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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일곱 갈래의 시작
2장 데이터 : 예수 충격 3장 복음서 속 예수 충격 4장 충격의 근원 : 예수의 현존 5장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6장 일곱 갈래의 후기 |
Peter Kre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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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는 그분과 우리가 경험하는 결혼 생활, 사랑 행위, 전희의 일부다. 프랜시스 톰프슨은 고전이 된 시〈천국의 사냥개〉에서 이렇게 썼다. “제 어두움이 그러니까 애무하려고 내민 그분의 손 그림자였단 말입니까?” 삶의 모든 것들이 그래야 마땅하다. 그분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상대적인 분이 아니다. 그것들이 그분에 대해 상대적이다. 만물이 그렇다. 그분은 하느님이고, 하느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문제를 주는 분이다. 우리의 문제는 그분의 임무요 기회다. 그분의 가르침이며 우리의 배움이고, 그의 뜻이며 우리의 성화다. 그 문제가 잃어버린 귀걸이 같이 작든, 죽음이나 죽느니만 못한 이혼처럼 큰 것이든, 모든 일은 그분이 우리에게 던진 사랑줄, 그 어딘가에 붙어 있다.
-pp.57-58 ‘충격적’이라는 말은 ‘따분하다’는 말의 반의어다. 내 생각에, 예수는 그 누구도 결코 따분하게 만들지 않은 역사상 유일한 인물이다. 이는 신앙의 진리가 아닌 경험적인 사실이다. 그가 중점적으로 펼쳤던 주장, 즉 기독교의 중심 주장을 믿어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그는 말 그대로 육신이 된 하느님이시다. 물론 이 말은 충격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것도 비교를 불허하는 충격을 일으키는 이유인 것이다. 맥베스가 뱅코의 유령이 아니라 셰익스피어를 만나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프로도가 간달프가 아니라 톨킨을 만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p.67 개신교도였던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아주 초기부터 기독교 예배는 성체 성사가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체 성사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심을 보편적으로,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루터조차 현존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늘날 루터파 교인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성공회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아니, 칼빈조차 성체 성사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객체적으로 효험이 있는 ‘증표요 보증’이라고 믿었다. 츠빙글리에 이르기 전까지는 어떤 정통적이고 전통적이며 이단과 타협 않는 주류이자 역사적인 크리스천도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이 성례에 대해 믿는 바를 믿지 않았다. 오늘날 개신교도들은 대부분 성례전이 그리스도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한 상징일 뿐이라 하지 않는가. -p.153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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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의 마음을 빼앗고 본회퍼의 심장을 훔치고 테레사의 사랑을 독점한 예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보스턴 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예수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 거짓신화와 종교놀음에 빠져 창백하고 허약해진 신앙에 생기를 불어넣는 질문과 답! 35가지 질문과 세 차례에 걸친 자가 진단을 통해 자신의 신앙과 가치관이 과연 그리스도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는지, 핏기 없고 나약한 신앙의 원인은 무엇인지 점검하게 만드는 책이다. 포효하는 사자와 같이 가는 곳마다 경이와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예수’의 존재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고, 그리스도와의 완벽하고 친밀한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 성례전의 의미를 변증한다. 1장에서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이 책의 의의를 밝히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 예수가 아니라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우리를 성결케 하고자 문제와 질문을 가지고 오시는 예수의 존재를 조명한다. 2장에서는 현대인의 일상을 잠식해버린 권태의 문제와 가는 곳마다 경이와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예수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쪼개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 그분 앞에 무한한 경배를 드렸던 막달라 마리아의 사례를 통해 권태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충격을 조망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지혜, 그분이 행하신 기적과 이적, 그분의 신성, 무엇보다 그분의 존재 자체에 놀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4장에서는 ‘예수 충격’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바로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임을 밝히고,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가장 완벽하게 임하시는 곳이 성례전이라는 것, 개신교 종교개혁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5장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크리스천들이 성례전에 어떠한 자세로 참여해야 하는지를, 6장에서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밝힌다. 가톨릭 변증가 피터 크리프트 교수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 피터 크리프트는 보스턴 대학교와 킹스칼리지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소크라테스, G. K. 체스터턴, C. S. 루이스의 사상을 연구하는 철학 교수이다. 칼빈주의자였던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된 것은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조사하면서부터였다. 역시 칼빈주의자였던 동료 교수로부터 가톨릭의 교리를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피터 크리프트는 초기 교회의 역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기 교회 안에서 가톨릭교회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성만찬의 중요성, 그리스도의 현존, 성인들에게 올리는 기도, 마리아 흠숭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피터 크리프트 교수는 가톨릭 변증가로 미국에서 활발한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그의 저작이 번역된 적이 없어 제대로 소개할 기회가 없었지만, 2001년에 리 스트로벨이 쓴 《특종! 믿음 사건》을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저력이 있는 작가다. 기독교 8대 난제를 석학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탐색한 《특종! 믿음 사건》 첫 장에서 크리프트는 “사랑의 하나님이 악과 고난을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치밀하게 논증하여 학계와 대중의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 소개되는 첫 책 《예수 충격》을 통해 크리스천들에게 35가지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답하라고 요구한다. 나태한 신앙과 삶의 권태를 날려버릴 ‘예수 충격’ 예수가 2000년 전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예수의 말과 가르침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복음서는 그분의 가르침에 놀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위기의 순간에 그분이 하시는 말과 지혜에 놀랐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내어좇는 권능에 놀랐으며, 바람과 무화과나무마저 복종하는 그분의 권위에 놀랐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을 목격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그분의 존재 자체가 충격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예수 충격’이라고 부른다. 2000년 전 이스라엘을 충격에 빠뜨렸던 예수는 오늘날의 예수와 동일한 분이다. 그런데 왜 현대 크리스천들은 충격 자체인 예수의 현존 앞에서 따분하게 하품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왜 그렇게도 창백하고 생기 없는 신앙생활을 마지못해 근근이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일까? 저자는 충격의 이유이자 근원인 ‘예수의 현존’을 논증함으로써 이 문제를 탐구해나간다. 성례전에서 충만하게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임재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이 언제나 완벽하게 임재하시는 곳은 성만찬펻이다.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실제 임재’는 종교개혁 당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그리고 가톨릭과 개신교를 영원히 갈라놓은 해묵은 논제이기도 하다. 바로 그 주제를 붙들고 저자는 예수 충격의 근원을 탐색해나간다. 초기 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던 그는 세상의 어떤 크리스천도 1천 년 동안은 성만찬에 실제로 임하시는 그리스도를 의심하거나 부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든 기독교 예배의 중심이 설교가 아니라 성만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개신교도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신자와 그리스도의 진정한 연합을 보증하고 누리게 하는 것이 성만찬이다. 그리스도는 성례전 가운데 떡과 포도주가 되어 크리스천들을 만나고 그들을 성결하게 하기 위해 실제로 임하신다. 따라서 성례전이 그리스도 자신이 아니라 거룩한 상징일 뿐이라고 말하는 개신교도들은 그분과의 친밀하고 완전한 연합의 초대를 거절하는 셈이다. 그리스도와 친근해질수록 충격은 강해진다! 예수 충격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악하고 부정직한 자들에게 예수 충격은 공포심을 주고, 선량한 자들에게는 경이로움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그분에 대한 경이와 그분으로 인한 기쁨은 그리스도에게 친숙해진다고 해서 줄어들거나 둔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친근해질수록 예수 충격은 더 강력해진다.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예수 충격에 결코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지 너무 오래되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르고, 아무런 감격과 떨림 없이 습관적으로 성례전에 참여하는 사람들! ‘성례전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존’을 부인함으로 친밀한 연합으로 부르시는 예수의 초대를 거절하는 개신교도들! 그리스도에게 익숙해진 나머지 경이와 충격 없이 따분하고 허약한 신앙을 이어가는 가톨릭 신자들! 이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현존 앞에 옷고름을 여며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