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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부 나의 환경 1. 우리 고향 2. 우리집 역사 1). 선대의 내력 2). 고조부 3). 조부 4). 부친 5). 조모 밀양박씨(密陽朴氏) 6). 모친 함안이씨(咸安李氏) 7). 부친의 형제들 8). 나의 형제자매 제2부 한문공부 55년 1. 시작하는 말 2. 출생 3. 취학 이전 4. 초등학교 시절 5. 중학교 시절 6. 고등학교 시절 7. 군대시절 8. 대학생활 9. 한국학대학원(韓國學大學院) 석사과정 10. 성균관 대학교 박사과정 11. 경상대학교 부임 부록 실재(實齋) 허권수(許捲洙) 교수 연혁 및 학술 업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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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무슨 운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0살 때부터 한문을 좋아하여 조금도 곁눈 안 돌리고 밤낮으로 공부하였고, 그 이후 잠시도 쉬지 않았고, 지금도 한문을 좋아하는 강도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어릴 때 가장 큰 소원은, ‘평생 손에 한문책을 들고 읽으면서 살아 갈 수 있는 인생’이었는데, 소원대로 평생 한문책을 읽으며 살아 왔다. 한문책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자리인 한문학과 교수로 34년을 지내왔다. 처음 5년 동안은 중문학과에서 교수로 지냈지만 가르치는 과목은 한문이었으니, 한문학과와 다를 바 없었다. 1983년도에 경상대학교(慶尙大學校)에 부임하여 연구와 교육을 하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한문학과 창설, 남명학연구소(南冥學硏究所) 창설, 남명학관(南冥學館) 건립, 경남문화연구원 설립, 고문헌도서관(古文獻圖書館) 건립, 남명학연구후원회 결성, 남명학연구기금 5억 조성, 강우전통문화연구기금(江右傳統文化硏究基金) 5억 조성 등 의미 있는 일들을 차례 차례 이루어 냈다. 한문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큰 행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두 분 학자의 문집인 『퇴계전서(退溪全書)』, 『남명집(南冥集)』을 번역하는 일에 참여한 것이다. 서투른 중국어로 공자(孔子) 종손 공덕성(孔德成) 선생과 우리나라의 제일의 한학자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의 대화를 통역하기도 하였다. 유림들의 선망의 대상인 도산서원(陶山書院) 재유사(齋有司)와 덕천서원(德川書院) 원임(院任)을 모두 맡았다.중국화중사범대학(中國華中師範大學), 북경사범대학(北京師範大學), 북경대학(北京大學), 남개대학(南開大學) 등에 겸직교수, 방문학자,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여, 중국국가연구사업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내가 연구하는 데 아무런 경제적 애로가 없도록 지원하기 위해서 500여 명의 명사들이 모여 후원회를 결성해서 정성을 다해 도와주었다. 이번에 동방한학연구소(東方漢學硏究所)와 실재서당(實齋書堂)의 문을 연 것도 모두 후원회 회원들의 도움 덕분이다. 분수와 능력에 넘치게 좋은 일을 아주 많이 만났다. 훌륭한 많은 분들이 저자를 도와준 덕분이다. 감사해야 할 분들과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더욱 겸허한 자세로 이 세상과 국가민족을 위해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굳게 한다. 이 모두의 근원은 한문 공부이다. 한문 공부를 꾸준히 한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공부가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이 되지 않고, 자신을 수양하기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이 되도록 노력은 해 왔지만, 뜻과 같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10살 때부터 거의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한문을 좋아하며 지내온 이력을 다산연구소(茶山硏究所) 박석무(朴錫武) 이사장에게 이야기했더니, “허교수야말로 정말 기인(奇人)이야! 대한민국 10대 기인에 충분히 들겠어. 다만 기인의 조건은 자기가 기인이 되려고 의도하면 안 되고, 기인인 체해도 안 돼”라고 했다. 어떤 교육학 전공교수는 “어려서부터 거의 독학으로 학문을 이룬 것은 하나의 좋은 연구사례입니다. 공부한 과정을 위주로 자서전을 꼭 하나 남기십시오”라고 강하게 권유했다. 그래서 자서전을 하나 쓸까 생각했다가, 한편으로 생각하니, “부끄러운 자기 이야기를 다 밝힐 것 뭐 있나? 또 자서전이라는 게 대개 자기 자랑하고, 과장하기만 하고, 부끄러운 일, 잘못한 일, 자신의 결점 등은 감추는 경향이 많은데, 꼭 쓸 것 있겠나?”하여 몇 번 붓을 들었다가 놓았다. 한편으로는 “정치가들은 자서전 쓰는 사람이 많은데, 학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위축되어 자서전을 못 쓰는데, 학자도 자기가 공부한 과정을 자서전으로 남겨 후세 학자들이 참고하도록 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붓을 들었다. 중국 학자들은 자서전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한문 공부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60여 년의 시대상이나 풍속을 알 수 있는 이야기도 양념으로 곁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