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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혼돈과 질서 사이 1. 집합실험 ― 축제, 실존, 실험 2. 재난 위험과 사물의 공공성 1) 재난사회학과 재난인류학 2) 기술과학 리스크 3) 사물의 공공성 3. “저에게도 지진의 목소리를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인류학자의 방문 4. 책의 구성 제2장 만물의 만물에 대한 투쟁 1. 불안의 진술: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2. ‘양치기 소년’ 지진학자 3. 탐지(探知)와 감지(感知)의 만남: 무지와 불신을 넘어서 4. 재앙의 예견 1) 쟁점의 이동 2) 집합의 확장 3) 적대적 대변인 5. 복잡한 문제 제3장 지구를 연구소로 들여오기 1. 연구소의 장소들 1) 조직도와 배치도 2) 장치를 든 예언자 3) 지진의 수를 늘리다: 대상의 연행 2. 옮겨 오기 1) 집단을 찾아서 2) 다중 정체성 3) 잡음 속의 목소리 3. 지진의 아상블라주: 관여와 비관여 4. 국지적 지구들의 지정학 제4장 재난은 세계의 수를 늘린다: 재앙의 상연 1. 섭외 1) 자료실에서 스크린으로 2)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다 3) 요소요소의 요소들 2. 상연 1) 시나리오의 증식: 전문가에서 연출자로, 대중에서 출연자로 2) 상연 양식의 목록 3. 복합재해: “나에게 연구소를 달라, 지구를 파괴해 보이겠다” 4. 방재와 감재의 위계: 여러 세계를 사는 법 제5장 안전·안심의 지리학 1. 배포 1) 출장과 연장 2) 장비 갖추기 3) 예측의 장소: 미래, 과거, 현재의 파동 2. 배정 1) 기술 구역의 교차 2) “우리 마을은 우리가 지키자”: 자기초월체로서의 공동체 3) 공조(公助), 공조(共助), 자조(自助)의 배정 3. 안전·안심의 배치와 공공성 4. 상정(想定)의 바깥 제6장 집합실험 속의 존재론 1. 집합실험의 확장 2. 실천 속의 존재론 1) 총섭(總涉) 2) 상입(相入) 3) 유체(流體) 4) 환영(幻影) 3. 민주적 실험을 위한 절차 4. 민족지와 참여 제7장 재난과 살다 1. 재난과 새로움 2. 생태에서 생존으로: ‘살다’의 정의 3. 만물에 호부호형을 허하라 참고문헌 찾아보기 발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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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chaos)과 질서(cosmos)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가 있다. 대지진 이후의 혼돈을 출발점으로 잡은 이 책은 혼돈에서부터 질서에 이르기까지의 정치 과정을 추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필자는 혼돈과 질서의 양극보다는 그 사이의 정치에 눈을 두었는데, 이 과정이 궁극적으로 질서에 도달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확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질서와 짝을 이루는 것으로 여겨지는 성공, 자연스러움, 공고한 사실, 마땅한 가치, 안전, 평형 상태, 과학 지식으로 수렴되는 깔끔한 결말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미리 밝혀 둔다.--- p.2
위의 논쟁에서는 과학자가 지진에 대한 사실을 제공하고 이 사실에 근거해서 정치가가 협의를 통해 결정을 이끌어 내는 익숙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정치가는 지진을 예지할 수 있다는 지진학자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과학자는 지진의 유형에 대해 무지한 채로 방재 대책을 세우겠다는 정치가를 믿지 않는다.--- p.77 드디어 필자는 지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확히는 지진 파형을 노트북 화면 위에서 지진학자의 지시에 따라서 보았다. 노이즈를 뒤로하고 지진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즉 지진학자가 “이게 지진이네요.”라는 말을 하는 순간, 그때까지 필자가 기술해 왔던 수많은 사물과 사람과 장소, 그리고 사건들이 잊힌다. 그 ‘지진’이 프로그램의 실행으로 노트북 스크린 위에서 일어났다는 점이 잊힌다. 메모리 카드가 어디서 왔는지가 잊힌다.--- p.169-170 심리학자가 ‘크로스로드’라는 이름을 붙인 게임을 만든 것은 재해 현장의 ‘뒤죽박죽’의 상황을 재현하는 무대를 배치하기 위해서였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재해 관리의 일반적인 방법이 뭔가 올바른 방법, 즉 정답을 열심히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매뉴얼이나 경직된 계획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이 방법이 모두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모든 것이 혼란스런 재해 상황에서 대응 방식에 대한 정답을 하나로 정해 두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가 체험자들을 면담했을 때 깨달은 것은 그 상황에서 정답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p.222-223 고베 대지진 ‘이전’의 지진 대책은 “‘지진이 발생하기 전’ 어떻게 대피하고 피해를 막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고베 대지진 ‘이후’에는 “‘지진 피해가 일어난 후에’ 어떻게 지진에 대응하고 피해를 줄일까?”라는 질문이 더해졌다. 전자가 피해의 억지(抑止)를 목적으로 하는 방재(防災)의 ‘어젠다’라면, 후자는 피해의 경감(輕減)을 목적으로 하는 감재(減災)의 ‘어젠다’로 분류된다.--- p.261 “‘방재 오타쿠’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방재회와 주민들의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사람들이 열심히 하니까 우리들은 관심을 안 가져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딜레마에 빠지는 거죠. 행정가나 자주방재회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주민들은 방재에 관심을 덜 갖게 됩니다. 흥미를 끌기 위해서 미디어라도 불러들이면 방재회는 오히려 세미프로로 간주되어서 더 괴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주민들과 함께하는 것,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322 시련 속에서 이끌어 낸 새로움이 곧 인류와 세계의 현재이다. 바꿔 말하면, 인류는 만물과 함께 재난 속에서 스스로를 창조하는 스스로의 피조물이다. --- p.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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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에 대비하는 일본 방재과학의 집합실험을 민족지의 형식으로 기술한 [재난과 살다]. 일본의 방재과학이 대지진 등의 재난을 어떻게 대비해 왔는지를 인류학자의 눈을 따라가며 살펴볼 수 있게 구성한 책이다.
‘재난 직전’ 및 ‘재난 직후’에 주목하기보다는 재난과 재난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실험들과 그것들이 이루는 일련의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이 책이 다루는 세계는 “질서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혼돈 속에 빠져 있지도 않은, 과정 속의 세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과정 속의 세계에 대한 탐구가 지진 재해(재난)의 존재 방식을 살펴보는 일과도 연관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집합실험을 통해 지진 재해의 존재 방식이 다중적이면서도 복합적으로 ‘생산’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저자는 집합실험에 개입, 참여하는 다양한 행위자가 공중의 목소리를 이루는 모습을 추적하면서, 비인간 행위자를 포함한 모든 행위자들의 목소리에 최대한 열려 있는 것이 재난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라 주장한다. ‘재난과 살다’라는 명제로 집약되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지진 등의 재난을 고정된 대상으로만 바라봐 왔던 기존의 관점을 돌아보게 한다. 더하여 저자는 인류학의 민족지 또한 집합실험의 한 성원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인류학의 민족지가 집합실험, 나아가 재난 대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섬세한 기술을 담고 있다. 이는 실제로 민족지를 작성하는 인류학자뿐 아니라 사회과학 및 여타의 이론적 틀을 필요로 하는 학술 분야의 연구자에게도 유용한 방법론적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