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감사의 말 프롤로그 1장 끝나지 않은 혁명 자유 쿠바에서 이데올로기적 이원성 민중계급의 신념 자유 쿠바의 긴장과 갈등 독립전쟁(1895~1898년) 미국의 개입과 점령 단일한 친교관계와 군사 정부 국민회의의 해산과 부역자 기업과 정부의 동맹, ‘쿠바회사’ 끝나지 않은 혁명 2장 이번 혁명은 현실이다 엘리트 중심의 공화국 도시(1898~1958년) 민중의 도시, 아바나 건설(1959~2006년) 특별시기와 관광도시 아바나 이웃공동체와 사회 발전 3장 이웃공동체와 쿠바의 운명 도시 건설과 이웃공동체 가구 구조와 직업?인종의 다양성 이웃공동체와 참여민주주의 청소년 지원과 사회사업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이웃공동체 초등교육 시스템 보건의료 프로그램 재난 대비 시스템 4장 자본주의를 이용해 사회주의를 지킨다 소련의 붕괴와 쿠바 경제의 위기 국제 관광의 부활과 소비문화 특별시기 아바나인들의 생계 꾸리기 일과 가계 소득 소비와 지출 연대성과 호혜성, 지역공동체 지원 사회 발전의 새로운 단계 5장 밑바닥에서 본 이웃공동체, 산 이시드로 오래된 노동자계급의 이웃공동체 이웃공동체의 발전과 사회적 기능 모델 가정의와 간호사 팀 초등학교 식료품 보장 시스템 문화와 여가 활동 이동과 교통 시민과 정부의 의사소통 에필로그: 쿠바는 이제 어디로 가는가? 기관 단체 줄임말 옮긴이의 말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
Henry Louis Taylor
정진상의 다른 상품
|
집을 사고파는 일이 복잡했기 때문에 많은 쿠바인들은 주택 교환(permutas)을 선호했다. 물물교환이 가능했던 것은, 주택 대부가 담보 대부(mortgage)가 아니라 신용 대부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주택은 담보물로 이용될 수 없었고 거주자들의 대부는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다녔다. 이러한 대부 시스템은 교환을 원하는 사람만 찾으면 되도록 주택 교환을 간소화했다. ---p.96
문화적으로 보면 쿠바 가구들은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보살피는 전통이 깊다. 예컨대, 호세 반데라스는 뇌졸중으로 쇠약해져 휠체어에 의지하는 44세 퇴직 노동자이다. 그는 아내와 누이 셋, 어머니와 아버지(80세,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 장모 이렇게 모두 여덟 명으로 이루어진 가구에 살고 있다. 호세와 아버지는 그의 누이들이 보살핀다. 누이들은 가족의 일원으로 마땅한 책임이라고 여기며 이렇게 돌보지 않는 가정환경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장애인과 노약자, 미혼 여성처럼 취약한 사람들을 거두어 부양하는 확대가족은 구성원들의 사회경제적 문제와 건강 문제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을 줄인다. 이러한 가구 구성은 공동체의 사회적 기능을 강화하고 이웃공동체 안정성을 보강한다.---p.131 선거구는 규모가 작아 기껏해야 1,000~1,500명의 유권자들로 구성된다. 쿠바에서는 후보자들이 공약을 발표하거나 연설과 같은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저 후보자들이 살아온 이력서를 이웃공동체에 배포할 뿐이다. “사람들은 후보자들이 장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약속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지역공동체에서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어느 아바나대학 교수가 설명했다. 선거 과정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약속보다 과거의 업적이다.---p.144 주민 대부분이 자신의 이웃공동체를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응답자의 70%는 집 밖에 나가는 게 두렵지 않다고 대답했고, 대다수(64%)는 살인사건을 목격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수많은 아이들이 거리를 운동장 삼아 뛰어놀고 있는 모습은 아마도 이웃공동체의 확실한 안전성을 보여 주는 가장 좋은 증거일 것이다. 이웃공동체의 규범 구조로 미루어 짐작할 때 보호자 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거리에 ‘살고 있는’ 많은 어른들이 눈여겨 볼 것이며 이웃들은 아이들이 안전할 것이라고 믿을 것임에 틀림없다.---p.151 가장 인상적인 점은 쿠바인들이 주택에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응답자의 약 93%가 임대료나 융자 상환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91%가량은 자기가 살고 있는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p.214 젊은이들은 수많은 길거리 놀이를 만들어내고, 약식 야구, 배구, 축구 같은 전통적인 스포츠 활동도 즐기고 있다.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낚시, 튜브 타기, 수영, 바닷가에서 즐기기 등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노인들을 포함해 모든 집단이 이웃공동체에서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직적인 활동도 많다. 국가 또한 여러 가지 비싸지 않은 공연 제공하는데, 극장, 오페라, 그리고 발레 공연의 입장권은 몇 페소밖에 되지 않을 만큼 싸다.---p.224 이런 경우도 있다. 이웃공동체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오로지 재활용품만 이용하여 병원 수술실 모형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은 기발한 길거리 놀이를 창조하고 버려진 롤러스케이트로 스케이트보드를 만들어냈다. 담배 라이터 재충전에서부터 안경, 냉장고, 오토바이를 고치고 초인종과 그 밖의 그럴듯한 기구에 이르기까지, 쿠바인들은 물건들을 새롭게 꾸미고 창조하여 자신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돈을 번다. ‘발명과 해결’이라는 개념은 비공식 경제 내의 활동으로까지 확장된다.---p.227 응답자의 41%가량은 교통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바나인들이 도시를 돌아다닌다고 할 때 그들 대다수는 중심부 이웃공동체(아바나 비에하, 센트로 아바나, 베다도)에 살기 때문에 걸어서 목적지에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히치하이킹이 매우 대중화되어 있다. 정부 소유 차량의 운전자들은 빈자리가 있으면 차를 세우는 사람들을 태울 의무가 있다.---p.216 옮긴이가 이 책을 번역한 계기는 쿠바 여행이었다. 2009년 1월 약 보름 동안 쿠바에 갈 기회가 있었다. ‘전태일을 따르는 노동운동연구소’에서 기획하여 쿠바 국제교류처의 도움을 받아 쿠바 교육제도를 견학하는 것이 여행의 주목적이었다. 한 주일 동안 유아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각 급 학교를 견학하고 나머지 한 주일은 견학단 다섯 명이 차를 한 대 빌려 혁명군 사령부가 있던 쿠바섬 동쪽 끝 시에라마에스트라까지 다왔다. 우리가 방문한 학교도 감동적이었지만, 아바나 거리와 시골 경관,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삶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학 시절에 폴 스위지가 쓴 《쿠바혁명사》를 읽고 부러웠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쿠바가 생존한 비밀이 무엇일까 하는 오래된 의문도 여행 내내 지속되었다. 여행 중에 쿠바엔 무언가 있다는 감이 왔지만 시원하게 풀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p.293 |
|
‘쿠바식 삶’에 대한 실증적 보고서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카리브 해의 진주.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치의 모델인 쿠바! 하지만 1989년 소비에트와 동유럽 블록의 붕괴로 쿠바는 파멸적인 경제위기로 빠져들었고 더구나 미국 의회는 ‘쿠바민주화법’ ‘헬름스버튼 통상금지법’ 등을 통해 봉쇄정책을 강화했다. 이 무렵 세계 유수 언론과 자유주의 논객들은 너도나도 쿠바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고 외쳤다. 이 책은 1959년 쿠바혁명 이래 무상교육, 무상의료 원칙을 가장 중요한 전통으로 이어온 ‘쿠바식 삶’의 근원을 파고든다. 미국의 도시사학자이자 계획가 헨리 루이스 테일러는 1999년부터 10년 동안 아바나에 머물며 쿠바 사회의 밑바닥에 관한 연구조사 끝에 “그럼에도 쿠바는 살아남았다!”고 증언한다. 외부에서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호혜와 평등, 참여와 연대’를 특징으로 하는 쿠바식 사회주의를 지켜낸 밑바탕에는 풍부한 사회적 자본을 지닌 안정적이고 고도로 조직화된 ‘이웃공동체’(바리오)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훈타 데 비시노’(이웃공동체위원회), ‘이웃공동체의 창조적 발전을 위한 작업장’ 같은 자발적 조직은 정부의 기관과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의사소통을 통해 시민들의 삶을 창조적으로 일구어낸다. 무상의료와 ‘맨발의 의사들’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국민소득도 높지 않은 나라이지만 누구든 아프면 무료로 병원을 갈 수 있고, 전체 국민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만큼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다.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전체 국민의 85%가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무상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다. 또한 범죄율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낮고 잘 갖추어진 재난 대비 시스템은 세계 여러 국가들의 부러움을 산다. 쿠바 정부의 보건의료 이념의 씨앗은 이미 바티스타 정권에 맞선 혁명 투쟁 과정에서 뿌려졌다.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개탄스러운 보건의료 상황을 서술하고 “어떤 어린이도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농촌 주민들의 비참한 빈곤과 심각한 보건 문제는 혁명군의 마음에 큰 동요를 일으켰다. 혁명군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의사였으며 체 게바라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쿠바는 국민 1인당 의사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고, ‘치료비 전액 무료’라는 의료보장 제도를 갖추고 있다. 가정의ㆍ간호사 프로그램을 통해 의료시설은 작은 마을의 구석구석까지 들어가 있는데, 의사와 간호사는 진료실 건물에 거주함으로써 이웃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전 세계 68개국에 2만 명의 의사를 파견하고 있다.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해일이 덮쳤을 때 마지막까지 남아 재해 복구에 땀을 쏟은 135명의 쿠바 의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학생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의과대학인 라틴아메리카의과대학(ELAM)에는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해, 아프리카에서 온 1만~1만 2천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쿠바의 의사 수는 6만 7천명으로 인구 170명당 1명에 달해 588명당 의사 1명인 한국의 3배가 넘을 정도다. 국민의 평균수명도 77.6세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캐나다, 미국에 이어 3위이며, 유아사망률은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다. 그런가 하면 유엔개발계획(UNDP)과 국제적십자연맹(IFRC)은 위험 감소 부문에서 다른 나라들이 본받을 만한 실례로 쿠바를 거듭 꼽았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닥친 뒤로는, 심지어 미국의 학자들과 기자들도 이제 쿠바의 쿠바의 재난 관리 시스템을 연구해서 배워야 할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무상교육과 학업성취도 쿠바혁명에 성공한 뒤 정부는 교육을 혁명의 기초 가운데 하나로 삼았고 1960년대의 문맹퇴치운동으로 사실상 문맹을 제거했다. 모든 교육 과정은 무료이고 2000년 현재 여섯 살부터 열네 살까지 아바나 어린이들 가운데 98%는 학교 교육을 받고 있다. 쿠바인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그 가운데 많은 수가 기술학교나 대학에 진학한다. 훌륭하게 길러진 교사들은 이웃공동체로 돌아가 학교교육의 전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인터뷰 조사에 응한 아바나 주민의 93%가 교사를 신뢰한다고 밝혔다. 쿠바의 초등학교는 오랫동안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평판이 자자했으나, 국가의 학업 성취도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유네스코(UNESCO)의 1998년 보고서에 의해서였다. 유네스코 보고서는 쿠바의 3학년과 4학년 학생들이 인접한 라틴아메리카 11개국의 학생들보다 학업 성적이 월등히 높다는 것을 드러냈다. 연구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시험므 주관한 유엔 기관이 쿠바에 되돌아와 학생들을 상대로 다시 시험을 ?렀지만 재시험은 처음의 결과를 확증했다. 쿠바식 마을 공동체 ‘바리오’ 지은이가 쿠바의 바탕이라고 강조하는 이웃공동체는 단순히 일상생활과 문화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 공간적 환경, 사회 조직들, 내부 기구들, 그리고 정부가 상호작용하는 ‘촉매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웃공동체에 작용을 가하는 동시에 이웃공동체도 사람들에게 반작용한다. 이 때문에 사회학에서 ‘이웃 효과’(neighborhood effect)를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구가 많다. 그 성격에 따라 다양한 사회ㆍ경제ㆍ문화ㆍ의료 문제에서 주민들의 위험이 커지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한다. 흑인, 백인, 물라토로 이루어진 다인종 사회에서 이웃공동체의 높은 안정성은 친밀하게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도시 환경을 만들어 마을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예컨대, 아바나 사람들은 고층 아파트에 많이 사는데, 이런 아파트에서는 물 부족, 과도한 소음, 엘리베이터 고장 같은 공동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민들이 반드시 협력해야 했다. 아바나 어디를 가도 이웃공동체 안에는 반드시 미로처럼 얽혀 있는 길과 공터가 있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이웃공동체 속 이웃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래서 이 공유 공간에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교류하고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함께 일한다. 이처럼 주거 공간의 공유와 협력의 필요성은 쿠바의 이웃공동체 생활이 기초하고 있는 신뢰ㆍ연대성ㆍ호혜성의 토대를 형성했다. 지은이가 사례조사를 진행한 산이시드로 이웃공동체는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참여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생활 공간을 만들어냈다. 잡동사니를 버리는 쓰레기장을 이웃공동체의 정원으로 만들고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식물 재배법과 협동심, 책임감을 가르치는 현장학습장으로 탈바꿈한 ‘젤로 정원’, 모든 연령의 주민들에게 문화와 역사, 교육을 제공하고 도서관, 콘서트홀뿐 아니라 의사가 주관하는 건강이나 환경문제를 토론하는 공간 ‘레오노스 페리스 문화센터’, 공원이 될 운명이었던 공터를 두고 청소년들의 항의 끝에 농구, 축구, 무술, 에어로빅 같은 최신식 체육활동의 공간이 된 ‘헤수스 세르지오 체육관’, 나이든 사람들의 다양한 여가 공간 ‘노인의 집’ 등은 이렇든 정부와 주민의 토론과 참여 속에 만들어졌다. 밑바닥 쿠바인들의 참모습을 밝혀내기 위해 지은이는 쿠바인들로 조사팀을 꾸려 아바나 이웃공동체 30곳에서 398가지 사례를 인터뷰했다. 그 가운데 아바나 비헤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의 가장 전형적인 노동자들의 이웃공동체인 ‘산이시드로’에 들어가 그들의 일상생활을 조사했다. 그 과정은 쿠바 정부의 공식적인 승인이나 보증, 지원 없이 이루어졌다. 자칫 프로젝트에 영향을 주거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 민중의 도시, 아바나 프로젝트 과거 공화국 시대에 쿠바 정부는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찬양하고 부르주아적 부와 권력을 찬미하며 미국의 지배와 사회의 위계질서를 정당화하는 서사를 아바나의 경관에 새겨 넣고자 했다. 데이비드 하비와 리처드 포글송 같은 학자들은 자본주의적으로 건설된 환경은 엘리트 사회를 반영하거나 형상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엘리트 중심의 도시 건설 과정은 인종 및 계급 분리 체계와 시장에 기초한 엘리트 사회에서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반영하는 물리적 환경을 생산하는 과정이 되었다. 엘리트 사회에서는 토지소유의 ‘이윤 추구’ 시장 시스템으로 인해 도시 건설 과정이 땅 투기꾼, 상업적 부동산 개발업자, 주택 건설업자,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건축과 도시계획 회사들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 카스트로가 지휘한 혁명군은 전형적인 부르주아지의 도시 아바나와 미국 설탕 자본이 장악한 농촌을 쿠바 민중의 참여 속에서 완전히 바꾸었다. 쿠바 사회의 혁명적 변화는 정치경제 체제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공간인 이웃공동체까지 완전히 바꾸었다. 혁명 쿠바는 공화국 시기 지배계급의 권력을 상징했던 대통령궁을 혁명박물관으로 바꾸었으며, 미국 의사당을 복제한 카피톨리오를 도서관으로 바꾸고 부르조아지의 거대한 연회장들을 국립극장이나 국립예술박물관으로 바꾸어 민중계급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공화국 시기에 왜곡된 상징으로 세워진 혁명 영웅들의 동상들도 민중계급과 혁명에 연결되도록 재구성했다. 관광도시, 아바나의 탄생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으로 쿠바식 사회주의의 위기에 직면한 피델 카스트로는 1990년 7월 피델 카스트로는 비장한 심정으로, 쿠바가 평화 시대의 ‘특별시기’에 들어왔다고 선포하고 대중들에게 고난의 시기를 대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특별시기를 극복한 배경에는 국제 관광도시로 비약한 아바나 프로젝트가 있다. 1993년 제정된 법률 143호는 도시역사국을 정부와 같은 권력과 권위를 가지는 비정부기구로 대체했다. 이 기구는 과세와 국내외 회사 간 관계 설정을 포함하여 아바나 비에하의 모든 개발에 대한 기획, 재정, 보수의 감독 및 지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에우세비오 레알의 지도에 따라 아바나 비에하의 문화유산은 아바나 관광의 밑바탕이 되었으며 이 도시로 수많은 방문객들을 끌어들이는 자석 역할을 했다. 관광 산업을 뒷받침하는 세련된 인프라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비록 아바나 비에하는 도시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곳이 아바나의 가장 중요한 여행지로 전환함에 따라 특히 베다도와 미라마르를 비롯한 도시 전역에서 역사 유적의 복원과 혁신 또는 새로운 건설이 촉발되었다. 도시 관광은 수많은 방문객들을 즐겁고 흥미로운 여가시간을 보내도록 도시로 끌어들이는 고도로 경쟁적인 산업이다. 이 방문객들의 편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도시는 훌륭한 호텔과 좋은 식당, 이국적인 놀이 장소, 아름다운 기념품점 같은 것은 물론이고 금융 시설, 통신망, 회의장, 효율적인 교통 체계 같은 인프라를 구축해야 했다 소비사회와 쿠바식 사회주의의 고민 사회주의를 구하기 위한 이러한 대담하고도 실용적인 계획은 성과를 얻었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국제 관광은 한 가지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협적인 문제들을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관광 바이러스’와 소비주의의 발흥이었다. 관광 인프라의 창출은 관광객들의 유입과 더불어 쿠바 문화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관광 산업의 노동자들은 숙련 수준과 무관하게 고도로 전문적인 과학자나 의사 같은 숙련 노동자들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벌어들이는 일도 흔하다. 따라서 높은 숙련을 지니고 있음에도 저임금 부문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관광 산업의 일자리로 빨려 들어가는 일종의 ‘두뇌 유출’까지 나타나고 있다. 2006년 7월 31일, 라울 카스트로가 피델한테서 지도력을 넘겨받았을 때, 쿠바는 안정적이고 재창조된 사회인 동시에 수많은 복잡한 문제를 가진 나라였다. 쿠바가 사회주의 깃발을 내던지고 자본주의로 복귀하거나 미국식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려는 듯한 징조는 없다. 라울은 쿠바인들에게 이러한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를 염두에 두고, 낭비와 정부의 비효율, 그리고 다른 사회적 문제들에 관해 공공연히 불만을 털어놓으라고 독려했다. 2008년 2월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 후 첫 연설에서, 그는 정부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가 “국가 경제와 생산력의 지속적인 강화를 바탕으로 하여 물질적ㆍ정신적 측면에서 주민들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