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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제1장 나시모토미야 마사코 공주

이방자가 태어난 해

최초의 기억
어머니 이쓰코의 일기
20세기의 시작
애국부인회와 독지간호부인회
히로히토 친왕의 탄생
국회의원 쇼조의 직소 사건

세계 대국을 향하여
이방자가 본 꽃전차
러일전쟁의 영향
어머니 이쓰코의 유럽 여행
황족 공주의 어린 시절

학습원 시절
입학 당시
이은, 일본에 오다
대한제국 병합 당시 이방자
소아과 의사가 진찰할 나이는 지났다

황태자비 후보
금강석과 오기 원장의 교육
학습원 동급생들
사랑의 라이벌
학습원 원장 오기 부부의 죽음

제2장 이왕가에 시집가다

정략결혼

자신도 몰랐던 약혼 발표
결혼에 얽힌 의문들
어머니 이쓰코의 책임
한일융화의 상징
부모의 마음

황실전범증보
황족 출신 여자의 결혼
뒤늦은 법 정비
왕공가궤범안
황실전범증보안의 가결

결혼 연기
조선 귀족 이완용의 축사
예물교환
의친왕 이강의 불참
고종의 급서
독살설
퍼져나가는 소문
조선총독 앞으로 보낸 진정서

결혼식
복상의 나날
삼삼구도
차별 철폐
한일 양국 결혼 장려
은사와 은상

제3장 동란의 시대

빛과 그림자

발각된 암살 기도
신혼의 행복과 근심
이은의 약혼자 민갑완
장남 진의 탄생

진의 요절
또다시 불거진 독살설
왕세자 고문 구라토미의 기록
진의 배설물 분석
죽음을 앞당겼다

간토대지진의 혼란
진의 죽음과 유산
대지진의 발생
황실의 지진 피해
조선인 폭동에 관한 유언비어
이은의 피난 이유

이방자의 형제들
여동생 나시모토미야 노리코
시누이 덕혜옹주
정략결혼과 심적 고통
의친왕 이강의 편지
이강의 애원
총독부의 감시

제4장 인생유전

왕비 이방자

유럽 순방
아들 구의 탄생
대리 파견과 시찰, 방공
이왕가미술관

왕공족 폐지
이우의 피폭
이승만의 귀국 거부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
모모야마 겐이치와
마쓰히라 요시코

귀국
이국의 미국행
박정희 대통령의 보호
이은 부부의 귀국
쪽바리
복지사업
이방자의 칠보 공예
다우치 치즈코와 공생원
운명적인 인연
이방자의 유산

에필로그
감사의 인사
역자 후기
황궁 주변 지도
연보

저자 소개

저자 : 오타베 유지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릿쿄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시즈오카 복지대학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공은 일본 근현대사. 저서로 『도쿠가와 요시치카의 15년 전쟁』, 『나시모토미야 이쓰코비의 일기』, 『가보의 행방』, 『화족가의 여성들』, 『미카도와 여관』 , 『화족』 등이 있다.
역자 : 황경성
1961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홋카이도 나요로 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고령자복지이며, 저서로는 『일본의 고령자 보건복지』, 『일본의 고령자 보건복지 제도와 정책』, 『도표로 배우는 고령자 복지』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90g | 153*224*30mm
ISBN13
9788970907246

출판사 리뷰

경술국치 100년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의 삶을 통해 본 비운의 역사


-일본은 왜 이방자를 조선의 황태자비로 선택했는가?
-이방자는 왜 전후 대한민국에 남아 복지사업에 정열을 쏟았는가?

이방자 여사는 일본인으로 태어나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과 결혼한 뒤 여생을 한국인으로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섰던 일본의 쇼와 천황보다 반년 정도 늦게 태어나 4개월 정도 늦게 세상을 떠난 이방자는, 어떤 의미에서 쇼와 천황의 분신이기도 했다. 과거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을 때 최고 통치자는 메이지, 다이쇼, 쇼와 3대 천황이었고, 이방자는 그런 역대 천황들의 의향에 따라 한국과의 가교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왕족비로서의 지위를 잃는다. 어쩌면 쇼와 천황이 짊어져야 할 패전과 한국 지배의 책임이 이방자의 어깨에 지워진 것이다.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한 1963년, 남편 이은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이방자 여사는 1989년 4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신지체아와 신체장애아들을 위한 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이제 사람들은 이방자 여사를 ‘비운의 마지막 황태자비’에서 ‘장애인 복지의 어머니’로 기억에 새기고 있다.

나시모토미야 마사코의 어린 시절
이방자의 어린 시절 이름은 나시모토미야 마사코. 아버지 나시모토미야 모리마사는 황족의 한 사람으로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전범으로 스가모 형무소에 갇히기도 했다. 이방자의 어미니 이쓰코의 친정인 나베시마 후작가도 천황가와 교류가 깊었다. 이쓰코의 아버지 나베시마 나오히로는 메이지유신 뒤 영국으로 유학하여 주 이탈리아 대사를 역임하는 등 메이지 천황 시기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었다. 당시 황태자였던 다이쇼 천황은 나베시마가의 별장에 자주 놀러왔다. 이방자가 태어난 1901년 일본은,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며 세계 대국이 되기 위해 전쟁과 군사 지원에 여념이 없었다. 1907년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손에 이끌려 일본에 온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강제로 한국을 병합한다.

한일융화의 상징이 된 정략결혼
마사코와 구니노미야 나가코는 사촌간이었다. 나가코의 아버지 구니히코가 마사코의 아버지 모리마사의 형이었던 것. 마사코와 나가코는 나란히 학습원 여학부에 다녔다(이방자가 한 학년 위였다). 1916년 8월 3일 신문을 통해 마사코와 영친왕 이은의 결혼이 공표되었다. 이방자는 히로히토 황태자(쇼와 천황)의 비(妃) 후보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일찍이 이은과의 결혼이 결정되면서 후보에서 탈락했고 1년 반 뒤인 1918년 1월 14일 사촌인 나가코가 황태자비로 내정되었다. 이러한 결정 뒤에는 일본 황실과 황족간의 세력 균형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 어쨌든 이은과 이방자의 혼담은 한일융화의 상징이 되었고, 일본은 대한제국을 병합한 뒤에도 이왕가에 대해 일본 황족에 필적하는 신분을 보장하고 재산을 유지하게 했다. 바꾸어 말해 이방자의 결혼은 일본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력결혼의 시작이었다.

고종의 서거와 장남 진의 죽음
결혼식을 앞두고 1919년 1월 22일 고종이 세상을 떠난다.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한일 병합으로 비탄에 빠진 왕이 자살했다는 소문과, 영친왕과 이방자의 결혼을 연기시키기 위해 우국 신하들이 왕을 독살했다는 등의 온갖 소문이 퍼져나갔다. 고종의 급서로 결혼식은 연기되었고, 그 기간 동안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교제를 하다가 이듬해 1920년 4월 28일 결혼식을 올린다. 1921년 8월 18일 장남 진이 태어나 모처럼 행복한 시절을 보내지만 아들 진을 데리고 조선에 온 이은 부부는 갑자기 갑작스러운 진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한다. 이후 두 사람은 결혼 10년 만에 둘째 아들 구를 얻는다.

일본의 패전, 신분 격하
일본이 패전한 뒤 이은 부부는 왕공족의 지위 및 특권을 상실하고 가진 재산도 거의 없어져 생활의 곤란을 겪는 지경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한국도 두 사람을 받아주지 않는다. 이왕가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과거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은 부부를 받아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1963년 11월 22일 병으로 이미 의식이 흐려진 남편 이은과 함께 이방자 여사는 한국에 와서 드디어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

정략결혼에 의한 비극의 여왕에서 복지의 어머니로
반겨주는 사람 없는 한국 땅에서 이방자 여사가 새롭게 시작한 일은 장애인 복지사업이었다. 이방자 여사는 일본에 있을 때인 1960년 자선단체를 설립했는데 나중에 자행회가 된다. 이 여사는 1984년까지 자행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정신지체아를 위한 교육기관인 자혜학교를 설립했다. 이와는 별도로 명휘원(전신 보린회)을 설립해 신체장애인들의 자립을 도왔다. 이방자 여사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남은 인생을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밝고, 불행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구원받을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후회 없이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방자 여사는 1989년 4월 30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89년간의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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