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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한국 사회와 사이비역사학
사이비역사학과 역사파시즘 / 기경량 [BOX TALK] 사이비역사학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일까 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 / 강진원 [BOX TALK] 만리장성은 국치의 지표인가? 민족의 국사 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 / 장미애 [BOX TALK] 백제의 요서 진출, 그 진실은? 제2부 사이비, 왜 역사학일 수 없는가 한사군, 과연 롼허강 유역에 있었을까? / 이정빈 [BOX TALK] 고조선의 중심지는 어디였을까?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인가 / 위가야 [BOX TALK] 위만은 압록강을 동쪽으로 건넜나 남쪽으로 건넜나 ‘임나일본부’ 연구와 식민주의 역사관 / 신가영 [BOX TALK] 고대사학자의 무한도전 역사서, 『일본서기』 오늘날의 낙랑군 연구 / 안정준 [BOX TALK] ‘초원 4년 호구부’란 무엇인가 ‘단군조선 시기 천문관측기록’은 사실인가 / 기경량 [BOX TALK] 고구려·백제·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 단군―역사와 신화, 그리고 민족 / 이승호 [BOX TALK] 기자조선은 실재했는가? 민족주의 역사학의 표상, 신채호 다시 생각하기 / 권순홍 [BOX TALK] 단재가 단재를 비판하다 제3부 젊은 역사학자들, 사이비역사학과 역사 연구를 논하다 [모두발제] ‘사이비역사학’ 개념의 의미와 한계, 그리고 ‘올바른 역사’의 딜레마 / 김헌주 [좌담] 욕망하는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사이비역사학’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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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역사학의 행태와 해악
의도적인 조작인지 어처구니없는 실수인지 헷갈리는 그들의 ‘헛발질’은 하나하나 셀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민족주의 사학’으로 포장하면서 고대사학계 전체를 ‘식민주의 사학’으로 몰아붙이며 ‘학문에 대한 정치적 테러’를 일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친일잔재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교묘히 이용하여 ‘민족주의 vs 식민주의’ 구도를 만들어내고, ‘타율성론/정체성론/반도적 성격론’의 혐의를 고대사학계 전반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그러나 “고조선(혹은 고구려·백제·신라)은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은 뒤집으면 “한반도에 제한된 나라는 대륙에 휘둘리는 약소국에 불과하다”는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의 강박 그 자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비난하면서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을 두고 팽창의 욕망을 불태우고, 한사군과 임나일본부를 근대적 식민지로 착각하면서 임나와 임나일본부의 기본적인 구별마저 헷갈리고 있다. 차분하고 치밀한 연구 자세는 간 데 없고, 강박관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역사’를 ‘제국에의 욕망’을 발산하는 무기로 착각하는 그들이야말로 ‘식민사학’이 이 땅에 버리고 간 기형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역사학자모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2014년 결성된 소위 ‘식민사학해체운동본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사업들을 강하게 저지하고 나섰다. 『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 출간 및 동북아역사지도사업 등을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명분으로 폐지시키고자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파괴적 시도는 결국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배경에는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동북아역사특위)로 대표되는 다수의 국회의원들의 동조가 크게 작용했다. 학문적 엄밀성을 갖추지 못한 사이비 역사가들의 주장이 마침내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정당한 학문적 성과를 무산시키는 데 이르렀던 것이다. 2010년 이래로 소위 ‘역사평론가’를 자칭하는 저술가들이 쏟아놓은 거짓말들은 진보 언론인과 정치인,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 및 유명 학원 강사의 입을 통해 전파되어 기성세대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의 귀에까지 속속 스며들어갔다. 가만히 있다가 졸지에 식민사학의 종자(從者)가 되어버린 석·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젊은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들의 ‘위압’에 의해 기존의 식민사학 논리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이덕일 씨의 발언 등은 이런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2015년 여름부터 30여 명의 소장 연구자들이 의기투합하여 ‘젊은역사학자모임’을 조직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처음에는 한국역사연구회 등에서 함께 활동하며 서로 얼굴을 익히 알던 사람들로 구성되었는데, 이후 점차 많은 대학의 연구자들이 활동에 직접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2015년 11월부터 2016년 9월까지 경희대 인문학연구원에서 다섯 차례 고대사 관련 콜로키움을 열었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에 실린 글들은 ‘젊은역사학자모임’이 콜로키움에서 발표했던 논문들을 대중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새롭게 다듬고 엮은 것들이다. 이제 책의 출간과 함께 ‘젊은역사학자모임’도 1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젊은역사학자모임’의 활동 이후 학계 차원의 정식 대응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현재 ‘사이비역사학’ 저술가들의 활동은 다소 주춤한 상황이다. 진보 언론들 역시 경계심을 가지게 되어 그들의 일방적인 논설을 추종하여 실어주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다시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 혹은 쇼비니즘적 감성에 기대어 도래할 수 있는 그들의 활동을 경계하는 노력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 특히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학계의 성과를 대중화하는 데 소홀했던 것이 이번 사태를 심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