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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할둔
역사의 탄생과 제3세계의 과거 양장
알마 200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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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이론/비평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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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초판 후 32년
머리말

제1부 제3세계의 과거
1장 일반적 특징과 기본 구조
2장 고귀한 가문 출신의 정치인
3장 콘도티에레에서 역사가로
4장 아랍 침공의 신화
5장 14세기의 위기
6장 국가의 변정성쇠
7장 도시민에 대한 비난

제2부 역사의 탄생
1장 투키디데스와 이븐 할둔
2장 역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개념 형성
3장 역사학의 출현
4장 역사가의 배경과 합리주의의 상속
5장 종교적 반동의 결과

맺음말
덧붙이는 글
옮긴이의 글
부록_주·인명·지명 및 사항·연표·지도·연보

저자 소개 1

이브 라코스트

관심작가 알림신청
 

Yves Lacoste

1929년 모로코 페스에서 태어나 유서 깊은 지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후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하였다. 20대 초에 베르베르족을 연구하기 위해 알제리로 갔으며, 전쟁이 일어난 1955년 수도 알제에서 장 드레슈Jean Dresch의 지도 아래 지리학으로 국가박사학위를 마치고 지리학 교수 자격을 얻었다. 당시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 항의하는 급진적인 청년들처럼 1956년 프랑스 공산당원이었고 이후에도 제3세계 문제를 파고든 주요한 지정학자이다. 그의 지정학은 특히 사람을 중시하는 특성을 갖는데 1956년 발간한 『저개발의 지리학』은 15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960년대 초부터
1929년 모로코 페스에서 태어나 유서 깊은 지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후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하였다. 20대 초에 베르베르족을 연구하기 위해 알제리로 갔으며, 전쟁이 일어난 1955년 수도 알제에서 장 드레슈Jean Dresch의 지도 아래 지리학으로 국가박사학위를 마치고 지리학 교수 자격을 얻었다. 당시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 항의하는 급진적인 청년들처럼 1956년 프랑스 공산당원이었고 이후에도 제3세계 문제를 파고든 주요한 지정학자이다. 그의 지정학은 특히 사람을 중시하는 특성을 갖는데 1956년 발간한 『저개발의 지리학』은 15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960년대 초부터 진취적인 파리 뱅상대학(파리 제8대학)에서 강의하였고, 베트남 현지 조사로 미군의 홍하 제방 폭격을 비판하였으며 『지리는 우선 전쟁 수행에 봉사한다』(1976)를 출간하였다. 주요 저서로 『이븐 할둔―역사의 탄생과 제3세계의 과거』, 『제3세계의 통일성과 다양성』(1980), 『반제3세계주의자들과 어떤 제3세계주의자들에 대한 반론』(1985), 『프랑스 지역 지정학』(1986)이 있으며, 『마그레브의 사람과 문명』(1994), 은 인류학자인 부인 카미유 라코스트 뒤자르뎅Camille Lacoste Dujardin과의 공저이다. 그 밖에도『지정학사전』(1996), 『세계의 물―생명을 위한 전투』(2006), 『지정학―오늘의 장기 역사』(2006)가 있다. 이브 라코스트는 궁극적으로 권력과 지배의 학문이 아닌 지정학의 민주화를 추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76년 지리와 역사, 지정학을 일반에 알리기 위한 잡지 〈헤로도토스〉를 창간하였고, 1989년에는 프랑스 지정학연구소를 창설하였다. 2000년에는 지리학 분야에서 유명한 보트랭 루드Vautrin Lud 상을 받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파리 제8대학 명예교수와 역사 지리 잡지〈헤로도토스〉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 노서경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시간강사이다.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나와 한국일본 외신 기자, 주한프랑스대사관 근무 경력을 갖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프랑스 정치사와 사회주의사를 공부하였다. 「프랑스 노동계급을 위한 장 조레스의 사유와 실천」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사회주의와 자유』를 비롯하여 조레스의 텍스트를 번역하였다. 『자식인이란 누구인가』를 쓰면서 프랑스와 알제리 관련 분야로 연구를 넓혔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문화’연구팀 연구원으로 있다. 북아프리카 관련 논문으로 「알제리전쟁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과거’ 성찰―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프랑스 식민주의 비판사학의 동향」「알제리민족운동과 정치문화의 전이―페르하트 압베스」 들이 있다. 근래 알제리전쟁기의 여성전투원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1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15쪽 | 727g | 153*224*30mm
ISBN13
9788992525640

책 속으로

[초판 후 32년]
이븐 할둔의 작품에서 놀라운 것은 그 작품이 근본적으로 사회?정치적 변화의 표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변화를 정확히 설명하는 노력으로 이 일련의 국면을 부족들과 마그레브 국가들에 동시에 관계된 권력관계를 좇는 것이다. 이븐 할둔이 “아사비야”라는 용어로 가리킨 것이 그것이다. 그의 작품 안에 있는 이 기본 개념은 상당히 복잡하다. … 다시 말해 이 개념의 진정한 함의와 영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븐 할둔이 마그레브에서 겪었고 심지어 연루되었던 정치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하고자 노력했던 바이며 그것으로 14세기 이후 세계가 겪게 되는 진화를 요약하고자 했다. 요지는 유럽 자본주의의 발전과 특히 20세기 중반에 제3세계라고 부르는 영역 안에서의 식민지적 종속 현상이다. --- p.12

[머리말]
이븐 할둔의 작품이 지닌 고도의 독창적이고 중요한 특징은 오늘날 저개발의 깊은 원인을 연구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드시 마그레브 역사가의 작품과 저개발 사이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 … 이븐 할둔은 경제와 사회, 정치의 진화를 둔화시킨 (혹은 저해한) 중세적 구조를 연구했다. 그렇게 지체된 터에 외부의 힘이 가해지자 여러 가지 효과들이 결합하여 수세기 후에는 식민화를 가능케 했고 식민화는 저개발 현상의 출현을 결정지었다. --- pp.23-24

오직 식민지라는 사실이 현재의 저개발 상황을 설명해주는 우선적이고 필요하고 충분한 역사적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그런 것 같지 않다. 특히 유럽이 나머지 세계보다 경제·사회적으로 언제나 앞섰던 것은 전혀 아니다. 특히 유럽의 기술적 도약은 상대적으로 늦었다(18세기와 19세기). …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주요한 국가들에서 실현된 과학적·기술적 수단들―유럽은 19세기에 와서야 이룩하는 수준과 비교할 만하다―이 왜 중세에 곧장 경제 발전 과정으로 나아가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극히 도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우리가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매우 복잡한 경제?사회적 현상이 실현되려면 어떤 일정한 상태의 생산력이 존재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위에 특히 부르주아지라는 사회 계급이 생산수단을 조정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근본적인 구조 변형을 해야 하며 혁신과 투자를 실행하는 데 몰두해야 한다. 그런데 복합적인 역사상의 원인들 때문에 유럽 경제 발전의 필수 요인들인 부르주아지는 세계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에서 성립되지 못했고 지속적으로 개인화될 처지에 있지 못했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적으로 특수하게도 유럽적인 계급으로 출현했다. 오늘날 저개발국들은 역사적으로 부르주아지가 없는 지역들이었다. 물론 이븐 할둔은 이 문제들은 제기할 수 없었다. … 그러나 그는 어느 정도 이 문제들을 예감했고, 그것이 그의 천재적 차원이다. --- pp.25-26

이븐 할둔이 분석한 요인들은 북아프리카의 특수성이었고, 다른 사상가들도 필경 그들의 사회를 휘어잡은 상대적 퇴락을 의식했다. 그러나 이븐 할둔은 유럽인들이 도래하기 수세기 전에 이 위기의 연속을 그처럼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정체의 원인들을 신神의 관점이나 대외적 요인들의 작용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내적 구조에서 찾은 유일한 인물이다. --- p.27

이븐 할둔의 비범성은 현재의 역사가들이 제기하는 많은 문제들을 대체로 분명하게 제기했고 경제?사회?정치 구조의 분석으로 이 근본적 문제에 대해 답을 찾은 것이다. --- p.30

[1부 제3세계의 과거]

1장 일반적 특징과 기본 구조

14세기라는 세계의 주요한 특징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븐 할둔은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큰 세계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 사실 중세 아랍 문명은 근본적으로 상인 문명이었고 그 문명의 영향권은 그 시대에 알려진 모든 세계로 확장되었다. --- p.37

중세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했던 세 국가가 어떻게 연속 수립되었는가를 살피면 정치적 힘과 주요한 금 루트의 경우 도시들에 대한 통제 문제와 직접 관련되어 있음이 명백해진다. … 중세의 북아프리카 국가는 국경선으로 규정될 수 없었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상업적 무게를 지닌 중심이었고 주위에 남아 있는 상당히 자율적인 부족들 중에서 비교적 중요한 집단에 비교적 강한 통제력을 행사했다. --- p.47

조세 양도 체제를 “이크타”라고 한다. 이크타의 수혜자가 군주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사실은 어떤 점에서는 중세 유럽 봉건제의 봉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두 조직의 형태는 아주 다르며 이를 유사하게 보는 것은 타당치 않다. 서유럽 봉토 수혜자는 일정한 공간에서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치적 권리 일부와 토지 소유권 일부를 결정적으로 접수한다. 아랍 세계에서 이크타 수혜자는 일정한 집단에 대한 조세 수취권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았을 뿐이다. … 유럽 영주들은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 대해 토지, 정치, 사법, 행정 그리고 경제적인 상당한 권리를 보유했다. 반면 이크타는 조세권만 양도했다. --- pp.49-50

부족의 주민들은 전체적으로 소수 특권자들의 지배를 받았다. 소수의 특권자들은 생산수단의 근본을 소유하지 않고서 막대한 수입을 차지했다. … 상인은 기본적으로 원거리 시장들 사이의 중개 역할을 하는 것에 그쳤다. … 상인들은 수가 많고 권한이 있었지만 부르주아지를 형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혀 생산수단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 그들은 부르주아지를 이루지 않았고 대신 상업 귀족을 형성했으며 흔히 부족 귀족이나 군사 귀족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실제로 부족의 대장들은 대카라반 상인이었다. …정확한 의미에서 서양 봉건제의 귀족층이 존재하지 않았다. --- pp.52-53

중세 마그레브에서의 지배적인 생산양식은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1) 부족 공동체 전체이거나 자급자족 또는 준자급자족인 부족으로 절대다수의 주민이 통합되었다.
2)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권은 갖지 않고서 중대한 이익을 가져가는 이들로 구성된 특권 소수가 존재했다. 이는 마르크스가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본적인 두 가지 특징이기도 하다.

2장 고귀한 가문 출신의 정치인
이븐 할둔이 여러 서부 무슬림 나라들에서 겪은 50년간의 위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대역사가는 여러 가지 정치적 사건들에 직접 개입되었고 저마다 다른 환경을 겪었다. … 그것은 표본적인 장편 연속물 필름을 보는 것이며 수세기에 걸친 마그레브의 성쇠가 이에 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범한 인물들의 운명을 지켜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동방을 향해 출발하기 전에 이븐 할둔이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던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 p.67

3장 콘도티에레에서 역사가로
이븐 할둔은 틀렘센왕국이 충분히 군주의 권력을 회복할 만큼 중요한 부족집단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군주는 다시금 재상 자리를 제의했지만 이븐 할둔은 신중하게 거절했다. 그는 그 밖에 다른 정부들의 직책들도 거의 포기했는데 흔히는 일시적이고 곧 사라질 정부들이었다. 대신 그는 부족들과 제후들 사이를 중재하여 동맹을 만들었다. 결국 그의 권한은 군사력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콘도티에레로서 재상직에 있을 때의 권한보다 더 커졌다. … 심지어 그는 자신의 학업과 연구에 다시금 시간을 바칠 수 있었다. --- pp.99-100

그는 튀니스. 페스, 에스파냐, 틀렘센, 부지의 대도서관들을 훑고 다녔다. 그러나 특히 스무 살 이후의 이븐 할둔은 주요한 사건들을 목격한 증인이거나 아니면 사건의 주역이었다. 자신의 직책에 따라 그는 왕들과 비지르들, 대군사지도자들과 접촉했다. 그 자신이 통치했고 패배를 겪었다. 그는 대도시 중심부의 궁전들에서 살았으나 농촌에서 거친 생활을 영위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 지식 덕분에 이븐 할둔은 군주들의 태도, 정치의 부침, 국가들의 운명, 도시들의 활동, 농촌의 생활 조건, 기근의 출현 등이 서로 관계없는 문제들이 아니고 하나의 전체임을 깨달았다 --- p.111

4장 아랍 침공 신화
이븐 할둔은 커다란 두 집단을 체계적으로 대비하는데, 그 집단은 번역을 하자면 한편은 ‘유목민’ ‘아랍인’ ‘베두인’이란 용어로, 다른 한편은 ‘정착민’이란 용어로 지칭되고 있다. …이븐 할둔이 인간 집단들의 ‘생활양식’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고려하지 않고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하여 집단을 분류할 때의 진정한 기준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p.121

그러므로 ‘침공으로’라는 용어는 11세기에서 14세기에 북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아랍 부족들의 이동 전체를 지칭하기에는 전적으로 부정확하다. … 그러므로 힐랄 ‘침공’이론들, 유목민과 정주민들의 근본적인 대립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 결국 북아프리카에서의 ‘아랍’ 부족들의 이동을 하나의 침공으로 간주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 중세 마그레브의 역사를 특징짓는 소요들은 농민과 양치기들의 체계적인 대결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억제할 수 없는 적대자들로 처신하기는커녕 흔히 연합을 이루었다.
유목민과 정주민, 아랍인들과 베르베르인들이 근본적으로 반목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의 신화인 것이다 --- pp.127-135

5장 14세기의 위기
위기감은 14세기에 이르러 전면화되었다. …군주들의 중앙집권화 기도는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은 아니더라도 사멸하는 순간 녹아 없어졌다. 궁정 혁명들이 일어나고 왕위 후보들이 들끓었다. --- p.142

북아프리카와 수단 사이의 금 교역이 둔화하면서 14세기 마그레브 국가들은 크나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군주들이 상업에서 수취했던 이익을 보존하고자 단기간에 이익이 되는 여러 가지 임시방편을 사용했지만 길게 보면 파멸이었다. 이븐 할둔은 《역사 서설》의 여러 장에서 그 다양한 방법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 pp.144-145

6장 국가의 변전성쇠
국가의 성장과 쇠퇴에 대한 할둔식의 분석은 매우 흥미 있다. 분석은 내적 요인들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목적으로 한다. 북아프리카라는 구조 틀 안에서의 제국의 성장은 쇠퇴의 원인들이 발전하는 것과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다. 군주는 제위에 오르면 부족장으로서의 권위를 절대 권력으로 바꾸기 위해 제국을 창건했던 바로 그 힘을 파괴해야 한다. 그러나 왕권에 대해 투쟁하기 시작했던 지배 부족이 또한 왕권의 유일한 지지자이다. 용병 부족에게 의지하는 탓에 왕의 권위와 부족장들의 권위 사이에 조만간 적대감이 자라난다. 이로써 왕권의 성취를 위해 감행되었던 노력이 이번에는 제국의 지지 세력들을 도괴하기에 이른다.
정복 부족의 승리에 힘입은 국가의 출현은 부족 구조의 와해를 내포하고 있다.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선천적인 약체성을 야기하는 것은 그런 내적 모순이다. 이 때문에 아사비야(국가 생성의 원동력) 개념은 빼어나게 변증법적이다, 국가 생성의 동력인 아사비야가 국가의 실현으로 무너진다. --- pp.202-203

그러나 주민 대다수가 군사민주주의의 특징을 가진 북아프리카, 거의 모든 부족이 무장 세력인 북아프리카에서는 제국을 지배하는 부족 집단의 해체는 급속하게 양편 모두의 붕괴를 초래했다. 권력을 지닌 부족은 아직 힘센 다른 부족의 타격으로 곧 쓰러진다. 왜냐하면 다른 부족의 아사비야는 아직 내부 모순의 발전으로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 모순은 새 국가가 결성되면 이윽고 약화된다.
중세 마그레브의 커다란 정치적 불안정, 왕정의 중앙화 기도에 종지부를 찍는 연속된 실패, ‘군사적 민주주의’ 구조의 집요함이 이로써 설명된다. --- p.204

7장 도시민에 대한 비난
이븐 할둔은 제국과 아사비야의 쇠퇴는 또한 중대하게 움란 하다리(도시 생활)의 호사에 전적으로 탐닉하는 도시민들의 타락에 기인한다고 평가한다. --- p.205

만약 군주가 부족 귀족층에 대한 투쟁에서 진정하게 이 도시 주민에게 의지할 수 있다면 제국을 쇠퇴로 이끄는 악순환은 결렬될 것이었다. 이븐 할둔이 확인하듯이, 이들 주민은 경제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의 도시 주민들은 ‘제후들’에 맞서 왕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있을 만큼 공고한 정치 세력을 이루지 않았다. 사실 이븐 할둔이 도시민들을 질책하는 이유가 바로 이 무기력이다. 그가 도시민들의 안락을 추구하는 취향을 비난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서 전사적 가치를 모두 제거해버리기 때문이다. --- pp.208-209

이븐 할둔의 중세 북아프리카 도시 주민들을 향한 비난은 그들이 부르주아지를 형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221

이븐 할둔은 문명이 본질상 같은 주기를 반복하도록 언도된 것이 아니며 문명의 발전은 중단 없이 점점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통찰력을 가졌던 것일까? 그럼직하다. … 종교적 이념이 진보적이기를 그치고 반동적으로 되어가는 시대를 이해하고자 했던 이븐 할둔은 진보를 옥죄는 불가피한 실패 앞에서 본능적으로 저항했다. --- pp.226-227

[2부 역사의 탄생]

1장 투키디데스와 이븐 할둔

진정 최초의 역사가는 투키디데스이고, 19세기 전에 투키디데스를 능가한 것은 이븐 할둔뿐이었다. 투키디데스는 역사의 발명자이고, 이븐 할둔은 역사를 학문으로 등장시켰다. --- p.242쪽
《역사 서설》의 구조, 형태, 사유 방식은 다른 무슬림 역사가들 및 고대 그리스-라틴 역사가들의 작품들과 현저한 대조를 보인다. 그들에게는 대개, 역사란 상궤를 벗어난 일들, 망령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 그리고 듣기 좋은 이야기, 문체가 화려한 문예물이다. 반대로《역사 서설》의 문체는 직설적이다, 서술은 귀를 즐겁게 할 뜻이 없고, 문체는 상상의 날개를 꺾어버린다. 그 문체는 비유를 하지 않는다. 전문 용어에 전념하기 때문에 고상하고 시적인 용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 사물을 반추하는 작품이고,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 이븐 할둔은 기이하게도 비극적이고 장엄한 역사, 제후와 전투의 역사에 비해 산문적인 역사를 선호했고 그런 역사에서는 경제생활과 사회조직의 배경이 주요 사건들이었다 --- pp.245-246

2장 역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개념의 형성
이븐 할둔은 정치적?군사적으로 특수한 사건들과 국가의 진화를 ‘일반 원인들’로 설명했다. 그 일반 원인들은 움란, 즉 총체적인 경제·사회·문화 행위 안에 들어 있다 --- p.259

이븐 틇둔은 어느 중요한 대목에서 사회조직들을 결정하는 근본적 요인을 신의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이론을 거부한다. … 그는 근본적으로 신의 처분에 따라 결정되는 조직이 사회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이란 말로 단순히 자연조건, 물리적 환경만 의미하지는 않았다. 신의 일이나 초자연적인 것에 대비되는 정상적이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현상 모두를 자연으로 표현했다. … 그는 다양한 민족들의 관행과 제도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그것들이 생존을 제공하는 방식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구절에서 이븐 할둔은 사적 유물론의 선구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 pp.260-262

이븐 할둔은 생산조직, 사회구조들, 정치생활의 형태들, 사법 체제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존재한다고 간주한다. 이 상이한 요소들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의해 경제적 여건의 진화가 문명 전체의 진화를 초래한다고 본 것에서 그의 또 다른 사적 유물론의 근본요소를 볼 수 있다 --- p.263

이븐 할둔에게 세계는 부동의 체제가 아니라 오히려 계속 변하는 체제이다. 사물의 성질 안에 운동의 원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 삶과 죽음, 불가피하게 시작과 끝을 가진 존재에 연결되는 그것들의 통일과 대립이라는 변증법적 주제는 이븐 할둔의 사유 속에서 중대한 위상을 차지했다. … 그는 실재 전체를 고립되고 독립적인 대상들이 우연하게 축적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서로 필연적이고 상호조건 지워지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현상들의 일관된 전체로 보았다. 이 복합적인 결합이 마찬가지로 복합적인 진화의 과정에 복종한다고 강조했다. --- pp.268-269

3장 역사학의 출현
이븐 할둔이 보인 역사 고유의 방법론은 근본적으로 경험적이다. 그것은 ‘사물 성질’에 대한 관찰에 근거할 뿐이며 다양한 철학 이론으로부터 곧장 출현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비상하게 현대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스콜라학파의 방식을 버림으로써 그는 자신의 관찰과 세심하게 검증한 정보들에 사유의 토대를 두었다. … 역사적 유물론의 선구인 그의 변증법적 사유 방식과 논증들의 기원은 철학 이론들에서 찾아져서는 안 되며 역사적 현실에 관한 관찰, 그리고 학문 본연의 연구 안에서 구해져야 한다. 사실 이븐 할둔은 역사적 현실이 변증법적 진화라는 것을 예감했다. 고대 중세의 아랍 또는 기독교 시기의 역사적 사고의 여러 양상과 비교하면 이븐 할둔의 작품은 근본적인 전환점으로서 역사학의 출현을 기록한다. --- p.275

4장 역사가의 배경과 합리주의의 상속
이븐 할둔은 이븐 시나, 이븐 바야, 특히 이븐 투파일, 무엇보다 대합리주의 철학자들의 마지막인 이븐 루슈드에게서 매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역사적 방식, 깊은 원인을 이해하고 추구하려는 관심은 대부분 위대한 합리주의 철학자들의 사상에서 연유하여 고취된 것이 분명하다. --- p.305

5장 종교적 반동의 결과
이븐 할둔은 14세기의 일탈적 합리주의 철학자는 아니다. … 그에게는 신앙적 반동의 흔적이 깊이 남아 있다. 이것이 《역사 서설》에 명백하게 드러난 반이성주의 개념을 설명해준다. 《역사 서설》의 어떤 대목들은 멋지게 비약하는 이성주의와 분명한 신비적 몽매주의의 놀라운 대조이다. --- pp.310-311

이븐 할둔의 사상의 두 양상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은 그의 인간됨과 견해의 진화에 따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븐 할둔은 젊은 시절에 합리주의 철학자들의 연구에 매진한 후 나이가 들면서 신앙생활에 헌신하기 위해 죄짓는 것 같은 견해를 거부했을 것이다. --- pp.317-318

이븐 할둔을 특징짓는 지적 구조는 특이하게도 복잡하고 독창적이다. 그것은 종교의 대의를 보존하기 위해 모든 몽매주의를 승인하려는 하나의 신비주의자이면서도. 다른 한편 합리주의자인 대철학자들의 유산을 떠맡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이 충돌하는 두 요소의 부조리하고 정태적이고 마비적인 대립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변증법적이고 풍성한 모순이다.

--- p.330

출판사 리뷰

이븐 할둔의 저작은 오늘날 “제3세계”라고 일컬어지는 나라들의 과거 역사 속에 있는 매우 중대한 단계를 해명해준다. 그는 중세 북아프리카 경제·사회·정치적 조건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대단히 착잡한 역사적 문제를 상당히 많이 제기했다. 이븐 할둔의 저작은 학문으로서의 역사의 탄생을 기록한다. 우리 시대의 사상에 이 같은 이븐 할둔 저작의 비범한 내용이 통합되기를 기대한다.

21세기인 오늘날 이븐 할둔의 현재성은 어떤 것인가?
이븐 할둔의 『역사 서설』을 통해 제2세계의 문제에 관해 논하다.

이 책은『역사 서설』과 『보편사』를 저술한 14세기의 대역사가이자 아랍 최고의 위대한 사상가 이븐 할둔의 사상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정학자 이브 라코스트가 분석해낸 연구서이다. 저자 이브 라코스트가 조명해내고 있는 점은, 이븐 할둔의 역사 사상이 보여주는 현대성이다. 이븐 할둔은 그 시대의 마그레브(이 말은 북아프리카 일대―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의 지역을 가리킨다)가 드러낸 복잡한 역사에 대해, 현대적 의미의 형용사를 사용하여 사회·경제·정치적으로 어떤 현상이 전개되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역사 설명 방식을 보여준다.
이브 라코스트가 이븐 할둔의 역사책을 연구하게 된 동기는,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인 “저개발”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다. 여전히 세계의 격차는 크다. 소수는 부강하고 다수는 빈곤하다. 아프리카, 아시아의 성장과 비약이 분명하지만 정치와 산업의 어려움은 문화의 비약으로 다 상쇄되지 못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제3세계”의 “저개발”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저개발은 인류의 거의 4분의 3인 “제3세계”의 문제이다. 이브 라코스트는 “제3세계”의 “저개발” 문제를 식민지 정복의 결과라고 보는 다수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는 식민지 정복의 결과가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식민지 정복이 아랍 세계의 “저개발”을 설명해주는 제일의 역사적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아랍 세계는 역사적으로 볼 때, 사실 중세 여러 영역에서 유럽보다 크게 발전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럽이 발전을 시작한 반면 아랍 세계는 왜 발전을 계속하지 못했던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답을 찾기 위해 연구하던 중 이브 라코스트는 이븐 할둔의 저작을 만나게 된다.
이븐 할둔은 14세기 마그레브 지역에서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 막 일어났음을 알아챘다. 사실 당시 수세기 동안 수단으로부터 사하라를 건너 카라반들이 운반하던 금 교역의 종식이 문제가 되었다. 이 중대한 변화의 결과, 이븐 할둔은 사회 침체의 깊은 원인, 특히 이 지역의 아랍 세계 국가들이 겪는 급격하고 순환적인 쇠락에 관해 성찰하고 이를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분석해냈다.
『역사 서설』에서 이븐 할둔은 19세기 “제3세계”에 식민지 정복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원인들, 저개발의 결정적인 요인을 파악해내면서 역사적 문제를 상당히 많이 제기했다. 그는 마그레브의 경제·사회적 발전이 내적 원인들로 마비된 것이지 외부적이거나 우연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븐 할둔이 분석한 이 조건들은 느리게 진화하면서 하나의 긴 역사적 과정을 결정지었다. 이 구조들은 외부의 영향에 굴복하면서 19세기에 식민 지배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 지배는 현재의 저개발 상태를 초래했다. 역사의 동력을 추상에만 돌리지 않고 물적 구조를 파악해 분석하고 현실 정치를 꿰뚫어냈다는 점에서 이븐 할둔의 역사 파악은 획기적이다. 역사를 그 자체로 연구하고, 목적과 근본적인 방법 면에서 이 분과의 독창성을 명료하게 인식한 점에서, 이븐 할둔은 최초의 역사가라 할 수 있다.
이븐 할둔의 저작은 학문으로서의 역사의 탄생을 기록한다. ‘역사’는 세계의 거의 4분의 3을 구성하는 민중 스스로 거대하고 극적인 저개발의 문제를 의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중의 역사적 성찰은 바로 저개발 상황의 착잡한 원인들에 대한 해결의 노력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우리 시대의 사상에 이븐 할둔의 저작과 같은 비범한 저작의 내용이 통합되기를 바란다.

이븐 할둔은 누구인가?
- 이븐 할둔은 1332년 튀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예멘의 유서 깊은 하드라마우트에서 시작해 무슬림 정복기인 8세기에 안달루시아로 이주했고 13세기 중반 기독교도들의 ‘재정복’(에스파냐 점령) 최후 국면에서 서북 아프리카로 피난했다고 추정된다. 그의 부친은 높은 학식과 정견을 지녔으며 집안 전통과 달리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븐 할둔은 부친의 가르침에 이어 당대 아프리카의 고명한 학자들로부터 고전 아랍어 교육을 받고 아랍어에 대한 각별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코란, 하디스, 문헌 연구, 법률학, 이슬람 사법학에 관해 배웠다. 신비주의자이며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무 압달라 무함마드 알 아벨리가 이븐 할둔을 수학과 논리학, 철학에 입문케 했으며, 이븐 루슈드, 이븐 시나, 아부 바크르 무함마드 이븐 자키리야 알 라지의 저술을 공부했다.
- 1350년 열아홉의 나이로 공직에 나아간 이븐 할둔은 술탄 아부 이스하크 이브라함의 문서관으로 봉직한다. 그는 이때 궁정 정치의 내부 작동과 정부의 취약성을 직접 접한다. 1354년 모로코 술탄의 초청으로 페스로 간 이븐 할둔은 술탄의 고급 문서를 다루는 서기가 되어, 당대 안달루시아와 아프리카 식자들의 지정 중심지인 페스의 카이루안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학업을 이수한다.
- 1357년부터 이븐 할둔은 궁정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술탄 아부 이난으로부터 누명을 받아 22개월 동안 투옥되었다가 왕권을 잡은 메리니데의 술탄 아부 살림의 요청으로 국무상에 오른다. 1362년 군대의 반란으로 메리니데 술탄이 사망하자 그라나다로 건너간 이븐 할둔은 기독교도들에게 정복당한 에스파냐에서 유일한 무슬림 국가인 그라나다에 봉사한다.
- 그 후로 복잡한 국제 정세와 혼란스러운 북아프리카 상황 속에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정치적 생활을 계속해나간다. 1374년부터 변화무쌍한 정치에 피로를 느낀 이븐 할둔은 공직에서 은퇴해 이븐 살라마의 성에 칩거하면서 4년 동안 『역사 서설』과 『보편사』첫 권을 집필한다. 집필이 끝나기 전 튀니스의 술탄이 그를 초청해 강의를 청한다. 이를 계기로 고향을 떠난 지 27년 만에 튀니스로 돌아왔으나 당시 튀니스의 학자들과 궁전 관리들의 시기를 받아 북아프리카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 1384년 경제적·지적 번영을 누리던 카이로에 매혹된 이븐 할둔은 이곳에서 강의를 하고, 대법원장직을 맡으며 생활한다. 그러나 다시 음모에 휩싸이고 튀니스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오던 그의 가족이 난파를 당해 몰살하자 대법원장직을 사임한다. 1387년 중단되었던 메카 순례를 결심하고 순례 도중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들른다. 순례에서 돌아와 강의와 관직에 열중하고,『보편사』저술에 헌신한다.
- 1400년 몽골의 대침입으로 중동 일대의 전세가 위급해진 가운데 맘루크 술탄의 요청으로 다마쿠스에 도착 그곳에서 티무르와 협상을 벌이게 된다. 이븐 할둔은 티무르 진영에서 머물면서 그에게 관심을 갖는 티무르와 몽골과 타타르의 최근세사, 주요한 국제 정세, 정치 문제와 그의 역사관을 논의한다. 1401년 티무르군 진영에서 나와 카이로로 돌아와 대법원장직과 카디직에 임명되어 근무한다.
- 1406년 이븐 할둔은 대법원장직으로 재직하던 중 일흔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그의 유해는 나스르 성문 외곽 수피 학파 묘지에 안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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