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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후 32년
머리말 1부 제3세계의 과거 1장_일반적 특징과 기본 구조 2장_고귀한 가문 출신의 정치인 3장_콘도티에레에서 역사가로 4장_아랍 침공의 신화 5장_14세기의 위기 6장_국가의 변전성쇠 7장-도시민에 대한 비난 2부 역사의 탄생 1장_투키디데스와 이븐 할둔 2장_역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개념 형성 3장_역사학의 출현 4장_역사가의 배경과 합리주의의 상속 5장_종교적 반동의 결과 맺음말 덧붙이는 글 옮긴이 글 부록 주 · 인명 · 지명 및 사항 · 연표 · 지도 · 연보 |
Yves Laco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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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후 32년]
이븐 할둔의 작품에서 놀라운 것은 그 작품이 근본적으로 사회?정치적 변화의 표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변화를 정확히 설명하는 노력으로 이 일련의 국면을 부족들과 마그레브 국가들에 동시에 관계된 권력관계를 좇는 것이다. 이븐 할둔이 “아사비야”라는 용어로 가리킨 것이 그것이다. 그의 작품 안에 있는 이 기본 개념은 상당히 복잡하다. … 다시 말해 이 개념의 진정한 함의와 영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븐 할둔이 마그레브에서 겪었고 심지어 연루되었던 정치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하고자 노력했던 바이며 그것으로 14세기 이후 세계가 겪게 되는 진화를 요약하고자 했다. 요지는 유럽 자본주의의 발전과 특히 20세기 중반에 제3세계라고 부르는 영역 안에서의 식민지적 종속 현상이다. ---p.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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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라코스트가 이븐 할둔의 역사책을 연구하게 된 동기는,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인 “저개발”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다. 여전히 세계의 격차는 크다. 소수는 부강하고 다수는 빈곤하다. 아프리카, 아시아의 성장과 비약이 분명하지만 정치와 산업의 어려움은 문화의 비약으로 다 상쇄되지 못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제3세계”의 “저개발”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저개발은 인류의 거의 4분의 3인 “제3세계”의 문제이다. 이브 라코스트는 “제3세계”의 “저개발” 문제를 식민지 정복의 결과라고 보는 다수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는 식민지 정복의 결과가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식민지 정복이 아랍 세계의 “저개발”을 설명해주는 제일의 역사적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아랍 세계는 역사적으로 볼 때, 사실 중세 여러 영역에서 유럽보다 크게 발전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럽이 발전을 시작한 반면 아랍 세계는 왜 발전을 계속하지 못했던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답을 찾기 위해 연구하던 중 이브 라코스트는 이븐 할둔의 저작을 만나게 된다. 이븐 할둔은 14세기 마그레브 지역에서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 막 일어났음을 알아챘다. 사실 당시 수세기 동안 수단으로부터 사하라를 건너 카라반들이 운반하던 금 교역의 종식이 문제가 되었다. 이 중대한 변화의 결과, 이븐 할둔은 사회 침체의 깊은 원인, 특히 이 지역의 아랍 세계 국가들이 겪는 급격하고 순환적인 쇠락에 관해 성찰하고 이를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분석해냈다. 《역사 서설》에서 이븐 할둔은 19세기 “제3세계”에 식민지 정복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원인들, 저개발의 결정적인 요인을 파악해내면서 역사적 문제를 상당히 많이 제기했다. 그는 마그레브의 경제*사회적 발전이 내적 원인들로 마비된 것이지 외부적이거나 우연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븐 할둔이 분석한 이 조건들은 느리게 진화하면서 하나의 긴 역사적 과정을 결정지었다. 이 구조들은 외부의 영향에 굴복하면서 19세기에 식민 지배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 지배는 현재의 저개발 상태를 초래했다. 역사의 동력을 추상에만 돌리지 않고 물적 구조를 파악해 분석하고 현실 정치를 꿰뚫어냈다는 점에서 이븐 할둔의 역사 파악은 획기적이다. 역사를 그 자체로 연구하고, 목적과 근본적인 방법 면에서 이 분과의 독창성을 명료하게 인식한 점에서, 이븐 할둔은 최초의 역사가라 할 수 있다. 이븐 할둔의 저작은 학문으로서의 역사의 탄생을 기록한다. ‘역사’는 세계의 거의 4분의 3을 구성하는 민중 스스로 거대하고 극적인 저개발의 문제를 의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중의 역사적 성찰은 바로 저개발 상황의 착잡한 원인들에 대한 해결의 노력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우리 시대의 사상에 이븐 할둔의 저작과 같은 비범한 저작의 내용이 통합되기를 바란다. 이븐 할둔은 누구인가? *―이븐 할둔은 1332년 튀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예멘의 유서 깊은 하드라마우트에서 시작해 무슬림 정복기인 8세기에 안달루시아로 이주했고 13세기 중반 기독교도들의 ‘재정복’(에스파냐 점령) 최후 국면에서 서북 아프리카로 피난했다고 추정된다. 그의 부친은 높은 학식과 정견을 지녔으며 집안 전통과 달리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븐 할둔은 부친의 가르침에 이어 당대 아프리카의 고명한 학자들로부터 고전 아랍어 교육을 받고 아랍어에 대한 각별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코란, 하디스, 문헌 연구, 법률학, 이슬람 사법학에 관해 배웠다. 신비주의자이며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무 압달라 무함마드 알 아벨리가 이븐 할둔을 수학과 논리학, 철학에 입문케 했으며, 이븐 루슈드, 이븐 시나, 아부 바크르 무함마드 이븐 자키리야 알 라지의 저술을 공부했다. *―1350년 열아홉의 나이로 공직에 나아간 이븐 할둔은 술탄 아부 이스하크 이브라함의 문서관으로 봉직한다. 그는 이때 궁정 정치의 내부 작동과 정부의 취약성을 직접 접한다. 1354년 모로코 술탄의 초청으로 페스로 간 이븐 할둔은 술탄의 고급 문서를 다루는 서기가 되어, 당대 안달루시아와 아프리카 식자들의 지정 중심지인 페스의 카이루안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학업을 이수한다. *―1357년부터 이븐 할둔은 궁정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술탄 아부 이난으로부터 누명을 받아 22개월 동안 투옥되었다가 왕권을 잡은 메리니데의 술탄 아부 살림의 요청으로 국무상에 오른다. 1362년 군대의 반란으로 메리니데 술탄이 사망하자 그라나다로 건너간 이븐 할둔은 기독교도들에게 정복당한 에스파냐에서 유일한 무슬림 국가인 그라나다에 봉사한다. *―그 후로 복잡한 국제 정세와 혼란스러운 북아프리카 상황 속에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정치적 생활을 계속해나간다. 1374년부터 변화무쌍한 정치에 피로를 느낀 이븐 할둔은 공직에서 은퇴해 이븐 살라마의 성에 칩거하면서 4년 동안 《역사 서설》과 《보편사》첫 권을 집필한다. 집필이 끝나기 전 튀니스의 술탄이 그를 초청해 강의를 청한다. 이를 계기로 고향을 떠난 지 27년 만에 튀니스로 돌아왔으나 당시 튀니스의 학자들과 궁전 관리들의 시기를 받아 북아프리카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1384년 경제적*지적 번영을 누리던 카이로에 매혹된 이븐 할둔은 이곳에서 강의를 하고, 대법원장직을 맡으며 생활한다. 그러나 다시 음모에 휩싸이고 튀니스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오던 그의 가족이 난파를 당해 몰살하자 대법원장직을 사임한다. 1387년 중단되었던 메카 순례를 결심하고 순례 도중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들른다. 순례에서 돌아와 강의와 관직에 열중하고,《보편사》저술에 헌신한다. *―1400년 몽골의 대침입으로 중동 일대의 전세가 위급해진 가운데 맘루크 술탄의 요청으로 다마쿠스에 도착 그곳에서 티무르와 협상을 벌이게 된다. 이븐 할둔은 티무르 진영에서 머물면서 그에게 관심을 갖는 티무르와 몽골과 타타르의 최근세사, 주요한 국제 정세, 정치 문제와 그의 역사관을 논의한다. 1401년 티무르군 진영에서 나와 카이로로 돌아와 대법원장직과 카디직에 임명되어 근무한다. *―1406년 이븐 할둔은 대법원장직으로 재직하던 중 일흔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그의 유해는 나스르 성문 외곽 수피 학파 묘지에 안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