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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버스가 지중해변을 달리기 시작하자 나는 스테로이드 주사라도 맞은 운동선수처럼 원기가 왕성해졌다. 하얀 요트가 즐비한 해변, 예쁜 인테리어 카페, 야자수가 큰 키를 뽐내는 도로, 명품 가게가 줄줄이 늘어선 상가,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 바다 쪽으로 베란다를 낸 콘도형 집, 깎아지른 절벽 위 별장, 세월의 흔적이 쌓여 있는 유적,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던 그림을 전시하는 미술관, 세련된 옷차림의 사람들. 그 많은 것들을 짧은 시간에 다 보느라 눈에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 pp.16-17 「내가 프로방스로 간 까닭은?」 중에서
골목 사이로 비쳐드는 햇볕을 받으면서 내 손바닥은 비포장 산길을 달리는 지프처럼 그 울퉁불퉁한 황토벽 위를 달렸다. 그러다 손이 아프면 남의 집 문간에 가만히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봤다. 한없이 자유로웠다. 이런 느낌이 그리워 길을 떠나왔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는 공간에서 구름처럼 떠돌고 싶어서. 누구나 똑같은 걸까?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일찍이 말했다. ‘오로지 고독 속에서만 사람은 참된 자유를 안다.’ --- pp.49-50, 「골목길 접어들 때에…」 중에서 그때 육박전처럼 허겁지겁 치른 내 결혼식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내 아들 딸은 어떤 결혼식을 하게 될까 궁금해졌다. ‘그때쯤이면 나는 어떤 사람이 돼 있을까’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씁쓸해졌다. 아들 딸이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만이라도 직장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이 땅의 숭고한 겁쟁이 아빠들을 꽤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자식 결혼식만 끝나면 직장을 잃어도 괜찮다는 사람치고 진짜 괜찮을 사람이 있을까마는 자기 인생과 자존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식의 명예 아니, 기를 살리려는 가엾은 부정父情에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들에게 겁쟁이란 계급장을 호기롭게 붙이고 있으나 그것은 사실 내 미래이기도 했다. --- p.64, 「성당은 숨 쉰다, 고로 존재한다」 중에서 30~40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그놈의 물욕에 휘둘려 내 손가락에는 올리브 절임, 청포도, 케이크 조각, 포마주, 소시지를 각각 담은 하얀 비닐봉지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토끼 사냥이라도 다녀온 모습이었다. 여기다 해바라기까지 한 다발 들면 영락없는 프로방스 주부의 모습일 텐데,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지나갔다. 그렇게 한 번 해볼까도 생각했다. 여기는 프로방스니까. --- p.73, 「프로방스 시장은 동네 사랑방」 중에서 나는 보졸레 누보 출시 당일인 11월 셋째 주 목요일 칸에 있었다. 아무 일 없이 이렇게 이날이 지나가서는 안 될 것 같아 해변 근처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러나 메뉴 어디에서도 보졸레 누보를 알리는 내용은 찾지 못했다. 갸르송을 불러 “오늘 보졸레 누보 날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맞다.”고 대답했다. 그뿐이었다. 마실 거냐고 되묻지도 않았다. ‘아니 이 사람들이 정말!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냐? 한국에선 이날을 얼마나 대단하게 대접하는지 알기나 해?`’ --- p.128, 「내 마음은 와인에 젖고」 중에서 나는 카페만 들어서면 ‘멍 때리기’ 작업에 열중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선글라스를 깊이 당겨쓰고 최대한 거만한 느낌이 나도록 엉덩이를 빼 걸터앉았다. 마침표를 찍듯 팔짱도 끼었다. 그렇게 손을 결박하지 않으면 몇 분 못 가 책이나 지도를 꺼내들고 펜으로 뭔가를 끄적이기 십상이다. 진짜로 10분이 채 못 돼 팔짱은 저절로 풀어졌다. 자유로워진 두 손이 좀전에 찍은 사진을 정리하려고 카메라를 꺼내거나 다음 행선지 정보를 보겠다고 가방을 뒤지는 걸 막을 도리가 없었다. ‘멍 때리기’는 그만큼 힘든 프로젝트다. --- p.138, 「프로젝트 넘버 원 ‘뭉개기’」 중에서 요트의 돛대가 빼곡하게 서 있는 마르세유의 부두, 맨발을 모래에 묻을 수 있는 칸 비치, 코앞까지 파도가 튀는 망통의 해안도로, 최고급 요트가 정박해 있는 생트로페 해변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펼쳐져 있었다. 그 카페에서 3~4유로짜리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툭 트인 지중해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슬픈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한낱 꿈일 뿐이라고”로 시작하는 롱펠로의 시 「인생예찬」 중에서을 읊조리게 된다. 카페에 앉아 있다 보면 시간이 맞아떨어져 핏빛 저녁 하늘을 볼 때도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한 나머지 미쳐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 순간의 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꼭 아내 생각이 간절해졌다. 커피 한 잔 시켜주지 않아도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할 텐데……. --- p.146, 「카페에 앉아 생을 찬미하노라」 중에서 프로방스에서 내 감각 중 가장 호강한 것은 시각이다. 화려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고 세련되고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실컷 봤다. 눈은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보고 싶었다. 그런 것들을 나처럼 잠깐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보는 프로방스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모를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름다움, 그게 뭐 별 건가요? 공기처럼 당연하게 우리 곁에 있는 거 아니에요?” --- p.164, 「색과 빛에 무릎꿇을지어다」 중에서 언덕 꼭대기의 교회가 왕관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 화장실 찾느라 생고생을 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카페라도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길바닥 개똥만큼이나 흔한 카페도 그날 따라 영업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시 외곽 지역으로 나가다가 대형 슈퍼마켓을 발견하고는 뛰어들어갔으나 거기서도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시가지 전투를 하는 병사처럼 지형지물을 둘러보다가 인적이 드문 근처 카센터에다 한국적 벽화를 그려주고 말았다. --- pp.167-168, 「생물학 모르면 프랑스는 지옥」 중에서 일방통행이 어찌나 많은지 그 똑똑한 내비게이션도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였다. 걔가 시키는 대로 달리다 낭패를 본 일이 적잖았다. 그 결정판은 프로방스 보클뤼즈 지방의 작은 마을 보뉘유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이 마을 초입에서 나는 호기롭게 2차선이 채 못 되는 일방통행로를 200미터나 올라갔다. 길 가던 마을 사람들은 나를 보고 묘한 제스처를 지어보였다. 고개를 잠깐 갸우뚱하는 사람, 양팔을 몸에 붙인 채 두 손바닥을 하늘로 돌리는 사람, 어깨를 귀까지 올리며 표정을 구기는 사람. 외진 곳까지 찾아온 동양인에게 보여주는 환영의 표시치곤 어딘가 거칠고 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p.186-187, 「죄송하지만, 일방통행인데요!」 중에서 나는 용맹스럽게도 트렁크만 걸친 채 어느새 칸 앞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마침 커피를 주문해 마셨던 모래사장 카페 옆에 샤워 시설 있겠다, 해안도로 옆에 주차해놓은 차에 세면도구 있겠다, 기온도 20도 가까이 되겠다, 내 뱃살을 발설할 놈도 없겠다, 여러 조건이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몸서리를 치며 쳐들어간 바닷물 온도는 참을 만했다. 파도도 그리 세지 않았다. 하지만 치명적이게도 트렁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몇 번 팔을 젓지도 않았는데 트렁크가 훌러덩 벗겨졌다. 볼일 보려고 내릴 때보다 더 쉽게 흘러내렸다. --- p.226, 「지중해에 한번 빠져보시겄습니까」 중에서 어느날부턴가 집 안에서 내 모습이 자주 보이기 시작하고 그게 곧 프로방스로 날아갈 조짐이었다는 걸 눈치챈 내 딸은 제 앞가림도 버거울 고3 주제에 나에게 말했다. “우리한테 말한 것처럼 아빠도 아빠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 맹랑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아빠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에 담긴 그 복잡하고도 오묘한 의미를 알기나 하는 걸까 의심이 들었지만 그 말에 내가 일말의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위선자일 것이다. --- p.234, 「Just Do It, OK?」 중에서 그러나 그들보다 더 가여운 것은 밤늦도록 손에 땀을 쥐면서 이종격투기를 보는 나 자신이다. 세상에서 가장 센 놈은 누굴까, 저렇게 맞다가는 죽을 텐데 하면서 남의 고통을 즐기는 인간이 나다. 세상은 저런 싸움판이야, 저기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해, 때로는 먼저 남을 공격해야 돼, 하면서 투지를 다지다가도 사람이 이렇게 미쳐가는구나 싶어 화들짝 놀랐고 한편으론 창피했다. --- p.290, 「왔노라! 보았노라! 졌노라!」 중에서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마르세유 근교 해변 주택가를 거닐 때, 포도밭에 홀로 포위된 전원주택 앞마당을 서성거릴 때, 다 허물어져가는 중세 마을 메네르브의 돌벽 주택을 들여다볼 때, 숲속 빈터의 담장 없는 저택을 지나갈 때, 간단히 말해 당장 들어가 살고 싶은 곳이 눈에 들어올 때면 ‘저런 집은 얼마나 할까?`’ ‘아파트 팔면 저런 집 반 토막은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 p.297, 「아파트를 팔아 프로방스로?」 중에서 그 느낌이 환희에 찬 것들뿐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프로방스에서 지내며 순간순간 외로웠고, 순간순간 배고팠고, 순간순간 암담했고, 순간순간 분노했고, 순간순간 서글펐다. 그것을 다 무릅쓰겠다며 달려간 곳이 프로방스였다. 하여 앞으로 펼쳐질 내 현실 속에서 그런 순간들이 다가온다면 프로방스로 저벅저벅 들어가 에너지를 충전해올 것이다. 이런 걸 ‘추억의 힘’이라고 해도 될 듯싶다. 한 가지 더 얻은 게 있다면 좀 슬렁슬렁 사는 것도 좋겠다는 깨달음이다. 나 자신한테도, 내 가족한테도, 내 주변 사람한테도. --- p.309, 「에필로그: 앙코르 프로방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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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지방의 어느 시골 마을. 마흔 넘은 한국 남자가 정육점에 들어갔다. 간만에 삼겹살로 목에 기름칠이나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주도면밀하게 사전조사를 했다. 옳거니, 삼겹살을 프랑스 사람들은 ‘가슴살’이라고 부르렷다! 그는 정육점에 가서 당당히 외쳤다. “가슴을 주세요!”
그러나 정육점 주인 안토니의 대답 한 마디에, 프로방스에서 은밀히 꿈꾸던 그의 독립 계획은 난관에 봉착했다. “누구 가슴이요? 얘요? 쟤요?” 그는 이역만리 타국까지 가서야 ‘이 나이 먹도록 처먹을 줄만 알았지 돼지고기와 쇠고기의 생김새도 구분하지 못하는 반거들충이’로 살아온 자기 맨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뿐이면 좋았을 텐데, 궁상스럽고 쪽팔린 경험은 줄줄이 이어졌다. 일방통행로에서 200미터나 역주행을 하질 않나, 화장실을 못 찾아 수시로 노상방뇨를 해대질 않나……. 앉아서 천리를 보는 아버지는 그 모습이 다 보이시는지 안부전화를 넣을 때면 말씀하셨다. “웬만하면 그만하고 돌아오지 그러냐?” 그렇다고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프로방스는 10년 동안이나 마음속에 품어온 ‘낙원’이었으니까.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은 어디에 있나요? 이 책 『아름다운 시절』은 ‘내 생애 가장 청명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자’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떠난 한 40대 남자의 이야기다.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이대로 쪼글쪼글 늙어갈 수는 없다 싶어 아내와 자식들까지 팽개치고 혼자 떠난 프로방스. 책에는 ‘에귀’라는 시골 마을에 둥지를 튼 저자가 100일 동안 프로방스를 헤집고 다니면서 맞닥뜨리는 갖가지 사건과 사고들이 때론 능청스러운 수다로, 때론 재기 번득이는 시적 비유로 그려지고 있다. 프로방스를 마음에 품은 지 10년. ‘프로방스에서 해야 할 일들’이라는 리스트까지 만들었을 만큼 치밀하게 준비한 여행이었지만 말과 풍습이 서툰 탓에 그의 생활은 처음부터 말썽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어밖에 못하는 관광안내원에게 영어로 된 자료 좀 달라고 칭얼대다 무시당하고, 전차길을 나 홀로 주행하다가 마주오는 육중한 전차에 깔려 죽을 뻔하고…. 그렇게 좌충우돌 아름다웠던 100일 간의 체류 경험을 저자는 마치 잘 짜여진 콩트 속 주인공인 된 듯 유쾌하고 맛깔스러운 이야기 솜씨로 버무려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거기에 영화?미술?출판 등 문화부 기자로 잔뼈가 굵은 그의 문화적 소양과 내공이 어우러져, 경쾌하고 섹시하며 품위 있고 교양미 넘치는 여행 에세이가 만들어졌다. 아저씨, 로망을 실현하다! 기자로 줄잡아 20년을 보내온 저자 김태수는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글 써서 먹고사는 일이 때로 버거웠지만 현실이 자신에게만 유독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게 누구의 것이든, 가정을 가진 대한민국 직장인의 삶이 이 정도 고달프다는 것쯤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자꾸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헤이! 이봐, 끝끝내 이렇게 살다 갈 거야? 쫀쫀하게 사는 인생 억울하지도 않아?” 때론 키득거리고 때론 서글프게 충동질하던 그 목소리에 그는 조금씩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조용하고도 야심차게 모반을 계획했다. 더 늦기 전에, 삶이 나를 배반했다는 걸 깨닫기 전에, 그동안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로망을 한 가지쯤은 실현시켜봐야 했다. 그래야 억울하다는 마음 없이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타고 세계일주(하다못해 강남 대로만이라도)를 한다든가, 청바지를 입고(어울릴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밴드에서 뒤늦은 음악 혼을 불태운다든가, 날씨 좋고 공기 맑은 곳으로 훌쩍 떠나 우연히 만난 금발 머리 아가씨(아줌마일지도 모르지만)와 사랑에 빠진다든가 하는 일들. 타인 눈엔 ‘한갓 노망’에 불과할지라도 버거운 내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위대한 로망’ 같은 것! 그에게는 프로방스에서의 삶이 그런 것이었다. 허나 20대의 배낭여행도 아니고, 최소한 100일 이상은 프로방스에 머물겠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무모한 것이었다. 굳었던 다짐은 통장 잔고와 부족한 배짱과 주위의 반대에 시시때때로 부딪혔고,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 ‘근심이 팥죽 끓듯’ 했다. 낙원으로 가다 프랑스어가 유창하기는커녕 아는 단어 합쳐봐야 스무 개 남짓한 그가 애초에 프로방스를 유토피아로 점찍어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고 들은 눈과 귀는 있어서 까다롭기가 맏며느리 보는 시어머니 못지않았던 그에게, 유명 대도시는 시끄럽고 삭막해보였고 온갖 좋다는 곳에 세워진 고급 리조트 역시 돈 받고 휴식을 파는 것 같아 마뜩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알게 된 프로방스는 단번에 그를 사로잡았다. 파란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 풍성한 대지, 짙푸른 바다, 차고 넘치는 음식, 작고 어여쁜 마을, 고색창연한 유적, 여유로운 사람들…. 10여 년 전, 칸 영화제 취재차 처음 들렀던 프로방스의 어느 언덕에서 그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두고 보자.” 이제 그에겐 100일이란 시간이 있었다. 저자는 장기 임대한 소형차를 끌고 원 없이 프로방스를 쏘다녔다. 그가 머물렀던 엑상프로방스 인근의 에귀에서부터 마르세유, 칸, 니스, 고르드, 오랑주, 님, 아를, 아비뇽, 망통, 생트로페, 카시스, 모나코… 죄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달력 사진이 찍혀 나오는 곳들이었다. 정해진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지라, 그는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펑펑 시간을 ‘낭비’했다. 길가에 착착 몸을 들이미는 노천카페들을 옮겨다니며 하루 종일 ‘멍 때리기’ 훈련을 하거나, 자그마한 골목들을 어슬렁거리다 예쁜 창문에 대고 ‘용감하고도 무례하게’ 셔터를 눌러대거나. 할 일 없이 방안에 들어앉아 와인을 홀짝거리며 ‘북한군 장성의 가슴팍에 주렁주렁 달린 훈장처럼’ 늘어난 와인병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먹고살기 바빠 돈보다 시간 쓰기가 더 어려웠던 서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치였다. 지중해에 가면 꼭 몸을 담가봐야 한다는 ‘지중해성 강박’에 시달리다 쌀쌀한 가을 트렁크만 입은 채 입수했다가 5분도 안 돼 도망쳐 나왔고, 꿈에도 그리던 니스 해변의 ‘영국인 산책로’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달리다 걷다 앉았다 섰다 하며’ 완주했다. 형형색색의 먹을거리들이 자태를 뽐내는 시장에선 ‘토끼 사냥이라도 다녀온’ 듯 양 팔에 검은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걸고 의기양양하게 걸어나왔다. 한국에서 적어온, 소박하다 못해 쪼잔한 미션들을 차례차례 수행하는 동안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자유로웠다. 빛과 색에 무릎 꿇다 프로방스에서 그를 기쁘게 했던 건 또 있었다. 그곳은, 발 딛는 길목마다 예술의 향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풍광도 날씨도 좋다며 온갖 예술가들이 짐을 싸들고 내려와 눌러 앉았기 때문이다. 미술을 제대로 못 배운 게 늘 한이었던 그는 살풀이라도 하듯 고흐와 세잔을 필두로 하여 마티스, 모네, 피카소, 르누아르, 샤갈 등 예술가들의 뒤를 밟았다. 니스의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생트로페의 아농시아드 미술관, 마르티그의 펠릭스 짐 미술관 등등 크고 작은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잔이 수십 번이나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에 직접 올랐고, 산이 보이는 레 로브의 아틀리에에 가서 그가 화폭에 담은 앵글대로 수십 장씩 사진을 찍어왔다. 고흐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입원했던 생폴드모졸 수도원과 그가 그려 유명해진 카페에도 갔다. 예술가의 마을이라 불리는 생폴드방스에 가서는 샤갈의 무덤을 찾기 위해 수색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꼼꼼히 공동묘지를 뒤지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라 민망해졌다. ‘샤갈 무덤을 찾아서 뭘 어쩌자는 거지?’ 이곳에 뼈를 묻은 예술가들이 많다보니, 그들이 줄줄이 남겨놓은 작품에 눈이 멀어 아트 포스터를 충동구매하기 일쑤였다. 그걸 다 걸려면 재벌 회장님 집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지만, 지갑을 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갑뿐이 아니었다. 상상 속에선 이미 아파트까지 팔린 참이었다. “아파트 팔아서 고향으로 내려갈까?” “아파트 팔아서 구멍가게나 하나 내고 살자.”며 찧고 까불었던 꼴난 30평대 아파트는 아직 대출금도 다 못 갚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집요하게 아파트와 바꿀 만한 집을 찾아다녔다. 혹시 집값에 ‘0’을 하나 덜 붙여 내놓은 게 있으면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잽싸게 낚아챌 기회가 올까 싶어서. 왔노라! 보았노라! 졌노라! ‘늙은 유럽’ 중에서도 프로방스는 산전수전 다 겪은, 짬밥 있는 고참에 속했다. 하늘이 내린 자연조건을 탐낸 유럽인들이 시시때때로 군침을 삼키며 손을 뻗친 탓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아예 ‘프로빈키아’라는 이름으로 속주屬州를 삼아 지배했다. 프로방스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됐다. 이 고장 사람들이 프랑스 수도 파리를 늦둥이 취급하며 만만히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프로방스의 골목골목에선 긴 세월 켜켜이 쌓인 역사의 지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자는 티나지 않게 잘 복원해놓은 중세 도시에 가서 ‘야동은커녕 야사(야한 사진)도 보기 어렵고 그 시절 최고의 성서性書’였던 『데카메론』을 집중 학습하던 추억을 되새기거나, 타라스콩의 육중한 성 안에서 왕의 화장실에 머리를 박고 ‘왕의 똥이 떨어지는 낙하지점’을 관찰하기도 했다. 아를의 로마 원형경기장에선 남의 즐거움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 했던 검투사들의 숙명을 가여워하다가도, 밤늦도록 손에 땀을 쥐며 이종격투기를 시청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서늘해졌다. 젊은 시절엔 ‘저게 다 광기와 착취의 산물이지’라며 개도 안 물어갈 심술을 부리던 유럽 성당에 뒤늦게 필이 꽂혀 ‘성당 숭배파’로 전향했다. 수많은 성당에 들락거리다, 작은 중세마을 레 보 드 프로방스에선 까딱하면 가톨릭 신자가 될 뻔한 위기(?)를 맞았다. 프로방스에서 허물어지다 느리고 풍요로운 시간 속에서, 단단히 굳어 있던 삶에 대한 강박들이 느슨한 실오라기처럼 슬슬 풀려나갔다. 대학시절 이후 처음으로, 그것도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혼자 밥 지어먹고 다니느라 의도치 않은 갖가지 사고를 치렀지만, 어느덧 휴양 도시 생트로페의 성벽에 남 몰래 벽화를 그려놓고 진저리치던 자신의 모습을 ‘대견’하게 여길 정도가 됐다. ‘그래, 가끔 그렇게 망가져도 되는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슬렁슬렁’ 살 권리를 부여해주는 동안, 서울에선 소중하면서도 일상의 무게처럼 느껴졌던 살붙이들이 생생한 촉감을 지닌 채 다가왔다. 드넓은 잔디구장에서 공을 차는 어린 선수들을 보면 자꾸 아이들 생각이 났고, 제 앞가림도 버거울 고3 주제에 “우리한테 말한 것처럼 아빠도 아빠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라던 딸아이의 말이 귓가에 쟁쟁하게 맴돌았다. 해변 카페에서 3~4유로짜리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툭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에 겨웠다가도 아내 생각이 간절해졌다. 커피 한 잔 시켜주지 않아도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할 텐데, 싶었다. 프로방스는 그에게 평생 한 번쯤은 꼭 머물러 보고 싶었던 마음속 낙원인 동시에, 삶의 무늬를 새롭게 직조해주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앙코르 프로방스 그는 이제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프로방스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현실 앞에 섰다. 프로방스에서의 시간들이 전부 환희로 넘쳤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순간순간 외로웠고, 순간순간 배고팠고, 순간순간 암담했고, 순간순간 분노했고, 순간순간 서글펐다.’ 하지만 인생의 숙제처럼 남아 있던 갈망을 해소했다는 사실이 그에겐 중요했다. 이 책 『아름다운 시절』은 삶의 중반 지점에서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꿈 한 조각을 실현하기 위해 홀로 떠난 40대 남자의 분투기다. 저자는 빌 브라이슨, 피터 메일,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걸출한 여행 작가들이 그렇듯 시간 순서나 장소에 얽매이지 않은 채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익살스럽고 기지 넘치는 문장으로 부려놓는다. 이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 꾸러미는 물감이 묻어날 듯 선명한 색채의 사진들과 어울려 국내 저서로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여행 에세이로 탄생했다. 저자는 앞으로 펼쳐질 현실 속에서 아프고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다가올 때마다 ‘프로방스로 저벅저벅 들어가’ 에너지를 충전해오리라고 다짐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저자의 머릿속 어딘가에 ‘문신처럼’ 새겨진, 그래서 현실의 부침이 힘겨워질 때 무한한 위안을 주는 낙원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나눠가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