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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4
맞수 7 작전 실패 31 시골평론 63 한 치 앞도 모르면서 81 면민의 날 111 기름이 똑 떨어지면 135 5일장 151 첩첩산중 175 담배 먹고 맴맴 221 신춘 만담 239 암자 만담 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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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냥반이 월매나 대단헌가 허믄, 임금이 충무공헌티 물은겨.”
“뭐라구유?” “왜눔덜이 일으킨 난리 때미 나라가 조져두 보통 조진 것이 아닌디, 인자 너는 뭘 워치게 헐 작정이냐~?” “그르니께 뭐라구 대답혔대유?” “참, 기맥히지! 뭐라구 대답혔나 허믄 ‘시방두 지헌티는 배가 열 허구두 둘이나 남어 있습니다’ 혔다는 거 아녀!” “열 허구두 둘이나유?” “그려.” “대단헌 냥반이구먼! 성님이 그 냥반을 죈경허는 이유를 인자 알겄네.” “참말루 알구 허는 말인겨, 아니믄 비우에 간 맞출라구 허는 말인겨?” “알다마다유.” “내가 왜 죈경헌다구 보는겨?” “참말루 대단헌 이 아뉴? 그 난리통에 나라가 거덜나구 다덜 상그지루 연명허는 처지들인디 월매나 부자믄 배가 열 허구두 둘이나 남어돌겄냐 이거유! 성님이나 지나 핑생(평생) 배는 고사허구 배 젓는 노 한 짝두 살 돈 읎이 사는 졸토뱅이(볼품없는) 신세들이 죈경을 허구두 남을 냥반 아뉴?” “연설허구 자빠졌네!” ---「맞수」중에서 인생사 한 치 앞을 모르고 나서야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완전한 질문으로 이끄는 직관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러니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은 분명히 절망이겠으나, 어찌 그 절망의 황홀함을 한 치 앞을 내다보는 기쁨 따위에 비할 것인가. 나뭇잎 하나 지는 까닭을 모르고서도 가을이면 단풍이 황홀하듯 인생사 한 치 앞을 모르고서도 삶은 황홀하다.---「작가의 말」중에서 인자 고만 허믄 중간이나 가믄서 살살 살었으믄 좋겄는디, 그눔이 나이 오십 먹두룩 여태 막무가내루 빽도루다만 사는 디는 나두 두 손 두 발 다 들었네. 입만 열믄 그띠나 시방이나 시상이 크게 달버진 게 읎다는구먼. 시방두 시상이 왔다배기루 부자 아니믄 갔다배기루 가난헌 사람들만 수두룩빽빽이지 중간은 읎다는겨. 맬깡 시상이 작전 실패라는디 나는 참말루 알다가두 모르겄어. 쌍눔의 거, 워떤 눔의 시상이 오야(와야) 우덜맨치 도찐개찐으루 사는 인생덜이 중간이나 가믄서 살어보는겨? 워치게 혀야 그눔의 작전 성공 한 번 혀보는겨? 워떤 시상이 오야 우덜 막내가 빽도루 그만 살어두 좋은겨? ---「작전 실패」중에서 “근디 말여, 지비 그런 찬송 알어?” “찬송이요?” “그려, 찬송.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이 그중이 지일(제일)은 사랑이라, 허는 거.” “알죠. 교회 다니세요?” “아녀.” “그런데 그 찬송을 어떻게 아세요?” “만신님 십팔번이여.” “만신님이 교회 다니세요?” “아녀. 워디서 줏어들은 모냥인디, 가사가 맘에 든대나 워쩐대나 뻑허믄 이 찬송이여.” “허, 참. 십팔번 삼을 만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있구 말구. 생각혀봐, 월매나 기가 찼겄어. 지 점괘를 지가 봐놓구선두 못 피해 갔는디 누구를 원망헐겨? 한 치 앞을 못 봐야 먼 일을 내다보는 만신 팔잔디.” “그렇지요.” “근디 마누라가 가만히 생각혀보니께 한 치 앞이 그 지경으루 어두웠든 디는 다 까닭이 있었드라 이거여.” “그 까닭이라는 게 뭘까요?” “아, 듣구두 몰러? 사랑이 지일(제일)이라잖여.” “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이서 그중이서 지일 지랄은 사랑이라잖여!” ---「한 치 앞도 모르면서」중에서 중생이 울면, 하나님도 울고 부처님도 운다. 중생이 울면, 하나님이 부처님처럼 울고 부처님이 하나님처럼 운다. 중생이 울면, 부처님 울음소리에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하나님 울음소리에 태산 같은 업장이 무너진다. 부처님과 하나님이 다투어 더 크게 울면, 비로소 중생의 울음이 그치리라. ---「암자 만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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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남덕현의 문장은 저잣거리 판소리 사설처럼 거침없는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하다. 그의 문장이 시장 한복판을 통과해왔기 때문이다. 시장은 삶의 도가니다. 이 책의 소재들은 아주 통속적이고, 그 통속은 위선과 기만으로 포장된 삶의 근본 문제들이다. 그래서 시장의 가지와 줄기를 타고 내려간 그의 문장이 삶의 ‘뿌리’를 툭, 툭 건드리며 허파를 뒤집는 것은 속절없는 즐거움이다. -이산하(시인) 울다가 웃으면 xxx에 털 난다던 어릴 적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덕현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 말이 떠오른다. 슬픔에게 말을 거는 그의 방식은 참 ‘심판읎다’. 헤쳐 보면 고름이 질질 흐르게 생긴 상처인데도, 상처 입은 이나 그걸 건드리는 이나 피차 남 얘기하듯 한다. 허 참 이거, 울다가 웃으면 안 되는데……. -정범구(전 국회의원) 『충청도의 힘』보다 더욱 깊고 진해진 서사와 풍자 『충청도의 힘』의 남덕현 작가가 3년 만에 『한 치 앞도 모르면서』로 돌아왔다. 2013년 『충청도의 힘』은 충청도 노인들의 일상을 해학적으로 풀어내 화제를 모았다. 이번 책 또한 노인들의 삶을 질펀한 충청도 방언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충청도의 힘』의 속편이라고 할 만하다. 책은 저잣거리 판소리 사설처럼 거침없는 해학과 풍자로 가득하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모르면서』는 『충청도의 힘』보다 두 가지 측면에서 진화한 면모를 보인다. 우선 두드러지는 점은 ‘서사’다. 이번 책은 전작에 비해 각 편의 길이가 늘어나면서 단편소설 같은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그 결과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고 재밌어졌다. 다음으로는 ‘현실 풍자’다. 충청도 시골 노인들의 삶이 놓인 현실, 즉 이중삼중의 모순이 중첩된 현실을 비켜가지 않는다. 작가는 노인들의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통해 도시의 시종이 되어버린 농촌, 세습되는 가난과 불평등, 현실 정치의 반민중성 등을 강력하게 풍자한다. 웃긴데 슬픈, 바야흐로 ‘웃픈’ 이야기의 향연이라고 할 만하다. 통속은 힘이 세다! 추천사를 쓴 이산하 시인의 말처럼 “이 책의 소재들은 아주 통속적”이다. 신임 노인회장 부인과 전임 노인회장 부인 간에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 남의 불행은 귀신같이 맞히면서도 자기 앞날은 못 맞혀 웃지 못 할 상황에 빠지는 만신, 이복누이 동생 간의 평생 동안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등 책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기구절창 나는 사연들로 가득하다. 책은 마치 한 편의 잘 짜인 통속 드라마 같다. 그러나 이러한 통속적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독실한 크리스천 어머니에게 아들을 감옥에 보낸 늙은 아비가 예수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 말이 틀류? 낭중이(나중에) 도루 내려보내마 허셨을랑가는 몰러두 엄니두 생각을 혀봐유. 되살이혔는디 하늘루 델꾸 가긴 왜 델꾸 간대유? 사램덜허구 여태까장 한티루 장 살았으믄 예수 믿어라 워쩌라 난리굿을 안 혀두 눈으루 빤히 뵈는디 워떤 눔이 안 믿구 배기겄유? 안 그류? 지두 아는 눔의 걸 하나님이 몰러서 델꾸 가신 건 아니잖유? 지가 볼 띠는 당장 내 새끼 두 번 죽게 생겼는디 워디든 넘들이 해코지 못 허는 디루다 델꾸 가는 게 급허지 딴 생각이 들었겄남유? 부모 맴은 똑같은규. 그르니께 하늘루 델꾸 가신 거 아뉴?” 책에는 이런 식의 통찰이 통속적인 이야기 곳곳에 숨어 있다. 그렇다면 『충청도의 힘』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작가가 이렇게 통속에 매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통속이야말로 인류 역사를 관통해온 삶의 근본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통속과 통찰은 ‘충청도 방언’을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책의 대부분은 충청도 노인들의 대화다. 대화는 능청맞고 질펀한 충청도 방언으로 이루어진다. 그 방언이 노인들의 대화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비루한 삶의 현장에서 평생을 견디며 살아온 노인들에게, 그래서 “인생 별 거 읎다”는 것을 체득한 이들에게 방언은 자신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속과 방언은 한몸이 된다. 절망의 나락에서 비로소 열리는 직관의 세계 이 책의 주인공들은 충청도 시골에 사는 노인들이다. 대부분 볼품없는 인생들이다. 가난한 소작농 출신이거나 첩 자식이고, 노구를 이끌고 여전히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평생을 한 동네에서 벗어나보지 못한 노인들이다. 이들은 뭘 배워서 아는 출신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삶이 무엇인가’를 잘 아는 인생 달인들이다. 체득한 삶이기 때문이다. 정범구 전 국회의원의 말처럼 이들의 인생은 “헤쳐 보면 고름이 질질 흐르게 생긴 상처인데도, 상처 입은 이나 그걸 건드리는 이나 피차 남 얘기하듯 한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사랑하는 ‘직관의 세계’이다.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절망의 나락에서 비로소 깨닫는 세계! 웃다가 울며 책을 읽다가도 문득 설명 못할 허무를 경험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직관의 세계가 열릴 것이고, 진리란 완전한 답이 아니라 완전한 질문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책의 한 꼭지 제목이면서 책 제목이 된 ‘한 치 앞도 모르면서’는 이러한 직관의 세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이다. 이것은 분명히 절망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한 치 앞이 안 보이니까 신기(神氣)를 보는 게지, 한 치 앞 훤히 보는 사람치고 먼 일 내다보는 사람 보셨습니까?”라는 책 속 등장인물의 물음처럼 “인생사 한 치 앞을 모르고 나서야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완전한 질문으로 이끄는 직관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비극적 세계관이다. 하지만 어찌 그 절망의 황홀함을 한 치 앞을 내다보는 기쁨 따위에 비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