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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I. 유머(幽?)을 제창한 초기 문장 두 편 (1). 산문 번역과 아울러 유머를 제창함 (2). 유머 잡담 2. 유머?아이러니?골계?풍자?외설 Part. 2 3. 공자의 유머 4. 공자를 생각하며 5. 다시 공자의 정(情)을 말한다 6. 사디즘과 공자 숭배 7. 공자가 南子를 만났을 때 8. 공자의 일생 9. 공자가 살던 시절 Part. 3 10. 유머 감각 11. 유머론 12. 풍자에서 유머로 _노신 13. 유머에서 성실로 _노신 Part. 4 14. 임어당의 문학 생애 15. 임어당의 주요 저작 목록 16. 임어당의 생애 및 작품 연보 _옮긴이의 말 _옮긴이의 주 |
Lin Yutang,林語堂,린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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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공자를 찾아서
우리에게 《생활의 발견》으로 잘 알려진 중국 출신의 작가이자 영문학자 임어당의 산문 중에서 ‘공자’와 ‘유머’ 관련 부분을 뽑아 《공자의 유머》로 출간하였다. 임어당[린위탕]은 19세기 말에 태어나 중국 대륙이 서구 열강과 일제의 침략으로 신음하던 1920년대에 「논어(論語)」라는 잡지를 주도적으로 창간하여 서구의 사조를 중국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유머 문학을 널리 알리고자 부단히 노력한 인물이다. 공자와 유머. 언뜻 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코드를 임어당은 절묘하게 연결해놓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에서도 공자는 숭배의 대상일 뿐이다. 후대 유학자(임어당은 이들을 ‘도학자’라며 비아냥거린다)들이 공자를 박제화하여 무결점 인간으로 만들어놓았고, 성리학이 지배계급의 사상으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도 공자를 ‘완전’ 성인으로 미화시킨 나머지 그의 인간미를 탈색시켜 버렸다. 저자 임어당은, 공자는 인간미가 매우 풍부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아주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며 행동 하나하나가 인간 본연의 모습에 매우 충실했다고 한다. 《논어》에 비친 공자의 모습은 어려울 때 같이 고통을 느끼고, 화도 곧잘 내고, 꼴 보기 싫은 게 있으면 야유도 놓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릴 줄 알고, 자기를 헐뜯는 사람에게 한편으론 유머로 응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서운해 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임어당은 《논어》의 여러 사례들을 분석, 유머를 매개로 하여 인간 공자를 탐구해 나간다. 그 가운데 「공자가 南子를 만났을 때(子見南子)」라는 희곡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 내용을 여기 소개한다. 「공자가 南子를 만났을 때」 “이 단막극은 임어당의 유일한 희곡으로 《대황집(大荒集)》에 실려 있다. 공자 당시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부인 남자(南子)와 공자와의 만남을 단막극으로 꾸민 것이다. 당시 이 글은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공자에 대한 임어당의 평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南子의 사고방식에 대한 임어당의 표현이 돋보인다. (……) 원제는 「자견남자(子見南子)」이다.” 위 글은 옮긴이의 설명이다. 위나라는 지금 하남성의 한 지역으로 원래는 은나라 땅이었으나 주왕실의 강숙이 봉토를 받아 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주공의 노나라나 주나라 왕실에 비해 은나라 습속이 남아 있었는지 풍습이 다소 달랐다. 위나라에는 남녀간의 교제가 활발하다 보니 《시경》에도 그런 장면이 자주 보인다. 단막극 「공자가 南子를 만났을 때」는 이런 것들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공자와 南子가 만난 것은 기원전 496년, 공자의 나이 56세 때였다. 고국 노나라의 임금과 실세인 계환자의 정치에 실망한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게 되는데 첫 번째로 방문한 나라가 바로 위나라이다. 위나라는 노나라 바로 옆에 위치해 있기도 했지만, 공자가 ‘군자’라고 칭한 거백옥이란 인물이 대부로 있었고 제자 자로의 동서 미자하가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南子는 영공(재위 기원전 534-493)의 부인으로 막후에서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했다. 미남자 송조(宋朝)를 애인으로 두는 등 행실이 바르지 못한 인물로 평가받지만, 임어당은 이 희곡에서 대단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파격적인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공자를 만났을 때 南子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각색해 몇 대목을 소개한다. #1. 남자가 공자에게 묻는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 제가 ‘육예연구회’나 ‘국술토론회’ 같은 것을 창립하여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만약 그런 모임이 생기면 저는 물론 참여할 것이고, 다른 여자들 몇몇도 참가하여 남녀가 함께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아, 예.” “그렇게 하면 우선 선생님께서는 별도로 우리 부녀반을 가르치실 필요가 없을 테니 시간이 절약되구요, 둘째 차나 음식 따위는 제가 모두 잘 알아서 할 터이니 이것저것 돌보지 않으셔도 되고, 셋째 남녀가 함께 모여 배우니 모두들 열심히 할 것이고, 또 여러 가지 유익한 생각들을 모으기 쉬운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남녀를 나누어서 따로 하는 것보다 연구의 열기와 흥미가 더해가지 않겠습니까?” “…….” “넷째, 인륜에서는 남녀관계가 그 처음이며, 예의에 있어서는 남녀간의 교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터이니 함께 연구하는 것 자체로 그 점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서생들이 여자들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짜증이 나서 못 견딥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남녀 교제의 예를 모르고 배움이 모자라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라 봅니다.” “…….” “다섯째, 선왕의 시나 글 중에서 사회풍속이나 내실 ? 잠자리에 관한 것 또한 적지 않은데, 이런 민속이나 노래야 우리 여자들이 규중에서 해야 하는 품행과 관계됩니다. …… 옛 역사책에서 여자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부분도 다 그렇습니다. 여자의 심리를 모르는 남자들을 보면 여자들에게 굴욕을 당하더군요.” “……?” “예를 들면 유왕(幽王)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포사(褒?)를 가두어놓고 장난감 취급했지만, 포사는 지킬 것은 지킨 여자로 음탕하지도 않았으며 웃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포사는 남자의 어리석음을 비웃은 것이지 봉화 때문에 웃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뒤 나라[西周]가 망하고, 사내들이 그 일을 비판하면서 죄를 포사에게 뒤집어 씌었죠. 포사가 어째서 무고하게 누명을 써야 합니까? ……여자들을 이 모임에 가입시킨다면, 제 생각으로는 여러 면에서 새로울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 “그리고 여섯째, 검무나 경마나 활쏘기 등은 사내들이 해야 할 것이나, 비파나 바둑, 서화 등은 우리 여자들이라고 못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또한 검무나 경마도 우리 여자들이 옆에서 박수를 치면서 응원하면 더 잘할 것 아닙니까? 남녀유별이니 하는 말은 사실 엉터리 옛날 제도에서 빌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론상 저는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 제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에…어…에…흠!” #2. 공자가 말을 건넸다. “남자부인, 여자들도 그토록 깊은 논의와 고상한 견해를 가지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그럼 ‘육예연구회’를 선생님께서도 찬성하시는 겁니까?” “부인께서 그 일을 주관하시겠다면 저는 당연히 따라야겠지요.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남녀간에 혹 예의를 벗어나는 일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부인께서 미리 예방을 해두신다면 모르겠습니다만…….” “또 그러시는군요. 음식과 남녀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이자 생명이라는 물줄기의 살아 있는 근원이 아닙니까? 이런 근원이 끊어지지 않게 잘 뚫어놓아야 인생이 더욱 번창하고 풍요로워지겠지요. 남녀관계는 인생의 지극한 정이고, 지극한 정이 움직인 다음에야 시도 노래도 있는 것이며, 시와 노래가 있은 다음에야 문학이 있는 것 아닙니까?” “…….” #3. 남자, 미자하, 옹거, 그리고 무희들이 (연회를 마치고) 방 뒤로 물러간다. 자로와 공자, 서 있다가 일행이 사라지자 서로의 얼굴을 표정 없이 바라본다. “선생님의 뜻은 어떻습니까? 위나라에 머무르실 생각입니까?” “내가 만일 주공을 믿지 않았다면 남자부인을 믿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 머무르시겠다는 말씀입니까?” “…….” “아니면 남자부인이 예를 몰라서입니까?” “남자부인에게는 남자부인의 예가 있는 것, 그건 네가 알 바 아니다.” “그럼 왜 이곳에 머물지 않으시려는 것인지요?” “나도 모르겠다. 아직 생각 중이니……. (깊이 생각에 잠긴다) 만약 부인의 말을 듣고 부인에게 감화당한다면, 그녀의 예?악……남녀 무별……모든 것이 해방될 터이니, 자연…… (순간적으로 희열에 들뜬 얼굴을 한다) 아! 아니지! (얼굴이 금세 어두워지면서) 아니지! 떠나리라!” “어디로 말입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일단 이곳을 떠나야지. 그래, 떠나야 한다!” “도를 행해 천하를 구하지 않으시렵니까?” “그건 그거고, 우선 나부터 구해야 할 판이다.” “정말 떠나시렵니까?” “간다. 틀림없이 간다. 조만간 틀림없이!” 공자의 몰골이 초췌하다. 천천히 고개를 떨구더니 얼굴을 감싸쥐고 무릎 사이에 파묻는다. 공자의 빵구똥꾸 공자가 상대를 쏘아댄 장면은 《논어》 여러 곳에 나온다. 자공(子貢)이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떠냐고 묻자 냅다 “밥만 축내는 밥통들!”이라 답하는 장면이 그렇고, 제자 염구(?求)가 위정자 앞잡이 노릇을 하며 백성들 세금을 뜯는 데 앞장서자 다른 제자들을 모아놓고 “쟤는 더 이상 내 제자가 아니다. 성토해도 좋다!”며 화를 내는 장면이 그렇다. 또 친구 원양(原壤)이 가랑이를 벌리고 공자를 맞자 “저놈은 어려서는 말썽만 피우고, 나이가 들어서는 뭐 하나 이룬 것도 없고, 늙어서는 뒈지지도 않는데 그건 도둑질이나 마찬가지”라며 막대기로 원양의 정강이를 후려치는 장면 또한 그러하다. 말을 잘하고 또 말하길 좋아하는 자공이 사사건건 남들을 비교하며 평가하려 들자 “너는 대갈통이 좋은가 보다. 틈만 나면 남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난 그럴 시간이 전혀 없는데!”라며 호되게 야단치는 장면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도학자’들 눈에는 말도 안되는 모습으로 비쳐질지는 모르겠으나 임어당의 눈에는 공자 역시 우리처럼 ‘빵꾸똥꾸’ 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지나침이 없었고 이치에 잘 맞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