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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사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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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다시 읽는 피터 드러커

책소개

목차

머리말_어떤 사회가 기능적인 사회인가?
프롤로그_기능적인 사회를 찾아서


PART I_기능적 사회

CHAPTER 01_사회란 무엇인가?
개인에게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는 사회/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목적/역사에 따른 인간 모델의 변화/인간의 목적과 사회의 관계

CHAPTER 02_권력의 합법성
합법적 권력이란 무엇인가/합법성의 의미/비합법적 권력/합법적 권력과 비합법적 권력의 충돌/결정적 권력과 결정적으로 중요한 조직/상대주의와 절대주의/무정부적 대중은 독재자를 추종한다


PART II_경제인 사회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

CHAPTER 03_자본주의 사회 - 자유평등사회 달성의 실패
고대와 근대의 자본주의/위험부담 활동과 이윤획득 활동/산업혁명/프롤레타리아를 낳은 경제적 자유/경제적 목적달성에 성공하다/사회적 목적달성에 실패하다

CHAPTER 04_사회주의 사회 - 계급 없는 사회 달성의 실패
마르크시스트 사회주의/경제인 모델의 종말/마르크시스트 사회주의가 본 자유와 인간자본/제1차 대전의 사회적 의미/다양한 사회주의/새로운 계급의 등장과 전체주의의 징조

PART III_비경제인 사회
-전체주의 사회와 군국주의 사회

CHAPTER 05_전체주의 사회 - 자유와 평등을 포기한 비경제인 사회
전체주의의 의미와 등장 원인/제1차 대전과 대공황이라는 악마/자유와 평등을 포기하게 만든 불황과 실업/민주주의와 자유사회의 포기/합법성을 가장한 전체주의의 출현/대중이 마법사를 추종하는 이유

CHAPTER 06_전체주의적 군국주의 사회 - 개인이 곧 군인이 되는 사회
전체주의가 추구한 기적, 비경제인 사회/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전체주의/사회 유기체설과 영웅적 인간 모델의 등장/완장을 찬 영웅/전체주의적 군국주의 사회/소유도 경영도 없는 생산체제

PART IV_자유 산업사회

CHAPTER 07_대량생산 산업사회
자본주의의 복원력과 대량생산 원리/개인을 대체한 조직/대기업의 의미

CHAPTER 08_자유 산업사회
자유 산업사회/복지국가와 지역사회/자유 산업사회에 대한 미국의 역할/국유화의 환상과 계획경제의 문제/노동조합주의는 해답이 아니다

PART V_연속과 단절

CHAPTER 09_연속
경제에서 사회로 중심이동하다/경제의 연속성 시대/단절과 변혁/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1968년의 마르쿠제와 드러커

CHAPTER 10_단절
네 가지 단절/다양한 거대조직들의 사회/드러커와 갤브레이스/인구 문제/연금기금의 역할/국가간 생산분업/단절의 시대에서 기회의 시대로

PART VI_기업가적 사회

CHAPTER 11_기업가적 경제
관리적 경제와 기업가적 경제/콘드라티예프의 장기파동/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형태/하이테크의 실제/기업가 정신이 장기파동을 막다/첨단기술 기업과 에디슨의 실패가 주는 교훈

CHAPTER 12_기업가적 사회
사회적 기술로서의 경영/각각의 세대를 위한 새로운 혁명/혁명 대신 기업가 정신/첨단기술은 기업가 정신의 일부분/사회적 혁신/조세정책과 벤처정책의 과제/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는 권력 집중을 싫어한다/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을 결정한다/기업가적 사회와 복지국가

PART VII_경제인 이후의 사회
-연금기금사회, 조직사회, 지식사회

CHAPTER 13_연금기금 사회
연금기금 혁명과 연금기금 자본주의/개인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 프롤레타리아 없는 사회주의/피고용자 사회 또는 자영업자 사회/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에서 지식근로자와 서비스근로자로/새로운 자본, 연금기금/연금기금의 관리/생명보험, 사망보험, 노후보험/기업감사

CHAPTER 14_조직사회
조직의 의미와 기능/조직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다/조직은 목적을 다양화해서는 안 된다/현대 조직의 특성과 자율성/조직은 계속 변화하고 그것을 관리해야 한다/지식 조직의 모델로서의 교향악단/영구조직으로서의 지식 조직/사라진 공장 공동체/시민 자원봉사자

CHAPTER 15_지식사회
히틀러, 루스벨트, 테일러/지식사회의 인프라와 지식혁명/지식사회의 경영자/지식사회에서 지식의 의미/지식사회의 특성/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시그널/한국은 이미 지식 사회이자 이동사회이다/자유와 평등의 모델, 지식근로자와 지식사회

에필로그_어떻게 전체주의의 발흥을 막을 것인가?

저자 소개 1

피터 드러커의 연구 및 번역가로 잘 알려진 작가.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 상과대학 을 졸업하였으며 대구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또한 대구대학교 총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2005년 명예퇴직하였다. 포틀랜드 주립대 객원교수,한국산업경영학회회장,한국인사조직학회 부회장, 한국국제경영학회 부회장,대구은행 사외이사, 영원무역과 삼익THK 사외이사, TBC 대구방송 비상임이사, 그리고 태창철강의 경영고문을 역임했다. 그는 1966년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하여 『경영의 실제』와 『기업의 개념』을 읽고 드러커에게 매료되었다고 한다. 1982년 1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마
피터 드러커의 연구 및 번역가로 잘 알려진 작가.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 상과대학 을 졸업하였으며 대구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또한 대구대학교 총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2005년 명예퇴직하였다. 포틀랜드 주립대 객원교수,한국산업경영학회회장,한국인사조직학회 부회장, 한국국제경영학회 부회장,대구은행 사외이사, 영원무역과 삼익THK 사외이사, TBC 대구방송 비상임이사, 그리고 태창철강의 경영고문을 역임했다.

그는 1966년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하여 『경영의 실제』와 『기업의 개념』을 읽고 드러커에게 매료되었다고 한다. 1982년 1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뒤 학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피터 드러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92년 12월,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트에 있는 자택에서 드러커를 처음 만났을 때 책보다 더 많은 클래식 음반이 서재에 꽂혀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2005년 드러커가 타계할 때까지 이재규는 매년 드러커를 만나 경영과 음악과 미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경북고 재학 중 성악을 배웠고, 서울대 상대 재학 중 홍릉제에서 푸치니의 〈토스카〉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나운영의 “달밤” 등을 불렀다. 2009년 연말 CEO 자선음악회에서 푸치니의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와 이수인의 “내 맘의 강물”을 불렀다.

그의 저서로는 『이재규 교수의 3분 경영』『지식경영학원론』『인적자원관리론』,『피터 드러커에게 경영을 묻다』 등 20여 권이 있다. 번역서로는 피터 드러커의 『단절의 시대』『넥스트 소사이어티』『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21세기 지식경영』『미래의 결단』『자본주의 이후의 사회』『2020년 기업의 운명』, 『한 권으로 읽는 피터드러커 명저 39권』,『피터 드러커의 지식역사』,『피터 드러커의 지식근로자』,『피터 드러커의 지식사회』등이 있다. 최근에는 『클래식 음악 에피소드』『발칸, 시간이 멈춘 그곳』『모차르트 인 오스트리아』『모차르트 읽는 CEO』『베토벤 읽는 CEO』 등이 있다.

1984년 처음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한 이래 단체 여행이나 가족 여행으로, 때로는 혼자서, 그리고 그보다는 아내와 함께 더 많이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면서,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 문화와 역사를 연구했다. 아내와 함께 또다시 토스카나 지방에 한 달간 머무르며 곳곳을 여행한 뒤 『이탈리아의 꽃, 토스카나에서 예술을 만나다』을 완성할 계획을 세웠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11년 8월 8일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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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43쪽 | 461g | 153*224*20mm
ISBN13
9788947527316

책 속으로

‘경제인’ 개념이 처음 학문적으로 사용된 것은 애덤 스미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사용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용어 때문이었다. 1776년 스미스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인간은 천국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생필품과 편의품의 생산증대와 소비증대를 추구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 또 그는 ‘국부의 증대’는 분업생산 방식, 자아존중(이기심), 재산소유, 자유경쟁, 시장경제로 달성된다고 주장했다. 개인이 각자의 이해에 따라 판단하여 규제를 받지 않는 자유시장에서 경쟁을 하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작용하여 시장 참가자들의 이익과 국부의 증진을 이루고,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공익도 최대화된다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경제인’은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이지만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으며, 언제나 자신에게 최대의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행동을 하기를 원할 뿐 아니라 그 방법도 알고 있다. 즉 자신의 경제적 이익, 즉 부(富)의 증가를 가장 높은 가치로 삼고 행동한다. ‘경제인’은 경제적 만족만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경제적 지위, 경제적 특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성공은 곧 경제인 모델의 성공을 대변한다.
그러나 제1차 대전(1914~1918)과 대공황(1929~1939)을 경험하면서 서유럽 사람들은 그때까지의 인간 모델과 사회 모델인 ‘경제인’과 ‘경제인 사회’가 자유와 평등을 달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쟁과 실업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 그 틈을 이용하여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최상의 것이자 자율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인간 모델로서 ‘영웅적 인간’ 모델을 제시했다.
---pp. 27-28‘역사에 따른 인간 모델의 변화’ 중에서

개개인들은 제1차 대전과 대공황을 경험함으로써 자본주의 그리고 공산주의의 신조에 대한 믿음의 붕괴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이 두 재난은 개인들로 하여금 기존의 제도, 기관, 원칙들을 변하지 않는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이도록 한 일상생활을 파괴했다. 갑자기 개인들은 사회라는 표면 뒤에 있는 진공 상태에 노출되었고, 앞서 말한 사회적 원자들이 되었다. 유럽의 대중은 사회 속의 자기 자신이 합리적이고도 분별력 있는 권력에 의해서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이고도 비합리적인 악마의 세력에 지배되고 있음을 인식했다.
전쟁은 그 경험을 통해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비합리적인 괴물의 세계에 살고 있는 있음을 졸지에 일깨워주었다. 다시 말해, 사회 속에서 인간은 평등하고도 자유로운 구성원이고 각자 자신의 장점과 노력에 따라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사회개념이 환상이었음이 증명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공황은 비합리적이고도 예측할 수 없는 세력들이 평화기의 사회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갑자기 개인은 영구적인 실업의 위협에 놓이게 되고, 한창 일할 때이거나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산업 쓰레기 더미에 내동댕이쳐지는 위협에 처할 수 있음을 경험하게 했던 것이다.
---p. 66 ‘제1차 대전과 대공황이라는 악마’ 중에서

1946년 제2차 대전 직후 토지를 경작하는 일본 인구는 거의 60퍼센트였지만 지금은 8퍼센트로 떨어졌으며, 그것도 노령의 여자들뿐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가난한 소작농 판잣집을 탈출하여 도시로 나아가는 현상은 끝났다. 오늘날 소작농 판잣집은 비어 있고 노동은 사람이 아니라 트랙터가 대신하고 있다. 지중해 국가들은 지금도 잠재적 실업인구와 완전 실업인구가 여전히 많지만, 서부 및 북부 유럽은 더 이상 그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서부 및 북부 유럽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수는 이제부터 감소할 것이고,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더 이상 정착하지 못할 것이다.
1976년 당시의 드러커는 젊은 사람들은 장기간의 정규교육을 받게 되므로, 육체 작업이 아닌 ‘지식 작업’에 적합한 노동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전통적 분류방식의 노동력, 즉 육체 노동력(특히 수공업)은 향후 25년간 매우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노인인구는 급속히 증가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1935년 미국이 처음으로 전국적으로 사회보장 제도를 실시할 무렵 65세 이상 인구 1명당 미국의 노동인구는 9명이었다. 1980년의 통계수치로 볼 때 미국 노동력이 전례 없이 폭발적인 수준으로 증가한 상황에서도, 65세 이상 인구 1명당 미국의 노동인구는 3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1985년이 되면 1명당 2.5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노인 컀구의 부양 문제는 차츰 선진국의 첫 번째 관심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 드러커는 은퇴연령을 연장함으로써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무렵 미국에서는 정년 연장을 위한 입법을 이미 준비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단지 나이 제한 때문에 일을 못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처사라는 점이다.
이미 많은,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많아질 노인 인구는 은퇴하기를 싫어한다. 대체로 은퇴를 두려워하는 지식근로자에게 그것은 각별한 진실이다. 그 반면 지루하고도 고된 노동을 오래 한 육체근로자는 은퇴를 고대할 것이다. 하지만 은퇴시기를 연장하는 것은 상황을 다소 호전시킬 뿐 결코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pp. 137-138 ‘인구 문제’ 중에서

50년 전만 해도 ‘피고용자’라는 말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법률적인 용어로만 쓰였다. 그 당시 일반사람들은 ‘자본과 노동’ 또는 ‘경영자와 노동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 같은 의미의 독일말 ‘공동작업자(Mitarbeiter)’는 잘 사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피고용자’라는 말은 하층의 사무직을 뜻하는 것으로, 스페인어로 ‘고용된 자(employado)’ 또는 독일어로 ‘월급쟁이(Angestellter)’와 같은 의미였다. ‘피고용자’라는 표현은 어색한 말이기도 하면서 확실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같은 의미를 가진 모든 외국어 단어들이 그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최근의 일일 뿐만 아니라 어색하게 사용되고 있다.
피고용자라는 말이 쓰이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런 현상을 표현하는 적절한 설명도 없다. ‘피고용자’를 정의한다면, 고용기관의 일을 하고 돈을 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피고용자’의 가장 큰 단일집단은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미국 성인의 두 사람 중 하나는 비영리 조직의 ‘무보수 피고용자’로 일하는데, 그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는 무보수로 일을 한다. 그들은 분명히 ‘스태프’이고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원봉사자이지 돈을 받지 않는다. 사실상 ‘피고용자’로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법률적인 관점으로는 고용기관에 고용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고용된(self employed)’ 자영업자인 것이다.
100년 전만 해도 고용되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고, 조직이라든가 ‘상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공장노동자 아니면 가정의 하인이나 하녀들이었다. 제1차 대전 전까지 모든 선진국에는 공장노동자들이 수적으로 훨씬 더 많았다. 그들은 가게점원이나 판매인 등이었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영업자’처럼 일했다. 그리고 1913년 각 나라마다 가장 큰 단일집단은 자작농이든 임차농이든 자신을 위해 스스로 땅을 경작하는 농부들이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농부’는 소수의 집단이다. 가정부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60~70년 전 ‘독립적’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지금은 피고용자 또는 자영업자가 되었다. 그들은 교육받았고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표현하는 어떤 단어가 필요하지만 아직 적당한 것은 없다. ‘자영업자 사회’라는 말이 생길지는 의문이다.
잠정적으로 PCS의 ‘피고용자’를 정의해 두고 넘어가야 하겠는데, “피고용자란 조직에 고용되어야만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두자. 그들이 보수를 받는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이런 사람들이 ‘자영업자’가 되면 그들은 조직에다가 용역을 제공하거나 조직을 통해 용역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기의 역할을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의 국립보건원에 소속된 의사, ‘독립적 의료활동’을 하는 미국의 개업의, 회계사와 감사인, 프리랜스 지휘자 또는 기악 솔로이스트 등이다. 이런 사람들은 임금(salary)을 받지 않는 대신 ‘수수료(fee)’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 발휘는 마치 그들이 급료대장에 등록되어 있는 종업원과 같이 조직에 대한 접근 여부에 달려 있다.
수입, 교육, 사회적 지위가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일과 역할을 수행하는 능력은 한층 더 조직에 대한 접근 여부에 의존한다. PCS가 ‘조직의 사회’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PCS는 ‘피고용자 사회’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다른 방법이다.

---pp. 188-190 ‘피고용자 사회 또는 자영업자 사회’ 중에서

출판사 리뷰

21세기 지식인의 표본, 지금도 놀라운 혜안과 통찰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탄생 100주년
“지식사회가 이끄는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라!”


‘지식사회’란 지식의 가치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회를 말한다. 피터 드러커가 예견한 대로 오늘날의 사회는 사업의 목적이 이익 극대화로 대변되던 산업사회에서, 고객을 창조하고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지식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다. 어떤 사업이든 사람이 시작하고 경영하며, 사람의 욕구에 따라 소비하는 시대다.
이 책 『지식사회』는 국내 최고의 피터 드러커 권위자 이재규 교수가 드러커 경영사상의 핵심 키워드인 ‘지식’을 테마로 ‘지식근로자’, ‘지식사회’, ‘지식역사’ 3부작으로 집대성한 시리즈의 두 번째 저작이다. 드러커가 말하는 지식사회의 진정한 의미와 변화 과정을 설명하고, 그것이 어떻게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혁신하고 발전해야 하는지 역설한다. 피터 드러커의 방대한 저작을 모두 섭렵해 온전히 이해한 저자가 심도 깊은 통찰로 드러커 사상의 정수만을 모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넥스트 소사이어티』『미래기업』『새로운 현실』『매니지먼트』『자본주의 이후의 사회』『21세기 지식경영』 등 피터 드러커 저작을 인용해 지식사회를 살아가는 지식경영자와 지식근로자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시대의 경쟁코드를 읽어야 하는 기업의 관리자, 혁신이 생존의 필수요건임을 알고 있는 모든 직장인의 필독서라 할 수 있다.

급변하는 사회의 판도를 꿰뚫는 지식 거장의 혜안과 통찰
현대적 시각으로 재탄생한 피터 드러커 경영학의 정수 제2탄!


“지식사회에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는 전체주의가 발흥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을까?’ 질문하고 대답해야 하며 행동해야 한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 1909-2005)

지식사회에서 개인과 조직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 1909~2005)는 1985년 10월 『잉크(Inc.)』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인생에 계획이 있었는가? 다시 말해 피터 드러커를 만들기 위한 사전 계획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돌아보면 나의 일생은 의미가 있었다. 내가 어디에 속해야 할지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예감한 것은 아마도 30세쯤이었다. 그 이전 10여 년 동안은 어떤 일을 계획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닥치는 대로 우연한 기회에 대응하는 식이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스트리아에 계속 머물러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고, 대학에 가서 4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있는 직장을 얻어달라고 부친에게 부탁했고, 지금 내가 하게 된 일과는 가장 관계없는 직업인 수출회사의 견습생이 되었다. 그 후 나는 프랑크푸르트의 소규모 은행에서 일했다. 그것은 내가 영어와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때가 바로 1929년 10월이었다.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나는 그 은행에 입사한 최후의 직원이자 최초로 쫓겨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했고 곧 어느 지방 신문사에 취직했다. 그것은 좋은 교육기회였다. 그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면 내가 한 가지 잘한 것은 ‘현상을 관찰하고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 비록 나는 오스트리아 여권을 갖고 있었지만 독일의 보수정치 활동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1933년 나는 히틀러가 끝내 유태인을 말살할 것이고 스탈린과 조약을 체결하리라는 점 등을 바탕으로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스탈: 보수주의적 국가이론과 역사발전(Fredrich Julius Stahl, Konservative Staatslehre und Geschichtliche Entwicklung)』(1933)이라는 작은 책자를 냈고, 곧이어 『경제인의 종말(The End of Economic Man)』(1939)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원고는 1939년까지 출판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나의 결론이랄까 통찰을 용인할 출판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1934년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갔다. 런던의 한 보험회사에서 증권분석가로서 일했고 그 뒤 투자은행가로 일했다. 내가 부자가 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곳에 계속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루했다. 4년 후 나는 미국으로 왔다.”
피터 드러커는 제1차 대전의 진앙지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20세기를 온전히 살고 21세기 초인 2005년, 96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타계했다. 일생 동안 다양한 삶을 살았던 그는 역사, 경제, 경영, 기업 컨설팅을 비롯해 사회과학, 일본 미술,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고, 말년에는 비영리단체 컨설팅과 사회생태학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드러커의 궁극적인 관심은 ‘어떤 사회가 기능적인 사회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드러커는 스스로 자신을 ‘방관자(bystander)’ 또는 ‘관찰자(observer)’라고 규정했고, 마셜 맥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 1911~1980)은 드러커를 “듣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The man who came to listen)”이라고 했다. 이 책은 20세기와 21세기 초에 걸쳐 피터 드러커가 사회를 어떻게 관찰하고 분석했으며, 또 그 이후의 사회를 어떻게 전망했는지 그의 선견력과 통찰력을 서술하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사회가 원시 공산사회 → 봉건사회 →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사회로 귀결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드러커는, 산업혁명 후 20세기 초까지 경제인 사회(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 → 경제인 사회의 실패로 인한 1930년대 초 비경제인 사회(전체주의 사회와 군국주의 사회)의 등장 → 제2차 세계대전에서 비경제인 사회의 패배 → 자유산업사회 → 경제인 사회의 밑바탕 요소의 단절 → 기업가적 사회 → 경제인 이후의 사회(연금기금 사회, 조직 사회, 지식 사회)로 이어진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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