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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서문
프롤로그. 운명의 교차점 제1부. 1. 정숙함과 돼지 2. 혁명이 아니라 주먹을! 3. 총알과 배낭 4. 원숭이와 곰 제2부. 5. 멕시코의 어느 추운 밤 6. 원정 동지들 7. 진창과 잿더미 8. 총력전 제3부. 9. 포옹과 키스의 나날 10. 혁명의 해부 11. 교수형 올가미 12. 침몰하는 호의 제4부. 13. 새로운 노선 14. 직설화법 15. 기념일 16. 예고된 삶과 죽음 에필로그.결코 끝날 수 없는 관계 역자 후기 인용 출처에 대하여 주석 참고문헌 및 사진 출처 |
Simon Reid-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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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정대에서 게바라의 공식적인 역할은 의무장교이자 대원관리 대장이었다. 게바라는 지난여름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 이후로 지배적인 인물인 피델에게 개인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모든 것을 내맡겼고, 고귀한 대의를 위해서라면 “이국의 해변에서 죽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하지만 그는 그들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나름의 우려도 갖고 있었다. 상식 선에서는 어떻게 생각해봐도 성공이 불가능해 보이긴 했지만, 게바라의 걱정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따위가 아니었다. 그날 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게바라는 반드시 그들의 목표를 이룰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과 낙관론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게바라의 우려는 다른 데 있었다. 혁명이 일단 성공하고 나면 라틴아메리카에서 부패 정권을 전복했던 여타 경우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게바라는 쿠바혁명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른 혁명과 마찬가지로 서구의 달러와 부르주아적 탐욕에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pp.20-21
피델은 진술의 말미에서 “부당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는 판사를 용서한다고 말한 뒤, 최후진술을 마무리했다. “저는 자유를 구걸하지 않겠습니다. (……) 오늘의 침묵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역사가 모든 것을 분명히 밝혀줄 것입니다.” 후에 감옥에서 피델은 이 마무리 발언을 다듬어서 20세기 최고의 정치적 발언으로 남을 문장을 완성했다. 응축된 저항의 외침이었다. “나는 내 수감 생활이 비겁한 협박과 추악한 잔인함으로 점철되어 어느 누구보다도 더 가혹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감옥이 두렵지 않다. 전우 70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군의 분노도 두렵지 않다. 얼마든지 나를 비난하라. 난 개의치 않는다. 역사가 나를 사면할 것이다!” --- pp.100-101 피델 카스트로와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각자 1년 상간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둘 다 이곳을 선택했고, 1955년 어느 여름밤에 마침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곳도 바로 이곳, 멕시코시티였다. 그때까지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고 완전히 다른 경험을 쌓아왔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두 사람 모두 하나의 적을 만났고 이 적에 맞서 싸우리라 결심했다. 이 공동의 적은 바로 외국의 내정간섭이었다. 그들은 외국이라는 점이 아니라 간섭이라는 점 때문에 이 문제를 대항해야 할 적으로 상정했다. 외국의 간섭 때문에 부패하고 사치스럽고 때때로 폭력적인 정권이 들어서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 두 사람이 성격은 달라도 처한 입장이 비슷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이미 하나로 겹쳐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 pp.133-134 피델과 체의 만남이 쿠바 역사가들이 말하는 것만큼 단번에 불꽃이 튀면서 의기투합한 형세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두 사람이 지녔던 운명론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켜준 계기는 되었다. 무엇보다, 더 연륜이 깊고 더 성장한 인물인 피델이 체의 가치와 능력을 높이 산 것 같다. 피델은 이 아르헨티나인을 신뢰할 수 있을지를 놓고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에르네스토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피델은 에르네스토에게 한마디의 맹세도 요구하지 않은 채 그저 그를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인 뒤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에르네스토는 자신이 만난 다른 혁명 지지자들에 비해 피델이 단연 눈에 띈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델과 만난 이후에 곧바로 일다에게 말했다. “니코가 과테말라에서 하던 이야기가 다 맞았어. 마르티 이후로 쿠바가 내놓은 걸출한 인물이 바로 피델 카스트로라고 했었거든. 그는 혁명을 일으킬 거야. 우리는 서로 아주 잘 맞아. 그는 이제까지 내가 찾고 있던 그런 사람이야.” --- p.147 처음에 체를 대하는 피델의 태도는 그들이 가고 있는 울퉁불퉁한 길처럼 기복이 심했다. 감옥에서 다진 전우로서의 애정은 과거의 일이었다. 피델은 체의 실패를 호되게 꾸짖다가도 금세 그가 좋은 자질을 갖췄다며 추켜세웠다. 피델은 혁명군 모두를 이렇게 대했다. 이는 부하들이 방심하지 않도록 만드는 피델만의 방법이었다. 피델은 유독 체에게 심하게 굴었는데, 그가 다른 이들보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행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전쟁 상황에서 이런 시련까지 겪게 되자 사람들의 분위기가 격해졌다. 이는 투쟁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피델과 체 사이에 최초의 심각한 대립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체는 피델의 변덕스러운 행동 때문에 불만이 커져갔다. 하지만 체의 분노는 피델의 우유부단해 보이는 행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체는 혁명군의 사명과 임무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피델 옆에서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p 189 혁명 초기에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피델과 체의 관계가 과거와는 달리 서로의 재능을 인정하고 공통의 신념을 향해 함께 협력해나가는 공조 관계로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이전에 체는 어떤 일을 끝까지 완수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고 피델은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대화는 시작하려고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피델과 체는 서로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아 더 나은 관계를 형성했다. 권력 면에서는 두 사람의 차이점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 전면에 나서서 사람들을 이끄는 일은 피델의 몫이었고, 배후에서 두 사람이 계획했던 대로 혹은 피델이 가리키는 대로 사람들을 조직하는 일은 체의 몫이었다. 피델의 명연설도 체라는 막후 연설자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결과였다. --- pp.267-268 이렇게 위험이 고조되는 순간에 피델이 본능적으로 찾은 사람은 체였다. 피델은 체가 항상 자신의 곁에 있어줄 것임을 알았고 누구보다도 그의 충성심을 믿었다. 1961년 말로 갈수록 체는 최소한 정당 정치에서는 소외되고 있었다. 피델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체는 정치적 지위에 관심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어쨌든 지금은 장관직에 전념하고 있었다. 피델의 깊은 신뢰를 받는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이 체도 고립과 포용의 부단한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피델이 에스칼란테 활동 조사위원회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에도 체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피델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혁명도 위험했고 체는 둘 모두를 지킬 생각이었다. 체의 생각대로 피델과 혁명은 분리될 수 없었다. --- p.305 그러나 피델은 어떤 혁명이라도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도자는 현명해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며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피델도 히론 전투 때는 열성적으로 뛰어들었지만 그것은 몇 년 전의 일이었다. 피델은 이제 더 이상 직접 게릴라가 되어 전투에 임할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 “지금은 볼리바르들의 시대가 아닙니다. 대중들의 시대이죠.” 피델이 대답했다. “과거에는 볼리바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았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적습니다.” (…) 피델은 소련과의 관계로 인해 해외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고 국내에서는 체 게바라와의 사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이런 제약들 속에서 자신이 볼리바르처럼 한 사람으로서 해낼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델과 체가 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해외의 혁명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한 동시에 국내에서는 명목상 평화공존 기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두 사람의 정치적 이견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 pp.352-353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나의 도움을 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쿠바의 수장으로서의 책임 때문에 부인할 수밖에 없는 일을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내가 기쁨과 슬픔이 섞인 감정을 안은 채 떠난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나는 혁명의 건설자라는 가장 순수한 바람을 버리고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 곁을 떠납니다. 게다가 나를 아들로 받아들여준 사람들을 떠나려니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신념과 우리 국민들의 혁명 정신, 가장 성스러운 의무감을 마음에 안고 새로운 전투에 임할 것입니다. 제국주의가 횡행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맞서 싸울 것입니다. 이런 계획과 전망으로 아픈 마음을 달래봅니다. --- pp.380-381 피델과 체의 관계는 1967년 10월에 끝난 것이 아니었다. 체의 죽음으로 인한 여파로 그 이듬해에 피델은 무척 바빴을 뿐만 아니라 피델이 권좌에 있었던 나머지 39년 동안 늘 체의 흔적이 피델을 따라다녔다. 수년이 흐른 후 어느 기자가 체에 대해 묻자 피델은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 채 광택이 나는 나무탁자를 주먹으로 누르면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나는 체에 대해 많이 꿈꿉니다. 그가 살아서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꿈꿉니다. 나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장면을 꿈꿉니다.’라고 말했다.” 체가 죽고 난 뒤 몇 달 동안 피델은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어 보이면 누구에게든 비난을 퍼부었다. 피델은 이제 세계적으로 체의 이미지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해 가을에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부터 시작해서 1968년 5월 혁명까지 체의 얼굴은 모든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피델은 파리의 학생 행진이나 워싱턴의 참전용사들의 시위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쿠바에서는 체를 상징화하는 일을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었다. --- p.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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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정치적 우정을 나눈 피델과 체
쿠바 혁명의 시작과 냉전의 정점을 아우르는 두 영웅의 이야기 반세기 이상 사회주의 국가 쿠바를 이끌었던 피델 카스트로. 그에게는 혁명의 순간을 함께 한 동지가 있었다. 바로 이 시대 저항 운동의 상징이 된 체 게바라다. 그들 개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록물이 나오고 있지만, 12년을 함께 한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역사가들에게도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 “역사가들에게 스탈린이 눈에 띄지 않는 ‘회색 얼룩’ 같은 존재였듯이, 수십 년 동안 피델과 체의 관계도 흔들리는 유령의 형체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문제였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들의 관계는 그동안 진지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웅변가이자 달변가였던 피델 카스트로였지만 권좌에 머무는 동안 체 게바라와의 12년 우정에 대해서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시간 자신을 따라다니는 체 게바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생사를 넘나들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동안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관계였다. 역사적으로 ‘환상의 콤비’라 불리는 엥겔스와 마르크스, 트로츠키와 레닌보다 더 끈끈하고 긴밀한 사이였다. 둘은 동지이자 공동의 목표를 향해 싸우는 전우였으며, 둘의 우정은 피로 맺어진 것처럼 완전했고, 짧았지만 치열했다. ‘피델 카스트로 & 체 게바라’(21세기북스 펴냄)는 한 국가를 뒤바꾸고 전 세계 사람들의 생각을 뒤엎은 피델 카스트로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정치적 우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사이먼 리드헨리(Simon Reid-Henry) 런던대학교 교수는 아바나와 워싱턴, 모스크바, 마이애미, 프린스턴, 보스턴, 런던, 베를린 등지에서 모은 기밀문서를 포함한 방대한 문서 자료와 이 두 영웅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쿠바 혁명을 이끈 두 인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최초로 밝혀냈다. 이 책에는 두 사람이 공유한 혁명적 야망과 두 사람의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 두 사람을 이어줬던 신념 등 그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나는 체에 대한 꿈을 꿉니다. 그가 살아서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꿈꿉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장면을 꿈꿉니다.” _체 게바라 사후 피델 카스트로의 인터뷰 중 이 책은 지금까지 출간된 책들과는 달리 그들의 치열했던 12년 동안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같은 꿈을 품은 두 영웅의 굳은 신념과 강한 유대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는 그들이 만나기 전까지의 이야기로,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성격도, 쌓은 경험도 다른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는 몬카다 습격(일명 7·26 사건)으로 멕시코로 온 피델과 고향 아르헨티나를 떠나 멕시코에 정착한 체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그들이 의기투합해 공동의 목표를 향해 쿠바로 가는 과정을 그렸다. 3부는 두 사람이 쿠바를 그들의 나라로 만드는 과정과 소련과의 관계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제 목소리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4부는 신념을 택한 체 게바라의 떠남과 죽음, 그리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당시 숨겨진 그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대륙의 양 끝에서 태어나 한 사람이 죽기까지…, 그들의 이야기에는 지금껏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우정이 담겨 있다. 외향적이고 강한 카리스마로 사람들의 위에 서기를 좋아했던 피델과 다소 내성적이고 책 읽기를 좋아했던 게바라. 그들은 때론 동지이자 조언자로, 때론 서로를 가장 잘 아는 거울과 같은 비판자로 서로에게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자 서로의 생각을 북돋워주는 훌륭한 파트너였다. 선택의 순간 각자의 신념대로 그들 각자가 그리는 혁명의 미래를 향해 떠났지만 언젠가는 다시 서로를 찾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꿈꿨던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대한 혁명은 그들의 특별했던 우정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꿈이었다. 둘은 서로에게 배웠고, 서로가 정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헤어지던 순간 그 둘의 운명도 빛을 잃었다. 피델은 40년 이상을 체 게바라 없이 살았다. 그러나 그는 체의 흔적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만남은 역사 그 자체였다. 그 만남 이후의 쿠바 역사는 곧 모든 라틴아메리카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