회프락치사건’으로 승기를 잡은 친일세력들은 마침내 “실력으로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시키자”고 뜻을 모으고는 6월 6일 아침 반민특위를 습격하였다. 이것이 소위 ‘6·6 사건’이다. 특위 관할서장인 중부서장 윤기병의 지휘로 출근하는 특위 요원 35명을 납치하여 중부서에 감금하였다. 이 와중에 다시 제2차 국회프락치사건이 터졌고, 설상가상으로 백범 김구 선생마저 서거하였다. 특위가 극도의 위기에 몰리자 특위 내에서조차 특위 운영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됐고, 급기야 특별법 개정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법무장관직을 사임하고 국회로 돌아온 이인을 비롯하여 곽상훈 등은 1950년까지 규정된 공소시효를 1949년 8월 31일까지로 단축시키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반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국회가 어수선한 틈을 타 이 개정안은 7월 6일 국회를 통과하였고, 이에 ?상덕 위원장 이하 초대 특위 위원 전원은 일괄 사퇴하였다. 김상덕에 이어 2대 위원장에는 이인이 선임되었는데, 이로써 8월 31일까지 한 달 남짓 남은 반민특위의 앞날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결국 2차 특위는 독자적인 조사활동은 벌이지도 못한 채 1차 특위의 잔무처리 수준에서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2차 특위가 활동을 마무리할 무렵인 1949년 8월경에 나온 특위의 결정은 대개가 ‘무혐의(무죄)’ 혹은 ‘불기소’였다. 경방 사장 김연수에 대한 무죄판결은 재판관 간에 의견차가 극심했었다. 김연수 재판의 재판장이었던 서순영 3부 재판장이 무죄론을 주장하자 1부 재판장이었던 김병로(전 대법원장)는 “사회여론을 생각할 때 무죄판결은 위험천만한 재판”이라며 재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1949년 1월부터 활동을 개시한 반민특위는 그해 8월 31일 공소시효가 만료될 때까지 8개월 동안 나름으로는 다양한 활동을 벌였지만 당초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 기간 동안 특위가 벌인 활동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특위가 문을 닫은 직후인 9월 10일자로 이인 2대 위원장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활동기간 동안 특위가 취급한 친일파는 여성 6명을 포함하여 모두 688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특위 중앙사무국에서 직접 취급한 경우는 절반에 가까운 326명이었으며, 나머지는 각 도 조사부에서 취급한 경우이다. 또 특위가 취급한 688명 가운데 특별검찰부에 송치된 반민피의자는 모두 599명이었으며, 이들 가운데 영장이 발부된 자는 408명으로, 이 가운데 체포된 자가 305명, 미체포된 자가 73명이었으며, 자수 61명, 영장취소 30명이었다.

특별검찰부가 기소한 자 가운데 특별재판부가 해체되기 전에 판결을 받은 자는 78명이었으며, 미결인 친일파는 215명이었다. 재판에서 최종판결을 받은 자들 가운데는 경찰 출신이 40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중추원 참의였다. 처벌내용을 형량순으로 살펴보면, 체형(총 10명)을 받은 자 가운데 사형 김덕기(고등경찰), 무기징역 김태석(경찰, 중추원 참의), 징역 2년6개월 이기용(귀족), 징역 2년 이성구(면 서기, 징병자 부친 구타, 사망시킴), 징역 1년6월 조병상(중추원 참의), 징역 1년(총 5명) 김갑복(청주경방단 부단장, 공출/ 징용 적극 협력) 등이며, 이병길(습작, 이완용 아들) 등 9명은 집행유예를, 파인 김동환 등 23명은 공민권 정지를, 김연수, 박흥식 등 17명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또 고문경찰 박종표 등 9명은 형 면제를,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변절자인 최린, 친일경찰 노덕술 등 8명은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상징적인 친일파들의 대다수는 ‘면죄부’를 받고 풀려나 친일파 청산은 이후 민족적 숙제로 남게 되었다.

「서론 - 2009년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반민특위’」 중에서

관련 자료

편자의 말
지난 1993년 도서출판 다락방에서 『반민특위 재판기록』이 처음 영인돼 나왔을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엔 제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친일파들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곳곳에서 마주치는 게 반민특위인데, 정작 반민특위와 관련된 자료는 도무지 찾을 길이 막막했습니다. 기껏해야 반민특위 관련 사진 몇 장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반민특위 재판기록』이 나왔으니 친일문제를 연구하던 저로서는 그 반가움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얼른 한 질을 구입해서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2~3년이 지난 어느 날 현대사를 전공한 한 소장학자가 제게 이런 얘길 들려주었습니다. 『반민특위 재판기록』이 출간돼 연구자들이 이제 친일파 재판 관련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그림의 떡’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연유를 물어보았더니 영인본으로 출간된 게 문제라면 문제였습니다. 당시 조사관들이 작성한 재판 관련 문서가 한자투성이인데다 글씨도 제각각이어서 해독하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계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제게 풀이를 좀 해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에 제안 아닌 제안을 받은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우선 제가 이 어려운 작업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인지, 또 17권 분량이나 되는 막대한 양을 다 소화해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이 일은 저의 몫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재판기록 풀이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작업 도중에 저는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우선 초서투성이의 한문을 읽어내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재판기록의 원본상태가 좋지 않은 곳이 적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이 작업은 단순히 흘려 쓴 한자를 읽을 줄 안다고만 해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친일파 인물들이나 일제시대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없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모 소장학자가 제게 이 일을 권유한 것도 아마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족하나마 포기하지 않고 이 작업을 계속하기로 작정했습니다. 풀이한 것을 순국선열유족회의 기관지 《순국》에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1997년 8월호부터 2006년 8월호까지 햇수로 근 10년간 연재하였습니다.

참고로 몇 가지 밝혀둘 것이 있습니다. 우선 이 책에 실린 것은 영인본에 실린 재판기록 전체를 다 풀이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당초 책으로 펴낼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내용만이라도 대중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러 명의 증인들을 상대로 한 〈증인신문조서〉는 내용상 중복이 많아 더러 생략했습니다. 아울러 문체도 나름대로는 현대식으로 고쳤습니다. 한 예로 ‘여좌(如左)함’ 같은 것은 ‘아래와 같음’으로 고쳤습니다. 또 일부 필요한 대목에는 ‘편자 주(註)’를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풀이에 더러 오류가 없지 않을 것이며, 원문의 함의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 모두는 전적으로 천학비재한 저의 책임입니다. 학식과 통찰력을 겸비한 후학들이 차후에 이를 보완해주길 기대합니다.

끝으로 근 10년간 연재 지면을 내주신 《순국》 편집진, 그리고 이를 책으로 묶어 출간해주신 도서출판 선인의 윤관백 사장님과 편집진에게 감사드립니다.

2009년 5월 20일
독립문네거리 寓居에서
정운현 씀

출판사 리뷰

이 책은 해방 후 제헌국회에서 구성한 반민특위의 친일파 재판기록으로, 원본의 상태가 불량한데다 한자투성이인 것을 편자가 쉬운 우리말로 풀고 주석을 달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Ⅰ·Ⅱ·Ⅲ·Ⅳ 총 4권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에 도서출판 선인(대표 윤관백)에서 펴낸 『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전 4권)은 현존하는 반민특위의 재판기록을 일반인들도 접근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낸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대로 반민특위는 8개월가량 활동하면서 모두 688명의 반민피의자들에 대한 조사와 재판을 진행했다. 그런데 어찌된 연유인지 이들에 대한 재판기록은 상당부분 소실되었다. 반민특위는 활동이 종료된 후 대검찰청과 대법원으로 업무가 이관되면서 관련자료도 이관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남아 있는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지난 1993년 도서출판 다락방에서 영인본으로 출간한 『반민특위 재판기록』(전 17권)을 저본으로 하여 이를 풀이한 것으로, 원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펴낸 『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에는 총 64명의 친일파들에 대한 재판기록으로, 반민특위에서 취급한 688명의 1할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분량이다. 그마저도 재판 관련자료 전체가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거의 없는데, 이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훼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친일관련 자료가 훼손된 사레는 이미 더러 발견된 적이 있다. 한 예로 모 공공도서관에 보존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일부가 예리한 칼로 기사 일부를 도려간 경우도 있었고, 또 국회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친일파 관련 서적 가운데는 본문의 일부가 먹으로 칠해져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훼손된 경우도 있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제 때 나온 서적 중 상당수가 멸실된 것은 물론 불순한 세력들에 의해 이처럼 친일관련 자료가 점차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출간된 『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은 친일관련 자료의 보급은 물론 일반인들이 해독할 수 없는 내용을 쉽게 풀어냄으로써 대중화 작업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민특위 재판기록 원본은 전부 손으로 쓴 수기체로, 한자투성이인데다 글씨체 역시 대부분이 초서에 가까운 흘림체들이다. 그 이유는 조사관들이 피의자나 증인들에 대한 신문내용을 즉석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풀이의 어려움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1949년 당시의 말투는 물론 일제시대나 친일관련 단체 및 인물에 대한 언급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어서 단순히 흘림체를 해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즉 일제시대 전반이나 친일문제 등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겸비해야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편역자 정운현 씨는 친일문제 전문가로서, 이번 작업의 최적임자였다고 할 수 있다. 정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년 넘게 친일문제에 천착해왔는데, 원전을 쉬운 말로 풀고 더러 주석도 덧붙였으며, 근 10년간에 걸쳐 이 작업을 진행해 왔다. (‘편역자 소개’ 참조)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반민특위에서 피의자로 선정한 이후 재판 과정 전반의 기록을 담고 있다. 다만 인물에 따라 내용의 차이는 있다. 즉 검거-조사-기소(구속)-재판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친 거물 친일파들의 경우 자료가 방대하나 특위 조사 후 혐의 내용이 경미해 풀려난 사람의 경우 관련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다락방에서 펴낸 원전 17권 가운데 단독으로 한 권 분량을 차지한 사람은 김연수, 박흥식, 조병상 등 3인에 불과했다. 그 외의 사람들은 경미한 자들은 범죄인지보고서, 의견서, 피의자신문조서, 불구속사건기록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반면 반민족행위가 상당해 구속된 자의 경우 구속영장, 수색영장, 체포시말서, 사건송치서, 피의자소행조서, 피의자신문조서, 증인신문조서, 구속기간연장신청서, 차압조서, 공판조서 등 일련의 재판 관련 자료들이 추가로 첨부돼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재판의 최종결과를 보여주는 공판조서는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이 책에 수록된 64명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을 몇 소개하면, 반민특위 재판에서도 다수가 유죄를 받은 친일경찰을 비롯해 습작자, 도회 의원, 중추원참의, 기업인, 군수업자, 종교인, 경방단 관계자 등이 두루 포함돼 있다. 전체 64명 가운데 여성은 2명이 포함돼 있다. 각 분야별로 살펴 보면(일부 중복자 있음),

경찰-김찬욱, 김창영, 노기주, 박종표, 송병헌, 유지창, 윤장섭, 이중화, 장명원, 장자관, 전정윤, 최준성, 최탁
도회/부회 의원-김두하, 김상홍, 성원경, 손재하, 염경훈, 오명진, 오숭은(변호사), 허기엽, 현준호, 홍종철
중추원 참의-김연수, 김원근, 김화준, 노영환, 민영찬, 이기승, 이명구, 장직상, 한규복, 현준호, 홍종철
습작자-김정록, ?정서, 윤강로, 이경우, 이원구, 조원흥
공무원-김덕삼, 김창영, 김혁, 소진문, 손영목(도지사), 오의관, 이관석(公醫), 한규복(도지사)
군수업자-신용욱(항공기 제조), 이문환(철공업), 최진세(군납)
기업인-김연수(경방 사장), 박흥식(화신 사장), 현준호(호남은행장)
종교인-목사(김길창·양주삼·전필순), 승려(한능해), 궁사(이산연)(* 이산연은 청주신사(神社) 궁사(宮司)를 지냈는데, 궁사는 사찰의 주지에 해당함)
언론인-정인익(매일신보 편집국장), 홍순복(매일신보 충북지사장)
경방단 관계자-박순기, 조병상, 편무재
기타-이기권(관동군 협력), 이인희(경북 예천 재산가), 편덕렬(밀정)

# 참고로 이들 가운데 민영찬(중추원 참의)은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친동생이며, 편덕렬(밀정)은 편강렬 의사의 친동생임.
# 여성 2명은 오현주, 이취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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