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신디, 오! 신디
송영희 회고록
진명출판사 2010.06.01.
원제
Bamboo Heart
가격
15,000
10 13,500
YES포인트?
7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서문 기복 많은 삶의 여정에 대한 찬사 _ 론 네슨 (전 NBC 기자,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 대변인)
프롤로그 대나무 같은 마음

01. 영국 공주, 영희(英姬)
02. 빼앗긴 땅에 자라는 대나무
03. 나가이 에이키
04. 거대한 용이라는 이름의 아버지
05. 여자의 머리카락에는 삶이 있다
06. 클럽의 오르간 연주자가 되다
07. 대박이 터진 첫 무대
08. 전쟁, 헤로인, 레즈비언 그리고 폐결핵
09. 깊어가는 밤의 빛과 그늘
10. 여자가 되는 것이 즐거워?
11. 신디, 동남아 순회공연을 떠나다!
12. 천국을 넘어, 사선을 넘어
13. 쇼핑 천국 홍콩으로
14. 사이공에서 운명의 남자를 만나다
15. 저는 결혼이 아주 겁이 납니다
16. 결혼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
17.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차이
18. 지상 최대의 선물, 에드워드
19. 영희, 백악관 공식 만찬에 가다
20. 어항 속에 갇힌 여자들
21. 올해의 운세
22. 길이 끝나자, 길이 시작되었다
23. 달을 향해 쏘아라
24. 여자의 집은 성이다
25. 어머니의 장례식

감사의 글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도 있다

저자 소개 2

1935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현재 워싱턴 메릴랜드에 거주하고 있다.그녀의 회고록은 2009년 BAMBOO HEART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전문작가가 아닌 그녀가 2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영문 회고록을 집필한 이유의 중심에는 그녀의 아들 에드워드가 있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본 얼티메이텀〉, 〈브레이브 원〉 등의 영화 제작에 카메라맨으로 활약한 아들 에드워드에게 '한국'이라는, 그리고 '엄마'라는 뿌리의 흔적을 남겨주고 싶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4·19 혁명, 베트남 전쟁을 관통하면서 그녀의 삶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1935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현재 워싱턴 메릴랜드에 거주하고 있다.그녀의 회고록은 2009년 BAMBOO HEART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전문작가가 아닌 그녀가 2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영문 회고록을 집필한 이유의 중심에는 그녀의 아들 에드워드가 있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본 얼티메이텀〉, 〈브레이브 원〉 등의 영화 제작에 카메라맨으로 활약한 아들 에드워드에게 '한국'이라는, 그리고 '엄마'라는 뿌리의 흔적을 남겨주고 싶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4·19 혁명, 베트남 전쟁을 관통하면서 그녀의 삶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던 어린 가장,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 전쟁 속에서 국적을 뛰어 넘는 사랑에 빠진 여인, 누구보다 독립적인 여류 사업가까지 그녀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쉽지 않았던 생, 유난히 거대한 원을 그린 후 책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렇게 소회를 밝힌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비로소 저의 존재가 의미롭게 고국으로 회귀한 기분이 들어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어번역학을 전공하고 글밥 아카데미에서 출판번역 과정을 마친 후,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며 좋은 글을 번역하는데 행복한 에너지를 쏟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원워드』,『왜 그들이 이기는가』,『히스토리』,『5분 작가』,『철학의 책』,『심리의 책』,『더그래픽북』,『소크라테스 카페』, 『인생이 막막할 땐 스토아철학』, 『발견자들 1, 2, 3』, 『상실을 이겨내는 기술』,『위대한 예술』등이 있다.

이경희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6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596g | 152*215*30mm
ISBN13
9788980104567

책 속으로

새해가 되면 학생들은 모두 새해 의식에 참여하러 학교에 가야했다. 우리는 얼어붙을 듯이 추운 날에 학교 운동장에 서서, 교장이 밖으로 나와 천황이라 불리는 일왕으로부터 받은 특별 전문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그 시간은 언제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지루했다. 교장은 검은 상자를 두 손으로 눈높이까지 들고 학교 건물 안에서 바깥의 연단까지 행진했다. 그동안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있어야 했다. 교장은 그 상자를 감싸고 있는 두루마리를 걷어내고 함을 열어 큰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내용이 무슨 뜻인지 몰랐고 오로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내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일본 천황은 천국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전문을 낭독하는 동안 감히 고개를 들면 안 된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는 그 일왕 히로히토를 백악관 영접실에서 만났다. 히로히토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콧수염이 있는 모습으로 꼭두각시처럼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나만큼이나 키가 작았다. 그는 몸은 그곳에 있어도 마음은 멀리 다른 곳에 있는 듯 보였다. 그 작고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을 수 있었을까? --- 03. 나가이에이키 에서

마을은 원시적이긴 했으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마을 여자들은 저녁밥을 지었고, 굴뚝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연 꼬리처럼 피어올랐다. 하늘은 노을로 붉게 물들었고, 세 개의 산봉우리 위에는 구름이 어지러이 걸려있었다. 풀을 베고 돌아오는 소의 청아한 워낭 소리를 들으며 그 그림 같은 풍경을 한가로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이렇게 평온한 마을 곁의 어딘가에서 그토록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선뜻 떠올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시장이나 가게, 목욕탕도 없었다. 병원도 없었고 차도 없었다. 무엇보다 노래와 춤이 없었다. 점점 초가들과 끝없이 펼쳐진 논밭에 넌더리가 나기 시작했다. 마을을 걸어 다니는 것도 싫었고,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진 후까지 논이며 들에서 몸을 숙이고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거무튀튀한 얼굴들, 계속 빨아서 해지고 바란 한복을 보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05. 여자의 머리카락에는 삶이 있다 에서

아기가 태어나고 몇 달 후, 어머니는 어디로 가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어디론가 떠나 버리셨다. 그날 밤 아기는 젖을 달라고 내내 보챘다. 어머니는 어디로 가신 것일까?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툇마루에서 아기를 어르고 달랬다. 그리고 가능한 한 부드럽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래도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아기에게 무엇을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아기는 밤새 울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아기를 등에 업고 재우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울어댔다. 팔로 안아 이리저리 흔들어도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솜뭉치 조각에 약간의 물을 적셔 아기의 입에 가져가 보았다. 아기는 그 솜뭉치를 빨려고 하다가 곧 더 크게 울어댔다. 아기는 내가 자기를 속이려고 한 것에 화가 난 듯 더욱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나는 당황한데다 마음이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웃옷을 올리고 내 젖꼭지를 물려주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이 소용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 나는 이웃 여자가 최근 아기를 낳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 진아야, 조금만 참아.
나는 아기에게 속삭였다.
- 닭이 울 때까지만 기다려. 아침이 오면 젖을 얻으러 갈 수 있어.
하늘이 밝아오고 수탉이 울자, 나는 진아를 이웃집에 데려갔다. 진아가 급하게 젖을 삼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진아가 그 여자의 커다란 가슴 위에서 숨이 막히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리고 내 어머니가 처마 끝에 새들만도 못한 행동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새들은 먹이를 달라고 계속 보채는 새끼들에게 벌레를 물어다주며 스스로 날아갈 수 있을 때까지 돌봐주었는데.
해가지면 나는 어린 진아를 등에 업고 다리를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버스가 도착하면 어머니의 얼굴을 찾으려고 버스 안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버스에서는 낯선 사람들만 내렸고 나와 눈을 마주쳐주는 이조차 한명도 없었다. 그리고 버스가 한바탕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고 나면 나는 내 안에 무언가가 사라진 듯 공허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05. 여자의 머리카락에는 삶이 있다 에서

우리 가족은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고군분투하며 살았기 때문에 개개인의 욕망에까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동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동건은 어릴 때부터 머리가 비상했다. 주위 친구들은 동건이 독일 기술자들만큼이나 뛰어난 두뇌를 지녔다고 말하곤 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동건의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동건은 원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미군회사에 다니는 나를 본 어느 날, 정서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마음 속 깊이 수치심을 담아두게 되었다. 내가 미군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내게는 양갈보라는 수식어가 어디를 가나 따라 다녔다. 동건은 그래서 자기 주변 사람들과도 담을 쌓고 지냈다.
하지만 나는 노래실력이 좋았고 운도 좋은 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내게 붙은 수식어대로 술집이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살았을 지도 모른다.
나도 어릴 적에는 공부를 더해서 피아니스트나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굴곡 많은 삶을 살면서 그것이 꿈일 뿐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동안 내내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동건과 대화를 나누었다. 내 동생이 서울대학교에 갈 수 있는 아이라면 가도록 해주고 싶었다. ---09. 깊어가는 밤의 빛과 그늘 에서

1960년 4월 어느 날이었다. 목욕탕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보도를 따라 죽 늘어서서 거리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과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거리가 황량했다. 택시도 없었고 버스도 없었으며 그 어떤 소음도 나지 않았다. 나는 한 여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 시내에서 대규모 학생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요. 경찰들이 경무대(청와대의 옛 이름 - 편집자 주) 근처 일부 학생들에게 최루탄을 쏘았다는 말도 들려오네요.
- 어떤 학생들 말인가요? 어느 학교 학생들인데요?
충격을 받은 나는 계속해서 물었다.
- 서울대학교인가요?
- 서울대학교 학생들도 있고, 다른 대학교에서 온 학생들도 함께 있어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동건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하면 동건에게 갈 수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낡은 트럭 한 대가 덜컹거리며 멀리서 다가왔다. 그 위에는 어린 학생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그 중 한 학생이 피로 물든 티셔츠를 깃발처럼 높이 쳐들고 외쳤다.
- 서울 시민 여러분! 서울 시민 여러분!
그 학생의 목소리는 강했지만, 막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 서울 시민 여러분! 정부가 여러분의 자식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그 광경을 본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리들은 오늘날, 한국의 역사를 바꾼 이 날을 4?19혁명이라 부른다. 서울 시민들은 정부의 부패를 비롯해 권력에 굶주린 대통령의 거짓말과 부정선거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켰다. 그 4월에, 마산시에서 최루탄을 쏘아 한 학생을 죽인 경찰로 인해 한국 국민들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학생들은 이승만 정권과 담판을 지을 각오를 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나는 온 사방으로 동생을 찾아다녔다. 내가 마침내 동생을 찾았을 때, 동생은 내내 가두행진과 폭동에 참여하고 있던 터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한국의 광복에 업적을 남겼는데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부패를 일삼았다. 그는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의 아내는 한밤중에 하와이로 망명을 했고 부통령 이기붕과 그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호화로운 주택 지하실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 사인은 권총자살로 판명되었다. 이렇게 한국의 학생들은 민주주의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냈다. ---09. 깊어가는 밤의 빛과 그늘 에서

론은 가끔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했다.
- 한국인들은 김치를 먹을 수 없게 되면 며칠 뒤 금단증상을 겪기 시작하지.
그 말에는 론이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우리 한국인은 김치가 없으면 머리가 잘 안돌아가는 것 같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훗날 우리가 일본에 갔을 때 론은 달콤한 것을 먹지 못하면 짜증을 부리곤 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온 나라의 문화에 따른 식습관이 있다. 때로는 늘 먹어오던 것을 먹지 못하는 것이 괴롭고, 서글프기까지도 할 수 있다. 론에게 달콤한 음식이 필요한 것과 내게 김치가 필요한 것은 같은 맥락이었는데, 그는 그런 농담으로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15. 저는 결혼이 아주 겁이 납니다 에서

나는 땅속에 묻어 둘 장독을 구하기 위해 몇몇 가게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김장용으로 특별히 만들어진 한국식 장독은 없었다. 그래서 긴 항아리 두 개를 샀다. 그 항아리는 약 45센티미터 높이에 지름이 약 38센티미터 정도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항아리들은 큰 식물을 심는 화분 용도였다.
나는 어머니와 올케 영자와 함께 가게에 가서 배추와 순무를 큰 상자로 사다 날랐다. 그리고 그 후 본격적으로 〈김장 파티〉를 열었다. 먼저 우리는 워싱턴포스트지 여러 장을 부엌 바닥 전체에 깔았다. 어머니와 영자는 바닥에 앉아 김장을 담글 준비를 했다. 영자는 배추를 세로로 길게 4등분으로 잘라 씻은 다음 배추 숨이 죽도록 그 위에 소금을 충분히 뿌렸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마늘 껍질을 까셨다. 그 다음에는 파, 젓갈, 다진 마늘과 생강, 고춧가루, 가늘고 길게 썬 순무 등을 한데 섞었다. 배추의 숨이 충분히 죽었을 때 어머니는 매운 배추 양념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식물성 기름을 손에 바른 다음 여러 겹의 배춧잎 사이사이에 속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속을 채워 넣은 배추는 둥글게 말아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은 후 배추를 잘 눌러서 배추의 즙이 맨 위로 배어나오게 하셨다. 김치를 다 담근 우리 셋은 항아리를 뒤뜰로 옮겨 땅에 묻었다. 미국인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가 시체를 묻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18. 지상 최대의 선물, 에드워드 에서

저녁식사가 끝났을 때, 내 저녁 파트너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한 숙녀가 내게 자신을 소개했다.
- 우리는 말할 기회가 없었네요. 내 이름은 에스티 로더입니다. 당신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에스티 로더라니? 그 시절에도 한국에서 여자들은 에스티 로더 화장품들을 순금만큼이나 귀하게 여겼다. 그 제품은 당시 한국에 알려진 유일한 외제 화장품이었으며, 한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 화장품을 동경하고 있었다.
나는 이 만찬회에서 에스티 로더와 처음 만난 후,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 레오나드 로더와 그의 아내까지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식당을 나오자, 뉴스에서 보았던 다른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당시 미국의 국방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 내외를 비롯하여 하원의장인 칼 앨버트, 재무장관인 윌리엄 사이먼, 국방장관인 제임스 슐레진저 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식당 입구 근처에서 헨리 키신저가 내 시선을 끌었다. 그는 자신보다 훨씬 큰 약 182센티미터 키의 아내, 낸시를 올려다보면서 아내의 뺨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키신저는 결혼하기 전 젊은 신인 여배우들을 많이 데리고 다녔다. '권력은 최고의 최음제'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19. 영희, 백악관 공식 만찬에 가다 에서

어머니가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이 비행기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것을 들었다.
- 최순옥 여사님,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그 방송은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지만 어머니는 곧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어머니를 찾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비행기 안에 동명이인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하셨다고 한다.
결국 새로운 멘트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 최순옥 여사님, 백악관 공보비서관 론 네슨의 장모님,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어머니가 비행기 앞으로 갔을 때,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어머니를 진입로 아래에서 재빨리 데리고 공항 터미널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부산에서 온 동생 내외가 서 있었다. 어머니는 한국에 가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 사위에 대해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삼촌이 말했다.
몇 명의 남자들이 노란 보호선을 따라 어머니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짐을 가지러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그들은 알아서 다 해드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기자들이 가득한 VIP실로 데려갔다.
- 나는 한 방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은 처음 보았단다.
어머니는 그때를 떠올리셨다.
- 나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어. 울고 있었고 옷도 잘 차려입지 않았었거든. 그리고 오래된 여행 가방과 낡은 핸드백이 줄로 칭칭 감겨 있었지. 그곳에서 나는 미국 대통령 공보비서관의 장모더구나. 정말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20. 어항 속에 갇힌 여자들 에서

1980년대 초, 한국정부는 여전히 외국제품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금지품목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제품 중 하나가 에스티 로더의 화장품이었는데 한국의 한 화장품 회사가 에스티 로더와의 합작투자에 관심을 보였다. 에스티 로더는 내가 론과 부부였을 때 쌓은 우정으로 내게 종종 제품을 보내오곤 했었다. 나는 그 일로 에스티 로더와 그의 아들 레오나드 로더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에스티 로더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회사였고 회의 일정이 끝도 없이 잡혀 있었지만 그녀는 감사하게도 내게 시간을 내주었다. 그리고 레오나드 로더는 자사의 경영진 중 한 사람을 내게 소개해 그와 한국의 회사를 연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자신감에 넘치기 시작했고 한국이 내 최고의 자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일 년에 몇 번씩 한국으로 가서 정치인들과 경영진들을 만났다. 나는 한국에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고, 내 있는 모습 그대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삼성, 대우, 금성, 현대 등의 대기업을 비롯한 여러 기업의 회장들과 경영진들을 만났다. 또 여러 정치인들을 연회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그들은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해 친구들 무리에 소개시켜주곤 했다. 기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3. 달을 향해 쏘아라 에서

출판사 리뷰

양산 초가집에서 백악관까지
가수 송영희의 영화같은 인생

가수 송영희를 기억하시나요?


지금이야 행사에서 분위기 띄우기용 멘트로나 가끔 쓰이고 있는 표현이지만 그 옛날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이라는 수식은 사실 아무에게나 붙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에 단 하나 뿐인 특급호텔로 서양식 공연 트렌드를 주도하던 워커힐 호텔에서 공연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신디와 애플즈〉라는 이름으로 '진짜' 동남아 순회공연을 다니고, 워커힐 호텔에 스카우트 되어 무대에 오르고, 미8군 무대에서 A등급 쇼(당시 미8군의 플로어쇼는 미국에서 파견된 음악 전문가들의 엄정한 심사를 통해 실력별로 등급을 매겨 공연료를 지불했다)를 주도했던 송영희는 동시대를 함께 산 이들의 기억 속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존재감 넘치는 실력파 가수'의 모습으로 아련하게 남아있다.

한국의 역사, 신디의 역사
『신디, 오! 신디』는 〈님은 먼 곳에〉, 〈고고 70〉, 〈나와 마릴린〉, 〈자이언트〉 같은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많은 문화 컨텐츠들이 보여준 한국의 매력 다분한 과거를 송영희만의 색깔로 다루고 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최악의 삶과 최고의 삶을 모두 경험한 송영희의 자아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그녀는 유난히 진폭이 큰 삶을 살아내며 형성된 특유의 정서로 그 시절과 자신의 삶을 버무려 리얼하게 복원해냈다. 어머니의 남자친구, 1960년대의 두서없던 연예계 풍경, 미래가 불안해 점집을 찾아다닌 이야기, 남편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 등 관습이나 체면을 이유로, 과시를 목적으로 자신의 삶이나 시대를 가공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담백하고 진솔한 한국의 과거를 그녀의 삶을 매개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송영희의 삶, 화려한 2라운드
또 하나 특별한 점은 그녀가 한국을 떠난 이후의 삶이다. 한국은 그녀에게 좁았다. 그녀의 삶은 한국의 역사에만 휘말린 것이 아니었다. 공연을 위해 몇 번이나 들렀던 베트남은 전쟁 중이었고 그녀는 그 곳에서 일생일대의 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커다란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는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의 아내이자 사진작가인 질 크레멘츠의 작전으로 NBC 종군기자였던 론 네슨과의 결혼에 골인하고, 이후 백악관을 드나들고, 워싱턴의 사교계에서 에스티 로더, 헨리 키신저, 안소니 퀸, 앤디 워홀, 그 외 수많은 한국의 정치 · 경제계 저명인사들과 어울린다. 발랄한 그녀의 화려하고 이국적인 경험은 독자들의 혼을 쏙 빼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롤러코스터 같은 책, 『신디, 오! 신디』

이 책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의 회고록이지만 〈누구와 어떤 관계였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하는 식의 폭로성 이슈를 담은 회고록이 아니다. 그녀는 다만 충실하게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써냈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때문에 〈신디, 오! 신디〉는 그 시절을 보낸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다. 독자들은 『신디, 오! 신디』를 통해 여태까지 '특별한 삶을 산 누군가의 회고록'에서 기대하기 힘들었던 '친근한 공감'과 '아련한 향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롤러코스터 같은 성격을 지녀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게 되었는지, 아니면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다 보니 롤러코스터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수줍다가도 거침없고, 여리다가도 지독하고, 우아하다가도 소탈하고, 먼 세상사람 같다가도 내 이웃 같다. 때로는 미국인이고, 때로는 아시아인이고,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인 그녀. 『신디, 오! 신디』 또한 마찬가지다. 흥미진진한 신디의 이야기에 빠져들면 남은 페이지가 무서운 속도로 줄어든다. 언제 달리기 시작했냐는 듯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롤러코스터처럼.

리뷰/한줄평2

리뷰

7.6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