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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처음 접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하나의 독일문학, 정체성 탐색과정’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면서부터였다. 분단된 독일의 재통일이라는 역사적 전환기에서 겪는 정체성 확보에 걸림돌이 되는 자기비판, 심리적 갈등, 저급한 자본화라는 장애물에 대한 자리매김이었다.
그러나 전환기 이후 본격적으로 독일인들의 정체성 추구를 다룬 기성작가에 의해 드러난 한계가 문제였다. 그래서 신진작가에 의해 탐색되기 시작한 작품들을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동독의 몰락기에 창작을 시작한 작가는 신세대답게 ‘권력에 개의치 않았으며,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았다’고 한다. 대신 민중의 삶이 주의를 끌었다. 즉 한편으로 민중의 ‘권력은 막강하다’는 믿음과 다른 한편으로 ‘민중은 너무 심각한 게 탈’이라는 절망을 거부한다는 작가의 서술관점이다. 이처럼 대학 강의실이나 전문 학술지에서 다루는 것 못지않게, 응당 일반 독자를 향한 번역이 외국문학 전공자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는 한국의 통일문학을 위한 시사점이나 읽을거리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그러나 비교적 쉬울 것이라는 번역작업은 낯선 동독 사회가 지닌 숱한 이질적인 코드로, 그리고 방언과 비속어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에는 직접 독일 현지로 가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 신성옥-라울프(Raulf) 부부의 도움이 컸다. 소설 내용 중 사용된 삽화도 화가인 남편이 그린 것이다. 그러나 번역인가 반역인가, 아니면 단순 재생산이냐 창작품이냐는 문제에 번역자들은 항상 부닥치기 마련이다. 초벌 번역은 말 그대로 원어에 충실한 번역이었지만, 2차에서 7차에 걸친 수정 및 보완작업은 목적어인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등가성 확보와 창작에 준하는 작업이었음을 밝힌다. 이는 번역행위가 창조적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번역의 기능과 역할에서 독자수용이라는 면까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때문에 출간에 앞서 학생들을 애벌 독자로 선정하여 읽게 했다. 예상대로 번역자가 소홀히 한 부분에 대한 적절한 지적과 함께 반응이 다양했다. 요약하면, 원어 독자는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어 독자는 이해하기 힘든 비유적·상징적 표현에서부터 지명, 호칭, 생소한 용어 등 모호하게 읽히는 표현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을 켤 줄 아는 학생의 경우 “힘을 주지 말고” 보다는 “어께에 힘을 빼고”가 훨씬 어울린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저자와 같은 작센(Sachsen) 주에서 자란 독일학술교류처(DAAD) 부산대 파견교수 해넬(Hanel)과 함께한 마지막 확인 작업도 필수적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라울프 부부, 대학원생 박선희, 학부 학생인 애벌 독자들과 해넬 교수께 고마움을 전한다. 『운하에서 춤을』은 한국어 번역작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가 모든 문학작품은 다른 문학작품의 체계로 전해져 왔고, 이에 관련된 문학적 체계의 일부분으로서 ‘번역의 번역의 번역’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문학이 근원적으로 폐쇄적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연계성을 지닌 채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을 통해 번역을 문학의 주된 개념으로 끌어올린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의 주장의 근저에는 번역이 갖는 문학적 기능과 더불어 창의성이 강조되어 있음을 옮긴이는 전하고 싶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번역자가 내리는 작품의 평가나 분석은 생략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해본다. 번역자의 손을 떠난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새삼스럽게 한 가지만 언급한다면, 소설은 허구이자 가상공간에서 비롯된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동독시절 어린 소녀의 성장과정과 여성적 정체성, 통일 이후 글쓰기 과정을 통한 비판적 자기성찰, 일탈의 욕구와 주체 구현의 단계적 접근 등에 주목하는 독서체험을 권한다. 이천구년 초겨울 금정산 기슭에서 옮긴이 이상금 씀 --- '역자 서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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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에서 끝나는 도시, 그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삶
통독 20년을 맞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동독 출신 제3세대 작가 케르스틴 헨젤의 성장소설, 비참한 성장과정을 이겨내고 좀 더 인간다운 삶으로 다가서는 한 소녀의 경쾌한 스텝!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도시의 끝으로 내몰린 인생들. 통일 이후 무척 혼란스러웠던 시절의 독일, 거지나 다름없는 행색의 한 여인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어쩌면 이 소설의 매력은 작가의 독특한 출신성분이라든가,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장소설들에 비해 일견 자극적으로 보이는 소재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극한으로 내몰린 생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거대한 강과 등을 떠미는 바람 사이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작가가 보여주는 경쾌한 해법을 읽는 묘미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겨우 도망을 친 패잔병 같은 삶이 아닌, 오히려 세상의 끝에서 경쾌한 스텝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춤을 추듯 인간다운 삶으로 다가서는 한 소녀의 성장기. 허구인 듯 실제인 듯, 통일 이후 동독인들이 겪었던 절망과 혼란 속에서의 아름다운 춤사위는 역시 분단을 겪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연 깊은 곳 상처가 남긴 불에 덴 듯한 흔적과도 그 모양을 같이하고 있다. 통독 20년을 맞아 얼마 전 국내에 소개되었던 잉고 슐체, 토마스 브루시히 등과 함께 동독 제3세대 작가군으로 분류되는 케르스틴 헨젤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한 소녀의 성장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실화에 가까울 만큼 다양하고 충격적인 소재로 풀어간다. 그것은 동독인들이 반강제적으로 느껴야만 했던 절망과 분노를 대변한 것이었으며 독일 내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일찍이 서양은 물론 동양에도 알려져 동독 출신 대표 작가로 자리 매김한 그녀의 작품이 이제야 국내에 소개된다는 것은 역시 독일과 같은 분단의 아픔을 겪고 그로 인한 내부의 문화적 장벽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기에 작품에 대한 공감 여부를 떠나 독자들에게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지는 장면이다. 역자 부산사범대 독어교육과 이상금 교수는 “독자들에게 번역자가 내리는 작품의 평가나 분석은 생략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해본다. 번역자의 손을 떠난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새삼스럽게 한 가지만 언급한다면, 소설은 허구이자 가상공간에서 비롯된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동독 시절 어린 소녀의 성장과정과 여성적 정체성, 통일 이후 글쓰기 과정을 통한 비판적 자기성찰, 일탈의 욕구와 주체 구현의 단계적 접근 등에 주목하는 독서체험을 권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읽을거리와 함께 청소년들에게는 색다른 성장소설로서, 어른들에게는 분단의 잔재가 남긴 사회적 패자들의 절망과 고독에 대한 연민을 담은 소설 『운하에서 춤을(Tanz Am Kanal)』. 이 책이 하나의 작은 사회적 이슈가 되어 도시의 끝으로 자꾸 내몰리는 현대인들이 경쾌한 스텝을 밟는데 그 첫 걸음을 마련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