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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 1부 사슴 - 1장 얼룩소 새끼의 영각 · 가즈랑집 · 여우난골족(族) · 고방 · 모닥불 · 고야(古夜) · 오리 망아지 토끼 - 2장 돌덜구의 물 · 초동일(初冬日) · 하답(夏畓) · 주막(酒幕) · 적경(寂境) · 미명계(未明界) · 성외(城外) · 추일산조(秋日山朝) · 광원(曠原) · 흰밤 - 3장 노루 · 청시(靑?) · 산(山)비 · 쓸쓸한 길 · 자류(?榴) · 머루밤 · 여승(女僧) · 수라(修羅) · 비 · 노루 - 4장 국수당 넘어 · 절간의 소 이야기 · 통영(統營) · 오금덩이라는 곳 · 시기(?崎)의 바다 · 정주성(定州城) · 창의문외(彰義門外) · 정문촌(旌門村) · 여우난골 · 삼방(三防) ▷ 2부 그 외 해방 이전의 시 · 산지(山地) · 나와 지렝이 · 통영(統營)남행시초(南行詩抄) · 오리 · 연자 · 황일(黃日) · 탕약(湯藥) · 이두국주가도(伊豆國湊街道) · 창원도(昌原道)남행시초(南行詩抄) 1 · 통영(統營)남행시초(南行詩抄) 2 · 고성가도(固城街道)남행시초(南行詩抄) 3 · 삼천포(三千浦)남행시초 4 · 함주시초(咸州詩抄) · 북관(北關) ┃ 노루 ┃ 고사(古寺) ┃ 선우사(膳友辭) ┃ 산곡(山谷) · 바다 · 추야일경(秋夜一景) · 산중음(山中吟) · 산숙(山宿) ┃ 향악(饗樂) ┃ 야반(夜半) ┃ 백화(白樺)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석양(夕陽) · 고향(故鄕) · 절망(絶望) · 외갓집 · 개 · 내가 생각하는 것은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물닭의 소리 · 삼호(三湖) ┃ 물계리(物界里) ┃ 대산동(大山洞) ┃ 남향(南鄕) ┃ 야우소회(夜雨小懷) ┃ 꼴두기 · 가무래기의 낙(樂) · 멧새소리 · 박각시 오는 저녁 ·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 동뇨부(童尿賦) · 안동(安東) · 함남도안(咸南道安) · 구장로(球場路)서행시초(西行詩抄) 1 · 북신(北新)서행시초(西行詩抄) 2 · 팔원(八院)서행시초(西行詩抄) 3 · 월림(月林)장서행시초(西行詩抄) 4 · 목구(木具) · 수박씨, 호박씨 · 북방(北方)에서 - 정현웅(鄭玄雄)에게 · 허준(許俊) · 『호박꽃 초롱』 서시(序詩) · 귀농(歸農) · 국수 · 흰 바람벽이 있어 · 촌에서 온 아이 · 조당(?塘)에서 ·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 당나귀 ▷ 3부 해방 이후의 시 · 산(山) · 적막강산 ·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 칠월(七月)백중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감자 · 계월향 사당 · 등고지 · 제3인공위성 · 이른 봄 · 공무려인숙 · 갓나물 · 공동식당 · 축복 · 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 · 돈사의 불 · 눈 · 전별 · 탑이 서는 거리 · 손’벽을 침은 · 돌아온 사람 · 석탄이 하는 말 · 강철 장수 · 사회주의 바다 · 조국의 바다여 ◆ 백석 연보 |
BAEK SEOK,白石,白奭,백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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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려간 지 오래다 /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 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버린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어미)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망아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나무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얹혀) 나는 산(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 맞구멍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 오리 망아지 토끼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山) 깊은 금덤판 /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 여승(女僧) 中 바닷가에 왔드니 /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 개지꽃(나팔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 바다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 어늬 아츰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 의원(醫員)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 먼 녯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드니 / 문득 물어 고향(故鄕)이 어데냐 한다 /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故鄕)이란다 /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 의원(醫員)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 의원(醫員)은 또다시 넌즛이 웃고 /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 고향(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고향(故鄕)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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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인협회 회장 민윤기 시인 추천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집 윤동주가 곁에 두고 읽었던 시의 향연 - 6개 국어에 능통한 특출한 언어 감각으로 고유어를 다채롭게 발굴 사용하다 이 시집은 백석의 유일한 시집인 『사슴』의 초기본과 그 외의 시들을 시기별로 정리하여 작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하였으며, 표기법은 원시의 느낌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게 현대어를 따름으로써 읽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백석 시의 특징인 고어와 방언 및 토착어는 가능한 살리며 각주로 해설을 달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해 놓았다. 백석은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수많은 단어들을 사전 속에서 발굴하여 사용함으로써 우리말 전반의 지평을 넓힌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백석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 아닌 인간의 삶에 직접 와 닿는 시어들을 사용하였는데, 시어들을 보면 우리 전통의 생활과 풍습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잘 드러난다. 백석은 당대의 대표적 모더니스트로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려는 노력도 부단히 하였다. 백석은 6개 국어에 능통하였으니, 그의 언어 감각과 언어에 대한 통찰의 정도가 조금은 가늠이 될 것이다. 물론 감수성 짙은 시인이자 인텔리로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백석은 시대의 불행과 비극을 그린 시, 열정 가득한 청년으로서 겪는 사랑의 열병과 꿈을 실은 시 작품들도 여럿 남겼다. - 재북 시인으로서 남북 분단과 사회주의 체제 고착화에 따른 비극을 알게 하다 백석은 해방되던 해 북의 고향을 선택하였고, 남북 분단 이후 체제에 대한 반감이 사회적으로 극대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금기의 시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부터 복권되기 시작해 현재는 온전한 시인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 시집 3부의 「해방 이후의 시」 가운데, 백석이 사회주의 체제의 고착화 이후 발표한 시들은 동인한 인물의 창작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많이 있다. 백석이 북한 체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와 같은 변화를 보였다는 사실에 분단의 아픔과 사상의 폭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된다. 해방 이후의 발표작에서는 이전과 별다른 차이가 드러나지 않지만, 분단 이후에는 표기법 변화도 도드라진다. 하지만 사상에 구애받지 않던 시기 백석은 세속적 기준에 맞춘 딱딱함을 벗어난 자유로운 감성을 담은 시나 낙원 같은 따듯함을 꿈꾸고 바란 듯한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였다. 〈고야(古夜)〉 〈오리 망아지 토끼〉 등의 시를 통해서는 사랑받고 자란 그의 어린 시절이 상상되어 따듯한 미소가 지어지고, 〈하답(夏沓)〉과 같은 시를 통해서는 그가 어린 시절 어떻게 놀며 자랐는지가 그려지고, 〈선우사〉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 〈안동〉 등의 시를 통해서는 젊은 날 그가 바라던 삶과 사랑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시들에는 감수성 짙은 인텔리로서 일제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시인의 좌절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래서 더더욱 이후 북에서의 백석의 시와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고 애처로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