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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과학사
교양으로 읽는
김성근
안티쿠스 200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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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top100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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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장 최초의 과학자들, 자연과 만나다
1. 최초의 과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역학
3. 알렉산더의 동방원정과 헬레니즘시대의 수학자들
4. 아르키메데스와 집광경

제2장 요람 속의 과학
5.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6. 서양 최초의 과학 백과사전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7. 천체의 현상을 해석하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제3장 과학과 종교, 불편한 관계가 되다
8. 기독교 신학자들, 중세 과학과의 타협점을 찾다
9. 그리스 과학,이슬람으로 전승되다
10. 12세기 중세 과학의 르네상스

제4장 과학, 종교를 넘어 자연과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탐험
11. 코페르니쿠스 혁명
12. 지브랄트를 넘어 미지의 세계로
13. 인체의 재발견,베살리우스와 시체의 해부
14. 원격작용과 마술적 자연관
15. 혈액순환과 윌리엄 하비

제5장 과학 혁명이 시작되다
16. 혁명을 일으키다, 갈릴레이와 튀코 브라헤 천문학
17. 자연은 신이 창조한 정밀한 기계장치이다
18. 한 고독한 천재와 사과나무
19. 과학도구의 출현으로 과학혁명이 힘을 얻다
20. 근대과학자들의 패트론

제6장 후발 주자들도 가세하다
21. 화학의 탄생, 연금술과의 결별
22. 단두대로 사라진 비극의 화학자 라부아지에
23. 전기와 자기장의 탄생
24. 과학학회의 설립과 과학의 제도화
25. 거리로 나선 과학자들, 과학을 찾아나선 대중

제7장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 현대과학
26. 진화론과 인간의 기원
27. 동아시아를 삼킨 서양근대과학
28. 현대물리학과 불확정성의 원리
29.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과학자들의 전쟁참여
30. 자연을 지배하려는 시도, 유전자 과학

저자 소개 1

어릴 적부터 별 보기와 만들기를 좋아했다. 스무 살 무렵, 신과 과학적 진리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과학이 다른 학문과 무관한 지식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결국 과학사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 흥미로운 과학도구들을 직접 만들고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동서양 과학 사상의 만남, 국제 병기 무역 등에 관심을 가져왔고, 최근에는 우리 과학 용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연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남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교 센탄과학기술연구센터와 일본 학술진흥회에서 연구원을 지냈고, 도쿄 오오츠마여자대학교에서 강
어릴 적부터 별 보기와 만들기를 좋아했다. 스무 살 무렵, 신과 과학적 진리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과학이 다른 학문과 무관한 지식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결국 과학사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 흥미로운 과학도구들을 직접 만들고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동서양 과학 사상의 만남, 국제 병기 무역 등에 관심을 가져왔고, 최근에는 우리 과학 용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연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남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교 센탄과학기술연구센터와 일본 학술진흥회에서 연구원을 지냈고, 도쿄 오오츠마여자대학교에서 강의했다.

이후 영국 니덤연구소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과학기술사연구실에서 동서양 과학을 비교 연구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공은 과학사다. 『사회 속의 과학』,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등을 번역했고, 근대화 시기 동서양 과학의 교류에 관한 수십 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다. 첫 책 『교양으로 읽는 서양과학사』를 시작으로 『문학과 과학Ⅰ: 자연·문명·전쟁』(공저), 『조선 근대 과학기술사 연구』(일본 출간, 공저) 등을 내놓으면서 과학에 따뜻한 생명을 불어넣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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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544g | 153*224*20mm
ISBN13
9788992801119

책 속으로

#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것은 과학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일화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 그 사과나무의 일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학사 연구자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무튼 그가 질량을 가진 두 물체간에 끌어당기는 힘을 수학적인 법칙으로 이끌어 낸 것은 천체의 운동에 관한 17세기 자연 철학자들의 혼란을 정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뉴턴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 그 질문을 우리가 고대 그리스 최대의 자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던진다면, 과연 어떤 답이 돌아올까? 그는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사과를 이루는 흙과 물의 성분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물체의 낙하 운동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지구상의 어디에서든지 재현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나 정작 과학의 역사에서 그것은 해석의 대전환을 경험한 최고의 사례로 손꼽힌다. 오늘날 중력의 법칙에 의해 이해될 수 있는 낙하 현상은 불과 4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다른 과학의 패러다임 속에서 해석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 플라톤과 마찬가지고 4원소인 물ㆍ흙ㆍ불ㆍ공기가 섞인 비율에 따라 서로 다른 물질이 생긴다고 보았다. 엠페도클레스에 의해 최초로 제기된 이 4가지 원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모든 정지한 물질들은 그들 본연의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고, 본연의 장소를 이탈했을 때는 즉시 그곳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생각했다. 즉, 물 위로 떨어진 돌멩이는 물 밑으로 가라앉고, 공기방울은 물 위로 떠오르며 불은 공기 위로 타오른다. 이때 돌멩이가 물 밑으로 가라앉는 것은 그 본연의 장소가 다름 아닌 지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흙과 물은 항상 지구 중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불과 공기가 위로 향하는 것은 그들의 고향이 달의 천구(天球)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도 그 사과를 구성하는 주 성분인 흙과 물이 밑으로 떨어지는 본성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이처럼 물체가 그 주어진 본성을 따라 움직이는 현상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 초기의 기전기는 과학자들의 실험 도구라기보다 오히려 대중의 문화적 관심을 파고들었다. 비텐베르크의 자연 철학 교수였던 보세(Georg Mathias Bose, 1710~1761)는 혹스비의 기전기를 개량하여 일명 '전기 키스'라는 재미있는 실험을 선보였다. 무대 위에서는 한 남자가 기전기를 회전시켜 정전기를 만들어 내고, 그 옆에는 한 매력적인 여자가 청중 사이에서 선택한 한 신사에게 환영의 키스를 보낸다. 하지만 그녀의 키스는 매우 자극적인 것이었다. 기전기에서 흘러나온 전류가 그녀의 몸을 통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녀와 키스를 나눈 신사의 입술에는 강한 감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이 실험이 지극히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운 연극의 일종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전기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에 부합했다. 당시 대중의 흥미로운 인기 상품이었던 기전기는 유럽 각지는 물론 에도 시대의 일본에도 도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네덜란드어 Elektriciteit(전기, 전류)에서 파생된 일본어 '에레키테르'는 정전기의 발생 장치로서 마찰을 이용한 기전기의 일종이었다. 1751년에 한 네덜란드인이 도쿠가와 막부에 '에레키테르'를 헌상했고, 에도 시대의 박물학자 히라가 겐나이(平賀源?, 1728~1780)는 네덜란드와의 무역이 활발하던 나가사키에서 고장난 '에레키테르'를 입수하여, 1776년에 그것을 모방 제작했다. 그가 만든 '에레키테르'는 나무통의 손잡이를 돌리면 내부에서 유리가 마찰되어 전기가 발생하고, 그것이 동선을 통해 방전되는 구조였다. 방전되는 동선을 손으로 잡고, 그 자극에 놀라거나 즐거워하는 모습은 천리경과 마찬가지로 '에레키테르'가 서양의 새로운 놀이도구로 일본에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참호전을 타개할 목적으로 독일군이 계획한 것이 독가스의 개발이었다.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868~1934)가 독가스의 개발을 주도했다. 하버는 원래 유대인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자발적으로 독일군에 가담하여 나치에 충성한 인물로 알려진다. 독일군의 의도대로 그가 맨 먼저 개발한 독가스는 염소가스였다. 염소가스는 보통 수질 정화나 청소에 사용되는 것으로, 사람이 마시게 되면 기관지와 폐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고 곧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가스였다. 하지만 염소가스는 비교적 보관이 용이하고 운반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공기보다 무거워 참호 안으로 스며드는 특성이 있었다. 용기에 담긴 채 전선에 배치된 액화 염소가스는 적진으로 바람이 불 때, 적의 참호 쪽으로 살포되었다. 독가스의 살포가 독일군 측에 큰 승리를 안겨 주자 하버는 단숨에 독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성공에 고무된 하버는 더욱 효과적인 독가스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연합군 측은 독가스 살포를 비인도적인 행위로 맹비난했다. 하버 또한 독가스가 얼마나 비인도적인 무기인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임무는 그 가스를 제조하는 것일 뿐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독일 정부의 선택이라고 강변했다고 한다. 남편의 독가스 개발을 강력히 만류했던 클라라 하버는 자살하고 말았지만, 하버는 여전히 독가스의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독일군의 독가스 살포를 비난했던 연합군 측은 자신들도 독가스를 사용할 구실을 얻었다고 판단하고, 즉시 그 제조에 착수했다. 염소가스에 대항하여 영국군이 사용한 가스는 포스겐 가스였다. 강한 자극성을 지닌 포스겐 가스는 호흡을 통해 폐로 들어가면 폐수종을 일으켜 질식사하게 되는 가스였다. 그 밖에도 염화 피크린이나 겨자가스도 전선에 투입되었다. 독가스가 전쟁에 이용됨으로써 양측은 호흡기로부터 독가스를 보호하기 위해 방독면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 이후 연합군 측에 의해 전범으로 지목된 하버는 스위스로 피신했다. 그러나 1918년의 노벨 화학상은 하버에게 돌아갔다. 수상 이유는 암모니아 합성에 대한 공헌 때문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유럽의 인구는 당시 급격한 식량 문제를 초래했다.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원소는 질소인데, 이것이 식물을 자라게 하면서 점차 고갈되었다. 따라서 새로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땅에 질소를 포함한 초석 같은 비료를 반드시 공급해 주어야 했다. 하버는 철을 촉매로 하여 공기 중의 질소와 수소로부터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질소 비료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그가 독일군의 독가스 개발을 주도한 책임자였던 점을 생각하면 그의 노벨상 수상은 많은 논란을 남길만한 것이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고대의 그리스인들은 자연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독특한 지식의 체계를 구성했다. 천문학, 수학, 역학 등 그리스 학문의 중심부를 이룬 과학은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에 힘입어 헬레니즘 과학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리스의 과학은 로마시대 이후 세력을 확장한 기독교와 결합하며, 독특한 스콜라 철학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동로마로 이어진 그리스 과학의 정수는 중세의 이슬람권으로 전파되었고,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그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12세기 이후에는 아랍어로 번역되었던 그리스 과학의 고전들이 서구 유럽사회로 재유입 되었고, 그 영향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에서는 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는 근대 과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특히, '과학혁명'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7세기는 갈릴레오, 케플러, 데카르트, 로버트 후크, 하비 등과 같은 독창적인 과학자들이 활약한 시대였다. 그들은 그리스인들이 남긴 과학적 사유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한편, 과학도구의 발달에 힘입어 실험 과학을 구축함으로써, 근대과학의 성장을 견인했다. 그러나 근대과학의 완성자로 불리어지는 뉴튼이 합리적 사고의 이면에, '만류인력'과 같은 마술적 자연관의 잔재를 물려받았던 것처럼, 근대의 과학은 비과학의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갖지 못한 채, 여전히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18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와 결합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한 과학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국가에 의한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된다. 과학과 내셔날리즘의 결합은 20세기에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인류에게 치명적인 상흔을 남겼고 유전자 과학은 인류에게 또 다른 과학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과학의 질주가 인류에게 파라다이스를 열어줄 것인지 자연과 인간의 파멸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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