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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그늘의 길 2
김지하 회고록
김지하
학고재 200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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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판] 흰 그늘의 길 2
[도서] [문고판] 흰 그늘의 길 2
김지하 저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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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판] 흰 그늘의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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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 시대의 거인 김지하 시인의 문학적 순도 높은 회고록 출간!

저자 소개 1

金芝河, 본명:김영일(金英一)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는 필명이다. 아호로 노겸, 노헌(勞軒), 우형(又形), 묘연(妙衍)이 있다. 1953년 산정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중학교에 입학했으나, 1954년 강원도 원주로 이사하면서 원주중학교에 편입했다. 1956년 원주중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중동고등학교를 나와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에 가담해 첫 옥고를 치른 이래, ‘오적 필화 사건’ ‘비어(蜚語) 필화 사건’ ‘민청학련 사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는 필명이다. 아호로 노겸, 노헌(勞軒), 우형(又形), 묘연(妙衍)이 있다. 1953년 산정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중학교에 입학했으나, 1954년 강원도 원주로 이사하면서 원주중학교에 편입했다. 1956년 원주중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중동고등학교를 나와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에 가담해 첫 옥고를 치른 이래, ‘오적 필화 사건’ ‘비어(蜚語) 필화 사건’ ‘민청학련 사건’ ‘고행… 1974 필화 사건’ 등으로 8년간의 투옥, 사형 구형 등의 고초를 겪었다. 1980년대에는 생명운동 환경운동을 펼쳐왔고, 원주에 거주하며 불철주야 조선의 사상과 문화를 연구하였으며 건국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냈다.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해오다 2022년 5월 8일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1975),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시인상(1981), 크라이스키 인권상(1981) 등과 이산문학상(1993), 정지용문학상(2002), 만해문학상(2002), 대산문학상(2002), 공초문학상(2003), 영랑시문학상(2010)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황토』『타는 목마름으로』『오적』『애린』『검은 산 하얀 방』『이 가문 날의 비구름』『별밭을 우러르며』『중심의 괴로움』『화개』등이 있고, 『밥』『남녘땅 뱃노래』『살림』『생명』『생명과 자치』『사상기행』『예감에 가득 찬 숲그늘』『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 대설(大說)『남』『김지하 사상전집(전3권)』『김지하의 화두』『동학 이야기』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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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7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438쪽 | 527g | 153*224*30mm
ISBN13
9788956250182

책 속으로



김지하 회고록은 맨 처음 1991년 《동아일보》에 ‘모로 누운 돌부처’라는 제목으로 일부 발표되었다가, 그 뒤를 이어 2001년 9월부터 다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어 2003년 6월 30일에 그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 책을 만나기까지 장장 10여 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셈입니다. 저자는 1991년에 회고록 연재를 중단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십 년 전 《동아일보》에 게재된 제1부에서는 엄밀히 말해서 가족사와 내 개인사의 진실은커녕 최소한도의 사실마저 정면에서 온전하게 부딪치지 못한 채 금기의 장벽과 타협하고 말았다. 그래서 6·25전쟁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가서 나의 회상은 마침내 큰 장애에 부딪혀 중단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 나는 이 글에서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다’라고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이 명백한 한마디가 없이는 나의 회상은 전체적으로 그 회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고록 집필을 재개하며 이렇게 다짐합니다.

“나는 나의 회고록을 나 자신과 사실을 중심으로 고백하는 살벌한 자서전으로 쓰고 싶지 않다. 어떤 의미가 생성되는 문학적 탐색으로 밀고 가고자 한다. 그것만이 온갖 형태의 억압과 자기검열로 인해 봉인된 내 삶의 깊은 시간의 비밀이 변화 속에서 참으로 스스로 개봉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십 년 전에 쓴 회고록 위에 가해진 나 자신의 검열을 해제할 것이다. 마치 어두컴컴한 정신병동에서 어느 날 아침 문득 일어서 터덜터덜 걸어나와 바깥 오뉴월의 눈부신 신록과 비온 뒤의 광풍光風을 흠뻑 들이마시듯이 그렇게.”

왜 ‘흰 그늘의 길’인가?

저자가 책에서 언급했듯이, 책제목을 정하는 데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자의 일생을, 그리고 저자가 현재 서 있는 곳을 표현한 한 마디, 그것이 바로 ‘흰 그늘의 길’이었습니다.

“4.19 직후 서울농대에서 겪은 스무 살 때의 아득한 흰 밤길의 한 환상, 민청학련 무렵인 서른세 살 때의 우주에의 흰 길의 한 환상, 재구속되어 옥중에서 백일참선에 돌입했던 서른여덟 살 때의 흰빛과 검은 그늘의 교차 투시, 해남에서 두 계열의 연작시 ‘검은 산, 하얀 방’의 분열 구술, 목동 시절의 컴컴하고 침침한 ‘쉰’의 그늘과 일산 이사 직후의 그 눈이 멀 듯한 ‘일산시첩’의 흰빛들의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날카로운 모순 대립. ...... ‘흰 그늘’은 나의 미학과 시학의 총괄 테마가 되었다. ....‘흰 그늘’은 생명문화운동의 새 구호다. 그리고 내 삶이요 죽음, 즉 나의 시다.”

1권 글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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