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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1980년판 서문_헨리 나우웬 2008년판 서문 1장 역설의 뱃속에서 2장 십자가의 길 3장 공동체의 역설 4장 공동체라 불리는 곳 5장 결핍의 시대, 풍요의 복음 6장 지식의 방향전환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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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모순은 영적인 삶에 걸림돌이 아니라 그 삶의 필수요소인 것 같다. 우리는 그 모순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힘이 우리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배운다. --- p.48
토머스 머튼은 우리가 모순에 반응하는 방식이 영적인 삶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모순과 대면하고 모순을 생각하는 순간이, 하나님의 신비에 들어가거나 그 신비를 피하는 전환점이다. 어쨌든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사 45:7)라고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 아닌가?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둠과 환난을 모두 악마의 탓으로 돌리기를 선호하여 거의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선언이다. --- p.51 나로 하여금 공동체 의식을 깊이 느끼게 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순과 깨어짐을 나와 공유하는 사람, 그래서 나의 모순과 깨어짐도 공유하게 되는 사람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원만하고 매끈한 사람으로 드러낼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내 삶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함께하는 삶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다. 반면 십자가가 우리 삶의 모양임을 인정하고 긍정할 때, 우리는 우리 속에 그리고 우리 사이에 공동체가 생겨날 수 있는 공간을 열게 된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서, 십자가의 중심에 있는 그 고독 속에서, 우리를 온전하게 창조하셨던 그분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며 다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신다! --- p.105 구원받는 것, 즉 온전해진다는 것이란, 우리가 모순 가운데 있고, 모순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깨닫고 그 모든 것이 ‘숨겨진 온전함’으로 다 함께 묶여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자유와 사랑 안에서 어느 누구와 어디서든 있을 수 있는 능력이다. 온전해진다는 것은, 우리가 삶의 모든 것, 곧 어두운 것과 밝은 것, 악과 선, 낯선 것과 익숙한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다. --- p.108 우리가 양극단 중 하나만 취하면 우리의 진정한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다. 그러나 양극단을 서로 창조적인 긴장 가운데 붙든다면, 우리의 욕구는 제대로 충족될 수 있다. --- p.118 진정한 공동체에서는 우리가 동료들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은 늘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동료들은 은혜로 주어질 것이며, 종종 그들은 우리의 자아상과 세계관에 도전할 것이다. 사실 진정한 공동체는 당신이 가장 같이 살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항상 같이 사는 곳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 p.146 결핍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정체성과 안전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영적 통찰이다. 우리의 정체성과 안전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 때에만 우리에게 올 것이다. 이는 결핍이 환상이 아니라 생사의 문제인 사람들과 연대하여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 p.172 바울에게 성숙함은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사실 그러한 삶의 자세는 일종의 죽음이다. 그것은 계시라 불리는 뜻밖의 소식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대신 바울은 성숙함을 “이 세상의 지혜”와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없어질” 것이라는 인식과 연결시킨다. 분명 지혜로운 사람은 관습적인 지혜의 부적합성과 대중적인 진리 개념의 공허함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바울이 보기에 지혜의 시작은, 지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기존 질서에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 p.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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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과 세상 가치관을 대하는 새로운 자세,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지혜 우리는 대부분 모순으로 인한 삶의 비일관성을 비난하며 그것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려고 한다. 모순이란 미성숙이나 진실하지 않음의 그림자이고, 따라서 모순을 제거한 삶이 바람직한 삶, 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인생에는 항상 모순이 도사리고 있고, 무엇보다 그 중심엔 모순 가득한 ‘내’가 있다. 바로 여기서 좌절이 시작된다. 파커의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가 나열한 모순의 경험과 그로 인한 감정이 독자가 살면서 느낀 바로 그 모순이고 긴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그가 용기 있게 뛰어든 새로운 형태의 삶과 그 삶을 살아냄으로 얻게 된 깊은 성찰, 즉 모순은 삶의 필수요소이며, 그 양극단을 긴장 가운데 붙들고 살아낼 때 우리가 온전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은 우리에게 살아 숨 쉬는 가르침이 된다. 모순을 마주하는 새로운 자세뿐만 아니라 그가 말하는 진정한 공동체와 공동체성에 대한 정의, 세상 결핍이 전제하는 사고방식, 왜곡된 ‘가르침’의 개념과 그로 인한 교육 현장의 문제점들은 우리가 당연시해 온 삶의 모습을 돌아보고 거기에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리고 이 대단하지 않아 보이는, 그러나 우리가 종종 잊는 이러한 과정들이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더해 준다는 사실은 이제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개인적 행복은 그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회피하고 다른 것에 목표를 두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이상한 것”이라는 파커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사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삶’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삶의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상실한 시대가 아닌가. 그래서 이 시대는 더욱 파커의 글이 필요하다. 마땅히 추구해야 할 목표와 가치, 그것들이 빚어내는 온전한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