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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와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이재규
21세기북스 201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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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장 첫 번째 이탈리아 여행(1769.12.13~1771.3.28)

---1769년
1월 5일, 잘츠부르크 / 12월 13일, 바트 라이헨할, 로퍼 / 12월 14일, 뵈르글 / 12월 19일, 인스부르크 개선문을 지나 남쪽으로 /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 12월 20일, 브렌네르 패스 혹은 파소 델 브네레로 / 12월 21일, 볼차노 혹은 보젠 / 12월 23일, 에냐 혹은 노이마르크 /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 / 트렌토 공의회 / 12월 24일, 트렌토, 로베레토 / 12월 25일, 크리스마스 / 12월 27일, 베로나(첫 번째)

---1770년
1월 5일, 공개연주회 / 1월 10일, 만토바 / 1월 19일, 보쫄로 / 1월 20일, 크레모나 / 스트라디바리, 아마티, 과르네리 / 1월 23일, 밀라노 /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음악 전쟁 / 피치니와 글루크의 음악 전쟁 / 라 스칼라 / 2월 7일,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를 주문받다 / 3월 15일, 로디 / 메디치 가문의 창업과 대립교황 요한 23세 / 레오폴트 모차르트 / 3월 16일, 피아첸차, 파르마 / 바오로 3세 이야기 / 스탕달 / 3월 22일, 모데나 / 파바로티의 고향 / 3월 24일, 볼로냐(첫 번째) / 학문의 모교 볼로냐대학 / 3월 30일, 피렌체 / 르네상스의 후원자 메디치 가문 / 카트린데 메디치 / 피아노와 메디치 가문 / 베키오 다리 / 4월 1일, 팔라초 피티 / 메디치 가문의 몰락으로 탄생한 우피치 미술관 / 오페라 시장과 오페라의 종류 / 차이코프스키의 「피렌체의 추억」 / 4월 6일, 시에나 / 카테리나 성녀와 비오 2세 이야기 / 토스카나 와인 / 4월 11일, 로마 / 성주간과 가상칠언 / 최초의 불법 악보 복사 사건 / 「미제레레」와 시편송 / 스페인 광장과 빌라 메디치 / 비운의 왕자 보니 프린스 찰리 / 5월 8일, 마리노, 테라시노, 세사 아우룬카, 카푸아 / 5월 14일, 나폴리 / 나폴레타나 / 페르골레시와 스타바트 마테르 / 치마로사 / 산 카를로 극장 / 괴테와 나폴리 / 6월 13일, 폼페이 / 6월 26일, 로마(두 번째) / 황금박차 훈장 / 7월 10일, 치비타 카스텔라나, 테르니, 스폴레토, 폴리뇨 / 7월 16일, 로레토 / 산타 카사 디 로레토와 대성당 / 전설 혹은 과학 / 로레토 성모 호칭기도 / 7월 17일, 안코나 / 프랑코 코넬리 / 7월 18일, 세니갈리아, 페사로, 리미니 / 말레스타나 가문 / 강가넬리 교황 / 7월 19일, 포를리, 이몰라 / 7월 20일, 볼로냐(두 번째) / 마르티니 신부와 볼로냐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 / 10월 18일, 밀라노(두 번째) / 12월 26일,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초연 / 레지오 두칼레 극장 / 사육제와 사순절

---1771년
1월 14일, 토리노 / 파이지엘로 / 2월 4일, 밀라노, 캐노니카, 브레샤, 베로나, 비첸차 / 2월 11일, 파도바 / 2월 20일, 베네치아 / 카페 플로리안 / 바흐의 컨피 칸타타 / 아틸리아를 사랑한 바그너, 베네치아에서 숨을 거두다 / 3월 13일, 파도바에서 「베툴리아 리베라타」를 주문받다 / 3월 14일, 비첸차 / 팔라디오의 빌라 로톤다 / 다 빈치의 인체 비례도 / 3월 16일, 베로나(세 번째) / 3월 20일, 로베레토, 트렌토, 볼차노, 브레사노네 / 3월 25일, 인스부르크, 바트 라이헨할 / 3월 28일, 잘츠부르크의 사랑하는 가족 품에

제2장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1771.8.13~1771.12.15)
너희는 싸워라, 행복한 오스트리아는 결혼을 하리라

---1771년
8월 13일, 카이틀, 바이드링, 상트 요한 인 티롤 / 8월 14일, 뵈르글, 쿤들, 인스부르크, 볼차노 / 8월 17일, 알라 / 8월 18일, 베로나(네 번째) / 8월 21일, 밀라노(세 번째) / 세레나타 / 「알바의 이스카니오」 / 보상 받지 못한 기대 / 12월 6일, 두 번째 귀향길 / 12월 16일, 슈라텐바흐 대주교 사망하다

---1772년
3월 14일, 콜로레도 대주교 잘츠부르크 영주로 부임하다 / 예수회 / 세레나타 「스키피오의 꿈」 / 8월 15일, 모차르트 유급 콘체르트마이스터가 되다

제3장 세 번째 이탈리아 여행(1772.10.24~1773.3.13)

10월 24일, 오페라 대본만 들고 또 다시 밀라노로 / 10월 25일, 인스부르크 / 10월 28일, 다시 볼차노에서 / 아이스맨 외치 / 10월 29일, 다시 로베레토, 알라, 베로나를 지나서 / 메타시타시오형 오페라 / 11월 4일, 밀라노(네 번째) / 12월 26일, 「루치오 실라」 초연

---1773년
1월 17일, 모테트 「엑술타테 유빌라테」 초연 /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 / 1월 27일, 피렌체 (두 번째) / 3월 4일, 굿바이 밀라노 / 3월 13일, 모차르트의 소년 시대가 끝나다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피터 드러커의 연구 및 번역가로 잘 알려진 작가.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 상과대학 을 졸업하였으며 대구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또한 대구대학교 총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2005년 명예퇴직하였다. 포틀랜드 주립대 객원교수,한국산업경영학회회장,한국인사조직학회 부회장, 한국국제경영학회 부회장,대구은행 사외이사, 영원무역과 삼익THK 사외이사, TBC 대구방송 비상임이사, 그리고 태창철강의 경영고문을 역임했다. 그는 1966년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하여 『경영의 실제』와 『기업의 개념』을 읽고 드러커에게 매료되었다고 한다. 1982년 1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마
피터 드러커의 연구 및 번역가로 잘 알려진 작가.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 상과대학 을 졸업하였으며 대구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또한 대구대학교 총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2005년 명예퇴직하였다. 포틀랜드 주립대 객원교수,한국산업경영학회회장,한국인사조직학회 부회장, 한국국제경영학회 부회장,대구은행 사외이사, 영원무역과 삼익THK 사외이사, TBC 대구방송 비상임이사, 그리고 태창철강의 경영고문을 역임했다.

그는 1966년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하여 『경영의 실제』와 『기업의 개념』을 읽고 드러커에게 매료되었다고 한다. 1982년 1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뒤 학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피터 드러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92년 12월,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트에 있는 자택에서 드러커를 처음 만났을 때 책보다 더 많은 클래식 음반이 서재에 꽂혀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2005년 드러커가 타계할 때까지 이재규는 매년 드러커를 만나 경영과 음악과 미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경북고 재학 중 성악을 배웠고, 서울대 상대 재학 중 홍릉제에서 푸치니의 〈토스카〉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나운영의 “달밤” 등을 불렀다. 2009년 연말 CEO 자선음악회에서 푸치니의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와 이수인의 “내 맘의 강물”을 불렀다.

그의 저서로는 『이재규 교수의 3분 경영』『지식경영학원론』『인적자원관리론』,『피터 드러커에게 경영을 묻다』 등 20여 권이 있다. 번역서로는 피터 드러커의 『단절의 시대』『넥스트 소사이어티』『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21세기 지식경영』『미래의 결단』『자본주의 이후의 사회』『2020년 기업의 운명』, 『한 권으로 읽는 피터드러커 명저 39권』,『피터 드러커의 지식역사』,『피터 드러커의 지식근로자』,『피터 드러커의 지식사회』등이 있다. 최근에는 『클래식 음악 에피소드』『발칸, 시간이 멈춘 그곳』『모차르트 인 오스트리아』『모차르트 읽는 CEO』『베토벤 읽는 CEO』 등이 있다.

1984년 처음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한 이래 단체 여행이나 가족 여행으로, 때로는 혼자서, 그리고 그보다는 아내와 함께 더 많이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면서,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 문화와 역사를 연구했다. 아내와 함께 또다시 토스카나 지방에 한 달간 머무르며 곳곳을 여행한 뒤 『이탈리아의 꽃, 토스카나에서 예술을 만나다』을 완성할 계획을 세웠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11년 8월 8일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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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66g | 250*305*20mm
ISBN13
9788950922481

책 속으로

다음날인 20일 아침 일찍 두 사람은 크레모나로 향했다. 북이탈리아의 겨울은 구름이 언제나 낮게 깔려서 마치 뿌연 유리를 덮어 놓은 것 같다. 그런 날씨 속에서 모차르트 부자는 현악기 생산지로 유명할 뿐 아니라 」오르페오」와 」율리시즈의 귀환」 등을 써서 근대 오페라의 창시자가 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고향 크레모나(Cremona)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비아 지카르디 11번지(Via Sicardo 11)에 있는 콜롬비노(Colombino) 여관에 짐을 풀자마자, 오늘날에는 테아트로 폰키엘리(Teatro Ponchielli)로 불리는, 코르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번지(Corso Vittorio Emanuele II)에 있는 테아트로 나자리(Theatro Nazari)로 달려갔다. 당대 유명한 가수 발렌티니가 주역인 티토 역을 맡은 」티토 황제의 자비」(La Clemenza di Tito)를 놓칠 수는 없었다. 」티토 황제의 자비」는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으로 1734년 안토니오 칼다라가, 그리고 1752년에는 글루크가 작곡했다. 따라서 이날 모차르트가 본 것은 칼다라의 것인지 글루크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메타스타시오의 대본들은 고전적인 주제를 우아하고도 멋있게 다루었고, 극적 구성은 물론이고,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등장할 위치가 매우 적절히 표시되어 있어서 18세기 작곡가들은 가장 이상적인 대본으로 여겼다. 모차르트도 20년 후 1791년, 레오폴트 2세 대공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겸 보헤미아의 왕으로 등극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역시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으로 」티토 황제의 자비」를 작곡을 하게 된다.

현악기 생산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에서 모차르트는 크레모나 대성당의 첼리스트 겸 콘서트마스터 안토니오 페라리와 오르가니스트 자코모 아리기를 만나 배움을 청했다. 사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모차르트는, 그리 많은 기회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들었고 또 배웠다. 정말이지 모차르트는 인생을 음악이라는 무기로 싸우기 위해 철저히 무장했다. 죽는 순간까지 배우면서 작곡을 했다. 모차르트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의 예술이 쉽사리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를 잘못 알고 있다. 아무도 나만큼 많은 시간과 생각을 작곡에 바치지 않았을 것이다. 유명한 작곡가들 중 내가 그의 음악을 여러 번 반복해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없다.”

--- p.64~66

출판사 리뷰

“모차르트 선생, 무엇이 당신을 만들었습니까?”
“나를 만든 것은 여행이었습니다.”

18세기 유럽 문화의 절정을 꽃피웠던 이탈리아로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당신을 초대합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차르트가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약 30년 동안 천상의 선율을 오선지에 척척 옮겨 적고는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간 천재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틀린 것이 아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모차르트를 신동으로 여기는 것은 본질을 제대로 본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음악의 모든 기법을 배우고 그것을 끊임없이 연습했으므로 음악기법으로 청중을 짜증스럽게 하지 않았으며, 음표 하나도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반복해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 칼 바르트는 모차르트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높은 존재로 묘사했다.
“만약 내가 죽어 하늘나라에 간다면 우선 하느님께 경배 드리고 다음에는 모차르트를 만나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중략) 그리고 나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즐겨 듣습니다. 그것이 젊은 모차르트이건 나이든 모차르트이건 상관없이 오직 모차르트만을 듣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기독교적 윤리성으로까지 묘사했다. 그는 베를린 유학 시절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 열광했는데, 1843년 자신의 저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돈 조반니」가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는 주장하며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
“성당의 성물 관리자에서부터 추기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직자들을 부추겨서, 세상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 가운데 모차르트를 최고의 인물로 인정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는 기독교에서 탈퇴하여 오직 모차르트만을 최고로 또 유일하게 숭배하는 신흥 종교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인간 모차르트에 관한 많은 것들은 거의 왜곡이거나 허구이다. 모차르트는 증류수처럼 불순물 없이 투명하고 전혀 흠이 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정상적인 음악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음에도 천상의 영감을 받아 작곡을 했다거나, 머리에 떠오르는 악상을 쉽게 악보에다 옮겼다거나, 작곡을 자신의 내적 만족이나 후대를 위해 했다거나 하는 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과장된 왜곡이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가난했다거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는 것과 같이 천박했다거나 하는 것 또한 허구이다.

이 책은 무엇이 “모차르트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매우 훌륭한 음악교육을 받았고, 한 시민으로서 좋은 훈육을 습득했으며, 타고난 재능도 컸지만 끊임없이 연습과 훈련을 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성공은 부친 레오폴트의 전략이 주효했다. 모차르트의 부친 레오폴트는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고, 야심 많은 계몽주의 음악가였다. 레오폴트는 아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모차르트에게 세상을 보여주었고, 그를 철저하게 가르쳤다. 레오폴트의 전략은 바로 여행이었다. 모차르트는 35년 11개월(1756. 1. 27~1791. 12. 5), 즉 13,097일을 살았는데, 그 가운데 10년도 더 되는 3,720일을 유럽 10개국, 그리고 204개 도시를 여행했다. 1769년 12월 13일을 시작으로 1773년 3월 13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의 도시 51개를 여행했다. 모차르트가 당시 유럽에서 가보지 않은 국가는 예카테리나 2세가 다스리던 러시아와 에스파냐 정도였다.

모차르트는 전업 작곡가 겸 연주자로서 자신의 음악을 팔러 다녔고, 배움을 위해 스승과 선배 작곡가들을 찾아가 만났다. 따라서 모차르트에게 "무엇이 당신을 만들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그는 “나를 만든 것은 여행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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