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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취적산의 전설
1부 아사 이야기 2부 사비 이야기 에필로그-세상의 모든 연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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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래는 아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술래의 개인 책사이자 참모였다. 아사는 어려서부터 옛 중국의 고전 지혜서와 병서 등을 많이 읽어서 군사 전략에도 해박했다. 아사는 신라의 선덕여왕이며, 의자왕의 등 뒤에서 정계의 큰손 역할을 하는 백제의 왕비 군대부인 은고를 잘 알았다. 그들은 드센 남자들만 살아남는 비정한 권력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여걸들이었다. --- p.24
두 사람은 꽃이 그 계절에만 한 번 피듯이, 인생 역시 두 번 오지 않으며, 사랑도 두 번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둘이 이렇게 만나기까지 아사는 16년 동안, 설오유는 20년 동안의 아침을 기다렸다. 두 사람만의 아침을 맞기까지 걸린 시간과 거리를 생각하면 그런 인연들이 짧은 인생에서 두 번 올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두 사람은 열망의 포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사람은 강물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마음의 눈으로만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더 크고 아름답게 하려면 더욱 진실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아사는 생각했다. --- p.57 “하오나 폐하, 박새가 깊은 숲에서 둥지를 틀어도 겨우 나뭇가지 하나를 차지할 뿐이고, 수달피가 강에서 갈증을 푼다 해도 겨우 배를 채우면 족하거늘 제가 어찌 감히 금은보화와 권력을 탐할 수가 있겠습니까? ” 의자왕은 아사의 말을 듣고 속으로 놀랐다. 중국의 온갖 명언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 p.158 마침내 이만광은 사비를 왕비 앞까지 천천히 안내했다. 왕비와의 거리는 불과 팔 하나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왕비가 사비의 손을 잡는 순간, 이만광은 사비가 소매에 감춘 청룡 단검을 재빨리 빼 들고 왕비의 목을 겨냥해야 한다. --- p.285 의직은 당군을 선제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상영은 신라군부터 기를 꺾어놓자고 해서 두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으나 의자왕은 두 장군의 엇갈린 주장을 쉽게 판단할 수가 없었다. …… 만일 지금 곁에 성충과 흥수가 있고, 윤충과 계백이 있다면 의자왕은 이렇게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 p.300 “그런데 사비야, 네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어머니의 아사처럼 사비는 아침이라는 뜻입니다.” 설오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오유는 그 순간 아사가 사비이며 사비가 아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으로 부녀의 짧은 해후는 끝이 났다. 설오유는 사비와 헤어지자 곧바로 전쟁터로 떠났다. --- p.3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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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이 피는 연못가에서 흙피리를 불고 있던 가야의 왕족 아사(16세)는 시녀 설파로부터 백제군의 기습소식에 놀라 피난을 서두른다. 대야주에는 여전히 가야 왕족들이 살고 있었고, 가야의 독립을 획책하는 가야연맹의 비밀 결사체가 암약 중이다. 다라국 왕족 출신으로 신라에 군사유학을 다녀온 신라군 소속 무장 진술래(20세)는 가야 독립의 야망을 품고 가야 반군과 내통 중에 있다. 진술래는 어려서부터 아사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만 애를 태운다. 그런 가운데 대야주의 주둔 사령관으로 부임한 설오유(20세)와 아사는 만나자마자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설오유와 아사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진술래의 설오유에 대한 질투와 복수심이 점차 커지고, 가야 반군은 신라군 본영에 대한 기습 공격을 시도하기도 한다. 설오유가 한강유역 출정명령을 받아 떠나는 날, 아사는 갑자기 닥친 이별에 슬퍼하지만 영원한 사랑을 맹서하며 훗날을 기약한다. 신라가 철군하자 백제는 군사를 전격 투입, 피난길에 오른 아사를 비롯한 가야 왕족들을 대거 볼모로 붙잡아 사비성으로 압송하고 만다. 아사는 백제의 사비궁에 연금되지만 후궁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의자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 그로인해 아사는 의자왕의 왕비 은고와 후궁들과 사비궁 내의 세력 다툼에 휘말린다. 그런 시련 속에서 아사는 설오유의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지만 왕에게 자백하기엔 너무 늦었다. 아사는 의자왕의 아기를 가진 것으로 속이고 사비궁 탈출의 기회를 찾다 마침내 설오유의 딸 사비를 낳는다. 의자왕은 사랑하는 아사가 낳은 사비를 극히 사랑한다. 그러나 아사는 사비궁의 탈출 기회를 계속 노리다 마침내 진술래와 내통 끝에 아기와 함께 탈출에 성공하지만 신라의 국경 황강에서 백제의 국경 수비대에 체포당하고 처형된다. 시녀 설파만이 가까스로 아사의 시신을 수습하고 아기 사비와 함께 사비궁 탈출에 성공한다. 그로부터 13년 후, 660년 초여름, 백제의 구암리 당집에는 아사와 똑 닮은 눈 먼 예언가 사비가 혀가 잘린 설파와 은밀히 숨어 살고 있다. 그 즈음 백제의 사비궁은 왕비 은고의 강력한 친정체제가 구축되고 백제는 폭정과 귀족들의 착취로 국력이 기울면서 나당 군사동맹의 군사적 압박은 계속되었다. 왕비 은고는 고립무원 속에서 국정을 복술가 이만광의 점괘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만광은 사비의 영험한 점괘를 이용하여 왕비에게 정치적 자문을 하는 처지다. 백제의 멸망이 가시화되자 이만광은 자신의 재산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 왕비를 시해하기로 결심하고 사비의 소매 속에 단검을 숨겨 왕궁 호위무관들의 눈을 피해 입궁한다. 그러나 이만광은 정작 왕비 앞에서 머뭇거리며 끝내 시해 결행을 못한다. 사비는 어쩔 수없이 소매에서 단검을 꺼내 왕비에게 바치면서 ‘백제의 명예와 순결을 위해 자결할 것’을 권유한다. 격노한 왕비는 두 사람을 하옥시키지만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이미 때는 늦었다. 구암리에 들이닥친 당나라 군사들은 마을을 약탈, 사비와 시녀 설파도 함께 노예로 징발되어 소정방의 귀국선단에 오른다. 귀국선단이 출발하기 직전, 사비는 신라군의 요청으로 노예선에서 극적으로 풀려나 효은스님의 예언대로 눈을 뜨고 아버지 설오유와 극적으로 해후한다. 훗날 사비는 전쟁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비암사 창건을 돕기로 한다. 어머니가 건너지 못했던 통한의 황강을 건너기 전날 밤, 사비의 꿈속에 나타난 어머니 아사는 삼성산 단층암에 봉안해둔 자신의 뼛가루를 흙에 섞어 흙피리를 만들어 설오유 장군에게 줄 것을 부탁한다. 사비는 어머니의 꿈대로 흙피리를 만든 다음 “汝須招千丈地獄火 그대 천길 지옥 불을 불러드렸네.”라는 시를 새겨 넣는다. 그러나 사비는 북방 전선으로부터 아버지의 전사통보를 받게 되고, 사비는 대야주의 우두산 해인암으로 출가하여 보름달만 되면 황강에 나가 흙피리를 불며 부모님의 영혼을 위로한다. 따라서 그 산은 지금도 취적산(吹笛山)으로 불리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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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으나 사료 부족 등으로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제4의 제국’ 가야가 유홍종의 소설 『아사의 나라』로 되살아났다. 〈월간문학〉시 부문 신인상과 〈현대문학〉소설 추천으로 등단한 유홍종은 장편소설 『서울무지개』,『카인의 도시』를 비롯해 논픽션 『명성황후』, 『붓다가 길을 묻다』, 한국 초기 천주교회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나무십자패』 등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아사의 나라』는 픽션과 논픽션을 적절히 버무려 고구려, 신라, 백제라는 강대국의 틈에서 끊임없이 독립을 꿈꾸고 투쟁하다 마침내 좌절하는 과정을 가야 사람인 주인공 아사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가야의 왕녀로 백제에 볼모로 끌려가 의자왕의 마지막 후궁이 된 아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비궁의 안방 권력투쟁, 삼국통일의 주역 신라의 설오유 장군과 아사와의 애절한 사랑, 그리고 비운의 의자왕이 지키던 사비성의 마지막이 주요 배경을 이룬다. 또한 신라 설오유 장군의 딸로 태어나 의자왕의 공주로 신분을 위장할 수밖에 없었던 소녀 예언가 사비가 어머니 아사의 원혼을 달래주는 취적산의 숨겨진 사랑과 비극의 전설을 간절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한때 고구려와 자웅을 겨루며 강대국으로 위세를 떨쳤으나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할 역량을 쌓지 못한 채 왕권에만 눈이 먼 왕비와 간신들의 권력 다툼 속에 힘없이 스러져가는 백제 멸망의 과정과 멸망 후 죽음을 맞는 패국 백성들의 슬프고 비참한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소설 『아사의 나라』의 내용 - 흙피리의 전설에 얽힌 가야 왕녀의 슬픈 사랑 가야의 널무덤에서 출토된 흙피리(吐笛)에 새겨진 “그대 천 길 지옥 불을 불러들였네” 라는 8언 한시는 지금까지 그 내용과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채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시가 수록된 고서가 발견되면서 토적에 얽힌 한 가야 왕녀 아사의 사랑과 비극의 세월이 드러나게 된다. 아사의 흙 피리가 불리던 곳으로 추정되는 합천의 황강에는 취적산(吹笛山)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지만 옛 대야주인 합천은 신라와 백제가 황강을 사이에 두고 군사 분쟁이 가장 격렬했던 곳이었다. 대야주는 본래 가야의 다라왕국이었으나 신라에 강제로 합병 당한다. 그러나 백제는 대야주를 신라의 영토로 인정하지 않고 윤충 장군을 내세워 대야주를 정벌한다. 그리고 6년 후,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대야주를 백제로부터 되찾는다. 그 후 신라가 대야주에서 주둔군 병력을 철수하자, 백제는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야주를 다시 기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