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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왜 후진타오를 배워야 하는가
제1부 후진타오 일대기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 후진타오 어린 시절 3년 대기근과 수리학과 미남학생 문화대혁명과 청화대학 감숙성에서 보낸 나날 공청단 2인자 다시 변방으로: 귀주성 당서기 시절 판첸라마와 1989년 티베트 6·4천안문민주화운동과 후진타오 황태자로 숨죽이며 보낸 10년 제2부 한국인이 배워야 하는 후진타오의 성공비결 공처가 언제나 자신을 갈고 닦는다 절망에서 희망이 보인다 언행을 조심하라 흐름을 거스르지 마라 탁상공론은 금물, 행동으로 말하라 남을 욕하지 말라 절대 불만을 나타내지 말라 언제나 겸손하라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참고문헌 고유명사 |
朴根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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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에 벌어진 티베트 사태와 2009년 7월에 벌어진 위구르사태는 결코 중국 내부 문제로 그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은 국제여론의 비판에 대해 “내정간섭하지 말라”며 화를 내지만,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영토도 포기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인들은 그들만의 도미노이론이라는 강박관념이 있다. 한 민족이라도 독립하면 결국 중국 자체가 붕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에서 어떤 지도자가 나와도 바꿀 수 없는 고정관념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전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나라이다.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알아야하고, 후진타오를 알아야한다. --- pp.6-7, 「머리말 - 왜 후진타오를 배워야하는가」 중에서 등소평의 외교전략은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빛을 감추고 어둠을 기른다. 자기 재능을 숨기고 실력을 기른다는 뜻이다. 후진타오의 외교전략은 화평굴기(和平?起)로 달라졌다. 평화롭게 일어선다는 듯이다. 여기에서 평화롭게 일어선다는 말을 주의해야한다. 정말 평화롭게 일어서는 나라는 평화롭게 일서선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일어서면 된다. 후진타오의 이 외교전략을 한국인이 쉽게 느낄 수 있는 두가지 사건이 있었다. 동북공정과 『대국굴기』다큐멘터리 사건이다. --- p.14,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 후진타오」 중에서 후진타오 고향이 어디인가? ‘왜 이런 말을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후진타오가 고향을 숨긴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후진타오는 자기 고향을 숨겼다...(중략)...후진타오 출생지가 어디인가? 안휘성 적계현으로 기록한 자료가 있고, 상해로 기록한 자료가 있고, 강소성 태주로 기록한 자료가 있다...(중략)...후진타오는 중남해(中南海)로 들어온 뒤 자기 고향 강소성(江蘇省) 태주(泰州)를 숨기며 살았다. 왜 그랬을까? ...(중략)...후진타오가 자기 고향 태주를 숨기는 두 번째 해석은 바로 강택민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강택민과 후진타오가 고향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중략)...두 사람 고향이 같다는 것은 의외로 민감한 문제이다. --- pp.23-28, 「어린시절」 중에서 후진타오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변했다. 하늘과 땅이 바뀐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어린이였을 때 후진타오 꿈은 의사였다. 대포초등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하루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작문을 시켰다. 제목은 ‘나의 꿈’. 후진타오는 이렇게 썼다. “나는 커서 의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중국인이 동아시아환자라는 멍에를 벗겨주고 싶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 글을 보고 후진타오에게 호통을 쳤다. “이미 새 사회(공산당 신중국)가 들어섰는데 어디 무슨 동아시아환자가 있단 말이냐?” 어른도 이런 말 들으면 기분 나쁜데, 후진타오 어린이가 이 말 듣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후진타오는 이 사건 이후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 pp.31-32, 「어린시절」 중에서 후진타오는 1959년 가을 청화대학(靑華大學) 수리학과(水利係)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수리학과는 가장 쉽게 말해 댐 만드는 전공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왜 후진타오는 이 전공을 택했을까? ...(중략)...후진타오의 대학 동기 정수남은 이렇게 말한다. “그 때 우리는 소비에트 전기화(電氣化)를 합쳐서 공산주의로 생각했다. 그런데 전기를 만드는 대표적인 시설이 수력발전소이고, 수력시설에 종사하는 것은 위대한 공산주의사업에 종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리학과는 최고 인기학과였다. 지금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컴퓨터나 금융 관련 전공을 지원하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는 눈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때는 바로 그런 시대였다. 그 때 중화인민공화국은 경제보다 정치가 중요한 시대였고 혁명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 p.36, 「어린시절」 중에서 오늘날 중국정부는 1959~1961년을 ‘3년 자연재해’라 부른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이 3년 동안 중국은 큰 자연재해가 없었다. 이 비극은 인재(人災)였다. 이 비극이 벌어진 원인은 다음과 같다. 대연강철 기간 동안 농민들이 농사를 못 지었다. 이제 자류지도 없기 때문에 노동의욕도 떨어진다. 소출이 급감하고 인민이 굶어 죽는다. 노동력이 감소하는 만큼 소출은 더욱 줄어든다. 더욱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 그런데 간부는 목표량을 초과달성했다고 보고해야 자기가 산다. 그래서 계속 허위보고를 한다. 아무리 허위보고라도 실물과 통계 균형을 어느 정도 맞춰야한다. 게다가 허위보고 하는 만큼 국가에 세금으로 바쳐야하는 공출량이 늘어난다. 따라서 농민들이 먹어야하는 식량까지 모조리 가져가 버린다. 그래서 더욱 많은 농민이 굶어 죽는다. 인민공사를 탈출하는 농민은 군인들이 사살해버린다. 농촌이 황폐화되고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따라서 도시인들 배급량도 줄어들고 더욱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 이 악순환이 계쏙 반복되며 더 큰 악순환을 초래한다. 우리는 이것을 ‘3년 대기근’이라 불러야할 것이다. --- pp.61-62, 「3년 대기근과 수리학과 미남학생」 중에서 1966년 6월 초 청화대학부속중학, 즉 청화대학이 운영하는 고등학교 안에 이런 대자보가 나타났다. “우리는 붉은 정권을 방위하는 위병이다.” 이 대자보에 홍위병(紅衛兵)이라는 서명이 있었다. 홍위병은 청화대학에서 처음 나왔던 것이다....(중략)... 1966년 6월. 청화대학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사실 중국 전역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후진타오는 혁명에 참가하는 반대파가 아닌 기존 학교 당위원회를 지지하는 보황파였다. ...(중략)...그러나 홍위병들이 장남상 총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장남상이 팽진 노선을 따르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청호대학 당위원들도 혼란에 빠졌다. 급기야 장남상 총장이 청화대학 홍위병들 앞에서 자아비판하고 모욕당하고 구타당했다. 후진타오는 이 혼란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반대파들에게 자아비판서도 제출했다. 그래서 다시는 주동적으로 대자보를 붙이지 않았다. --- pp.75-77, 「문화대혁명과 청화대학」 중에서 후진타오는 감숙성에서 14년을 보냈다. 청춘을 서북 변방에서 보낸 것이다. 1968년 늦가을 초 후진타오는 감숙성 영정현 유가협댐으로 왔다. 유가협수력발전소. 높이 147m. 저수용량 58억톤. 연간 발전량 55.8kw, 다목적댐이다. 1958년 대약진운동 때 첫 삽을 떴다. 당시 이것은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 ...(중략)...후진타오가 한 일은 운영인원이 살 아파트를 짓는 일이었다. 명문대학 모범학생이 황량한 시골에서 매일 육체노동을 했다. --- pp.82-83, 「감숙성에서 보낸 나날」 중에서 후진타오는 거의 매일 사무실에서 새벽 한두시까지 일을 보고 귀가했다. 이 시간이면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걸어서 수위실까지 내려가 수위에게 문을 열게 했다. --- p.109, 「공청단 2인자」 중에서 이 비극은 후진타오가 잘못한 것이다. 10년 전 외지 사람들이 돈을 들고 귀주성 필절(畢節)시 단결향 (團結鄕) 깊은 산을 찾아왔다. 그들은 가난한 촌민들을 동원해 그곳에 유황 제련소를 세우자고 제안했다. 이때부터 재앙이 벌어졌다. 재래식 유황 제력번이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가져다줄 줄은 몰랐다. 제련과정에서 나온 유황 기체는 비를 만나 산성비가 된다. 주위 동물?식물, 심지어 토양 속 미생물까지 생존할 수 없었다. 주위 산들이 빠른 속도로 황폐하게 변했다. 숲이 사라지고 풀도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산에 희뿌연 돌과 누렇게 탄 땅 밖에 없었다. --- pp.122-123, 「다시 변방으로: 귀주성 당서기 시절」 중에서 후진타오는 가정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감숙성 건설위원회 사람들은 후진타오가 자기 식구 빨래를 열심히 하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빨래는 모두 후진타오가 했고, 다른 육체노동 후진타오가 다 했다. 심지어 집안 물건이 어디 어디에 있는지 (부인)유영청이 모르는데 후진타오가 다 알고 있었다. 후진타오는 공처가였다...(중략)...1983년, 어렸을 때 벗 하도구(夏道球)가 북경에서 후진타오를 만났을 때 부인 유영청 근황을 묻자 후진타오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마누라가 나보다 한 살 더 많고 예쁘지는 않으니 너가 만날 필요가 있냐? 하지만 이런 마누라가 좋은 거야. 젊고 예쁜 마누라들이 고생을 못참아 문혁 때 많이 이혼했잖아.” --- pp.210-211, 「공처가」 중에서 티베트 사람은 후진타오를 좋게 볼 수가 없는데, (달라이라마 둘째형) 걀로된툽은 오히려 후진타오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후진타오는 그냥 관리가 아니라 진짜 일하는 사람이구나.” 두 사람이 헤어지자 등소평이 또 사람을 보내 걀로된툽에게 후진타오 인상이 어떤지 물어봤다. “후진타오 몇 명만 더 있으면 중국의 문제가 줄어들겠수다.” --- p.220, 「언제나 자신을 갈고 닦는다」 중에서 “어차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인데 불평불만만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니. 너 자신에게도 좋을 것 없어.” 후진타오는 감숙성 공사현장에서 노동했다. 후진타오는 남방 사람이다. 강소성 태주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비슷한 곳이었다. 운하가 많았고, 습지와 습기가 많은 지역이다. 그러나 감숙성은 물이 부족한 황토지대다. 일교차도 크다. 이렇게 황량하고 건조한 곳에서 남방사람이 육체노동하며 사는 것은 분명 고생이다. 그러나 왕신무가 이렇게 증언한다. “그런데 후진타오가 불평불만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쾌활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어요.” --- p.266, 「절대 불만을 나타내지 말라」 중에서 후진타오는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대했다. 이런 실례가 있다. 하루는 후진타오의 비서 친구가 전화했다. 물론 자기 친구인 후진타오의 비서를 찾았다. 그런데 마침 사무실에 후진타오 밖에 없었다. 후진타오가 직접 받았다. 후진타오는 매우 조용한 목소리로 그분은 지금 계시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럼 당신은 누구요?” “저는 진타오라고 합니다.” “저는 진타오입니다.” “잘 들리지 않는데요. 조금 크게 말하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진타오입니다.” 목청이 커졌지만 어투는 변화가 없었다. 그 사람은 그제야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 알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뒤 전화를 끊었다. 후진타오는 이 정도로 겸손했다. --- pp.275-276, 「언제나 겸손하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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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중국의 리더, 70억 세계의 리더 후진타오는 신중국이 만든 최초의 서민지도자이다.
2008년 3월에 벌어진 티베트 사태와 2009년 7월에 벌어진 위구르사태는 결코 중국 내부 문제로 그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은 국제여론의 비판에 대해 “내정간섭하지 말라”며 화를 내지만,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영토도 포기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인들은 그들만의 도미노이론이라는 강박관념이 있다. 한 민족이라도 독립하면 결국 중국 자체가 붕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에서 어떤 지도자가 나와도 바꿀 수 없는 고정관념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전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나라이다. 특히 중국은 한국에게 최대 수출국이고, 중국에게 한국은 제4위 투자국이다. 2007년 한중무역액이 1500억 달러에 달한다. 매주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항공기편도 830차에 달하며, 중국에 장기 거주하는 한국인이 70만 명.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53만 명. 매년 중국을 여행하는 한국인이 500만명. 한국을 여행하는 중국인이 100만 명이다. 이제 한중관계는 전면적인 협력자 관계를 넘어 전략적인 협력자 관계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알아야하고, 후진타오를 알아야한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중국 근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의와 가치는 다음과 같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등의 3세대 이전 지도자들이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건설 과정을 주도했거나 참여했던 인물들인 반면, 이른바 4세대로 일컬어지는 후진타오는 신중국이 만들어낸 첫 번째 지도자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차(茶)를 파는 가게의 아들로 태어난 후진타오는, 혁명가나 정부 고위관료 집안 출신이 아닌 평범한 가정의 자녀가 차근차근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올라오면서 결국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그동안 중국 권력 교체기에는 적지 않은 파란이 있었는데, 후진타오는 중국정치사에서 평화적으로 권력이 이양된 첫 케이스라고 평가받는다. 마지막으로 후진타오는 과학발전과과 조화사회론을 내세움으로써 차별적인 발전론인 ‘선부론’을 탈피해, 평등(균형발전)을 강조한 ‘조화사회’를 주창함으로써 중국식 사회주의의 연착륙을 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후진타오에 주목해야하는가? 박근형 박사(사학박사 / 티베트학)가 쓴 『13억 중국의 리더 70억 세계의 리더 후진타오의 성공비밀 10가지』(해피스토리)는 후진타오의 근현대사적 가치와 의의뿐만 아니라, 민주적이지 못한 사회와 체제 속에서 최고 지도자로 우뚝 선 성공비밀 10가지를 파헤친다. 책에는 초등학교 시절, 의사가 되고 싶었던 어린이 후진타오가 이과계열 수리학과 대학에 들어가고, 한 살 연상의 유영청과의 결혼, 부침이 있는 정치 행보를 걷게 되는 그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정이 민주적인가? 학교가 민주적인가? 회사가 민주적인가? 저자는 이른바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은 민주적인 체제에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지시와 명령, 억압과 권위가 작동하는 민주적이지 못한 사회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 지금의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를 살펴보며 배울 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진타오라는 인물을 살펴보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세상만물은 모두 관계가 있고, 이 사람이 성공한 비결만 살펴보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던져주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먼저 왜 우리가 후진타오를 주목해야 하는가를 서술한 뒤, 후진타오가 걸어온 인생역정을 소개한다. 그러나 단순한 소개가 아니다. 스피드한 문체로 중국현대사와 티베트역사까지 매우 쉽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보통 글 솜씨가 아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책에서 손을 떼기가 힘들다. 우리는 그 안에서 후진타오가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저자는 후진타오가 성공한 비밀 10가지를 정리했다. 1. 공처가 2. 언제나 자신을 갈고 닦는다. 3. 절망에서 희망이 보인다. 4. 언행을 조심하라 5. 흐름을 거스르지 마라. 6. 탁상공론은 금물, 행동으로 말하라. 7. 남을 욕하지 말라. 8. 절대 불만을 나타내지 말라. 9. 언제나 겸손하라. 10.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한다. 저자는 후진타오의 성공비결을 한마디로 ‘겸손의 미학’으로 압축했다. 저자는 독자에게 계속 생각의 힘을 불어 넣어준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독자 스스로 깊은 감동과 사색의 여지를 안겨준다. 이것도 재미없는 학술적인 서술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간다. 저자는 후진타오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성공할 수 있는 철칙을 제시했다. “절대 남을 욕하지 말고, 언제나 겸손해야 하며, 묵묵히 갈고 닦으면서 자기 길을 걸어가라. 그러면 결국 다 풀린다.” 이미 후진타오를 논한 책은 여러 권 나왔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매우 소중하다. 지금까지 한국에 나온 후진타오 책은 모두 중국사람이 쓴 평전이었다. 그것도 찬양 위주였고, 후진타오 비판이 거의 없었다. 『13억 중국의 리더 70억 세계의 리더 후진타오의 성공비밀 10가지』는 한국 사람이 쓴 최초의 후진타오 인물을 분석한 책이다. 참고문헌만 살펴봐도 이 저자의 도력이 대단하다. 한국 사람이 썼기 때문에 후진타오 비판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기존 중국인이 쓴 후진타오 관련 저술과 다른 논쟁거리는 6가지가 있다. 첫째, 후진타오 고향이 안휘성인지, 강소성 태주인지, 아니면 상해인지, 이에 대한 논쟁을 최종적으로 정리했다. 둘째, 후진타오가 초중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 했고, 다른 학생들을 잘 이끌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후진타오가 대학교에서 배불리 먹지 못하며 힘들게 공부했다는 기존 주장은 부정한다. 당시 중국 현실을 살펴보면, 오히려 대학생들이 호강했다는 것이다. 셋째, 중국인들이 서술한 기존 저작은 후진타오가 1980년대 중반 귀주성 서기로 재직하며 인민을 위해 열심히 봉사한 것 위주로 서술했다. 그러나 이 책 저자는 후진타오가 귀주성에서 재직하며 과실도 범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넷째, 특히 이 책에서 기존 저작과 가장 다른 점이 티베트 이야기다. 기존 저작은 후진타오가 티베트자치구 서기로 재직 시 벌어진 사건과 활동에 대해 찬양과 변호로 일관했다. 이 책의 저자는 티베트학 박사답게 우리에게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후진타오가 1989년 3월 티베트민중봉기를 유혈진압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왜 이 사건이 벌어졌는가에 대해 일반 한국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흥미진진하고 친절한 설명을 풀어놓는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크다. 다섯째, 공산당의 본질과 실제 체제운영도 잘 서술했으며, 법륜공(파룬궁)에 대한 저자의 지적도 날카롭다. 핵심을 잘 설명했다. 여섯째, 저자는 후진타오를 무조건 찬양하거나 무조건 비판하지 않는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좋은 점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후진타오로부터 배울 수 있는 10가지를 서술했다. 이 10가지도 도덕책에 나오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우리 인생에서 깊이 명심해야 하는 신조다. 저자는 제1부에서는 중국현대사와 티베트역사를 정리하며 후진타오를 검토했다. 그리고 제2부에 우리가 후진타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을 정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