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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1장 맛있는 그림, 「최후의 만찬」으로부터 시작하다
2장 좋은 식사와 나쁜 식사
3장 식사의 준비 과정을 그리다
4장 정물화, 하잘것없는 것에 대한 매혹
5장 근대미술과 음식의 풍경
6장 삶과 죽음, 그리고 음식

나오며
지은이의 글
옮긴이의 글
참고문헌

저자 소개 2

미야시타 기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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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uro Miyashita,みやした きくろう,宮下 規久朗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 17세기 바로크 미술, 일본 근대미술에 조예가 깊은 미술사가로서 미술 작품에 대한 에세이를 쓰거나 강의를 하고 있다. 평소 폭음폭식하는 B급 식도락가를 자칭하는 그는, 음식에 대한 애정이 미술에 대한 흥미를 압도할 지경에 이르자 미술과 음식의 관계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미각을 자극하는 미술 작품의 쾌락과 관능을 칭송하는가 하면, 결국 먹는다는 것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을 통해 풍요로운 해석을 보여 준다. 도쿄 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인문과학 연구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 17세기 바로크 미술, 일본 근대미술에 조예가 깊은 미술사가로서 미술 작품에 대한 에세이를 쓰거나 강의를 하고 있다. 평소 폭음폭식하는 B급 식도락가를 자칭하는 그는, 음식에 대한 애정이 미술에 대한 흥미를 압도할 지경에 이르자 미술과 음식의 관계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미각을 자극하는 미술 작품의 쾌락과 관능을 칭송하는가 하면, 결국 먹는다는 것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을 통해 풍요로운 해석을 보여 준다.
도쿄 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인문과학 연구과를 수료했다. 효고 현립 근대 미술관과 도쿄 현대 미술관의 학예연구원을 거쳐 현재 고베 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에 쓴 『카라바조-성성聖性과 비전』으로 산토리 학예상과 일본 지중해학회에서 수여하는 헤렌드 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바로크 미술의 성립』『이탈리아 바로크-미술과 건축』『카라바조』『모딜리아니-몽파르나스의 전설』 등이 있다.

LEE, Yeon-Sik,李連植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과정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현재 미술사를 다각도로 살펴보며 예술의 정형성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다양한 저술, 번역,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양미술사』,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뒷모습』, 『드가』 등을 썼고, 『자포니슴』,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컬러 오브 아트』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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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9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488g | 148*210*20mm
ISBN13
9788955615012

출판사 리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본문 16~17쪽)을 보자. 그리스도가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신할 것이다.” 그러자 사도들이 깜짝 놀라 우왕좌왕한다. 유다만이 움직이지 않고 아무 말도 없다. 그런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비극의 주인공 그리스도의 양손 끝을 보자. 무언가를 가리키는 듯하다. 왼손 끝에는 빵이 보이고, 오른손 끝에는 포도주가 든 유리잔이 있다. 빵과 포도주, 바로 이날 만찬의 메뉴이다. 과연 이것이 메뉴의 전부였을까? 최후의 만찬의 메인 요리는 무엇이었을까?

혀끝의 미감으로 읽는 ‘음식의 미술사’
왜 서양 미술의 거장들은 음식과 식사 그림에 탐닉했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광란을 담은 연회 그림, 거의 모든 음식 재료가 전시되어 있는 시장 그림과 부엌 그림, 하잘것없는 일상을 예찬하는 네덜란드 정물화, 종교적 숭고함이 담긴 스페인의 보데곤, 인상주의 화가들의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왜 서양 미술에서 식사의 풍경은 되풀이되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맛있는 그림》은 혀끝의 미감으로 서양 미술을 읽는 책이다. 음식과 식사 그림을 그려 온 화가들과 그 그림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내고, 시각이라는 감각 경험과 더불어 후각과 촉각, 미각 같은 좀 더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으로 서양 미술사를 읽는다. 미감을 자극하는 그림들로 식탁 위 만찬을 꾸려 놓은 이 책은, 서양 미술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도 ‘음식’이라는 키워드 하나에 흥미가 있다면, 단숨에 읽어 낼 수 있는 풍미와 양을 자랑한다.
음식과 식사는 서양 미술에서 늘 중심적인 주제였다. 특히 지중해 나라들은 예로부터 먹는 일에 탐욕적이고 종종 요리를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렸다. 고대 로마의 지하 묘지 카타콤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빵을 가득 담아 놓고 연회를 벌이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폼페이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말린 생선과 더불어 어패류가 매우 사실적인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중세에 그리스도교가 음식과 식사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식사의 풍경은 미술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전통이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발전을 거듭하면서 중요한 주제로 계승된 것이다.

서양 미술을 음미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 ‘음식 그림’

저자 미야시타 기쿠로宮下規久朗는 서양 문화에서 음식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와 결부시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어느 문화권에서도 식사에는 종교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음식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에서조차도 음식과 식사의 풍경이 그림에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특히 아시아에서 근대 이전에 식사가 미술의 독립된 주제였던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식사와 미술의 밀접한 관계는 서양 특유의 현상으로, 서양의 미술과 문화를 고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과 17세기 바로크 미술에 조예가 깊은 저자는 음식과 관련된 방대한 미술 자료를 다루기 위해 엄밀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한편, 다채롭고 내밀한 감각적 경험 또한 담백한 필치로 풀어 놓는다. 이 책에서 펼쳐지는 ‘음식의 미술사’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는 미각을 자극하는 미술 작품의 쾌락과 관능을 칭송하는가 하면, 먹는다는 것의 성스러움과 게걸스러움을 낱낱이 해부하고, 결국 먹는다는 것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을 통해 풍요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스러움과 게걸스러움, 그림 속 천 가지 식사의 풍경

서양 문화에서 식사에 신성한 의미가 부여된 것은 무엇보다도 ‘최후의 만찬’, 그리고 그것에 기원하여 생겨난 미사 때문이다. 미야시타 기쿠로는 식사와 미술, 그리고 종교가 어떻게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이 책의 시작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으로 장식한다. 그리고 팝아트의 선구자이자 고독한 영혼 앤디 워홀의 유작 ‘최후의 만찬’ 시리즈로 이 책을 마무리 짓는다. 종교와 미술, 삶과 죽음이 음식과 맺는 관계는 이 책의 전체적인 축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이러한 큰 틀 안에서 음식 그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빵과 물만으로 차려지는 성인의 식사, 가난한 자에게 자선을 베푸는 식사, 가치의 전도와 욕망의 해방을 보여 주는 연회 그림, 풍성한 식재료가 전시된 시장 그림, 네덜란드의 찬란한 유산인 정물화, 그리고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레스토랑과 카페의 정경 등이 100점이 넘는 진귀한 그림과 함께 소개된다. 음식에 관한 상징과 알레고리, 공포와 환희, 그리고 현실과 이상을 미술의 거장?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미야시타 기쿠로는 평소 폭음폭식하는 B급 식도락가를 자칭하는 호방한 사람이다. 그는 음식에 대한 애정이 미술에 대한 흥미를 압도할 지경에 이르자 미술과 음식의 관계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무엇보다도 ‘먹다’라는 그 단순한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숭고함을 포착한 그림들에 눈길을 둔다. 네 남녀가 커다란 치즈를 먹는 모습이 인상적인 빈첸초 캄피의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이나 콩을 먹으려고 입에 숟가락을 가져가는 모습을 스냅숏처럼 포착한 안니발레 카라치의 「콩을 먹는 남자」, 그리고 늙은 농민 부부가 선 채로 짧은 나무 숟가락으로 콩을 떠먹고 있는 모습을 그린 라 투르의 「콩을 먹는 부부」 등은, 먹는다는 것의 기쁨과 환희 그리고 숭고함이 전해지는 명작으로 소개된다.
「미식美食 갤러리 펼쳐보기」

그들은 최후의 만찬에서 무엇을 먹었을까 _1장 맛있는 그림, 「최후의 만찬」으로부터 시작하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가 먹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거대한 벽화는 1979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고, 당초의 선명한 색채가 되살아나면서 테이블 위의 음식도 드러났다. 복원 작업이 수행되기 전에는 빵과 포도주를 담은 컵 말고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모사 작품들에서는 고기 요리가 등장하거나 생선 요리가 등장하는 등 제멋대로였다. 세정 작업이 끝나자 테이블 위에는 물고기가 담긴 큰 접시가 보였고, 테이블 여기저기에 물고기 조각에 얇게 자른 오렌지나 레몬이 더해진 작은 접시들이 드러났다.
레오나르도 이후에 많은 화가들이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자코포 바사노는 만찬의 메인 요리로 양의 머리를 선택했으며, 틴토레토는 그리스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도들에게 직접 빵을 갈라 주는 장면을 그렸다. 파올로 베네로세는 최후의 만찬을 마치 귀족들의 향락적인 축연처럼 그렸고, 니콜라 푸생은 성체를 담은 그릇을 든 그리스도를 그렸다.
일본 미술 속 최후의 만찬 도상도 소개된다. 에도 시대에 그리스도교는 엄혹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도상의 전통은 끊어졌지만, 몇몇 그림 족자에서 그 잔영을 볼 수 있다. 「단지쿠사마」라는 그림을 보면 무성한 조릿대 속에 부모와 아들이 밥상 주위에 앉아 있고, 그릇에는 밥이 가득 담겨 있다. 19세기 화가 다무라 소류의 「접대도」에서도 최후의 만찬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단, 다무라 소류의 그림에서는 빵이 주먹밥이 되고, 포도주가 국으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성스러움과 게걸스러움의 모호한 경계 _2장 좋은 식사와 나쁜 식사
그리스도교에 의해 음식에 신성한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해도, 음식은 기본적으로 정신이 아니라 육체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찬의 식사 이외에는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즉, 좋은 식사와 나쁜 식사로 나뉘는 것이다.
빵과 물만으로 하는 성인의 식사, 매일 먹는 음식에 대한 신의 은총에 감사 기도를 올리는 식사,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식사 등은 고기를 물어뜯거나 술과 여자에 취해 흥청거리는 연회의 풍경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후 광란의 연회 그림 자체가 하나의 유행이 되어, 17세기 플랑드르와 네덜란드의 풍속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미술사에서 먹는 행위 자체를 주제로 한 작품은 의외로 많지 않다. 네 남녀가 커다란 치즈를 먹는 모습을 묘사한 빈첸초 캄피의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은 식사를 정면에서 다룬 드문 작품이다. 치즈를 입으로 떠 넣는 동작이나 입에 넣은 치즈가 보이는 모습 등이 게걸스러워 혐오감이 들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농민의 밝은 생명력과 함께 먹는다는 것의 행복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평가한다.
거대한 소가 해체된 채 매달려 있고 그 앞에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을 그린 화가도 있다. 안니발레 카라치가 그린 「푸줏간」은 이탈리아 최초의 풍속화로서 중요할 뿐 아니라 음식과 미술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징표다. 그가 그린 또 하나의 대작 「콩을 먹는 남자」는 스냅숏 같은 포착 방식으로 ‘먹기’라는 단순하면서도 중대한 행위를 아무런 교훈적, 우의적 의미도 없이 제시한 혁신적인 작품이다.
이밖에도 조르주 라 투르의 「콩을 먹는 부부」나 루이 르 냉의 「농민의 식사」, 반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가난해서 소박한 농민의 식사를 보여 주지만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명작으로 소개된다.

싱싱한 과일과 고기의 매력 _3장 식사의 준비 과정을 그리다
서양 미술사를 보면 식사하는 모습보다 부엌에서 조리하는 장면이나 식재료를 파는 시장의 모습이 빈번하게 묘사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림은 식사 그 자체를 보여 주지는 않지만 식사의 준비 과정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왜 그렇게 자주 그려진 것일까?
17세? 풍속화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피테르 아에르첸과 요아킴 보이클래어. 이들은 16세기 후반에 정물화나 풍속화가 종교화의 형식과 공존하는 기묘한 그림을 그렸다. 바로 ‘이중 공간’의 회화이다. 이것은 그림 전경前景에 식재료나 상품을 늘어놓고 동시대의 인물이 그 앞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리고, 후경後景에는 성서에 나오는 한 장면을 조그맣게 그린 풍속화이다. 이들 그림은 정물화나 풍속화가 장르로 독립하기 전인 16세기 중반에 음식이나 부엌을 화면 앞쪽에 커다랗게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책에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라는 주제를 아에르첸, 보이클래어, 벨라스케스 세 사람이 어떻게 달리 표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아에르첸과 보이클래어 등 플랑드르 화가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의 빈첸초 캄피는 두 종류의 시장 연작 그림을 그렸다. 책에는 그중에서 콩과 치즈를 먹는 농민 부부가 그려진 「생선 장수」와 우아한 여인이 과일에 둘러싸여 있는 「과일 장수」가 실려 있다.
부엌 그림과 시장 그림은 성서의 교훈과 상관없이 점차 식재료와 요리의 매력을 전면에 내세운 그림으로 바뀌었고, 숙달된 기법으로 리얼하게 묘사된 이러한 그림은 뒤에 정물화와 풍속화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늘 보고 싶다는 욕구 _4장 정물화, 하잘것없는 것에 대한 매혹
미술사에서 음식 그림을 탐구하자면 반드시 정물화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시장이나 부엌을 그린 그림에서 음식이 서서히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서 성서적인 교훈과 시장, 부엌이라는 무대 장치가 사라져 버린 것이 정물화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정물화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네덜란드의 경제적 번영과 시민의 욕망이 있었다. 해양 국가인 네덜란드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과 활발한 무역 활동을 벌였고, 부유한 시민들 사이에서는 진기한 물품에 대한 투자와 수집 붐이 일었다. 수집가는 자신의 수집품을 그림으로 기록하도록 했고, 이런 산물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은 그 대체물로서 정물화를 원했다.
네덜란드의 정물화는 단순히 네덜란드 시민 사회의 성숙과 부의 축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덧없음을 상기시키는 ‘바니타스vanitas’의 의미가 담겨 있다.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인 바니타스는 인생의 덧없음, 무상함,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경고이다.
바니타스를 표현한 그림 외에도 데 헴의 「화환으로 둘러싸인 성체」와 같이 직접적으로 종교적인 의미를 묘사한 작품, 죽은 짐승을 그린 렘브란트의 「가죽을 벗긴 소」, 네덜란드 식탁 그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야채를 단독으로 그린 아드리안 코르테의 「아스파라거스」 등이 소개된다.
네덜란드 정물화가 발전하던 시기에 스페인에서는 ‘보데곤bodegon’이라 불리는 정물화가 유행했다. 보데곤은 네덜란드 정물화처럼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내세우지도 않고, 바니타스를 표현하지도 않고, 그저 몇 안 되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을 뿐임에도 강렬한 종교성을 띤다. 신교와 구교가 대립하는 국면에서 가톨릭 개혁의 보루 구실을 했던 스페인에서는 강력한 왕권이 교권과 결부되어 종교적 엄숙함이 사회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때문에 풍속화나 풍경화라는 세속 장르는 거의 발달하지 않았고, 종교적인 주제가 줄곧 미술의 중심을 차지했다.
종교화로 유명한 산체스 코탄의 「과일 정물」, ‘수도사 화가’로 불리는 수르바란의 「물 항아리와 잔이 있는 정물」 「레몬,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은 그저 그릇이나 야채, 과일을 몇 개 그려 놓았지만 서양 정물화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밖에도 마네, 세잔, 피카소, 마티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과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정물화의 전통이 어떠한 경향과 스타일로 이어지는지 그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집 밖으로 나온 식사 _5장 근대 미술과 음식의 풍경
19세기 시민 사회가 성립하면서 부르주아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그림이 등장한다. 이 무렵 교외에 나가서 피크닉을 즐기며 식사하는 것이 유행했고, 이를 주제로 삼은 그림도 나왔다. 교외에서의 식사 풍경을 다룬 것 중에서 근대 회화의 시작을 알린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밝은 햇빛과 부드러운 필치, 따스한 색채로 부르주아의 향락적인 생활을 재현한 르누아르의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 등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교외 전원이나 휴양지에서의 식사 풍경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마네의 「아틀리에에서의 점심」과 모네의 「점심」 「저녁 식사」처럼 실내에서 하는 식사와 달리, 드가의 「압생트」나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등은 식사의 공간이 가정에서 레스토랑과 카페로 이동한 것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품이다.
이밖에도 가난한 떠돌이의 식사나 육체노동자의 변변찮은 식사,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재현한 여성들의 식사 그림이 소개된다.

왜 앤디 워홀은 유작으로 「최후의 만찬」을 선택했을까 _6장 삶과 죽음, 그리고 음식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례를 치를 때 식사나 연회를 할 뿐 아니라 묘실 벽에 이 모습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고대 로마의 지하 묘지 카타콤에는 종종 연회 모습이 묘사되었고, 중국 후한 시대의 화상석에도 성대한 연회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일본에는 죽은 자의 혼례연을 그린 ‘무카사리 에마’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어 결혼하지 못한 아들딸을 위해 그들이 가상의 배우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그려 봉납한 그림이다.
음식과 미술, 그리고 죽음을 한 줄로 연결하는 작가는 앤디 워홀이다. 그는 20세기 서양 미술에서 음식의 의미를 부각시킨 거장이다. 캠벨 수프 통조림을 묘사한 참신한 작품으로 미술계에 데뷔하여 편리하고 부담 없는 대량 생산 식품을 칭송했던 이 화가는, 한편으로 음식이 지닌 공포와 죽음의 이미지를 응시했고, 죽기 바로 전에 ‘최후의 만찬’ 시리즈에 착수하여 성찬에 의한 천상의 빵, 영원의 음식을 추구했다. 저자는 평생 고독했던 워홀이 죽을 때가 되자 함께하는 식사, 즉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열세 명의 식사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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