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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감사의 말
지은이의 말

제1장 왜 믿음이 문제인가?
제2장 포용하는 자비
제3장 자비롭게 되기
제4장 자비롭게 살아가기
제5장 자비로운 종교
제6장 자비로운 기독교
제7장 자비로운 정치
제8장 돈과 자비
제9장 자비로운 정의
제10장 자비로운 세상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필립 걸리 (Philip Gulley)
인디애나 주의 퀘이커 목사이자 베스트셀러 《의자 :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Front Porch Tales)》의 저자다. 또한 ‘조화’를 주제로 한 시리즈물 가운데 하나인 《자비가 진실이라면(If Grace Is True)》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저자 : 제임스 멀홀랜드 (James Mulholland)
《예수님처럼 기도하라(Praying Like Jesus)》와 《자비가 진실이라면(If Grace Is True)》의 저자이자 미국 침례교와 감리교단 안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경험이 있는 신학자다. 현재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퀘이커 모임의 목사로 있다.
역자 : 이슬기
세상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면서 그곳의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캐나다 밴쿠버에서 돌아와 현재는 충주에서 가족들과 지내며 또 다른 재미난 일을 기다리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44g | 153*224*30mm
ISBN13
9788964360064

출판사 리뷰

자비 없는 기독교, 자비로운 하느님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 종교의 사전적 정의다. 이 정도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며 알고는 있지만, 정작 현실 속 종교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긍정적인 답을 하기가 어렵다.
역사상 참혹한 결과를 낳은 수많은 전쟁과 테러의 요인에는 종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어떤 종교도 폭력과 싸움, 그리고 미움을 신도에게 가르치지는 않지만, 불행히도 오늘날 종교는 인류에게 닥친 갈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가장 신성해야 할 교회는 부패하고, 종교인은 돈과 권력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제도 개혁에 종교는 뒷짐을 지고 외면한 지 오래되었으며, 오직 자기네 신도나 나라만을 위해 기도한다. 납치된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향해 돌진하고, 이에 대한 복수로 전쟁이 시작되는 현실적 요인에도 종교 갈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종교의 사명이란 분명 사랑과 평화, 자비와 관용의 실천임에도 현실은 왜 그렇지 못할까? 또한 종교끼리 혹은 같은 종교 내부에서 서로 갈등하고 증오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미국에서 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필립 걸리와 제임스 멀홀랜드가 함께 쓴 《자비 없는 세상에서 하느님을 다시 찾다 (원제 : If God Is Love ― Rediscovering Grace In An Ungracious World)》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사악한 ‘그들’은 없다

종교 간 갈등은 오직 자신의 신앙만이 진리라고 믿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하여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사악한 ‘그들’을 유일한 진리인 ‘우리’로 흡수하려는 모든 행위가 갈등을 일으킨다. 불행히도 이런 잘못된 행렬의 선두에 기독교가 있어 왔다. 기독교만이 진리라 믿는 자들에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곧 ‘사악한 무리’였다. 사악한 무리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되었다. 오히려 이런 식의 폭력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포장했다. 하느님이 진정 사랑이라면,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독설을 버려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느님이 옹근 진리를 공에 담아 천사들을 시켜 그것을 인류에게 전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길에 천사가 그 공을 떨어뜨렸고 그것은 수백만 조각으로 부서졌다. 문제는 우리가 각자 집어든 작은 조각을 옹근 진리로 확신한다는 점이다.
― '제5장 자비로운 종교'에서, 165쪽

기독교인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는 자신이 집어든 진리가 이때 부서진 수백만 조각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상품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는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할 자를 나누는 것이다. 구원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신앙을 두텁게 유지하지 않는다면, 지옥의 불길로 떨어질 거라는 메시지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였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지옥의 존재는 기독교인들을 그 무엇에도 감히 저항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구원이라는 명제로 기독교는 ‘우리’와 ‘그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이고, 그들은 선택에서 제외된 사람이다. 구원을 위해서라면 경쟁하고, 시기하고, 싸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몇 개 안 되는 구원의 자리를 확보하려고 다른 이를 짓밟고 일어선다. 그들은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자들이기에 이런 행동도 정당하다. 이런 과정에서 돈이 오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교회는 구원이라는 상품을 팔아 헌금을 챙기고, 부자는 돈을 뿌려 구원의 티켓을 얻는다. 하느님이 과연 누구를 선택했는지, 또는 구원의 자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여전히 구원은 교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경쟁을 부추기고 이분법적으로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구도에서는 인간의 고뇌를 해결할 수도, 삶의 의미를 추구할 수도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구원의 자리를 팔거나, 지옥을 선전해 두려움과 공포로 교회를 유지하는 건 하느님이 진정 원하는 모습도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나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에게 구원받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우리 모두는 원래 하느님에게 소중하며 사랑받는 존재로 태어났다. 원래 모두가 하느님에게 선택받은 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살도록 계획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같은 마음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꺸려는 열망이 바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기꺼이 성장하고 변화하려는 마음과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배우려는 자세가 하느님께 즐거움을 드린다. 우리는 하느님한테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경쟁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자비 안에서 성장하는 한편,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끝까지 참아줄 수 있다.
― '제2장 포용하는 자비'에서, 68쪽

하느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을 사랑할 것이다. 예수를 보낸 이유도 하느님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개인의 탐욕과 이기주의, 그리고 성직자들이 설파하는 두려움의 종교를 벗어날 때만이 진정 하느님의 사랑이 실천되는 것이다.

자비가 세상을 구원할 것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들이 오늘날 종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시한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종교적·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을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하느님이 진정 원했던 ‘자비’를 주장한다. 종교의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갈 때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비란 모든 것을 사랑하는 동시에 용서하는 것이다. 진심이 담긴 자비는 다른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비를 실천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느님이 진정 원하는 모습이 모든 인류가 자비를 실천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방법이 결국 더 큰 파국을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무고한 자들의 목숨을 뺏는 모든 테러 행위는 정당하지 못하지만, 이를 복수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우리는 그들의 불만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테러를 끝내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군대를 파견하거나 무기를 개발할 게 아니라 오직 자비와 용서로 다가가야 한다.

예수는 우리에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화해시키는 자비로운 정의를 말씀하셨지, 받은 그대로 갚아주라고는 하지 않았다. 왜? 오직 화해만이 고통을 끝내고 인간 행동을 변화시킬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고통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꼼꼼히 무게를 달아보라고 하지 않았다. 받은 고통에 똑같은 고통으로 응수할 것을 부추기지도 않았다. 악을 악으로 되갚아주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십자가―그와 함께 악을 행하는 자들을 용서하고 세상의 고통을 받아들이는―를 짊어지자고 청하셨다.
― '제9장 자비로운 정의'에서, 322쪽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 방법이란 매우 다양한 만큼 때론 전혀 불가능한 것들도 있다. 냉정한 현실의 문제 앞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해결 방법으로 제시하는 저자들의 주장이 자칫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들의 다음과 같은 마지막 질문은 매우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당신은 더 좋은 나라와 더 자비로운 세상을 바라는가? 지상에 천국을 만들고, 당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를 인식하고,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 바칠 당신의 책임을 받아들이는가? 당신은 자비로운 세상의 한 부분이 되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편안함, 자존심, 종교 그리고 민족적 편견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마침내 요르단 강을 건너 약속된 땅으로 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 세상 왕국이 언제 하느님의 왕국으로 될지 모르지만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겠다.
― '제10장 자비로운 세상'에서, 364~3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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