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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팽
수연#1 화상입니까, 닥터 목뼈입니다 우연입니까, 닥터 환각입니다 수연#2 고양입니까, 닥터 현실입니다 수연#3 고백입니까, 닥터 수연#4 허상입니다 수연#5 다시, 닥터 팽 작가의 말 수상작가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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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각이라고 해도 창문 밖에 판다가 매달려 있다거나 공룡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귀여운 종류만은 아닐 거 아냐? 자기가 보고 있는, 자기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그 화면에 감쪽같이 숨겨져 있는 거라고. 숨은그림찾기나 매직아이보다 훨씬 더 교묘하게. 아니, 아니, 화면 그 자체가 환각일지도 모르지.
― 말도 안 돼. ― 자기, 여기 오면서 사람들 봤어? ― 봤어요. ― 자기가 봤던 그 사람들이 정말로 다 사람일까? 그 안에, 행인하고 똑같은 꼴을 한 환각이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어? 하긴, 현실이든 환각이든 자기처럼 태평한 사람한테는 아무 상관없는 모양이지만. --- pp.33-34 ― 도대체 진실이라는 게 뭐죠? 뭐가 현실인가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은 현실인가요? 여기 있는 내가 현실이에요?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 거죠? ― 자네가 믿고 싶어 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 닥터 팽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너무도 당연해서, 이제는 말하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이. --- pp.172-173 어릴 적 내가 싫어하던 동화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였다. 나는 동화 속에 나오는 이발사를 파렴치한이라고 생각했다. 기억하는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식의 굳은 머리를 가진 나로서는 돈까지 받아놓고 뻔뻔스럽게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발사가 고까울 리 없었다. 나는 분개했지만 이발사는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 거대한 크기의 왕관이 작아지고, 임금님이 시원스럽게 귀를 내놓고 지내게 되었다는 낯간지러운 결말만이 이야기 끝에 남아 있었다. 동화라면 무엇보다 권선징악이 아닌가. 진부하지만 그런 것이다. 팥쥐는 육젓이 되고 마녀는 불에 달군 구두를 신고 숨이 멎을 때까지 춤추는 게 잔혹하지만 당연한 동화의 세계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발사의 미래는 저리도 순탄하단 말인가. 나는 이발사에 대해 자주 떠올렸다. 그의 무책임함과 자기애착, 그럼에도 보장된 그의 안온한 일상의 부당함에 분노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말을 할 필요가 뭐 있는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일이다. 머릿속을 비우고 입술 끝만 내리면 된다. 목숨까지 걸면서 소리칠 까닭이 대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연민이 피어올랐다. 문득문득, 이발사가 안쓰러워지기까지 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야기하고 싶어 환장한 그의 모습이, 이야기를 못해 몸져누운 그의 모습이 나와 너무도 닮아 있다는 사실을. 그랬다. 나는 말하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단순히 뭔가를 쓰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백날이고 천날이고 일기를 쓰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내 속에 지닌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어 안달이 나고 병이 났다. 대나무 숲에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기분으로 나는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댔다. 나의 골방은 얇은 대나무가 촘촘히 박힌 대숲이었다. 이걸 좀 읽어줘. 나는 밤마다 대나무들에게 매달려 애원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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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팽의 위조기억말살기!
“당신의 기억은 안전합니까?” 5천만원 고료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 국내 장편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제정된 자음과모음 문학상의 첫번째 수상작인 안보윤의 『오즈의 닥터』가 출간되었다. 『오즈의 닥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화하는 치밀하게 의도된 문장과 흥미로운 사건 전개, 흥미 있는 캐릭터의 등장을 통해 어떤 것이 사실이며 허구인지, 또 기억은 실재하는 것인지 꾸며낸 것인지 등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현실과 허구, 실재와 환각이 서로를 배반하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작가의 세련되고 현란한 구성 능력을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이 평가받았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변형시키면서 그것을 다시 재배열하는 작가의 능력은 이 소설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큰 힘이다. 진짜야, 가짜야? 환각의 힘으로 진실 무너뜨리기! 『오즈의 닥터』는 안보윤 작가의 두번째 장편소설로 환상과 실재의 경계를 주제화하면서 현란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나’는 가상의 정신과 의사인 ‘닥터 팽’을 만나 상담과 진술을 한다. ‘닥터 팽’은 ‘나’의 카운슬러이다. 그러나 갈수록 ‘닥터 팽’의 외모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진술은 변형되고 번복된다. 뜻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나’의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닥터 팽’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나’의 심리적 분신 또는 허상임이 분명해진다. ‘닥터 팽’에게 상담을 하면서 내뱉는 ‘나’의 진술은 진짜 같은 허구이다. ‘나’가 구체적으로 회상했던 어머니, 누나, 동생은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었고 ‘나’의 기억에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허구의 진술은 소설 속에서 끝없이 변형되고 번복됨으로써 주인공은 끝내 몰락하게 된다. 그에 따라 모든 진실 역시 몰락하고 만다. 이런 환상과 환각들은 우리에게 기억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자네가 믿고 싶어 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 이 구절은 누구나의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좋은 것만 기억하는 인간의 습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위조된 기억, 날조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의 기억은 과연 안전할까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파렴치한 이야기꾼의 뻔뻔스러운 이야기 『오즈의 닥터』는 현실과 허구, 실재와 환각이 서로를 배반하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독특한 구성의 소설이다. 작가는 이상의 ‘거울 속 나’나 황병승의 ‘주치의 h’처럼 자신의 병리성을 진단하면서도 그러한 병리적 구조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음으로써 의사-환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분열증적 주인공을 등장시켜, 앞뒤도, 전후도 맞지 않는, 한도 끝도 없는 거짓말을 풀어놓는다. 소설의 초반부에 펼쳐진 이 황당한 거짓말은, 언뜻 소설 후반부의 진짜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익숙한 인과적, 선조적 서사를 배반하는 과정, 즉 이 거짓말이 저 거짓말로 대체되고, 다시 사실이 양념처럼 더해지는 허구의 직조 과정 그 자체를 하나의 서사로 완성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