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보는 것’과 ‘읽는 것’ 그 사이에서
서문: 정도련 사동 30번지: 사동 30번지 / 잔상 / 접힐 수 있는 것들의 체조 어떤 만남: 주은지 창고 피스: 포장 전 / 창고 피스 / 창고 피스 풀기 / 인터뷰 양혜규- 라이마르 슈탕게 / 인터뷰 악셀 하우브록- 라이마르 슈탕게 양혜규의 「블라인드 룸」을 위한 시론: 맥스 앤드류스 서사와 자기 참조: 욕실 묵상 / 오프닝 연설- 어떤 현행적인 자기 성찰 / 창고 피스에 부치는 연설 / 스피커스 코너 / 삼부작: 펼쳐지는 장소, 주저하는 용기, 남용된 내거티브 공간 / 휴일 이야기 / 오프닝 연설 - 셋을 위한 그림자 없는 목소리 / 쌍과 반쪽 - 이름 없는 이웃들과의 사건들 상실의 회복: 개념미술 윤리학 내부의 ‘뒤라스적’ 조건: 바르트 판 데어 하이데 추상: 투과된 서사: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위트레흐트편 /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블라인드 룸 /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블라인드 테이블 / 조우의 산맥 / 치명적인 사랑 / 삼인자 / 남매와 쌍둥이: 적색의 파열된 미로 산맥, 생 브누아 가 5번지 / 쌍과 짝 / 비대칭적 평등: 열망 멜랑콜리 적색, 히피 디피 옥스나드 / 대칭적 비평등: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셋을 위한 그림자 없는 목소리 광원光源과 전류: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쾰른편 /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바젤7광 / 베오그라드 임시 광 /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얕은, 텅 빈 그림자 /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개인적 한계에 대한 고민 무엇이든- 존재: 억제와 방심 - 자아에 몰두하는 또 다른 방법 / 동떨어진 방 / 숲 속의 여시 (거울 연작) / 암흑 별실 - 브레멘편 /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 / 사라진 공깃돌을 찾아서 -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 양혜규를 위한 소사전: 정도련 열망과 결핍 사이: 최빛나 글쓴이 전시 목록 발간물 목록 찾아보기 |
양혜규의 다른 상품
Max Andrews
맥스 앤드류스의 다른 상품
주은지의 다른 상품
정도련의 다른 상품
최빛나의 다른 상품
|
『사동 30번지』는 한국에서 열린 양혜규의 첫 ‘개인전’이다. 『사동 30번지』는 도시도 아니고 유원지도 아닌 인천의 변두리 사동의 폐가에서 열렸다. 즉 그곳은 미술관도 아니고 화랑도 아니다. 주로 비상업적인 미술기관을 무대로 활동해온 작가가 이 같은 형태의 전시를 스스로 기획한 이유는 재정적·물리적 의존성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작가 자신의 복합적인 미술적 언어를 드러내고자 하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배적인 미술제도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전시/작업 형태의 방법론을 제시해보고자 한 것이었다. --- p.16
2003년 영국 런던에 있는 델피나 스튜디오 트러스트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초대받아 런던에 거주하던 작가는 2004년 로렌스 오헤이나 화랑으로부터 개인전 제의를 받는다. 하지만 작업을 생산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것은 물론, 심지어 여러 화랑과 미술관에서 전시가 끝난 후 작업을 수거해 가기를 요청하는 연락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저장할 공간이 없어 고심하게 된다. 전시할 공간은 있지만 작업을 저장할 공간이 없는 모순적인 상황은 일종의 위기와 기회의 충돌을 자아냈다.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이相異한 욕구와 결핍은 두 환경을 중첩시키는 「창고 피스」의 아이디어로 작가를 이끌었다. 작가의 개념적인 제안을 화랑 측에서 의외로 적극 받아들이면서, 이제까지 창고가 없어 반환되지 못한 모든 작업이 서로 다른 장소로부터 런던으로 불러들여졌다. 폐기 처분될 위기에서 구출된 작업들은 오헤이나 화랑에 전시되면서 해결 아닌 일시적 해소를 도모한다. 포장을 벗기지 않은 채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목재 팔레트에 쌓인 상당수의 작업들은 상업적인 가치를 함의한 화랑 공간의 극히 일부분만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비워두면서 공간을 남용한다. 동시에 포장된 채로 전시된 작업들은 그 모양과 내용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고 미술작품이라는 주장만으로 지탱된 일종의 잠재태를 구성한다. 「창고 피스」가 태어나는 데 결정적인 필요조건이었던 장소의 결핍은, 대형 전시와 유명 미술관을 전전하며 역설적인 형태로 전환되어 전시-운송-저장이라는 미술작업의 생태학을 자신의 탄생과 존재 자체로 피력했다. --- p.49 여기에는 자신을 타지로부터 고향home 안으로 위치 변경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국외자 혹은 이방인으로 영원히 남을 수는 없다. 하지만 타지를 고향으로 만들거나 이방인인 자신을 내부인으로 만들어버리거나 불순한 생각을 단순히 길들여버렸을 때 생성되는 외로움과 고립 그리고 고통을 아무런 해석과 소화 없이 버려둘 수는 없다. 어떻게 고향의 현존/부재와 당면해야 할 것인가? 마찬가지로 타지no-home의 현존/부재와 어떻게 당면해야 할 것인가? --- pp.111-112 왜 많은 관계들이 비대칭적인 구조 안에서 자라나는가? 예를 들어 세계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세계를 잃어가고 있는 것인가. 같은 적막이지만 사연이 있는 ‘다치기 쉬운’ 적막이 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어떤 노래든지 그것이 심금을 울릴 때 우리는 그 노래가 끝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품는다. 노래가 끝나는 것이 두려워 차마 노래를 듣지 못하는 상태, 이것은 침묵이지만 다른 종류의 침묵이다. 나는 바로 이 잠재적인 소리가 포함된 ‘다치기 쉬운’ 상태를 구한다. --- p.114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바젤7광七光」은 스위스 아트 바젤의 스테이트먼트 부문에 초청되어 발로아즈 미술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광원 조각이라는 형태에 작가가 주목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다. 일곱 점의 광원 조각은 단 하나의 전원에 연결되어 있다. 이후 광원 조각의 원리가 될 전기의 보이지 않는 흐름은 엄연한 관계, 연결, 이심전심 등의 개념에 관한 작가적 관심을 심화시킨다. 이는 작가 양혜규가 2009년에 응결凝結이라고 표현한 소통의 방법론과 흡사하게 무조건적blind이며 비직접적silent이다. 「바젤7광」에서 작가는 자전적으로 관찰한 자신의 서로 다른 감정과 정신 상태를 각 광원 조각의 ‘개성’으로 풀어낸다. 광원 조각은 작가에게 즉흥적이고 유쾌한 작업 방식을 제공하고 있다. 링겔대라는 공산품을 기본적인 뼈대로 하여 다양한 전구(형광등, 적외선 전구, 색전구, 가변 조도 전구), 다양한 색과 굵기, 소재로 된 전선 등의 기술적 재료를 이용하는 방법론이 「바젤7광」에서 확연해진다. --- p.181 비디오 삼부작(2004~2006)에서부터 장소특정적 설치작 「사동 30번지」(2006)와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블라인드 룸」(2006)에 이르는 작가의 최근작들에서 종류가 다양한 광원光源들이 의미심장한 역할을 맡고 있다. 빛은 양혜규의 작업 안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의 역설적인 성질을 체화體化한다. 빛은 끈질기게 이름도 없고 성격도 없슴 상태로 남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장 시적인 잠재력을 발휘하게 된다. 작가의 비디오 삼부작은 가로등, 길 위의 웅덩이에 반사되는 빛, 나뭇잎에 반사되는 햇빛 등과 같이 빛의 다양한 현시顯示를 특징으로 한 여러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미지들 그 자체는 대단히 다양한 환경과 출처에서 끌어온 것들이지만 그것을 포착한 시점이나 장소를 말해주는 아무런 표시가 없기에 그저 빛에 불과하다. 작가는 빛과 그림자에 대한 흥미를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설명한다. “빛과 그림자는 그 나름으로 존재할 뿐, 다른 어떤 것을 대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광원light source을 구현하거나 포착하지 않지만 「A4/A3/A2 무엇이든-존재」(2007)는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 간단히 채색된 일련의 백색 부조 목재 오브제 그룹이 전시장 흰 벽에 걸려 오로지 화랑의 빛을 오브제 자체의 각도에 걸쳐 음영을 만들고, 비로소 가시적이 되며, 말하자면 존재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오브제들은 “규격화된 크기와 규격화된 대상들에 삶을 부여하는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지만 어떤 것도 아닌 주권성sovereignty”을 형성하게 된다. --- p.237 |
|
‘신新노마드’ 혹은 ‘홈리스’ 예술가 양혜규에 관한 국내 최초의 본격 소개서
현실문화연구와 사무소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설치미술가 양혜규의 모노그래프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양혜규?를 발간했다. 양혜규는 지난 15년 동안 여러 나라의 국경을 가로지르며 활동해오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006년에 인천 사동의 한 폐가에서 가졌던 개인전 『사동 30번지』로 알려지기 시작하다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작가로 참가하게 되면서 비로소 폭넓게 알려졌다. 그동안 양혜규의 국제적 지명도에 어울리는 많은 도록이 해외에서 출간되었지만, 국내에서는 『사동 30번지』에 관한 얇은 도록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한 실정이어서, 이에 양혜규 작업의 전모를 알려줄 만한 책자의 필요성을 절감한 현실문화연구와 사무소가 공동 기획 및 출판을 하게 되었다. 오르한 파묵의 상찬 “나는 이 가장 오래되고 명망 높은 근현대 미술의 중심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내가 현재 기획하고 있는 이스탄불의 미술관(순수의 미술관)에 도움이 되는 어떤 종류의 기술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예를 들어 내가 베니스 한국관에서 보았던, 아니 경험했던 양혜규의 향 설치작품 같은 것이 그것이다. 회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이슬람 국가에서 미술이란 단지 시각만을 만족시키기보다는 모든 감각에 호소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이 여기서 확인된다.” ―오르한 파묵, 『쥐트도이체 차이퉁』 2009년 7월 6일 ‘신新노마드’ 혹은 ‘홈리스’ 예술가 양혜규에 관한 국내 최초의 본격 소개서 현실문화연구와 사무소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설치미술가 양혜규의 모노그래프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양혜규』를 발간했다. 양혜규는 지난 15년 동안 여러 나라의 국경을 가로지르며 활동해오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006년에 인천 사동의 한 폐가에서 가졌던 개인전 『사동 30번지』로 알려지기 시작하다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작가로 참가하게 되면서 비로소 폭넓게 알려졌다. 그동안 양혜규의 국제적 지명도에 어울리는 많은 도록이 해외에서 출간되었지만, 국내에서는 『사동 30번지』에 관한 얇은 도록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한 실정이어서, 이에 양혜규 작업의 전모를 알려줄 만한 책자의 필요성을 절감한 현실문화연구와 사무소가 공동 기획 및 출판을 하게 되었다. 독일에 거처를 두면서도 전시 활동을 위해 한 해의 대부분을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는 양혜규는 ‘신 노마드’ 혹은 ‘홈리스’로 불릴 만큼 이방인으로서의 삶, 국외자로서의 삶을 살아왔으며, 이는 작품에도 중요한 모티프 혹은 주제가 되고 있다. 심지어 독일의 저명한 컬렉터의 소장품이 된 그녀의 작품 「창고 피스」조차도 작가의 손을 떠나 작품 자체가 전시가 되어 이 도시 저 도시를 넘나들고 있다. 어느 곳에도 정주하지 못하는 혹은 뿌리 내리지 못하는 작가의 삶의 방식은 제목의 ‘멜랑콜리’가 암시하듯, 이방인으로서의 경험과 소외, 결핍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데서 비롯된 개인적 정서이자 새로운 연대와 소통을 위한 언어 혹은 정치학이다. ‘보는 것’과 ‘읽는 것’ 사이에서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양혜규』는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는 도록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일반적인 단행본의 형식과도 궤를 달리한다. 도록과 단행본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이 책은 반성적이고 성찰적인 소통의 경험을 강조하는 그녀의 작업과 유사하다. 실제로 양혜규의 작업에서는 이미지보다 다른 요소들이 훨씬 중요하다. 그녀의 작업에서 소리, 바람, 냄새, 열, 습기, 빛 등은 이미지가 제공할 수 없는, 오감에 호소하는 공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양혜규의 작업이 결코 이미지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소설가 오르한 파묵이 그녀의 작품을 보고 상찬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공감각적 요소 외에도 양혜규의 작업에서는 언어 역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전시회에서 그녀는 연설을 행하며(주로 보이스오버를 통해), 또한 「욕실 묵상」과 같은 작품에서처럼 텍스트 자체가 작품인 경우도 있다. 또한 그녀는 작품의 보이지 않는 컨텍스트로서 문학(예를 들어 마르그리트 뒤라스)이나 정치철학(한나 아렌트)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 발간된 양혜규의 책들에서는 그녀의 작업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간과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텍스트를 통해 독자들과의 소통의 폭이 새롭게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그녀가 생산한 텍스트에는 국외자로서 어떻게 낯선 관객에게 말 걸기를 해야 할 것인지, 아시아에 위치한 작은 국가의 유색인 여성으로궼 혹은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를 비롯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한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문학가 못지않은 그녀의 유려한 텍스트는 눈에만 호소하는 관객이 아닌, 귀 담아 듣고 성찰하는 독자를 상정하고 있다.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양혜규?는 ‘보는 것’과 ‘읽는 것’ 사이를 오가며 소통 방식을 모색해온 양혜규의 작업에 대한 재발견이자 반향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 감정 혹은 멜랑콜리에서 근대성에 대한 저항과 혁명까지 양혜규의 작업에는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 종사자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넓은 진폭이 있다. 도시에서 살아본 사람이거나 혹은 다른 나라의 낯선 곳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느껴보았을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의식에서부터 근대성과 ‘혁명’, ‘정치적인 것’에 이르는 거대 담론의 주제에 이르기까지 매우 섬세하면서도 정치하게 서로를 관통하고 있다. 현대 고급문화의 변방, 그것도 작은 나라에서 온 여성 작가가 문화 권력의 중심지인 유럽과 미국에서 부딪쳐야 했을 문제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강력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정체성을 둘러싼 치열한 경합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기존 체제를 작동시키는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비서구인으로서, 여성으로서, 홈리스로서, 양혜규는 그 속에서 끈질기게 균열을 내고 쉼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발화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은 매우 중층적이다. 오감에 강렬하게 호소하는 감성이 전면에 드러나지만 그 뒤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컨텍스트는 매우 개념적이고 정치적이다. 또한 매 작품마다 개인적 경험이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지만, 그것들은 일종의 마수걸이로서 사회, 경제, 정치적인 맥락을 끌어들인다. 양혜규가 지난 15년간 해온 작업을 비교적 고르게 담고 있는 모노그래프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양혜규?는 그녀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넓은 진폭을 반향하면서 오늘날 예술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끈질기고 치열하며 호소력 있게 발언하는지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