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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제1부 계절의 향기 따라 장 _ 한국 밥상의 기본 육회 _ 한민족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 미나리강회 _ 봄을 먹는 맛 청포묵 _ 봄날의 밤참 복달임 음식 _ 옛사람들의 여름 나기 냉면 _ 평안도 국수의 서울 정착기 콩국수 _ 여름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은어 _ 맑은 강가에서 건지다 물회 _ 뱃사람의 음식 빙과 _ 시원한 설렘 수제비 _ 간단하고 단순한 것의 힘 깍두기 _ 감칠맛 짠맛 매운맛 단맛 냉국수 _ 더위로 입맛 없는 날에는 추어탕 _ 가을의 대표 보양식 전어 _ 가을이라는 단어를 머금다 송편 _ 송편이 사시사철 먹던 떡이었다고? 꼬막 _ 찬바람 섞인 남도의 맛 해장국 _ 술을 깨기 위한 해장술의 안주 떡만둣국 _ 설날에 꼭 먹어야 하는 한 그릇 메주 _ 겨울을 견디기 위한 생존 의례 홍어 _ 푹 삭혀 먹는 맛 막걸리 _ 서민들의 노동주 명태 _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생선 수정과 _ 대표적인 정초 음식 과메기 _ 청어에서 꽁치로 제2부 날마다 기분 따라 설렁탕과 곰탕 _ 설렁탕과 곰탕 출생의 비밀 감자탕 _ 싼값에 고기도 먹고 배도 불리는 돼지국밥 _ 육신과 영혼의 허기를 채우다 북엇국 _ 고단한 노동의 새벽을 깨우다 부대찌개 _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가공육의 변신 짜장면 _ 검은 마성의 음식 소갈비 _ 찜과 탕에서 구이로의 변화 삼겹살 _ 대한민국 국민 고기 치킨 _ 맥주의 영원한 짝꿍 참게장 _ 니들이 게 맛을 알아? 비빔밥 _ 다양성의 힘 상추쌈 _ 신록의 미각 고추장 _ 단맛과 매운맛의 조화 참기름 _ 고소한 맛의 근간 장아찌 _ 한국 밥반찬의 보물창고 젓갈 _ 밥상의 감초 같은 존재 콩나물 _ 서민 밥상의 친근한 벗 당면 _ 중국에서 온 가장 한국적인 식재료 쥐포 _ 버림받던 생선의 화려한 변신 추천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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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라는 글자가 처음 등장하는 《주례》에는 “장에는 해(?)나 혜(醯)가 있는데, 해는 새고기, 짐승고기, 물고기 할 것 없이 어떤 고기라도 이것을 햇빛에 말려 고운 가루로 하여 술을 담그고, 여기에 조(粟)로 만든 누룩과 소금을 넣고 잘 섞어 항아리에 넣고 밀폐하여 100일간 어두운 곳에서 숙성시켜 얻은 것이며, 혜는 재료가 해와 같으나 청매즙(靑梅汁)을 넣어서 신맛이 나게 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장은 육장(肉醬), 즉 젓갈이다. 젓갈과 장은 뿌리가 같다. 한국인들은 장이라 하면 된장, 간장, 고추장 같이 콩으로 만든 장을 떠올리지만, 동남아시아는 생선을 발효시킨 어장(魚醬)을 오래전부터 먹었다.
― 10쪽, 장 _ 한국 밥상의 기본에서 최근 많은 매체에서 “원래 삼계탕은 계삼탕이었다가 1980년대 이후 삼계탕으로 바뀌었다”라고 하지만, 여러 기록을 보면 이런 주장은 별로 신뢰할 수 없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삼계탕과 관련된 기록에는 ‘삼계’라는 단어가 월등히 많다. 삼계탕이라는 말이 신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초반이지만, 빈도수가 많아진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대한민국에 본격적인 육식 문화가 시작되는 때와 삼계탕의 대중화가 괘를 같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삼탕이라는 말도 거의 같은 시기에 언론 노출 빈도수가 많아지지만 1980년대 이후 삼계탕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 33쪽, 복달임 음식 _ 옛사람들의 여름 나기에서 일본에서는 전어구이를 거의 먹지 않는다. 전어의 일본말인 ‘고노시로(このしろ)’는 직역하면 ‘아이를 대신한다’는 뜻이다. 영주가 자신의 딸을 데려가려하자 전어를 관 속에 넣어 태운 뒤 딸이 죽었다고 속인 어부의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인은 전어 굽는 냄새를 시체 타는 냄새로 연상할 정도로 전어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재료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이처럼 상반된 결과를 낳은 것이다. ― 95쪽, 전어 _ 가을이라는 단어를 머금다에서 기록상으로 보면 메주건 청국장이건 중국의 콩으로 만든 장이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사실만은 개연성이 매우 높다. 한국에서 장이라는 글자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 신문왕 3년(683년)의 기록인데 장과 시가 동시에 나온다. 북송의 손목(孫穆)이 고려 숙종 8년(1103년)에 개성을 다녀간 뒤 쓴 《계림유사》에는 장을 ‘密組’로 부른다고 적고 있다. 당시의 중국 음으로 읽으면 이는 ‘며조’가 된다. 일본 된장 미소는 《왜명유취초(倭名類聚?)》1934년경에 고려장 미소(未醬)에서 온 것임을 밝히고 있어 일본 된장이 한반도에서 넘어온 음식 문화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 123쪽, 메주 _ 겨울을 견디기 위한 생존 의례에서 미군부대를 들락거리던 한국인들은 그곳에서 구한 가공육을 한국식으로 먹고 싶어 했다. 제일시장 주변에서 ‘오뎅’을 팔던 허기숙 씨에게 소시지나 햄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요리를 부탁했다. 부대 고기를 김치나 고추장 같은 한국식 재료와 볶아서 선보인 부대볶음은 인기가 많았다. 얼마 후 부대찌개도 만들어졌다. 1968년 지금의 자리에 ‘오뎅식당’이라는 이름을 달고 정식으로 가게를 시작했다. 부대에서 나온 고기는 넘쳐났지만 그걸 사용하는 건 불법이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오뎅식당이라는 이름이 편법으로 사용되었다. ― 182쪽, 부대찌개 _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가공육의 변신에서 한국인에게 고기는 소를 의미했다. 다른 짐승의 고기에만 돼지고기, 닭고기처럼 이름을 붙였다. 중국에서는 고기가 돼지고기를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 막 잡아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전의 엉덩이살, 다리살은 생고기로 먹거나 야채 또는 과일과 섞어 육회로 먹었다. 안심 같은 부드러운 부위를 제외하면 마블링이 없는 살은 질겼다. 귀하고 질긴 고기를 먹기 위해 사람들은 대개 탕을 끓였다. 갈비탕, 육개장, 설렁탕이나 곰탕 같은 음식은 그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 상식적이고 공평한 음식이었다. ― 195쪽, 소갈비 _ 찜과 탕에서 구이로의 변화에서 단맛과 매운맛이 공존하는 고추장은 1920년대 본격적으로 소비된다. 하와이를 기반으로 한 신문 신한민보 1924년 3월 20일 자에는 간장, 고추장, 된장을 판매하는 광고가 실린다. 초기 이민자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고추장을 풀어 넣은 얼큰한 찌개나 비빔밥을 그리워했다. 1920년대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이 가장 강하게 반영된 비빔밥에 고추장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당시 비빔밥은 설렁탕 같은 탕 음식과 더불어 대표적인 외식 메뉴였다. 밥과 채소, 고기에 고추장이 더해지면 달고 매운 개성이 생겨난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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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발췌
장이라는 글자가 처음 등장하는 《주례》에는 “장에는 해(?)나 혜(醯)가 있는데, 해는 새고기, 짐승고기, 물고기 할 것 없이 어떤 고기라도 이것을 햇빛에 말려 고운 가루로 하여 술을 담그고, 여기에 조(粟)로 만든 누룩과 소금을 넣고 잘 섞어 항아리에 넣고 밀폐하여 100일간 어두운 곳에서 숙성시켜 얻은 것이며, 혜는 재료가 해와 같으나 청매즙(靑梅汁)을 넣어서 신맛이 나게 한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장은 육장(肉醬), 즉 젓갈이다. 젓갈과 장은 뿌리가 같다. 한국인들은 장이라 하면 된장, 간장, 고추장 같이 콩으로 만든 장을 떠올리지만, 동남아시아는 생선을 발효시킨 어장(魚醬)을 오래전부터 먹었다. ― <장 _ 한국 밥상의 기본>에서 최근 많은 매체에서 “원래 삼계탕은 계삼탕이었다가 1980년대 이후 삼계탕으로 바뀌었다”라고 하지만, 여러 기록을 보면 이런 주장은 별로 신뢰할 수 없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삼계탕과 관련된 기록에는 ‘삼계’라는 단어가 월등히 많다. 삼계탕이라는 말이 신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초반이지만, 빈도수가 많아진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대한민국에 본격적인 육식 문화가 시작되는 때와 삼계탕의 대중화가 괘를 같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삼탕이라는 말도 거의 같은 시기에 언론 노출 빈도수가 많아지지만 1980년대 이후 삼계탕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 <복달임 음식 _ 옛사람들의 여름 나기>에서 일본에서는 전어구이를 거의 먹지 않는다. 전어의 일본말인 ‘고노시로(このしろ)’는 직역하면 ‘아이를 대신한다’는 뜻이다. 영주가 자신의 딸을 데려가려하자 전어를 관 속에 넣어 태운 뒤 딸이 죽었다고 속인 어부의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인은 전어 굽는 냄새를 시체 타는 냄새로 연상할 정도로 전어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재료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이처럼 상반된 결과를 낳은 것이다. ― <전어 _ 가을이라는 단어를 머금다>에서 기록상으로 보면 메주건 청국장이건 중국의 콩으로 만든 장이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사실만은 개연성이 매우 높다. 한국에서 장이라는 글자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 신문왕 3년(683년)의 기록인데 장과 시가 동시에 나온다. 북송의 손목(孫穆)이 고려 숙종 8년(1103년)에 개성을 다녀간 뒤 쓴 《계림유사》에는 장을 ‘密組’로 부른다고 적고 있다. 당시의 중국 음으로 읽으면 이는 ‘며조’가 된다. 일본 된장 미소는 《왜명유취초(倭名類聚?)》1934년경에 고려장 미소(未醬)에서 온 것임을 밝히고 있어 일본 된장이 한반도에서 넘어온 음식 문화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 <메주 _ 겨울을 견디기 위한 생존 의례>에서 미군부대를 들락거리던 한국인들은 그곳에서 구한 가공육을 한국식으로 먹고 싶어 했다. 제일시장 주변에서 ‘오뎅’을 팔던 허기숙 씨에게 소시지나 햄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요리를 부탁했다. 부대 고기를 김치나 고추장 같은 한국식 재료와 볶아서 선보인 부대볶음은 인기가 많았다. 얼마 후 부대찌개도 만들어졌다. 1968년 지금의 자리에 ‘오뎅식당’이라는 이름을 달고 정식으로 가게를 시작했다. 부대에서 나온 고기는 넘쳐났지만 그걸 사용하는 건 불법이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오뎅식당이라는 이름이 편법으로 사용되었다. ― <부대찌개 _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가공육의 변신>에서 한국인에게 고기는 소를 의미했다. 다른 짐승의 고기에만 돼지고기, 닭고기처럼 이름을 붙였다. 중국에서는 고기가 돼지고기를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 막 잡아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전의 엉덩이살, 다리살은 생고기로 먹거나 야채 또는 과일과 섞어 육회로 먹었다. 안심 같은 부드러운 부위를 제외하면 마블링이 없는 살은 질겼다. 귀하고 질긴 고기를 먹기 위해 사람들은 대개 탕을 끓였다. 갈비탕, 육개장, 설렁탕이나 곰탕 같은 음식은 그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 상식적이고 공평한 음식이었다. ― <소갈비 _ 찜과 탕에서 구이로의 변화>에서 단맛과 매운맛이 공존하는 고추장은 1920년대 본격적으로 소비된다. 하와이를 기반으로 한 신문 <신한민보> 1924년 3월 20일 자에는 간장, 고추장, 된장을 판매하는 광고가 실린다. 초기 이민자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고추장을 풀어 넣은 얼큰한 찌개나 비빔밥을 그리워했다. 1920년대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이 가장 강하게 반영된 비빔밥에 고추장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당시 비빔밥은 설렁탕 같은 탕 음식과 더불어 대표적인 외식 메뉴였다. 밥과 채소, 고기에 고추장이 더해지면 달고 매운 개성이 생겨난다. ― <고추장 _ 단맛과 매운맛의 조화>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