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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
2. ‘패션플라워호’의 출항 3. 바닷가의 녹색 신부 4. 파리용과 페릴랜드 5. 코르셋, 대구, 그리고 변비 6. 항해 장비를 찾아서 7. 전속력 후진 8. 바다 노인의 술 벌이 9. 안개 만들어지는 곳 10. 자욱한, 너무도 자욱한 11. 뷰린의 소년들 12. 바스크의 깃발을 달다 13. 너무도 순결한 영혼과 함께 14. 이치―애스―샐리 15. 오레곤호 항해기 16. 게임을 하다 17. 서쪽으론 싫어! 18. 메서스여 잘 있거라 19. 이역 바닷가에서 20. 안녕 엑스포! 21.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옮긴이의 말 |
Farley Mow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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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잭은 내가 술 취한 상태였거나 보지도 않고서 배를 산 거라며 나무랐다. 하지만 보지도 않았다는 비난은 받아들일 수 없다. 속이 보일러 끓듯 뜨거운 데다 엄청나게 더운 부엌 한가운데 앉아 있는 동안, 할로언 형제는 자기네 아일랜드 조상에게 전수받은 마법을 발휘하여 그 작은 스쿠너선을 불러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나는 부엌에 있지만 배를 바로 곁에서 보는 듯했다. 결국 패디를 와락 껴안으며 상어 가죽 같은 그의 손에 돈뭉치를 찔러줄 때, 나는 완벽한 배를 구했다고 확신을 했다. --- p.18
10일 저녁 늦게, 우리는 틈새에 뱃밥을 마저 먹이고 칠을 마친 다음 만조 때 배를 부두 나들목으로 끌고 갔다. 곧이어 배는 자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분명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내가 아는 그 어떤 배에서도 볼 수 없던 그 특징이란, 물이 샌다는 것이었다. 물은 딱히 어느 부분으로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어딘지 알 수 없는 미세한 구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때만 되면 펌프질을 해야 했고, 그 사이에는 물이 어느 수준까지 차올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우리 셋밖에 없는데다가 일제히 쓸 수 있는 펌프가 셋뿐이었기 때문이다. --- p.52 하지만 언어가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내놓은 럼주 몇 병 덕에 우리는 인류 공통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날 밤을 세인트쇼츠에서 묵었고 세인트쇼어스에도 잠시 들러 보았다. 꿈같은 일이었다. 지금보다 투박하고 야생적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마술 같은 여행이었다. 어느 집 할머니는 금화가 가득한 적갈색 나무 궤짝을 보여 주었다. 그중에는 처음 이곳을 드나들던 스페인 사람들의 금화도 있었다. 그런데 이 두 마을에는 거의 집집마다 그런 궤짝을 외딴 바위틈 어딘가에 숨겨 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현대식 항해 보조 수단이 이곳 사람들의 전통인 정직한 생계 수단을 박탈해 버릴 때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 p.80 “그 친구들한테 뭐라고 했냐 하면, 이 배는 아무 나라 소속도 아니니까 우리가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 우리 모두 바스크인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바스크인이 한때는 세계 최고의 뱃사람들이었지만 프랑스와 스페인 놈들한테 점령당한 뒤로는 우리 깃발을 달고 항해를 나가는 배는 단 한 척도 없지 않느냐고 했지. 그러니 이 참한 작은 배를 받아들이면 어떠냐고. 이름도 다시 붙이고, 바스크의 일곱 개 지방을 대표하는 깃발을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야. (……).” 그리하여 해피어드벤처호는 뉴펀들랜드 배로서의 명을 다하고 바스크 상선단을 대표하는 기함(旗艦)이 된 것이다. --- p.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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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대표 작가, 팔리 모왓의 모험 이야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글쓰기 팔리 모왓은 캐나다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 중 하나이다. 그의 책은 24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만 부가 팔렸다.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펜을 놓지 않는 힘, 50년이 넘도록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작품이 사랑받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개인적 삶과 자연학자로서의 체험, 고정관념을 깨고 진실을 보는 눈,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필력에 있지 않나 싶다. 그는 토론토 대학 재학 중 현지답사 연구에서 백인의 몰이해와 착취로 죽음에 내몰린 이누이트의 실상에 분노하고 훗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데뷔작 《사슴의 사람들》(1952)로 일약 유명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이어 이누이트와 북극을 배경으로 한 모험담 《로스트 인 더 배런스》(1956)로 캐나다 최고 권위의 문학상 ‘거버너 제너럴 어워드’를 수상한다. 이어 캐나다 북극 늑대를 연구하며 쓴 《울지 않는 늑대》(1963)로 캐나다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은 그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한데 늑대를 사악한 킬러로 보는 상투적인 고정관념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모왓은 이처럼 작가의 개인적인 삶과 자연학자로서의 체험을 녹여 글을 쓰는 까닭에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팔리 모왓 표’ 글쓰기를 표방한다. 모왓을 처음 읽는 독자들은 소설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해 고개를 갸웃할 법하다. 하지만 어떠랴. 모왓만의 ‘같기도 글쓰기’를 읽는 즐거움을 누리면 그만인 것을. 또한 모왓은 뛰어난 문장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속도감과 힘 있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우아하고 사적이며 대화적인 문체도 독특하다. 또 어떠한 소재를 다루든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울지 않는 늑대》를 읽었거나 아쉽게도 아직 그를 접하지 못했다면 이 책에서 자연주의 에세이스트의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기를 권한다. 돛을 올리고 전속력 후진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찾아 떠나는 유쾌한 범선견문록 이 이야기는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온타리오까지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다. 때는 1960년대, 범선의 시대가 가고 증기선의 시대가 서막을 여는 즈음이다. 모두가 새로운 기술문명을 좇는 동안 모왓은 거꾸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따라 간다. 어쩌면 이 오랜 여행의 출발은 ‘자유를 찾아서’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평생 북극이나 시베리아, 뉴펀들랜드 같은 변방을 탐험하며 원초적인 인간, 자연과 야생동물을 따라 살아온 관성은 버릴 수 없었던 듯싶다. 어느 날 뭍에서의 일상에 지친 팔리 모왓과 잭 매클랜드는 계획을 세운다. 배를 하나 사서 거친 바다를 어디까지고 자유롭게 다녀 보자고. 단, 배를 포함해 무엇이든 구식으로 하기로 한다. 배를 구하기 위해 뉴펀들랜드로 간 팔리는 스크리치(뉴펀들랜드 술)에 홀려 작은 범선을 산다. 두 사람은 고치느니 버리는 게 차라리 나을 듯한 이 범선을 포기하지 않고 항해 준비를 한다. 엔진은 제멋대로에 어디랄 것 없이 물이 새고, 사람보다 장비를 먼저 생각한 편의시설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해피어드벤처호’와 함께. 도무지 안 가려는 해피어드벤처호는 과연 이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내가 세인트존스를 싫어하는 건 기생성 때문이다. 적어도 300년 동안 그곳은 돌로 만든 높다란 관문 뒤에 웅크리고 있다가 외딴 어촌 사람들의 피를 빨아 배를 채우는 거머리 같은 존재였다. 1960년대 초인데도 그곳은 텍사스의 댈러스를 포함하여 북미의 그 어느 도시보다 백만장자의 비율이 높았다. 그러나 부는 조그만 어촌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여 얻은 것이었다. 어민들은 뉴펀들랜드가 1949년에 캐나다 연방에 편입될 때까지 세인트존스의 상인들에게 중세식으로 착취를 당했다. 워터스트리트에 줄줄이 큰 창고와 회계 사무소를 두고 있던 상인들은 어민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워터스트리트 해적”이라 불렀다. 상인들은 소극적이긴 해도 계속적인 반감의 표적이 되자 오히려 사람들을 차갑게 깔봄으로써 맞섰다. 그들은 영국만 쳐다보고 살았기에 영국식 억양으로 말하고 아이들을 영국으로 보내 교육하는, 말로만 뉴펀들랜드 사람들이었다._37~38쪽에서 팔리 모왓의 특별한 항해는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고물 배와 사투를 벌이는 한편 뉴펀들랜드에서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어촌민들의 부박한 삶과 자연을 보여 준다.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모왓은 이 세계의 민속, 문화, 야생, 역사, 정치, 과학, 사회의 면면을 접하고 이곳 자연과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느낀다. 작가는 고향을 떠나느니 차라리 ‘안’ 뜨고 말겠다는 이 고물 배를 통해 사라져 가는 것들의 고유한 세계에 대한 향수와 애정을 보여 준다. 억세면서 순박하고 자존심 강한 이곳 주민들은 자립과 자치의 삶을 살며 지배나 통치나 권위에 저항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 친구들한테 뭐라고 했냐 하면, 이 배는 아무 나라 소속도 아니니까 우리가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 우리 모두 바스크인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바스크인이 한때는 세계 최고의 뱃사람들이었지만 프랑스와 스페인 놈들한테 점령당한 뒤로는 우리 깃발을 달고 항해를 나가는 배는 단 한 척도 없지 않느냐고 했지. 그러니 이 참한 작은 배를 받아들이면 어떠냐고. 이름도 다시 붙이고, 바스크의 일곱 개 지방을 대표하는 깃발을 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야. 그래, 이 참에 이 배한테 선적항도 등록증도 전부 바스크 것으로 해 주자! 그러면서 유서 깊은 우리 조국의 깃발을 달고 바다로 나가는 배가 적어도 하나는 되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친구들이 뭐라고 했겠어?”_180쪽에서 팔리가 이 고물 배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속력으로 후진하는 고물 배는 급변하는 세상을 좇아가느라 허덕이는 속도전의 물결을 거꾸로 거스르고자 온몸으로 저항한다. 겉으로는 제 주인에게 비협조적이고 고집불통인 듯 보이나 증기선의 시대를 온 몸으로 거부하고 범선의 시대를 찬찬히 돌아보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같아 보인다. 그리고 생피에르에 다다랐을 때 팔리는 우연히 친구 테오필 드체베리를 만난다. 그는 지난 300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온 바스크 어민의 후손이었다. 그 덕분에 해피어드벤처호는 등록증도, 깃발도, 배를 등록한 선적항船籍港도 없는 떠돌이 신세를 면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스페인 등 외세의 압력에 힘을 잃은 뱃사람들을 대표해 바스크 깃발을 달게 되었다. 이제 탈도 많고 고집불통인 고물 배는 바스크의 옛 영예를 안고 항해를 계속한다. 깃발을 물려받게 된 배를 축하하는 파티에서 팔리는 바스크인의 거점인 미클롱까지 기념 항해를 하게 되고, 동승할 여자 승무원 클레어(팔리와 결혼한 용감한 여인)를 만난다. 배는 여전히 물이 새고 엔진이 말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럼주와 파도 그리고 사랑이 넘실거리는 낭만적인, 얼마간은 ‘해피어드벤처’라는 이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나, 고향으로 돌아갈래! 뉴펀들랜드를 기억하는 범선의 기적 방향을 잃은 나침반에 의지해 수시로 항로를 잃고 갑판에서 물을 퍼내는 모습은 항해가 아니라 표류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는 법. 해피어드벤처호는 마침내 2,253킬로미터의 긴 항해 끝에 몬트리올과 엑스포 67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을 맞아주는 것은 환호와 박수가 아니라 총과 대포 소리, 나팔과 경적, 비명 소리가 내는 불협화음이었다. 캐나다 국기 대신 바스크 깃발을 휘날리는 배에 대한 당연한 예우였다. 엑스포 조직위원회의 고위 인사가 팔리 일행을 환영하는 짧은 연설을 마치고 팔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엑스포는 팔리의 별난 항해 소식을 접하며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이 배가 몬트리올까지 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내기를 하면서. 팔리 모왓이 클레어와 함께 온타리오 호숫가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해피어드벤처호는 뭍에서 여러 전문가들에게 종합검진을 받았다. 물에 띄우고 물이 새면 뭍으로 끌어올리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조선소 주인은 안락사를 권고한다. 마지막 실험에서 ‘해피어드벤처호’는 일주일동안 기적처럼 멀쩡한 채로 물에 떠있었다. 고물 배는 자신의 처지와도 같은 세계, 북미 동쪽 끝자락에 있는 섬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