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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인연
로키 산의 독수리 수두꺼비의 출현 대결 화해, 그리고 출발 축구 대회 냉전 사랑의 조건 성적, 그 영원한 우리들의 굴레 여름의 나무 공주의 행방 우정의 계란 생존경쟁 떠나는 바람 작가 후기 |
朴範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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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주리(卜珠利)는 S여고 일학년이다. 그러나 콧잔등에 후춧가루를 솔솔 뿌려놓은 듯한 주근깨 때문에 이름보다는 ‘깨소금’이라는 별명이 훨씬 더 유명하다.
S여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복주리라면 잘 몰라도 ‘깨소금’이라면 알아 모신다. 배짱 좋고 능청맞고 말괄량이고 야무질 때는 차돌멩이처럼 야무진 구석도 있으니 자연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입학하고 석 달밖에 안 된 처지에 전교에서 유명해진 것은 그럴 만한 짭짤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주리와 죽고 살고 하는 단짝동무 중에 안공주(安公珠)가 있다. 공주라고 이름이 붙여졌으니 잘 짜인 얼굴에 귀티가 자르르 날 것 같지만 이렇게 짐작했다간 ‘건너짚다 팔이 부러졌다’고 해도 여러 번 부러졌을 것이다. 공주의 별명은 자칭 ‘공주님’이지만 보통은 ‘옥떨메’라 한다. ‘옥떨메’란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의 준말이다. 못생긴 교련 선생한테 바로, 안공주 스스로 붙여놓은 별명인데 그것이 누워 침 뱉은 것처럼 자신에게 통째로 굴러 떨어졌던 것이다. 그냥 메주라고만 해도 충분히 뜻은 전달될 만한데 옥상에서 떨어졌다는 설명까지 붙고 보니, 공주에게는 사실 섭섭해도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 본문 중에서 공주와 주리가 단짝으로 짝짜꿍이 되었으니 함께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학교 안팎에 화제가 되었다. 함께 서 있으면 얼핏 떠오르는 게 드럼통과 도곳대다. 키 크고 날씬한 주리는 떡방아 찧어주는 도곳대요, 허리도 없이 옆으로만 퍼진 공주는 드럼통밖에 갈 데가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둘 다 장난 좋아하고, 구슬 주(珠)자 돌림 같고, 배짱 좋고, 태평천하고…… 주리의 자칭 ‘두뇌 플레이’와 공주의 자칭 ‘우직파 행동파’가 딱 맞아떨어지고 보니 이거야말로 천생연분이 아니냐. --- 본문 중에서 『깨소금과 옥떨메』는 아주 오래전, 내가 여자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끝물에 썼다. 곧 베스트셀러가 됐고, 당시의 많은 십대들이 너나없이 열광하며 읽고 아껴주었던 소설이다. 지금도 초로의 얼굴을 한 중년부인들을 길에서 만나거나 하면 제일 먼저 곧잘 ‘깨소금과 옥떨메’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 초로의 부인들 얼굴은 한결같이 어떤 판타지에 둘러싸인 듯, 환하고 환한 표정이다. 이 소설을 쓰고 나서 나는 곧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가난하지만 햇빛처럼 환하던 아이들과 함께 나도 아이들이 되어 보냈던 시절이 행복했었는지, 전업 작가로서 마음속으로 상승과 추락을 반복하며 매일매일 오로지 소설 쓰기에만 매달려 산 그 이후가 행복했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얼른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그 시절 담임했던 아이들이 곧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은 폐간된 학생잡지 『여학생』에 연재했는데, 매달 잡지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에게 독후감을 듣고 그 시대 아이들만 쓰던 ‘은어’를 취재해 모으고 하던 일이 상기도 눈에 선하다. 나 혼자 썼다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썼다는 느낌이 든다. 오래 묵은 책이라 재출간을 망설였으나, 끝내 버릴 수 없었던 것은 그런저런 추억이 많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 햇빛 같던 소녀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만약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십대라면, 당신의 어머니가 이런 학창시절을 보내냈다고 여기면 된다. 다시 읽어보았더니, 가난했지만 봄꽃처럼 눈부시던, 샘물처럼 맑던 그 시절의 아이들이 너무도 그립다. 당신의 학창시절이 더 충만한가, 이 소설에 그려진 당신 어머니의 학창시절이 더 충만한가,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십대가 간직한 영혼의 순결성과 그 맑고 환한 빛은 여전하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 당신의 영혼이 이 소설 속의 소녀들 같았으면 참 좋겠다. 삼월의 햇빛 같은. 사월의 봄꽃 같은. 아니 마르지 않고 언제나 맑은 물이 흘러넘치는 우물 같은. --- 「작가후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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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햇빛 같던 소녀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산수유 꽃이라 불러야 하나, 목련꽃이라고 해야 하나, 난분분 떨어지는 벚꽃이라 불러야 하나 아니면 향기 진한 수수꽃다리라 불러야 하나 이도 저도 아니면 은사시나무라 해야 하나. ‘가난했지만 봄꽃처럼 눈부시던, 샘물처럼 맑던 그 시절의 아이들이 너무도’ 그리운 대한민국 대표 소설가 박.범.신. 그는 ‘십대가 간직한 영혼의 순결성과 그 맑고 환한 빛은 여전하다.’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또한 우리의 영혼이 ‘삼월의 햇빛 같은. 사월의 봄꽃 같은. 아니 마르지 않고 언제나 맑은 물이 흘러넘치는 우물 같은’ 이 작품의 소녀들 같았으면 ‘참 좋겠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돈에 찌들고, 명예에 찌들고, 권력에 찌든 격랑의 세태에 산다. 삶아지는데도 미지근한 물 속에서 더욱 앞서기 위해, 더 많은 알을 낳기 위해 경쟁적으로 유영하는 우리는 개구리를 닮았다. 『깨소금과 옥떨메』는 몽롱한 영혼을 화들짝 깨우는 냉수 같은 소설이며 숲 속 맑은 공기 같은 자작나무 소설이다. 이는 재미에 치우친 단순한 얄개소설로만 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며 또한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 누구에게나 가을은 온다. 어떤 결실을 보았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가지만 무성했는지, 아니면 잎만 무성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부는 바람에 흔들리기만 했는지, 앙겔루스 노부스처럼 저항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그것도 ‘맑은 영혼’으로, ‘영혼의 순결성’으로 말이다. 어쩌면 그 힘을 잃어가기에 군중 속 미아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때 그 햇빛 같던 소녀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라는 작가의 후기는 마음이 아프다. 그때의 소녀들은 어머니가 됐다. 지금의 소녀들도 언제인가 어머니가 된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들면, 자녀의 건강 또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일 텐데……. 모든 게 병들어 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언제나 맑은 물이 흘러넘쳤던 우물 같은 어머니로의 회복이 절실하다. 이 소설이 밝고 명랑하게 읽히면서도 기저에는 그 물음과 해답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엄마가 알고 있는 특별한 이야기’이면서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특별한 이야기’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