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폭정의 역사
중세 유럽 왕실의 비극과 광기의 역사
베스트
역사 top100 3주
가격
24,500
10 22,050
YES포인트?
1,22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Introduction

1장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성전기사단
최후의 결심 | 수호 기사단 | 귀족 출신의 기사단원들 | 대의명분 | 믿음직한 자금 관리자 | 십자군의 쇠퇴 | 종말의 서곡 | 악랄한 비난 | 점점 커져가는 음모 | 최후의 일격 | 전리품의 분할

2장 피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 바토리
근친혼이 가져온 정신분열증 | 비틀린 욕구 | 막강한 귀족사회 | 파국 | 체포와 재판 | 끔직한 증언 | 악녀의 죽음

3장 메트레상티트르의 시대: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정략결혼 | 왕의 정부 | 새로운 정부 | 변하는 마음, 변하는 운명|새로운 군주 | 퐁파두르 부인의 시대 | 실현된 욕망 | 군중 봉기

4장 왕과 요부(妖婦): 바바리아 왕국의 루트비히 1세와 롤라 몬테즈
사회의 부랑자 | 아름다운 외모 그 이상 | 해로운 집착 | 혁명의 끈 | 격렬한 시위 | 롤라의 추방 | 엇갈린 명암 속에 끝난 생애

5장 백조의 성: 루트비히 2세의 비극적인 삶
불안정한 유년시절 | 인성 나침반은 없다 | 환상의 세계 | 왕이라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 혼인의 의무 | 광기의 서막 | 엘도라도를 찾아서 | 의문의 죽음

6장 마이얼링의 비극: 루돌프 황태자와 마리아 베체라
진보주의적 생각들 | 통제의 압박 | 부부의 전쟁 | 첫 만남 | 사랑에 빠지다 | 사랑을 위한 처방전 | 탈출구는 없다 | 동반자살 | 교황청의 위장술

7장 스페인 왕실의 광기: 비운의 후아나 여왕
정략결혼 | 사랑에 눈멀다 | 커지는 야망 | 스페인을 벗어난 펠리페 | 악화된 상황 | 광기의 서곡 | 그들의 전쟁 | 책략과 음모 | 침울한 장례 행렬 | 딸과 그 아버지 | 이상행동

8장 스페인 왕실의 광기: 근친혼이 남긴 유산
흔들리지 않는 카를로스의 지위 | 근심에 찬 아버지 | 악화되는 광기 | 독이 든 다이아몬드 | 급진하는 세기 | 기형적인 신체 | 부르봉 왕조의 등장 | 남다름 혹은 광기 | 망가진 통치자 | 혼란의 스페인 | 광기의 본질

9장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 의문의성(性) 정체성
자신의 성(性)을 경멸하다 | 완강한 성격의 크리스티나 | 예정된 수순 | 부적절한 관계 | 새로운 복장, 새로운 인생 | 르네상스의 고향 | 한 발자국 떨어져서 | 왕권을 위한 마지막 처방 | 평화 속에 잠들다 | 크리스티나를 숭상하는 수도사들 |

10장 혈우병: 왕실의 유전병
혈우병의 비극 | 계속되는 저주 | 라스푸틴과 로마노프 왕가 | 고발당한 라스푸틴 | 스페인의 혈우병 | 알폰소 13세의 선택 | 또 하나의 죽음 | 희미하게 보이는 희망

11장 왕과 공산주의자들: 루마니아의 카롤 2세
잔인한 유산 | 변덕스럽고 비밀이 많은 아이 | 비밀 결혼 | 다시 시작된 논쟁 | 굴복 그리고 재혼 | 사람들을 매혹 시키다 | 기회를 잡다 | 새 인생, 새 후계자 | 가혹한 복수 | 능동적인 지도자 | 새롭게 떠오르는 권력자 | 망명 생활 | 무너진 귀국의 희망 | 주목받지 못한 죽음

12장 네덜란드: 분쟁의 왕실
불안한 결혼 생활 | 플레이보이 영웅 | 사라진 관심 | 잘못된 믿음 | 아이린 공주 | 타협은 없다 | 논쟁을 일으킨 또 하나의 결혼 | 왕위 계승 | 또 다른 스캔들 | 위험한 생활을 즐기다 | 율리아나, 남편 곁을 지키다 | 베른하르트의 스캔들 | 새 여왕 등극

13장 레오폴드 2세와 벨기에령 콩고
왕국의 비전 | 케이크를 나눠 가지다 | 레오폴드, 자신의 몫을 주장하다 | 학대와 착취 | 연막작전 | 빗발치는 비난 | 극악무도한 행위들과 학대 | 정부의 개입 | 레오폴드, 무너지다 | 죽어서까지도 경멸당하다

14장 모나코의 그리말디 가(家)
이미지 속에 감춰진 진실 | 신붓감을 찾아 나서다 | 서둘러 은폐하다 | 아이가 태어나다 | 장난감 소년 |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 바람둥이 은행원 | 그레이스의 갑작스러운 죽음 | 공주, 재혼하다 | 야생녀, 스테파니 | 새로운 사랑을 찾다 | 귀향 | 착한 아들의 비밀

찾아보기

저자 소개 2

브렌다 랄프 루이스

관심작가 알림신청
 

Brenda Ralph Lewis

4개의 영국 유명신문사의 왕실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군주제에 관한 저서집필로 유명하다. 1997~98년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인생을 기념하는 출판물 중의 한권을 기획, 집필 하였으며, 「로열티 매거진Royalty Magazine」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또한 군주제 관련 TV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영국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버킹엄셔에 살고 있다. 저서로는 『The Story of Anne Frank』, 『Dark History: Kings and Queens of England』, 『A Dark History of Popes』, 『Mona
4개의 영국 유명신문사의 왕실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군주제에 관한 저서집필로 유명하다. 1997~98년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인생을 기념하는 출판물 중의 한권을 기획, 집필 하였으며, 「로열티 매거진Royalty Magazine」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또한 군주제 관련 TV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영국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버킹엄셔에 살고 있다. 저서로는 『The Story of Anne Frank』, 『Dark History: Kings and Queens of England』, 『A Dark History of Popes』, 『Monarchy』, 『Life in a Medieval Castle』, 『Woman at War』, 『Hostage Rescue with the FBI』, 『Ritual Sacrifice: Blood and Vengeance』, 『Hitler Youth: The Hitlerjugend inPeace and War 1933-1945』, 『Tutankhanun and Hidden Treasures of Ancient Egypt』 등 다수가 있다.
일본 도키와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 드폴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현재 PLS의 대표이며 주요 역서로는 『리더의 힘』, 『그럼에도 행복하라』, 『워렌 베니스의 리더십 원칙』, 『뇌 맵핑마인드』, 『신화가 된 전설적인 서비스』, 『지식의 쇠퇴』, 『화폐의 역사』, 『폭정의 역사』, 『철학사 아는 척하기』, 『사회학 아는 척하기』, 『화내지 않는 연습』, 『생각 버리기 연습 2』 『대화가 필요해』, 『1인 1식』 등 다수가 있다.

양영철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80쪽 | 918g | 193*240*30mm
ISBN13
9788992114509

책 속으로

필리프 4세의 숙원
필리프4세는 성전기사단을 완전히 뿌리 뽑을 그날을 고대했다. 그는 성전기사단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는 한편, 그들이 지닌 힘을 시기하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성전기사단에 최악의 혐의를 덮어씌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7년에 걸쳐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조작한 증거물과 가짜 증인을 법정에 동원했다. 그런 마당에 가장 큰 노획물인 자크 드 몰레가 자신이 꾸민 음모를 폭로한 채 빠져나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자백을 부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 몰레와 드 샤르네는 왕실정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Augustin 수도원 사이에 흐르는 세느 강 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 일 드 자비오로 끌려갔다. 그들은 화형대에 묶여 아래서부터 치솟는 불길에 타 죽었다. 목격자들은 드 몰레와 드 샤르네가 자신들의 비참한 최후를 위엄 있는 태도로 묵묵하고 담대하게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죽음을 지켜본 많은 이에게 그들은 순교자였다. 몇 사람은 재가 식길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유골을 수습해 신성한 유물로 경건하게 보존했다. --- p.13,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성전기사단」 중에서

철가면을 쓴 사나이
철가면을 쓴 사나이는 유럽왕가에서 가장 유명한 불가사의 중 하나다. 처음 1687년 투옥된 그는 11년 후 파리로 옮겨져 엄중한 경비 하에 바스티유 감옥에 구금됐다.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소문에는 그가 루이 14세의 총애를 잃은 신하라는 설이 있었으나 그런 단순한 이유보다는 뭔가가 더 큰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익명의 사내는 항상 가면을 썼고, 총을 든 두 명의 병사는 그가 가면을 벗으면 죽이려고 감방 가까이에서 대기했다.
그는 먹고 자기만을 반복하다 결국 1703년 가면을 쓴 채로 죽었다. 50년 후에 프랑스의 유명 작가 볼테르Voltaire는 철가면을 쓴 사나이가 최고의 권력자(루이 14세)를 닮았을 거란 추측을 내놨다. 철가면을 쓴 사나이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들 가운데서 이 추측은 그가 루이 14세의 형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설을 낳았다. 하나뿐인 왕위를 보전하기 위해 몇 분 더 먼저 태어난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을 감금했다는 것이다. --- p.79, 「메트레상티트르의 시대: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중에서

1886년 6월 13일 저녁 식사를 마친 루트비히와 폰 구덴은 산책을 하러 나갔다. 하지만 그 둘은 성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상하리만큼 침착하게 굴었던 루트비히는 폰 구덴을 안심시킨 후 그를 유인하여 살해한 후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모든 일은 루트비히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부검 결과 폰 구덴은 심각하게 두들겨 맞은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폰 구덴의 눈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코와 이마에도 깊은 상처가 남아있었으며 오른쪽 손톱 하나가 빠져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루트비히의 몸에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 날 밤 6월 14일 루트비히의 시체는 뮌헨으로 후송되었다. 루트비히는 화려한 관복을 입고 옆에는 칼을 차고 있었다. 꽃으로 가득 찬 관에 3일 동안 루트비히를 눕혀 놓았다. 꽃으로 조심스럽게 루트비히의 몸에 남아있던 부검의 흔적들을 가려놓았다. 6월 17일 루트비히는 엄중한 가운데 땅에 묻혔다. --- p.129, 「백조의 성: 루트비히 2세의 비극적인 삶」 중에서

동반자살
이틀 후 루돌프 황태자는 비엔나를 떠나 마이얼링으로 향했다. 표면상 이유는 한 겨울 숲속 사냥을 하기 위해서였다. 마리아 베체라가 루돌프와 동행했다. 1월 29일 오후 마리아와 루돌프는 오래도록 숲속을 거닐었다. 루돌프가 마리아에게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자신의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살뿐이라고 루돌프는 믿고 있었다.
열렬한 사랑에 빠져있던 마리아는 루돌프의 말에 제안에 동의했다. 아직 어린 마리아는 죽음에 대한 뚜렷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리아는 루돌프와 사후세계에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날 밤 둘은 각자 어머니에게 편지를 남겼다. 루돌프는 엘리자베스 황후에게 알랜드 근처에 있는 작은 묘지에 마리아와 함께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루돌프의 이 마지막 바람도 결국 이루지지 않았다.
편지를 다 쓰고 난 후 둘은 침실로 들어가 문빗장을 안쪽에서 걸어 잠갔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루돌프는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잠든 마리아에게 다가갔다. 마리아의 왼쪽 귀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마리아는 즉사했다. 총성을 들은 루돌프의 시종 로셰크는 즉시 방에서 뛰쳐나와 황태자의 방으로 달려갔다. 로셰크가 루돌프의 방에 도달했을 때 두 번째 총성이 들려왔다. --- pp.150-152, 「마이얼링의 비극: 루돌프 황태자와 마리아 베체라」 중에서

다시 시작된 논쟁
지지가 임신했다는 소식에 그 둘에 관한 논쟁은 순식간에 다시 표면위로 떠올랐다. 지지의 임신 소식을 들은 카롤은 더 이상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지지의 곁에 머물겠다는 결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카롤은 자신의 왕위 계승권마저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카롤은 자신을 불구자로 만들려는 시도를 두 번이나 했다. 한 번은 달리는 말밑에 몸을 던졌고 한 번은 다리에 총을 쏘았다. 하지만 국가 정세는 이런 일로 시간을 낭비할 상황이 아니었다.
1919년 루마니아는 이웃나라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에 압박을 받고 있었다. 카롤은 루마니아 왕조와 루마니아 자체를 황폐하게 만들 기질이 충분한 후계자였다. 따라서 루마니아 왕조뿐 아니라 나라 자체가 잠재적인 위험에 처해있는 상황이었다. --- p.264, 「왕과 공산주의자들: 루마니아의 카롤 2세」 중에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그레이스와 레니에의 사이는 멀었지만 아이들에 관한 일만큼은 힘을 합쳤다. 1978년 이 부부는 모든 부모들이 두려워하는 그 순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 캐롤라인은 21살이 되었고 어떤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캐롤라인의 부모는 그 남자가 캐롤라인의 인생을 망쳐버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캐롤라인은 ‘야생의 아이’로 고집 세고 반항적인 아이였다. 캐롤라인은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웠고 심각할 정도로 음주를 즐겼다. 록 스타들이나 미덥지 않은 방탕한 젊은이들과 나이트클럽과 바에 있는 모습들이 자주 사진에 찍혔다. 레니에와 그레이스는 그들의 방황하는 딸을 잡아줄 왕자를 찾으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유럽 왕실을 전부 훑었다. 그들은 웨일즈 왕자 찰스를 붙잡고 싶어 했지만 찰스 왕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캐롤라인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상대로 여긴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 pp.354-356, 「모나코의 그리말디 가(家)」 중에서

출판사 리뷰

『b』중세 유럽 왕실의 어두운 역사에 등장하는 군주들의 폭정과 광기는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프랑스의 필리프 4세의 성전기사단 박해로부터 모나코 그리말디가(家)의 비극적인 현실까지
유럽 왕실의 비극과 광기를 파헤쳐 그들의 행동이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을 규명한 책『/b』

이 책은 유럽 군주제의 화려함과 우아함 뒤에 감춰져 있던 군주들의 폭정, 광기, 스캔들, 미스터리와 같은 음울한 역사의 이야기들을 불러 모았다. 왕실의 복도에서, 침실에서, 지하 감옥 등에서, 실제로 유럽 전역에 존재했던 사건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기록했다. 또 강력한 절대 권력을 내세운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성전기사단에 행한 무시무시한 고문, 엽기적인 살인 행각의 에르제베트 바토리, 질 드 라발, 드라큘 백작과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의 아프리카 콩고인 대학살 등은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주고, 정신병으로 불우한 생을 살다 떠난 스페인의 후아나 여왕, 돈 카를로스, 카를로스 2세, 펠리페 5세와 그의 아들 페르난도 6세, 그리고 감금된 베르크 성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루트비히 2세, 혈우병으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 레오폴드 왕자와 알렉세이 황태자 등의 비극적인 죽음은 왕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행한 근친혼이 남겨준 불행한 유산이 그 후손들에게 얼마나 비참한 삶을 안겨주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랑, 정욕, 스캔들로 일세를 풍미한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왕위를 버리고 사랑과 죽음을 선택한 카롤 2세 와 루돌프 황태자, 왕족이기를 거부하고 자유인이 되고 싶었던 모나코 그리말디의 3명의 공주 등 음모와 책략이 상존하고 있는 음울한 왕실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갈망했던 인간들의 군상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책 『폭정의 역사』는 우리가 몰랐던 그러나 꼭 알아야 하는 유럽 왕실의 어두운 역사를 돌아보고 세계사를 뒤 흔들어 놓았던 군주들의 광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광기가 역사와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추적하고 있다. 또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었던 군주와 왕족들은 어떠한 삶을 살고 싶어 했고, 어떻게 일생을 살아갔는지 그 비극의 현장을 찾아가 본다.
300컷이 넘는 풍부하고 다양한 컬러화보와 원색 그림은 마치 TV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듯 우리를 바로 그 잔인하고 처절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인간의 잔인함의 끝은 어디인가
드레의 영주 질 드 라발은 200명에 이르는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고문하고 살해한 뒤 그 시신을 절단했다. 아이들은 거의 목이 잘린 채였다. 그는 어린 희생자들이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보며 ‘기쁨과 육체적 쾌락’을 느낀다고 했다. 피의 백작부인이라 불리는 에르제베트 바토리는 수 십 명의 처녀들을 죽여 그 피로 목욕을 했고, 단지 고통을 가하는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 모든 고문 기구를 동원해 죽이고, 고문하고, 사지를 절단 했다. 소녀들이 불에 타 죽는 것을 지켜본 그녀는 너무도 즐거운 나머지 종종 기쁨에 찬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650명이 넘는 소녀들이 바토리의 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소설 속의 드라큘라라고 불리는 블라드 3세 드라큘 백작은 말뚝으로 사람을 꿰뚫어 죽이는 형벌을 특히 좋아 해서 한번은 2,000명이 넘는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노인들을 한꺼번에 말뚝에 꿰어 죽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꿰뚫는자'라는 뜻의 테페시라는 별명을 얻었다.
벨기에의 황제 레오폴드 2세는 벨기에를 유럽의 소국으로 남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벨기에 보다 75배나 큰 아프리카의 콩고였다. 유럽열강의 각축전 속에서 레오폴드는 권모술수와 리더십을 발휘하여 콩고를 사유화하고 콩고자유국의 국왕이 된다.
고무는 콩고 경제에 가장 중요한 생산물이었다. 1893년 250톤의 고무수출량이 1901년 6,000톤으로 증가했다. 콩고는 경제적으로는 번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회적으로는 재앙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생산물 할당시스템이 고무 생산에 적용되면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콩고인들에게 최악의 학살이 자행되었다. 1885년 콩고자유국이 출범한 이후로 콩고의 인구는 3,000 만 명에서 900 만 명으로 감소되었다 감소된 인원 대다수가 학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잔인한 학살에 분노한 벨기에 국민들은 그의 장례식 때 야유를 보냈고 관에 침을 뱉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그처럼 죽어서까지 경멸을 당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근친혼이 남긴 불행한 유산
- 정신질환(광기)의 비극
비텔스바흐 가문의 광기는 바바리아 왕족에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비극이었다. 루트비히 2세는 외로운 유년기를 보내며 혼자만의 생각과 상상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상상력므 사로잡았던 것은 백조의 이미지로 그 환상은 평생에 걸쳐 루트비히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바그너를 좋아 했지만 그의 음악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바그너의 오페라 속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세계에만 집중 되어 있었다. '백조의 성'이라 불리는 3개의 성, 린더호프 성, 노이슈반스타인 성, 헤렌힘제 성 은 그의 광기가 빚어낸 최고의 걸작 들이었다. 광기가 심해져 베르크 성에 감금 돤 후 주치의 폰 구텐과 함께 슈타른베르크 호수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 되었다. 왕위를 이은 동생 오토 왕자 역시 유년 시절부터 정신병으로 판정을 받았으며, 27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감금되어 주치의의 감시 속에서 지냈다.
스페인 왕실의 광기는 15세기 경 이사벨로부터 시작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권력 유지 수단으로 근친혼이 자주 행하였고 그로 인한 왕실의 광기는 후세로까지 계속 이어졌다. 비운의 여왕 스페인의 후아나는 결혼하자마자 남편 펠리페에게 지나치게 집착했는데 남편의 외도로 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하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은 후 광기는 그 절정을 맞는다. 어머니 이사벨라가 묻혀있는 그라나다에 남편을 묻기 위해 1년이 넘도록 시체를 끌고 다니기도 했으며 아버지 페르난도 5세의 정치적 음모와 아들 카를로스의 냉대로 후아나는 76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일생의 2/3를 토르데시야스 성의 독방에서 보냈다.
후아나의 증손자인 돈 카를로스는 근친혼으로 인해 만들어진 최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곱사등이었으며 오른쪽 다리가 왼쪽다리 보다 눈에 띌 정도로 짧았다. 어릴 때부터 새디스트적인 폭력성을 분출 하였으며 유모들의 가슴을 너무 세게 물어뜯는 바람에 유모 3명은 거의 죽을 뻔 했다.성장할수록 광기가 심해져 급기야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왕인 카를로스 2세는 4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사탄왕'이라 별명을 얻을 정도로 그는 정신적, 신체적 상태가 소름 끼칠 정도로 괴기했다. 기형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합스부르크의 입술'이라고 알려 진대로 입술이 거대해서 이가 서로 닿지 않았기 때문에 음식을 씹을 수가 없었다. 곧이어 머리카락과 이가 다 빠져 버렸고 간질 발작으로 귀머거리가 되었다 또한 그는 절름발이가 되었다 역사상 가장 불운한 왕이었던 카를로스 2세는 39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펠리페 5세는 오랜 시간 동안 스페인을 통치했다. 그는 의심이 많았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심각한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했고 끔직한 공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면도를 하거나 발톱을 깎는 것도 거절했다. 후계자 페르난도가 펠리페 5세를 면도 할 수 있도록 설득 하는데 8개월이 걸렸다. 성적인 욕구가 지나쳐 왕비 마리아 루이스는 26살의 나이에 몸이 지쳐 사망하고 말았다. 거의 미쳐버린 펠리페를 강제적으로 그녀의 임종에서 끌어내야 했다. 펠리페 5세의 셋째 아들 페르난도 6세는 처음에는 온화한 군자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 펠리페 5세처럼 변해갔다. 자신이 비명횡사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매일 떨고 있었으며 갑자기 분노에 의한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더욱 더 폭력적이 되어 벽에다가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그의 왕비 바바라가 사망한 뒤에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는 씻는 것도, 면도 하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모두 거절했다. 10일을 잠도 자지 않고 지새웠다. 주변 사람들을 경고 없이 공격하기도 했다. 자신의 배설물을 무기로 자주 사용했다.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며, 자신을 가위로 찌르거나 줄로 목을 매려고 했다. 결국 그는 발작을 일으켜 4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혈우병
영국 왕실 하노버 왕가의 유전병인 혈우병은 주로 아들들에게 나타났다. 딸들에게는 직접적인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혈우병 보균자로 자식들에게 혈우병을 물려줄 확률이 높았다. 혈우병이 무서웠던 이유는 1세대에 끝나지 않고 병이 유전 된다는 사살 때문 이었다.혈우병의 저주는 호엔촐레른 왕조와 헤세-다름슈타트 왕조를 통해 스페인의 부르봉 왕조와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에까지 퍼져 나갔다. 빅토리아 여왕 넷째 아들이자 막내 레오폴드 왕자는 무릎에 입은 두 번의 상처 때문에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스 2세 의 황태자 알렉세이는 생후 6주가 되어 그가 혈우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렉세이의 배꼽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여 3일 동안이나 계속되다가 겨우 멈췄다. 그 후로도 넘어지거나 구르기라도 할 때면 항상 멍이 들곤 했다. 피부 밑에서 출혈이 생기거나 끔찍한 고통을 동반한 내출혈이 자주 일어났다. 가벼운 부상으로도 관절에서 출혈이 발생했다. 코피를 흘리다가 거의 죽을 뻔했고 살짝만 넘어져도 몇 주 간이나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했다. 알폰소 13세의 아들 곤잘로는 차가 벽에 부딪히는 경미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피가 멈추질 않아 이틀 후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고작 20살이었다. 그 형 알폰시토 역시 차사고로 인한 과다 출혈로 31세에 사망했다.

치정(癡情)과 비극으로 얼룩진 유럽왕실
태양왕 루이 14세는 가장 위대한 전제군주이자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이었다. 그의 증손자인 루이 15세는 왕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은 루이 14세만큼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호색기질은 제 증조부를 뛰어 넘었다.왕실 혼인의 중요하고 유일한 목적은 후계자를 잇는 것이었지만 왕은 그를 넘어선 즐거움을 누리고자 정부를 두었다. 루이 14세의 몽테스팡 후작 부인, 퐁탕주 공작부인이 유명했고 맹트농 부인인 프랑수아즈는 32년 결혼생활 동안 루이 14세를 정숙하고 성실한 남편으로 바꿔 놓았다. 루이 15세의 그 유명한 두 정부 퐁파두르 후작부인과 뒤바리 백작 부인은 권력의 실세로 떠올라 메트레상티트르(情婦)의 시대를 열었다.
바바리아 왕국의 루트비히 1세는 20년이 넘게 바바리아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검소한 생활을 즐겼으며 가정생활에 충실했다. 다른 왕족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성품을 지닌 왕이었다.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여 뮌헨의 궁궐, 신전, 박물관에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스며들도록 하였지만 국민들은 루트비히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러나 댄서인 롤라 몬테즈에 빠진 후 국가의 통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얼빠진 통치자를 이용해 롤라 몬테즈가 곧 바바리아를 지배할 것이라는 루머까지 돌 정도로 왕은 요부에게 미쳐있었다. 결국 국민 저항에 부딪혀 롤라는 추방되고 루트비히 1세는 강제 퇴위하고 만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루돌프 황태자는 절대 권력을 이어받아야 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절대 군주제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다. 자유주의를 추구했던 루돌프는 자신의 급진적 생각과 진보적 생각을 펼칠 수 없는 것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또 왕실이 맺어준 정략적인 결혼생활도 루돌프에게는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이때 루돌프는 운명의 연인 마리아 베체라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졌고 급기야 왕실의 반대에 부딪힌다.
어느 날 루돌프 황태자는 비엔나를 떠나 마이얼링으로 향했다. 표면상의 이유는 겨울 숲속 사냥을 하기 위해서였다. 루돌프는 자신의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살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두 발의 총성이 울렸고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는 그의 사랑하는 연인 베체라와 함께 고독한 삶을 마감했다.

리뷰/한줄평7

리뷰

8.0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